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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장/편/소/설
지금도 별은 빛나고 (제 3회)
김 주 일
지원은 아버지가 집에 없고, 어머니와 같이 있는 날이면 기를 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한 생활은 지원이 나이 들 때까지 10여 년이나 더 계속된다.
지원은 아버지가 외출한 날이면 또 맞을 것을 두려워하며 아버지가 돌아오는 길목에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하루는 실개천의 둑길을 따라서 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며 너무나 많이 집에서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실개천 둑길에서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다 보니 발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지원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것이어서 발이 저릴 때에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지원은 발을 동동 굴러 보지만 이제는 발목까지 감각이 없어진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포플러 나무 밑에 앉아 혹시나 누가 와서 도와주지 않을까 해서 길 아래 위를 번갈아 보며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멀리 퍼져 나가지를 못하고 석양이 붉게 물들은 허공에서 맴돌 뿐이다.
아무도 지원을 도와주려고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가 지원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래쪽 길에서 달려 왔다.
“지원아! 왜, 여기서 울고 있는 거야?”
아버지의 말에 지원은 반가우면서도 발이 저려서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계속해서 울기만 한다.
“왜, 그래! 어디가 아파?”
지원의 울음소리에 놀라 아랫길에서 뛰어온 아버지가 이렇게 묻자 손가락으로 발을 가리킨다.
영준은 지원의 발을 만져 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지원의 코에 발라주고 한 동안 발을 주물러 준다.
그랬더니 울음소리가 그쳤다.
“이제 괜찮아?”
아버지가 묻는 말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됐다. 집으로 가자!”
영준은 지원을 업고 실개천을 따라 집으로 올라간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삿대도 아니 달고 돛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노래를 불러주며 지원을 달래는 영준의 눈에는 어느새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차라리 그 때 지원이를 미찌꼬와 함께 일본으로 보낼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그러나 그것도 안 될 말이다.
만약 영준이 미찌꼬를 만나지 못한다면 일본인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라야 하는 지원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지원을 데리고 서울로 갈 수도 없다.
또 영숙에게 화풀이를 한다면 그것은 곧 바로 지원에게 영향이 미칠 것이 뻔하니 그럴 수도 없다.
영준은 어찌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원망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혓바닥 끝으로 닦아 입 속으로 삼킨다.
“아버지!”
“응?”
“서쪽 나라는 어디에 있는데~에?”
“그게 말이야……. 서쪽 나라는 저 산 너머에 멀리가면 우리의 옛 고구려 땅이라고 넓은 나라가 있지. 이 다음에 지원이가 크게 되면 확실하게 알게 될 거야.”
영준은 지원이 이 다음에 자라서 기억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해 준다.
지원에게 그런 고통스러운 날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날씨가 싸늘해서 나무 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들이 살그락 소리를 내며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어느 늦은 가을 이른 아침이었다.
큰할아버지가 지연, 지원 그리고 큰집의 아이들을 전부 불러 모아 놓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디금부터 말이디, 뒷산에 올라 가설라무네 떨어진 밤을 주워 오는데 데일 많이 주워오는 아이에게는 내레 상을 주갔어! 그러니끼니 밤을 많이 주워 오라우. 어디 누가 많이 주워 오는가 보갔어!”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우루루 몰려 밖으로 나갔다.
큰할아버지네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아서 키워 둘째 아들과 딸을 분가시키고 큰아들 밑에 아들 셋, 딸 둘을 낳은 대 식구였다.
큰할아버지는 밤을 주워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형제들로서의 화합을 위해 그런 일을 시킨 것이라고 먼 훗날 지원은 생각하곤 했다.
지원도 누나와 큰집의 형제들을 따라 뒷산으로 올라갔다.
밤을 주워 담을 그릇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밤을 줍는 일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끝이 났다.
물론 지원은 밤을 제일 적게 주웠다.
집 앞에 왔을 때 큰집의 형인 지훈이 자기의 모자에서 밤을 손으로 담아 지원의 옷섶에 넣어 주며 말한다
“지원아! 이것을 할아버지께 갔다드려라.”
