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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46장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은혜를 생각하면 날마다 감사의 찬송이 끊이지 않아야 마땅함에도 그들은 마실 물이 없다며, 또 먹을 음식이 없다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들을 출애굽 시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자손을 벌하거나 징계하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라고 하셨습니다.
(13-14)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며, 저녁에는 고기로, 또 아침에는 빵으로 배부르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스스로 어떤 분이신지 증명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메추라기는 작고 둥근 머리와 짧은 날개, 그리고 통통한 몸집을 가진 꿩과의 새인데,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철새입니다. 그리고 신 광야는 봄에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을에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메추라기가 잠시 쉬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녁에 메추라기가 와서 이스라엘 진에 덮이게 하셨습니다. 메추라기 떼가 이스라엘 진에 덮인 것을 철새 이동에 의한 우연한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메추라기 떼가 이스라엘 진에 덮인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메뚜기 재앙을 몰고 오신 것처럼,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오신 것입니다(민 11:31).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친히 하신 일인 것입니다.
‘메추라기가 와서’는 직역하면 ‘그리고 메추라기가 올라왔다’는 뜻입니다. 저녁이 되자 메추라기 떼가 지평선 너머에서 이스라엘 진 위로 갑자기 올라왔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치고 있는 진영 위로 갑자기 올라오는 메추라기 떼의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교우님 중에 메추리알이라고도 불리는 메추라기알을 지금껏 한 번도 드셔보지 않은 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입니다. 반대로 메추라기 고기를 드셔보신 분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입니다. 저도 아직 메추라기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는데, 먼저 먹어본 분들의 말에 따르면 메추라기가 굉장히 맛있다고 합니다. 메추라기가 맛이 있음에도 주변 시장이나 마트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은, 영계보다도 작은 크기에 살도 많지 않아서,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맛있는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저녁마다 먹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민 11:21). 광야에서 한 달 동안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는 민족이 이스라엘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를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자손이 뭐가 예뻐서 이런 일을 하셨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동기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이해 불가능한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녁에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제 아침 식사가 준비됩니다. 성경 기자는 아침에 이슬이 이스라엘 진 주위에 있었고, 그 이슬이 마른 후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14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보겠습니다.
(14, 새번역)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고대에 광야는 물이 부족해서 풀과 같은 식물만 자랄 수 있는 황량한 곳이었고, 사람이 잘 살 수 없는 곳이어서 버림받은 곳이자, 사람이 그곳에 살기를 포기한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야에는 귀신들이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바로 그 광야 지면에 아침마다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였습니다. 이 정체불명의 물체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아침에 배불리 먹게 하시겠다는 빵이 맞을까요?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이스라엘 자손도 그것을 처음 보았기에 그 정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무엇이냐?” 앞 천막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도, 옆 천막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도 누구 하나 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정체불명의 물체는 하늘에서 내려왔기에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나도 몰라. 이게 무엇이냐?”라는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이게 무엇이냐’는 히브리어로 ‘만 후’입니다. 만나라는 명칭은 이 ‘만 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보며 “이게 무엇이냐?”라고 물으면서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만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매일 내리신 하늘의 양식이었습니다.
한편 만나를 자연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만나가 광야에 사는 벌레의 분비물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대체 벌레들이 날마다 얼마나 많은 분비물을 만들어야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매일 먹을 수 있겠습니까? 만나는 이 땅의 소산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특별한 양식입니다.
시편 78편 24절 말씀입니다.
(시 78: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하나님께서 광야에 비 같이 내려 이스라엘 자손으로 먹게 하신 만나는 말 그대로 하늘 양식입니다. 그것을 먹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정확히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신비의 양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나가 아무리 하늘 양식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49절에서 5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요 6:49-51)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은 하늘 양식인 만나를 먹고도 모두 죽었지만,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인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영생을 얻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요 6:53-56).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매일 ‘한 사람에 한 오멜씩’ 만나를 거두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멜은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출애굽기 16장에서만 나오는 도량형입니다. 구약성경에 여러 번 등장하는 호멜이라는 단위와는 다릅니다.
