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
서울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군복차림의 동상이 있다.
6·25전쟁 첫 해인 1950년 9월 22일 서울수복작전 때 녹번리 전투에서
29세로 전사한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를 기리는 조형물이다.
동상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한국 선교사 '윌리엄 얼 쇼'의 외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미국 웨슬리언대를 졸업하고 2차 세계
대전 중 해군 소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1947년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 해안
경비대 창설에 기여했다.
제대 후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6·25전쟁이 터지자 젊은
부인과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재 입대했다.
이때 그는 부모와 주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
유창한 한국어로 맥아더 장군을 보좌 하며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그는 해병 대로 보직을 바꿔 서울 탈환에 나섰다가 인민군 매복조
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의 숭고한 사랑에 감명 받은 미국 감리교인들은 아버지
'윌리엄 얼 쇼'가 공동창립한 대전감리 교신학교(현 목원대) 에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교회’ 를 건립 했다.
그의 부인은 남편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하버드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와 이화여대 교수와 세브란스병원 자원봉사자로 평생을 바쳤다.
아들과 며느리도 하버드대에서 한국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내한해
장학사업과 한·미 학술교류에 힘썼다.
은평평화공원 그의 동상 옆에는 기념비도 있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전 문교부 장관 등 60여 명이
‘키가 크고 평양 말씨 를 쓰던 벽안의 친구’ 를 위해
1956년 녹번삼거리에 세웠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비석이다.
비석 받침대에는 제자이자 친구인 해군사관학교 2기생들의 헌사가 새겨져 있다.
그와 한국 친구들의 특별했던 우정은 국가 간 우방과 동맹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한국을 위해 목숨보다 더 큰 사랑을 바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매년 6월 6일과 9월 22일 이곳을 찾는다.
[ 눈물이 납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 코리아를 자기 조국이라고 생각하며,
6.25전쟁이 발발하자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고 하며
부인과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자원 입대해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애국충정을 높이 기리며 ~ ~ ]
📣
지금의 우리나라는 달라진것 하나 없고
서로 먹는냐 먹히느냐로 여전히 팽팽하다
6.25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90%
보릿고개를 모르는 세대가 절반도 안되니 이래저래 걱정이다.
6.25전쟁 정전70주년을 앞두고 무엇보다도 국건한 안보가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본다
(2023.6.18 쥔장)
(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큰 며느리와 손자 )
가져온 글 https://m.blog.naver.com/sby5600/223131818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