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사의 주불을 모시고 있는 법당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이름이 대웅전입니다.
법화사는 수정사와 함께 조선시대 제주도의 산남, 산북을 대표하는 사찰로 유명합니다. 법화사의 창건은 원종 10년인
1269년부터 1279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충열왕 5년(1279)에 중창이 마무리 되면서 더욱
교세를 떨쳤습니다. 태종 6년(1406)에 법화사에 안치되었던 미타삼존 불상을 명나라에 넘겨주면서 교세가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현상은 태종과 세종대에 걸친 억불정책에 의해 가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16세기 후반에 와서
폐사되어 진 것으로 보이며, 17세기에는 초가암자 몇 채만으로 불도의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8세기 초에 그것마저
사라졌습니다. 그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근 모슬포에 훈련소가 세워지면서 이곳에 임시 건물을 지어 숙영소로
이용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제주지역의 사찰이었던 법화사는 몽골의 제주 지배 기간에 종교 정치 사회적으로 제주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고려와 원의 필요성에 따라 중창된 국제적 사찰이었습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김일우 학예연구사는 법화사의
중창이유를 고려 왕실과 원 황실이 동시에 신봉하던 관음신앙에 기초한 사찰이었으며 남송과 일본을 잇는 바닷길의
요충지인 제주의 서남부 해안지대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몽골족이 지배하는 100년동안 법화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결혼한 제주 여자 및 그 사이에 태어난 반 몽골족화된
제주민으로 구성된 몽골족 가족, 토착주민 등이 함께 종교적 안식처로 찾았으며 몽골족이 제주사회를 지배하는
관아와 같은 기능도 하는 등 지배기간 동안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제주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고려와 원의 국가적 입장이 중첩된 국제적 사찰로서의 위상을 지녔다고 합니다.
우리절의 종무소입니다. 법화사와 관계된 여러가지 일들을 물어보려면 종무소의 사무장과 이야기를 해야할 겁니다.
종무소의 전화번호는 (064) 738-5225
주지스님이신 도현스님이 거처하는 별관입니다. 우리스님은 요가를 특히 잘합니다.
회주스님 거처하는 곳
백련당입니다. 여러 단체가 방문했을 때 숙소로도 이용되고, 요가 등 신행활동도 이뤄지는 다목적 공간입니다.
본 법당 들어가는 입구에 해우소(화장실)가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 쪽에서 종무소를 다시한번 찍었습니다.
백련당 동쪽 조경된 곳에 카메라를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