그리고 큰집 형과 누나들 모두가 밤을 지원이에게 한 주먹씩 주어서 지원이의 옷섶에 밤이 붕긋하게 많아졌다.
그렇게 해서 집으로 들어가니 큰할아버지가 눈이 동그래져서
“어? 이게 어렇게 된 일이네? 디원이가 밤을 데일 많이 주워오디 않았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다른 아이들의 밤을 들여다보다가 지원이 가 밤을 많이 주워온 까닭을 알았는지 흐뭇해한다.
“우리 디원이 참 장하다!”
하면서 귀밑까지 내려오는 빨간 뜨게실로 짠 모자를 지원에게 씌워 주었다.
지원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뒷집의 최 서방에게는 지원 보다 한 살이 많은 인석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애들은 놀기도 잘하고, 싸우기도 잘한다.
지원이 인석이하고 놀다가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루 볕이 무섭다고 한 살이라는 차이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둘은 집에서 빨래 줄을 받치는 장대를 들고 나와 싸우는 데 지원의 장대가 짧아서 두들겨 맞았다.
지원은 삼촌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집으로 들어와
“삼촌, 인석이가 장대로 나를 막 때렸어!”
하고 이르면서 삼촌이 인석이를 혼내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삼촌은
“디원아, 남자는 넘어지면 혼자서 훌훌 털고 일어나야디! 사나이는 자기 일은 자신이 처리할 줄 알아야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갔네?”
삼촌은 지원을 안아준다.
지원이 예쁘고 귀여웠지만 아이들의 싸움에 편들어 말려들지는 않았다.
지원은 삼촌이 인석이를 혼내주지 않은 것이 섭섭했지만 이
런 일들은 평생 동안 잊지 않게 되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2. 북한에서 남한으로의 탈출
영준에게 오산중학교로부터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영준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재의 정세로는 그것도 여의치가 않아서 뒤로 미루었다.
그리고 북한의 정세로는 부르주아 계급과 지주들은 견디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며 남한의 서울로 갈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정주군에서 온 사람들이 영준을 찾아 왔다.
세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조만식 선생이 이끄는 조선 민주당에서 왔다면서 말한다.
“민 선생님! 요즈음 지내시기가 어려우시지요?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정치가 무엇이고, 정당이 무엇이냐고 말씀하시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지방의 하부조직망을 구축하기 위해서 덕언면에도 조선 민주당을 창당해야겠는데 민 선생님께서 맡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그렇지만 저는 지금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를 위해서 힘을 쓰다가 여의치 않을 때는 상황을 봐서 우리 다 같이 남쪽으로 월남해 버립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영준이 사양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고, 남한으로 같이 월남하자는 말에 할 수 없이 끝내는 승낙하고 말았다.
영준은 정주군 조선 민주당의 지원을 받아서 덕언면 창당대회를 열었고, 열심히 당을 위해서 일해 나갔다.
그러나 점점 더 세월이 흘러갈수록 정세는 노동당이 위세를 부리면서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한 번은 정치자금을 각 당별로 공출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노동당과 공산당 그리고 조선 민주당의 영준은 각각 정치자금을 공출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영준은 각 고을을 다니면서 정부에서 정치자금을 공출하는 것이라며 강제로 내게 하지는 못했다.
“이번 정부에서 정치자금으로 기부금을 내라고 하는데 여유가 있으면 좀 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정치자금 때문에 정부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며 다니고 있으니 선뜻 내어놓을 사람이 없다.
다만 영준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만이 영준이 땀을 흘리며 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기부금을 조금씩 내는 정도이다.
해가 저물 무렵 영준은 기부금으로 겨우 반 달구지를 해가지고 땀을 흘리며 당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당사에 돌아오니 노동당과 공산당원들은 벌써 두 달구지 이상씩을 싣고 돌아와 있었다.
그들이 강제성을 띄었는지 모르지만 영준처럼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영준은 그러한 그들 앞에서 어깨가 쭈그러들었고, 노동당원과 공산당원들은 보라는 듯이 의기양양하였다.
영준은 당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이렇게 매사가 잘 풀려 나가지를 못한다.
어느 날 의현과 영준이 신세를 한탄하며 술집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해갈 무렵이다.