원래 오멜은 ‘보리 한 묶음’ 또는 ‘곡식의 양을 측정하는 조그만 토기 사발’을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이것이 점차 물질의 부피를 재는 단위로 그 의미가 정착되어, 한 오멜은 약 2.2리터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한 오멜은 2.2리터와 같은 정확한 양을 의미한다기보다 원래의 의미인 곡식의 양을 측정하는 토기 사발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먹을 만큼 한 오멜씩 거두라’는 명령에 비추어 보아 한 오멜을 정확한 도량형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오멜씩 거두었지만, 그 거둔 양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했다’는 말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하늘 양식을 주신 하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에게 테스트를 병행하십니다. 하나님이 병행하신 테스트는 각 사람이 매일 먹을 만큼의 만나를 집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진에 수북이 쌓여있는 만나를 눈앞에 두고, 각자 매일 먹을 만큼만 가져가는 것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만약 누군가가 교우님을 뷔페에 모시고 가서 딱 한 접시에만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이렇게 차려놓은 음식이 많은데 고작 한 접시만 먹으라고?”라며 볼멘소리를 하지는 않으실런지요? 혹은 “치사해서 집에 가서 다른 음식 차려 먹으련다”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실런지요?
이스라엘 자손은 급박한 출애굽의 과정에서 발교되지 못한 반죽을 들고 허겁지겁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음식을 챙겨 나왔다고 해도 그 양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또 이제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도 한 달이 넘었습니다. 애굽에서 준비해 온 모든 음식이 이미 떨어지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그들은 당장 내일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자손에게 “각 사람은 매일 먹을 만큼만 거두라”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신뢰하지 않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믿음의 훈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17-18)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그같이 하였더니’는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그대로 행하였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실행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한편 성경 기자는 사람에 따라 많이 거두기도 하고 적게 거두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오멜로 측정해보니 남게 되거나 부족하게 된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전혀 남음이나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각자가 먹을 만큼만 만나를 거두었다는 의미입니다.
(19-21)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만나는 새벽에 지면에 쌓였다가 해가 뜨면 녹았습니다. 이를 통해 만나가 마치 눈이나 서리와 같은 성향을 지닌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음 날 아침까지 만나를 남겨두지 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각 사람이 먹을 만큼의 만나를 거두고 당일에 다 먹었다면, 다음 날 아침에 남아있을 만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잔꾀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날 다 먹었어야 할 만나를 다음 날 먹기 위해 남겨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저축이라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만나는 다음 날까지 신선도가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둔 만나에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내일을 위해 남겨둔 만나는 모두 썩어서 밖에 버려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내일을 위해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가? 내가 내일을 위해 남긴 그것에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나는 것은 아닌가? 썩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남기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요한복음 6장 27절 말씀입니다.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모든 사람은 오늘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내일을 계획합니다. 내일의 삶, 특히 의식주의 문제에 대한 계획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잘 계획하고 준비한 사람을 세상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송합니다. 그리고 속칭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담을 타인 앞에서 자랑하고, 많은 이들은 성공한 사람을 롤모델 삼아 장밋빛 내일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내일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급하심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만 믿고 따를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신뢰하며, 헛된 욕심과 쓸데없는 계획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따라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모든 공간이 주님께서 임하고 계신 공간임을 기억하며, 어느 순간이라도 유다처럼 도둑질하지 않고, 부당한 방법으로 생을 꾸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에서 3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일상에서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한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하면 내일의 삶을 더 윤택하고 풍족하게 만들지에만 골몰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광야의 이스라엘 자손을 하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삶의 모든 공간에서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한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이해 불가능한 사랑을 경험했던 적이 있으십니까?
2.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행하신 일 중에 “이게 무엇이냐?”라며 놀라워했던 적이 있으십니까?
3. 하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신뢰하고 있으십니까?
4. 당신은 내일을 위해 무엇을 남기고자 하십니까?
(작성: 이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