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눈(시야)
삼상16:1~1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신정국가였습니다. 족장시대(아브라함이삭,야곱, 요셉) → 출애굽 광야시대(모세, 여호수아) → 사사시대(옷니엘 ~ 사무엘) 통일왕국시대 (사울,다윗, 솔로몬) → 분열왕국시대 → 포로시대 →중간사(페르시야, 헬라, 로마) → 5세기경 동로마 .서로마.→ 동로마 → 오스만 → 오스만제국 통일 → 시리아,이라크 불가리아
(이태리) 비잔.틴 제국 이스라엘 유고슬라비아
오늘 성경본문 말씀은 사사시대에서 통일왕국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사사시대에는 사사들은 외침을 막아내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사사시대에는 제사장들과 사사들이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점점 힘을 잃게 되고 정치와 결탁하게 되므로 이제는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이면서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열왕국시대로 넘어오면서 정치와 종교가 서로 견제하면서도 적당하게 타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계시 받은 선지자들이 종종 나타나서 개혁을 부르짖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우리에게도 이방세계 사람들과 같이 막강한 중앙집권제 강력한 지도자 왕이 다스리는 국가를 형성해 달라고 졸랐지만 왕을 세워서 다스리게 하면 나중에는 그 왕이 여러분들을 지배하고 세금을 거두어서 자유가 없는 더 고달픈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왕정을 계속해서 거부해 오다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왕정을 허락합니다. 사무엘이 왕을 세울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12지파를 불러 모으고 심지 뽑기를 해서 사울 왕이 초대 왕으로 등극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울왕이 권력의 맛을 보고서 잔뜩 교만해져서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장면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제목을 <하나님의 눈>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시야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다음세대를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야만 그 나라의 장래가 보장이 됩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사회처럼 현시대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면 계속해서 주변 강대국들의 꼭두각시놀음과 괴뢰로 살아가야 합니다. 傀儡= 꼭두가시, 망석중이, 허수아비 傀= 크게 성하다. 좋다. 儡=零落하다. 꼭두각시. 영락= 零 이슬비 조용히 내리는 비. 꼭두각시= 인형극에서 사용하는 각시탈을 말합니다. 우리가 미국 시키는 대로 해서 한국의 앞날을 보장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어릴적에 김일성정부를 보고서 꼭두각시 괴뢰도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현대사를 살펴보면 김일성이 보다 몇 갑절로 이승만 대통령이 꼭두각시 괴뢰놀음에 놀아났습니다. 독재자 대통령일수록 미국과 일본의 꼭두각시 놀음에 놀아났습니다. 김영삼정부, 노무현정부만는 괴뢰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근혜는 철저하게 괴뢰였고, 박근혜는 최순실의 아바타였지요. 사용자를 대신해서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괴물이 아바타지요. 아이들은 이러한 인형극을 보고서 현실처럼 좋아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인형극을 거의 다 보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꼭두각시 놀음에 놀아나는 사람들의 불평불만 목소리에 지지하거나 합세하면 아니 됩니다. 강력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당시에 가장 존경하는 사사요. 선지자였습니다. 사무엘은 믿음이나 인품이나 지도력에서 걸출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시는 눈과. 사무엘이 보고 판단하는 관점이 완전히 대조적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새의 집을 찾고 아들을 부르자 장남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은 보자마자 엘리압의 외모에 뽕하고 갔습니다. 인물 좋고 키가 크고 아주 걸출한 인물이었습니다. 아하! 이 사람이구나 하고 기름을 부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야야, 그 사람이 아니야 너는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서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Man looks at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사물들이 사람들의 중심을 꿰뚫어 보는 시야가 있어야만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나타나고 보여 지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의 시야는 아주 낮습니다. 옛날에는 천리안 천리, 400km 밖에까지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인데 대략 40km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알았겠지요. 그래서 눈이 예리하고 밝은 사람을 우리는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매의 눈이 2번째로 좋았습니다. 첫 번째 타조의 눈입니다. 매 보다 거의 3배나 되는데 시력이 25.0이고. 매는 독수리 거의 두 배 9.0 입니다. 