“정치자금을 공출하러 나가서 반 달구지 밖에 거두지 못했단 말이야?”
“정치자금을 강제적으로 공출할 수는 없었지.”
“아무래도 북한의 정세가 심상치 않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게 말이야! 공산당원이나 노동당원들의 행동을 보면 무엇인가 변해가고 있는 모양인데 나를 피하는 눈치이니 알 수가 없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열성 공산당원이라는 뒷집의 최 서방이 술집 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영준에게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최 서방님,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영준이가 밖으로 나오면서 최 서방에게 묻는다.
“민 선생님, 큰일났시요! 시방 부르주아 반동분자들의 숙청명령이 내려왔고, 민 선생님께 체포명령이 내려졌으니까니, 지금 빨리 다른 곳으로 피신하시라요!”
최 서방의 다급한 말을 들은 영준은 취기가 확 깨었다.
“최 서방님! 고맙습니다. 오늘의 일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술집 안으로 급히 들어와서 의현에게 말한다.
“야, 의현아! 우리가 걱정하던 일이 드디어 시작되었어! 우리들에게 숙청명령이 떨어졌고, 우리들을 체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대. 빨리 이곳을 피하자!”
“우린 어떻게 하지?”
영준의 말에 의현이도 극도로 불안해하며 묻는다.
“서울에 가서 상열이의 동양의원이나 피난민 수용소에서 만나자!”
영준이 이렇게 말하고 빨리 밖으로 뛰어나와 집으로 달렸다.
고향의 하늘은 높고 푸르게 있었으며 흰 구름들이 한가로웠지만 영준의 마음에는 그런 것들을 느껴볼 여유가 없다.
그것이 고향에서의 마지막이었다.
“여보, 지금 공산당에서 내게 체포명령이 떨어졌어! 내가 위험하니까 빨리 집에 있는 돈하고 카메라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꺼내 줘! 그리고 지원이 하고는 서울의 신설동에 있는 상열이의 동양의원이나 피난민 수용소에 오면 나를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큰아버님에게는 인사를 드릴 시간이 없어 이대로 남한으로 떠났다고 말해 줘. 그럼 서울에서 만나자! 그리고 지원이를 데리고 꼭 서울에 와야 돼.”
영준의 다급한 이야기를 듣고 영숙은 드디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장롱에 있는 돈과 금붙이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어 남편에게 건네준다.
영준은 카메라를 넘겨주는 영숙의 손을 잠시 잡는다.
“그럼, 서울에서 만나자!”
영준은 이것저것 살필 여유가 없다. 급하게 밖으로 뛰어 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여섯 명의 공산당원과 노동당원들이 영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민영준이 집에 있습네까?”
전에는 민 선생님이라고 굽실거리던 사람들이다.
영숙이는 태연하게 말한다.
“아팀에 의현이 오라버니를 만난다고 읍내로 나갔습네다. 무슨 일이라도 났습네까?”
공산당원들은 영숙의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고 신발을 신은 채 방으로 들어가서는 영준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진다. 그러나 영준이 있을 리가 없다.
“없시요, 읍내로 가 봅시다레!”
하며 공산당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대문 밖 실개천에는 뒷집의 최 서방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영숙은 공산당원들이 몰려 나간 다음에 큰집으로 달려가서 큰아버님에게 방금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지연이 아바지가 급하게 집을 떠나면서 큰아바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떠난다고 이야기를 전하랬시요. 그리고 서울에 오시면 피난민 수용소나 상열이의 동양의원으로 오시라고 했습네다. 방금 전에 공산당원들이 지연이 아바지를 잡으러 왔다가 갔시요!”
큰아버지가 고개를 떨군 채 탄식하듯이 조용하게 말한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만!”
한편 영준은 아직 검문이 강화되지 않은 38선을 무사히 넘어서 서울의 신설동에 있는 상열의 동양의원으로 갔다.
상열은 의사였고 상호의 동생이다.
영준과는 고종 4촌 관계가 된다.
상열이 영준에게 묻는다.
“우리 형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같이 있었는데 내가 떠나올 때는 만나지 못했어. 아마 무사히 월남할 수가 있을 거야!”
“무사히 월남을 하셔야 될 텐데…….”
