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어느 성도와 교제를 나누던중
이 성도님이 말하기를 자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데
나를 향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답답하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성도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어찌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기 원하는
성도의 아름다운 고백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라 여겨집니다
물론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당연히 거듭난 모든 성도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주를 향한 열망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행 1장8절)
이 말은 네가 구원 받아 성령의 내주가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주님을 증거하라는 말입니다
조건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바로 네가 거듭났다면
증인의 삶을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이 삶을 사모하며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은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고 나서
1차 선교 여행후에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기전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하나님 이번 2차 선교여행을 갈까요 말까요 간다면 어느 도시들을 다녀야 할 지 말씀해 주세요 하나님이 원하는 지역만 전도 할려고 합니다"
만약 이렇게 기도해서 그 응답으로 하나님이 알려 준 도시만 전도할려고 했다면 비두니아로 갈려고 하는 바울을 하나님은 결코 막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전도하는 것을 막으시고 마케도니아인의 환상을 통하여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선교지를 옮기게 하셨습니다(행 16장 6-10절)
이 상황을 보면 하나님의 뜻도 분별하지 못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계속 사역할려고 했던 바울사도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가 기도하면서 계속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무시아까지 왔다가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새생명의 의지로 드로아로 갔다가
거기서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마케도니아인의 부름을 인정하고 마케도니아로 가는게 옳은 모습일까요
만약에 바울사도가 무시아에 오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보내신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그는 거처에서 머물면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움직이겠다고 했다면 사도바울은
새생명을 통하여 성렁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그 기쁨은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으로 부르신게 아닙니다
교제의 상대로 부르셨고 동행의 대상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아무 계획없이 단지 복음을 전한다는
그 한가지 이유로 이것 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무계획으로
무질서하게 행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신 새생명으로 인하여 기록된 말씀과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분별하여
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반면 무엇인가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듣던지
아니면 상황이나 환경이 분명하다 여겨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성도의
모습은 아닙니다
때로는 나의 분별이 잘못된 분별이며 그로 인하여 잘못된 결정이나 행동을 하였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골방에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있어야 할 때도 있지만 새생명의 의지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기다린다는 그 고백이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고백이 되어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카페 게시글
윤창석 목사님의 글
부르심의 소망을 알지 못하기에...
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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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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