독수리 갈매기가 5.0 10km 밖에까지 볼 수 있고, 3km 이내에는 토끼까지 알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은 2.0이 최고 밝은 사람이지요. 저는 0.9 1.0입니다. 하나님의 시야는 바이러스보다 더 작은 힉스의 핵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원자에서 원자핵에서 양성자와 중성자이다. 중성자 이루는 물질은 쿼크입자입니다. 쿼크 이루는 물질 힉스라고 합니다. 힉스입자는 1964년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라는 사람이 더 작은 입자가 있다고 했다. 힉스를 가상의 입자라고 했는데 2008년에 힉스 입자 발견했고, 2013년 유럽원자핵 연구소에서 힉스 입자에 대한 발표가 있었지요. 힉스를 신의 입자라고 했는데 아마도 그보다 더 작은 입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힉스입자의 표준 모형에 의하면 12개의 힘을 전달하는 매개 입자 4개와 힉스 보손입자17개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동물 중에 가장 눈이 밝은 타조도 이러한 입자들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력은 원자현미경으로 바라볼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시는 시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눈이 밝은 사람의 날카로운 눈빛을 가리켜 ‘매의 눈’이라는 표현을 쓴다. 매의 눈은 어떤 눈을 말하는 걸까? 매는 시력이 좋다는 조류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시력을 자랑한다. 매는 인간보다 4~8배나 멀리 볼 수 있다. 인간의 5배가 넘는 시세포가 황반 부위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황반은 망막의 가장 안쪽 중앙에 위치해 시력의 90%를 담당하는 부위다. 게다가 각각의 눈에 황반이 두 개씩 있다. 정면을 응시할 때 사용하는 황반과 좌우를 폭넓게 볼 때 사용하는 황반이 따로 있는 것이다.
보통 초식동물은 눈이 옆에 위치해 넓게 보고 육식동물은 눈이 앞에 위치해 멀리 볼 수 있습니다. 매의 눈은 이 두 가지 장점을 모두 다 가지고 있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시세포 중 밝은 곳에서 작동하는 원추세포만 많고 어두운 곳에서 작동하는 간상세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매의 눈이 시야가 넓고 멀리 보지마는 세포 분자하나도 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원자현미경으로 힉스입자까지 발견해 냈지만 그 힉스 입자가 21개 입자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힉스 입자를 구성하는 21개 입자를 정복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될 까요? 힉스 입자를 완전히 분석하고 이해하면 아마 그 때에 인간들이 특수 소재로 만든 특수 우주선을 타고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우주의 세계로 여행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건강하게 그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천국은 아마도 양성자의 세계인 것 같습니다.
이사야55:7~11 (1044p)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 히4:12~13 (339p) “하나님의 말씀(눈)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 시139:1~12(873p) 읽음
그리스도인인아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헬라어로 ‘안드로포스’라고 하는데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일예배 금지했다고 요즘 정부를 비방하는 목사장로들이 많습니다.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인데 코로나가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벌이니 막을 수 없다고 팔장끼고 그대로 방치하면 되겠습니까?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신비주의 아버지. 13세기~14세기 독일 튀빙겐 호흐하임 출신입니다. 觀想祈禱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고 경험하는 觀想으로부터 정적과 무의 경지에서 하나님과 합일을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이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무한한 황야와 같은 분이시며 무한 그 자체이시다. 인격을 초월하여 이러한 신격에 몰입할 때에 핵심은 인간영혼의 작은 불꽃이 바로 내 영혼의 城이다. 무의 경지에서 하나님의 무와 합일하면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자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얽매이지도 말고 자유롭게 최고의 덕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관상의 기도입니다. 제가 혼자 산책하거나 등산하면서 하는 기도 방법이 아하! 관상기도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됴교나 선불교에서도 이러한 기도를 하지요. 에크하르트가 이러한 말도 했습니다. “내가 저 별에서 하나님을 보는 나의 눈은 저 별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과 같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조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눈, 그리스도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가 있어야 합니다. 관상기도는 바로 黙想기도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많이 일고 묵상이나 관상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눈의 시력을 회복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0년 3월 22일
푸른교회 담임목사 박 영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