영준의 말에 상열이가 근심스럽게 말한다.
영준은 상열이의 동양의원에 기거하면서 가능한대로 개인회사에 취직을 하려 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어느 날 상열이 영준에게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지금 이승만 정권에서는 인재들이 모자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형님도 공무원에나 이력서를 내보시지요? 더군다나 요사이처럼 어수선한 시국에 안정된 개인회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무리인 것 같으니 내가 보기에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습니다.”
영준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총독부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친일파가 되어 있는 지금은 공무원을 하고 싶지가 않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그렇게 하는 것 뿐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 이튿날 내무부 소속 기관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영준은 의외로 일본의 최고학부를 졸업했고, 총독부에 근무했다는 경력 때문에 쉬이 공무원에 취직을 하게 되었으며 주사라는 직책으로 시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북한에서의 영숙은 지원을 남편이 부탁한 대로 서울로 데려가기 위해 같이 길을 나서기로 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피난길이기에 영숙은 산소에 올라가 지원에게 절을 시키고 큰집에 들러 큰아버님에게 인사를 시킨다.
“아무래도 지원이를 서울의 아바지에게 보내야 하갔시요.”
조카며느리의 말을 들은 큰아버지가 지원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한다.
“그래야 하갔디, 디원아! 서울의 아바지에게 가서 씩씩하게 무럭무럭 잘 커야 하갔디?”
지원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어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인사한다.
“큰할아버님! 안녕히 계십시요.”
“고롬, 고롬, 디원이 잘 가거라!”
영숙은 지연을 큰집에 맡겨두고 지원을 데리고 평양과 사리원을 거쳐서 해주에 왔다.
해주에서 저녁을 먹고 개성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역으로 들어간다.
“개성에 가는 차표를 한 장 주시라요.”
영숙이가 이렇게 말하자 역무원이
“신분증을 주시라요.”
하고 손을 내민다.
“예, 알갔시요.”
영숙은 역 대합실의 긴 의자에 앉아 보따리에서 신분증을 찾는 척하다가 역무원이 다른 곳을 쳐다보는 사이에 지원의 손을 잡고 황급히 밖으로 나와 변소 안에 숨으며 지원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는다.
조금 후에 역무원이 영숙 일행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마니! 아주마니!”
역무원이 그렇게 한참을 찾다가 가버리고 난 후에 변소에서 나온 그들은 남쪽으로 가는 길을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남쪽을 향해 무작정 걸어간다.
그것은 차표를 사려다가 신원이 노출될까봐 두려워서 기차를 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개성에 도착해서 남쪽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기로 한다.
그런데 영숙은 월남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신경을 쓰고 피로에 지친 탓으로 정신착란증이 재발되었다.
심하진 않았으나 가끔 헛소리를 한다거나 달밤에 보자기를 흔들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저 애, 엄마는 정신이 좀 이상해. 아무래도 미쳤는가 봐!”
“그런가 봐! 달이 밝은 어제 밤에도 손수건을 흔들면서 춤을 추고 있었어. 얼마나 무서웠던지…….”
피난민들이 이렇게 쑤군대는 말을 듣고서야 지원이는 어머니의 정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미쳤다는 것이다.
영숙은 그래도 모든 것을 잘 감당해 내면서 용케도 서울에 도착하여 신설동의 동양의원을 찾아갔다.
“잘 왔어! 수고했어.”
그러한 남편의 말을 듣는 영숙은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놓였다.
지원을 마침내 서울로 데려왔다는 안도감에서일까 영숙의 정신은 다소 호전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달 넘게 서울에서 보낸 영숙이 북한에 있는 지연을 데리러 간다고 한다.
“아무래도 큰집에 있는 지연이를 데리고 와야만 되갔시요. 내일 고향으로 떠납네다.”
아내의 말에 영준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지연이를 데리고 와야겠지만 지금은 38선이 완전히 그어졌고, 감시도 심해져서 위험할 텐데……”
그랬다. 그 당시에는 38선이 그어졌고,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들이 경비를 서기로 되어 감시가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내일 내래 지연이를 데리러 고향의 집으로 가갔시오. 거기에다가 지연이를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않습네까?”
