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41-23:12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발람의 첫 번째 예언
모압 왕 발락은 탐욕으로 가득 찬 주술가 발람을 통해 3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발람의 입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모압 왕 발락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요청받은 발람이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제단을 쌓는 장면과 그런 발람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내용입니다.
발람의 첫 번째 제사(22:41-23:2)
22:41-23:2, 41.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1.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2.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락과 발람은 함께합니다. 발락은 발람을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올랐습니다. 발람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 입장에 있는 모압 왕 발락과 함께합니다. 누구와 함께하는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은 함께하는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발락과 함께하며 그의 인도를 따랐습니다. 발락의 인도를 따라 도착한 장소는 우상숭배의 장소 바알의 산당이었습니다. 결국 발락과 발람 자신의 탐욕이 이끈 곳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장소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바알의 산당에서 발람은 발락에게 나를 위하여 제단 일곱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 마리,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탐욕으로 채워진 발람의 마음 상태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나를 위하여”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수단 삼아 발람, 자신의 세속적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날조된 제단이었습니다. 쌓은 제단이 외적으로 번듯해 보일지라도 그 제단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발람이 쌓은 제단은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이라는 우상을 높이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22:41-23:2)
23:3-6, 3.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4.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5.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6.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발람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신을 위한 제단을 쌓았고, 그 위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하나님이 그런 발람에게 임하시고 말씀까지 주십니다. 이것은 발람이 드린 제사에 응답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악한 의도를 막아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악으로부터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발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시자 발람은 “내가”를 강조하며 자신이 제단을 쌓고, 예물을 드렸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발람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며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린 것에 대한 그에 걸맞는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고, 발락에게 가서 주신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첫 번째 임한 하나님의 말씀(7-10)
(7-10) 7.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9.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0.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발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발락과 모든 고관에게 전달합니다. 발람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통해 모압 왕 발락이 자신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꾸짖게 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발람은 여호와께서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저주하고 꾸짖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민족 중에 뛰어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7절에 기록된 “야곱을 저주하라”와 “이스라엘을 꾸짖으라”에서 야곱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동일 표현으로 강조를 위해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강조를 통해 모압 왕 발락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어 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파괴하고 이스라엘이 저주의 백성이 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7절의 “야곱”과 “이스라엘”은 각각 8절의 “하나님”과 “여호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8절의 하나님은 원문에 “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신명입니다. 8절의 하나님은 7절의 “야곱”과 연결됩니다. 아브라함, 야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8절의 “여호와”는 원문에 “예호바”로 기록되어 있고, 7절의 “이스라엘”과 연결됩니다. 여기 기록된 “여호와”는 모세에게 나타나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겠다고 약속하신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두 이름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으로 야곱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꾸짖지 않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발람이 깰 수 없음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그 누구도 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이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9절의 “홀로”는 대게 외로운, 고립된 등의 의미를 지니지만 본문에서는 뛰어남, 비범함, 탁월함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이방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임을 표현합니다. 또한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겠다”는 표현 역시 구별된 민족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특별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10절에 기록된 “야곱의 티끌”은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셨던 창세기 28장 14절을 기억나게 합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생략)” 이제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는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진영이 동서남북 4개의 진으로 나누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약속의 성취로 자손이 번성하여 사분의 일도 모두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발람은 10절 후반부에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고 고백합니다. 발람은 자신의 삶이 이스라엘과 같이 되기 원하는 강력한 소망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고백과 달리 이후 발람의 행위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행위였습니다. 발람의 고백은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죽은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도 다양한 신앙의 고백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 고백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세속적 가치관의 시선에서 배부른 것을 추구하며 그것을 주님 삼고 따를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세속적 가치관의 주림에 마침표를 찍고, 하나님을 향한 주림을 통해 참된 배부름을 경험해야 합니다. 고백은 삶으로 이어질 때 그 의미가 있습니다.
발락의 첫 번째 불평(11-12)
(11-12) 11.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 12.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발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모압 왕 발락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자 그를 책망합니다. 발락은 발람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도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발람은 이에 대해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답변합니다. 발락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 보호하심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발락과 발람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파괴하려 했지만 그들은 결코 파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그리스도를 새로운 언약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귀한 언약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이 언약 또한 그 누구도 깨트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은총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발락은 발람을 바알의 산당으로 인도했지만, 주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발람과 같이 탐욕의 배부름을 채우기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목적 삼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참된 배부름을 누리며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발람과 같이 자신의 탐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목적 삼고, 하나님을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목적 삼고 살아갈 때 주님이 주시는 참된 배부름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어려운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발람은 발락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습니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탐심으로 가득 채워진 발람은 하나님을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목적이 아닌 수단 삼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언약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4. 내 신앙의 고백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작성: 정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