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훈 (천안환서초 5)
인상 깊은 척화비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제일 먼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해 들었다. 병인양요는 병인년에 프랑스가 쳐들어온 것이고 신미양요는 신미년에 미국이 쳐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그때 쇄국정책을 고종이 펼치다가 일본이 위협하자 인천항인 제물포 항구를 개방한 것이다. 나는 일본이 개항하라고 할 때 개항을 안했으면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치욕을 안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 세력이 침략할 때 세운 척화비에는 ‘우리 자손에게 길이길이 경계하노라! 서양 오랑캐들이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봤던 것 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우리 선조들이 프랑스나 미국을 오랑캐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라를 팔아먹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나라꽃인 오얏꽃(자두꽃)도 봤다. 나라꽃이 오얏꽃인 이유는 조선 왕실 가문의 성씨가 이(李)씨이기 때문이다.
이서영 (천안백석초 5)
대한제국의 오얏꽃 무늬
오늘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두 군데를 갔다. 본 것 중에서 오얏꽃이 가장 좋았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서양식으로 꾸민 방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커튼에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금색 오얏꽃 두 개가 양쪽에 있었다. 그리고 군복에도 오얏꽃이 새겨져 있었고 황실 전용차인 어차의 문에도 오얏꽃이 있었다. 표범 가죽으로 이은 표범 양탄자 뒤쪽을 보면 오얏꽃이 선명하게 있다. 표범 양탄자에 사용한 표범은 약 6마리인 것 같다. 오얏꽃은 황실 유물에 다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이씨의 성 때문에 오얏꽃을 나라의 꽃으로 정한 것이라는데 잘 정한 것 같다. 성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얏꽃이 자두꽃이라니까 갑자기 자두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선아 (천안서초 5)
척화비와 오얏꽃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에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 5실 대한제국과 근대를 보았다. 제일 인상 깊은 유물은 척화비라는 돌에 새긴 유물이다. 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들이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한자로는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이렇게 쓰여 있다. 이런 짧은 글 안에 들어갈 내용은 다 들어가 있어 신기했다. 척화비를 세워서 서양세력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를 세웠다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황제의 어차를 보았다. 딴 유물도 보았는데 대한제국의 것임을 상징하는 꽃무늬가 있었다. 바로 오얏꽃이었다. 오늘 두 박물관을 갔다와서 근대 유물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임태혁 (천안안서초 5)
박물관에서 만나는 근대 유물
오늘 두 번째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에 갔다. 우리나라는 19세기에 서양의 간섭을 많이 받았다. 만약 이때 태어났다면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항상 뭔가 위험한 물건이 들어올 것 같아 두려웠을 것이고 세상을 비관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자 생각보다 신기한 문화와 물건들이 많았다. 본 것 중에서 축음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 이상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또 의사이자 외교관인 알렌이 서양의술을 전해줘 사람을 살린 사건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옛날 우리나라의 상징꽃이 오얏꽃이라니 신기했다. 그 꽃을 황제의 차나 카펫 등에도 넣어 유물이 언제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또 동학농민운동 때 사발통문에는 이름을 둥그렇게 써놓았다는 것도 알게 되어 오늘은 참 지식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전민수 (천안용소초 5)
대한제국과 근대 탐험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고궁박물관에 갔다. 먼저 중앙박물관에서 조선 5실에 갔다. 가서 척화비를 보았는데 ‘서양 오랑캐와 화친하지 않을 것’을 후세에 전하는 뜻을 담고 있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우리가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친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역시 그때는 힘이 셌던 것 같다. 우리는 지금 프랑스랑 적은 아닌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축음기도 보았는데 소리 나오는 것이 커서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수술을 한 사람이 알렌이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수술을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한 줄 알았는데 외국 외교관이 처음 한 것이었다. 독립신문은 1896년에 창간호가 생겼고 1899년에 폐간됐다. 처음에는 고종도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줬지만 점점 정부를 비판하고 황제를 인정하지 않아서 폐간시키고 말았다. 다음에는 이런 곳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덥고 밖에서 걸어다니면서 하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