지원은 우선 무섭게만 생각되던 어머니의 곁에서 떨어진다는 게 마음이 놓였다.
자기를 때려 주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이튿날 영숙은 지연을 데리러 북한으로 떠났다.
영준은 상열의 동양의원에서 계속해서 신세를 진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피난민수용소의 천막촌으로 지원을 데리고 이사를 왔다.
천막촌의 방은 아궁이에 불이라고는 지펴본 적이 없는 그런 싸늘한 방이었다.
영준은 나무를 구할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냉방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게 된 것이다.
지원은 낮에는 방에서 혼자 추위에 떨어야 했지만 밤이면 아버지의 품에 안겨 포근하게 잠잘 수가 있어서 행복하고 마음은 평온했다.
그리고 날이 지나면서 천막촌의 아이들과도 잘 사귀어 그들과 잘 어울려 놀았다.
그들에게서 딱지치기, 제기차기, 구슬치기, 말 타기, 땅따먹기, 자치기를 배워 같이 놀아보지만 나이가 제일 어렸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지원이 쪽이다.
특히 말 타기를 할 때는 힘이 약한 지원이 쪽에만 몰려 타서 지원이는 곧잘 짜부러지곤 했는데 동네 아이들은 지원이를 ‘짜부’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당시에는 누구나 살기 어려웠겠지만 천막촌의 생활은 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아이들은 간식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몰려다니며 무밭이나 배추밭에 가서 무나 배추뿌리를 뽑아 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뻥튀기 아저씨가 와서 쌀, 보리쌀, 콩, 옥수수, 등을 뻥튀기하고 있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새어나온 것들을 아이들과 같이 주워 먹던 지원은 집으로 가서 서너 되나 실히 되는 쌀자루를 ‘낑~, 낑’ 거리며 끌고 와서는 뻥튀기 아저씨에게 튀겨 달라고 한다.
“아저씨, 이걸 튀겨 주세요!”
지원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그러나 뻥튀기 아저씨가 그 쌀을 튀겨 줄 리가 만무하다.
“안돼! 너는 너무 어리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그 쌀을 가져 온 게 아닌 듯 싶으니 튀겨 줄 수가 없어!”
뻥튀기 아저씨가 단호하게 거절한다.
지원은 할 수 없이 쌀자루를 다시 집으로 끌어다 놓았다.
저녁이 되어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 왔을 때 이웃집의 아주머니가 오늘 지원이가 한 일들을 전부 일러바친다.
“지원이 아버지! 글쎄 오늘 지원이가 쌀자루를 끌고 나가서 뻥튀기를 하려다가 뻥튀기 아저씨가 튀겨주지를 않아 쌀을 튀기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 아저씨가 쌀을 튀겨 주었더라면 오늘 저녁은 쌀 튀긴 것을 잡수실 뻔 했습니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말하고, 지원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지원아, 오늘 네가 쌀을 뻥튀기할 뻔한 일은 잘못된 것이지? 쌀을 가지고 나가서 뻥튀기를 하면 어떻게 해?”
아버지가 지원의 잘못을 나무란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그렇다면 잘못한 데 대한 벌을 받아야 하겠지?”
“예,”
“그러면 매를 좀 맞아야겠다.”
지원은 이상하게도 아버지에게서 종아리를 맞는 것이 아프기는 했지만 어머니에게서 맞을 때처럼 슬프지가 않았다.
즉, 아버지의 매는 사랑의 매였고, 어머니의 매는 증오에 찬 미움의 매였던 것이다.
지원은 그 때의 매가 아버지에게서 제일 처음으로 맞은 매였으며 또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아마 아버지는 엄마와 떨어져서 불쌍하게 자라는 지원을 때리며 키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지원은 어머니가 없이 살면서도 낮이면 아이들과 놀고, 밤이면 아버지의 품에서 동화이야기와 전설과 설화, 나폴레옹과 이순신 장군, 김유신 장군, 최영 장군 같은 위인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지내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또 어머니에게 매를 맞고 구박을 받는 일이 없어서 두렵거나 슬프지도 않았으며 마냥 즐겁기만 했다.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는 어느 날 지원이 천막촌 학교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서 ‘앞으로 갓! 뒤로 갓!’의 단체생활의 기초인 교련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구경하고 있던 지원은 학생들과 함께 행동을 하고 싶어서 자기 또래라고 생각되는 후미학생들의 틈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러자 그 중의 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말한다.
