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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강해(21)
아 멘
본문 : 고후1:17-20
<사도신경의 역사>
우리는 그 동안 사도신경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사도신경은 특정한 사람에 의하여
단 번에 작성된 것이 아니라
수백 년의 기간을 통하여
여러 회의를 거쳐 서서히 만들어졌습니다.
대략 3단계가 있는데
곧 로마의 세례문답, 로마신경,
그리고 사도신경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이 사도신경이 교회의 고백으로
꼭 필요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세례를 베풀 때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을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였습니다.
‘로마의 세례문답’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로마에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전에
세례문답을 하였는데,
그것은 다음의 질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 “당신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까?”
- “당신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까?”
- “당신은 성령을 믿습니까?”
이 세 번의 질문에 세례후보자는
각각 “믿습니다(credo)”라고
대답하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단들 때문입니다.
이단들로부터 순수한 신앙을 방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내용이 첨가되기도 하면서
그 모양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때 나타난 많은 이단들과 싸우면서
교회는 많은 신조 혹은 신경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로마신경’입니다.
그것은 로마의 세례문답을
서술형으로 고친 것입니다.
390년에 루피누스(Rufinus)에 의해 소개된
로마신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그의 유일하신 아들이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셨으며,
사흘 날에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올라 아버지의 오른편에 좌정하셨고,
거기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교회와 죄의 사함과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 이후 300여 년 동안
서방의 여러 교회들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신조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거의 8세기 경에 와서야
비로소 확정되었습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
제가 강해하는 도중
수차례 말씀드렸듯이 ‘사도신경’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복음)을 이해할 수 없기에
‘믿음의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기독교는
그토록 믿음을 강조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은혜와 구원의 유일한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열어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존재를 열어둡니다.
믿음의 본질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데 있습니다.
즉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각 가정에는
수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도 파이프를 통해
상수원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꼭지를 돌려야만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도꼭지가 능력이 있어
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물은 들어와 있습니다.
믿음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로로 삼으셔서
은혜와 능력이 우리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서울여대 교목실장으로 계신 장경철 목사님이
‘기독교의 기본 진리’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161-164쪽).
학생들에게 ‘기독교 개론’을 가르치던 중
‘아멘’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답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에서 ‘아멘’이라는 단어는
동의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특별히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동의를 표현할 때 교회에서
‘아멘’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내용에 대하여 동의하면 ‘아멘’하십시오.
그러나 동의하지 않으면
‘아멘’하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학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었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자 ‘아멘’을 하는 학생도 있었고,
잠자코 가만히 있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때 이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했답니다.
“‘아멘’이라고 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후 어떤 학생이 강의 평가서에
이 말에 대한 서운함을 표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아멘’을 강제적으로
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문제 삼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려면 다 주지
왜 ‘아멘’이라고 말한 사람에게만 주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선생님이 마지막에 ‘아멘’을 한 사람에게만
축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학생의 글을 읽고
“정말 하나님은 ‘아멘’하는 사람에게만
복을 주시는지”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답니다.
하나님은 실은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려서
복을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내가 ‘아멘’할 때만 내 속으로
들어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같은 종이라도 언제나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종소리는 언제나 때리는 자의 힘에
응분하여 울려퍼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아멘’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을 행한 하나님의 은혜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은혜의 통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탄식하고
꾸짖으신 것은 ‘믿음 없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8:23-27>(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
23절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절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절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마16:14(부활을 믿지 아니한 제자들을 책망하심)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칭찬하신 때에도
‘믿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8:10(하인을 고치려는 백부장의 믿음)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9:20-22>(열두 해 혈루병 걸린 여인)
20절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마15:21-28>(가나안 여인의 믿음)
21절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절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그렇습니다.
믿음만이 ‘은혜와 구원의 통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히11:6)고 선언하였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17:5)라고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
이성, 합리적 조건이 채워져야
믿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고전2:1-5>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4-5절>
4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절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은
믿음을 강조하였습니다.
9절(구약의 말씀인용 사64:4,65:17)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구원의 도는 사람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는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를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멘’의 뜻>
하나님의 구원의 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믿음’과 ‘순종’의 표현이 바로
‘아멘’입니다(사도신경 고백의 마지막).
구체적으로 ‘아멘’의 의미를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동의의 뜻 :
“진실로 그렇습니다.”(송영의 끝)
언약궤를 무사히 예루살렘에 안치시킨 후에,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여호와를 찬양하는 송축시를 불렀습니다.
대상16:36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바울 사도도 서신서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마다
아멘을 기록하였습니다.
롬1:25 b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9:5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예>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합시다”) - “아멘”
율법에의 동의(신27:15-26).
둘째, 소원의 뜻 :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기도의 끝)
바울의 축도
롬16: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성도의 최후 간구(소원) - 계22:20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셋째, 순종과 결단의 뜻 :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말씀을 읽을 때)
<고후1:17-20>
17절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절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절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가 아멘하여”는 결단과
실천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느5: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이처럼 ‘아멘’는 ‘송영에 대한 동의’로서,,..,
‘기도에 대한 소원’으로서.....
‘말씀에 대한 결단’으로서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아멘’하여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아멘’이 하나님의 축복을
생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멘’은
하나님의 축복을 유통시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무리 넘치더라도
‘아멘’하지 않는 심령 속에는
한 방울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비가 와도 그릇이 엎어져 있으면
그 물이 담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사도신경’의 모든 고백을 믿음으로 받아,
‘아멘’으로 고백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모든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