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상식의 지적풍경
2000년 12월 14일
범대순의 세상보기
지난 일요일 밤 텔레비전에 비친 2000년도 노벨 평화상 시상식은 장관이었다. 우리는 그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감회가 남다르다. 그것은 수상자가 한국의 현직 대통령 김대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대중이 누구인지 잘 안다. 굳이 군나루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의 수상자 선정의 경위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그 이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71년 대선 때 야당의 입후보였던 그가 얼마나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부정 선거가 아니었다면 사실상 당선되었을 것이라는 그가 그 뒤 얼마나 모진 박해를 받았고 그 박해 속에서 굽히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하여 싸웠고 마침내 어떻게 우리의 대통령이 되었는가를 잘 안다. 그리고 그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50년 동안의 한반도 남북 대립관계를 어떻게 화해의 분위기로 바꾸고 있는 가도 잘 안다.
수상식 날 저녁 한국에서는 전국적으로 축하 불꽃 비용으로 60 여 억 원이 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비친 현지 수상식장 분위기는 의외에도 지적인 풍경이었다. 조용하였고 단순하였고 겉치레가 없었다. 국왕내외의 자리가 단하에 마련된 것도 우리와 달랐고 조수미, 전순미의 축하 공연도 격이 있었다. 꽃다발도 없었고 카메라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참석자의 박수도 들뜨지 않았다. 식장에 푸랭카드도 걸리지 않았고 다만 금메달과 디프롬을 전달하는 단순하고 차분한 행사로 단상에 여백이 많아 과연 권위를 자랑하는 큰 상임을 말하는 매우 지적인 분위기였다.
우리는 역사상 명 수상연설의 사례를 많이 알고있다. 그래서 김대중의 수상연설에 주목하였다. 그의 수상연설도 일품이었다. 특히 동양에 오랜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와 전통이 있다는 말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개념과 천자인 왕이 하늘의 뜻을 어기면 백성이 하늘을 대신하여 천자를 바꿀 수 있다는 이념을 소개한 것도 적절한 것이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서양의 독점 물로 인식된 그들의 편견을 시정하는 것으로 동양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그러나 베르게 위원장의 수상자 선정의 설명 속에 주목할만한 몇 마디 또한 지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수상자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있었음을 밝히고 그 가운데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아직 성숙되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것을 공으로 내세우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과 한국에 아직 인권문제 노동자의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있다는 지적이었다. 어찌 그뿐인가. 우리는 베르게 위원장이 말하지 않은 그이상의 문제가 지금 우리 주변에 현실로 존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최초 노벨상 수상자이면서 그 가운데 으뜸이라는 평화상의 100회 수상자의 영광을 얻은 김대중과 우리가 같이 이 시점에서 생각할 것은 그의 영광에 묻힌 어둠이 무엇인가를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극히 상징적인 영광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가. 노벨 평화상의 토양은 결코 옥토가 아니라 박토가 아닌가, 그 박토에서 그 동안 이름 없는 사람들의 희생과 기여가 아니면 그 영광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영광은 김대중의 것이면서 동시에 이름 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 빛과 어둠 중간에 사는 말없는 제3의 보통사람들의 민심이 그 것이 바로 천심이라는 철학을 김대중 대통령은 지적이고 통찰력 있게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