“선생님! 이 아이는 학생이 아닌 데 여기에 끼어들었습니다.”
지원을 쳐다보던 선생님이 지원에게 묻는다.
“네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이냐?”
“예, 저의 이름은 민지원이고, 나이는 다섯 살입니다.”
선생님의 물음에 지원이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지원이는 똑똑하기는 한데 아직 나이가 어려서 학교에 다닐 수가 없단다.”
“선생님! 저는 학교에 다닐 수가 있는데요?”
“아니다. 내 후년에 오면 선생님이 지원이를 잘 가르쳐 줄 테니 오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거라.”
“선생님! 저는 공부도 잘할 수 있는데요?”
“안돼! 너는 나이가 어려서 공부할 수가 없으니 선생님의 말대로 집으로 돌아가거라.”
선생님은 떼를 쓰는 지원이를 애써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저녁에 지원은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 오늘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나보고 나이가 어리다며 내 후년에 학교에 오라고 했어!”
“그랬어? 그래, 너는 아직 학교에 갈 나이가 아니지. 좀 더 커야 학교에 갈 수가 있단다. 이 다음에 지원이가 학교에 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
지원의 말에 아버지가 흐뭇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며 지원을 안아준다.
그러나 지원은 어머니가 없는 환경에서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행동이 바르게 자라지 못하였다.
어느 일요일이다.
휴일이라서 아버지가 집에서 쉬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오셨다.
아버지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소주를 사다가 손님과 같이 마시고 계셨다.
지원이 아버지 뒤에 앉아 있었는데 아버지 뒷주머니에 조금 삐져나온 돈을 보고 바짝 다가앉아서 돈을 살살 빼기 시작했다.
지원은 돈을 빼내 가지고 나와 과자를 맛있게 사먹었다. 아버지는 지원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지원은 아버지가 모르는 줄 알고 있었다.
지원은 크면서 아버지의 주머니를 뒤져 돈을 빼내어 쓰는 일이 잦았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영숙이 남한으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큰집과 친척집을 옮겨 다니며 숨어서 살고 있는 영호와 그리고 지영에게도 연락해서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가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지원의 삼촌인 영호가 남한으로 내려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것은 얼마 전에 부인이 계집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지연이 삼촌! 지금 남한에서 형님이 기다리고 있는데 가디 않으면 어러케 하려고 그러십네까?”
“그렇티만 지금 아내가 애기를 낳아서 움직일 수가 없수다레. 그렇다고 식구들을 놔두고 갈 수는 없디 않갔습네까?”
“지연이 삼촌! 여기에 있다가는 공산당들한테 개죽음을 당할 게 뻔합네다.”
영숙의 말에 영호가 말없이 고개를 떨군다.
“남한에 가면 지연이 아바지가 삼촌이 오지 않은 것을 알면 화를 낼 텐데 내레 어러케 하라고 그러십네까? 나는 모르갔시오!”
그렇게 영호가 방황을 하고 있는 어느 날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서 영준네와 큰집의 재산이 몰수당하여 모든 식구들이 집에서 쫓겨났다.
재산을 몰수당한 다른 집들은 이주명령서가 주어졌지만 큰 집과 지원이네는 그것조차도 없다.
집안의 재산들은 숟가락까지 꼬리표를 붙여서 여덟 달구지나 싣고 갔다.
쫓겨나는 두 모녀를 보고 공산당원이 말한다.
“아주마니, 이제 어데로 가갔습네까?”
“내레, 걱정들을 하디 말라요! 우리 지연이 아바지가 남한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출세하여 잘 살고 있으니끼니 지연이를 데리고 우리는 남한으로 가갔시요!”
재산을 전부 다 빼앗기고, 쫓겨난 영숙은 악에 바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러한 영숙의 말에 공산당원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도리어 무안해 한다.
또한 그들은 영준이가 남한에서 출세하여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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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