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와 커피
커피를 마시러 강릉으로 가고 있다. 나에게 강릉은 동해바다에 묻어 둔 아틀란티스이다. 과거의 경험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미래를 결정한다고 했다. 은사시나무가 내려주는 커피를 들고 경포대 백사장을 걷고 있다. 안개 숲에 가려졌던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둘씩 깨어났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추억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된 길에서도 옛 시간을 줍는다. 강릉의 ‘테라로사.는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두고 지냈다. 강릉이라는 트라우마가 주는 유혹이랄까, 여행하다 보면 엷게 밑그림이 그려지는 곳을 만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무엇과의 교감이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DNA 속에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오래된 기억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테라로사’는 강릉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커피의 향이 대구까지 날아와서 무엇에 홀린 듯 찾아가고 있다.‘학산’이라는 이정표와 마을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가 낯이 익는다는 생각을 하며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가 마치 숲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새장처럼 예쁜 나무 대문 옆에는 은사시나무가 소품처럼 담장에 기대어 있었다. 삶이 시무룩해지는 날이면 푸른 문자를 보내주던 키 큰 나무이다.
‘에티오피아 시다모 오마초’와 ‘예가체페 콩가’커피를 주문했다.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적었다. 테라로사 커피만 생각하고 싶은데 나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거울 속에는 잃어버린 하얀 기억들이 안개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경포대 하늘나라 우체통에는 바다가 보내온 소라 편지가 들어있다. 느린 우체통 앞에서 편지를 쓴다. 경포대 소나무 숲도 하얀 백사장도 야윈 노모의 모습으로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