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채 첫 시집『모량시편』도서출판 계간문예, 2012년
自序
철둑 너머 어머니가 있다
어둑한 길가 귀퉁이에서 불쑥 나타나시던 귀가 길
어머닌 늘 달그림자였다
삶에 지쳐 있을 때
詩가 왔을 때
달그림자는 베토벤의 월광으로 다가왔다
월광은 붉은 길을 만들었다
붉은 길은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했지만
벅찬 기쁨이었다
내가 詩와 놀 때
어머닌
하얀 시트 위에서 수 년을 기다렸다
내가 뒤돌아 봤을 때
오시던 길로 되돌아가셨다
그녀는 나의 詩였다
이
간곡한 일기들을 어머님께 바친다
이제
어머니를 놓아 드려야겠다.
모량역
한영채
고요하다 사월 무논 같은
간이역
뒤란 왕벚꽃 무성한 소문같이 꽃비 내리던
낮은 담벼락
차르르 쌓인 그 소문, 꽃비 되어
떠나보낸 대합실
말더듬이 역장의 붉은 깃발과
새벽 호각소리 멈춘 어스름 달빛
운동화 이슬에 흰 코 적시며 논길 걷던,
대구행 비둘기호 출발선
모량건천아화임포영천하양청천반야월
손가락 세며, 미루나무 세며
더듬어 보는 옛길
단석산 그리매 아직도 안녕한지
철길 위에 부려 놓는
시큰한 간이역.
입춘
한영채
이파리 까르르 물기 오른다
공원이 바쁘다
백목련 봉긋 울타리 담장을 넘본다
가지 사이 어린 백로 솜털 고르며
푸드득 날갯짓이다
물기마른 가지에 푸른 바람꽃 피워낸다
새털처럼 밝은 오후다
봄 지나고
하루 더 살아야겠다
암각화
한영채
화창한 봄날, 울주군 대곡 산231-1번지
강 너머 꼬물거리는
선사시대 그들, 빗살 바위에서 만난다
휘어진 물길 수 천 년 하루 같이
구곡으로 흐르고,
멈추다 흐르는 대곡천 물길
흙발 부처가 옹송옹송 모여 있는 절벽마을
호랑이 늑대 꽃사슴 흑등고래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동해바다를 건너 온
그들 바위에 그린 암각
부엉이 얼굴보다 둥근 망원경 안에 산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각질 분분한 선사시대 소리가 강 건너 있다
21세기 고래가 된 나는
첨범 선사 마을을 건넌다.
드므가 사는 집
한영채
꽃그늘이 포록포록 달포된 강아지를 재운다. 처마 밑 펑퍼짐하게 눌러앉은 독, 옹이진 가슴 불길 잡으려 여태 맑은 물 고집하고 있다 돌계단을 오르자 사랑채 모퉁이 느티나무 옹이, 오도카니 이파리에 쌓여 익숙하다 태풍에 부러진 가지들 고물고물 육 남매 바람 잘 날 없던 곳 할머니 관절염 앓기 전부터 초록은 그늘을 안는다 혼기 지난 시누의 신열같은 골똘함과 내 안의 개울물 소리 일 때 촉수 세운 새싹들 할아버지 손길 느리게 수평을 일군 앉은뱅이 나무의자 둥근 독 속에 비친 그의 파랑들을 기억한다 느티 아래 무순을 뽑아 새댁 입덧 맞추느라 분주한 오후 구름 한 자락 줄장미 담장을 걷다 드므를 다녀간다 오래된 물거울이 훤하다 드므엔 노부부가 산다.
횡 투옌
한영채
한국어 수업을 받는 베트남 그녀, 횡투옌
삶의 촉수가 되어 버린 꽃
엄마와 거닐 던 강둑은
어떻게, 안녕한지
공원 호수에 너울대는 앙다문 꽃잎들
적막한 여름 소나무 위로
보름달 비치면
메콩강 바람이 뿌옇게 인다
한영채 시인
경주출생
방통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6년 '문학예술'로 등단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인협회
동리목월 시작나무 동인, 시와사람들 동인
첫댓글 한영채 시인님, 첫시집 상재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한 시인 님, 첫 시집 줄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살얼음판을 건너며 새털처럼 밝은 봄날의 푸른 바람꽃이 그리워지네요...^^
모량역이 어딘가요? 시집 제목에서부터 읽고 싶은 호기심을 일으키네요.'드므'는 또 어디인지,무엇인지,.궁금증이 자꾸 일어나네요. 한시인님, 축하드립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띄웁니다
드므: 넓적하게 생긴 독.
( 예문 : 먹빛 더그레 위에 산수털벙거지 뒤집어 쓰고 붉고 푸른 꽃술 달린 창대 잡고 있던 그 젊은 병정은 황황히 드므 놓여진 모퉁이 쪽으로 걸음을 옮기었는데, 웬일로 떠오르는 것은 이모부였다. 〈김성동, 국수〉) ♣ ‘드므’에 물을 담아 대궐 주변에 두기도 하였는데, 이는 화마(火魔)를 누른다는 주술적인 의도가 있었다.
경주와 대구 사이, 역 이름이 위에 숨겨져 있네요^^
한영채 시인님,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추가하자면,
모량은 제 고향이기도 하지만.박목월 시인의 생가가 있습니다
이동훈 시인님 설명 감사드립니다.
잘 지내시죠?
시집 받아 잘 읽고 있습니다, 한 시인님!
계사년 새해 문운이 창성하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시집 발간 축하드립니다
꼭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첫 시집.읽고 또 읽어도 그 모습 그대로 박혀 있듯이...아픔은 아픔대로...고운 글들이네요...
축하 하면서 건필 기원합니다...
저의 시집 모량시편 축하해 주시는 여러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출발이라 생각하고 다시 열심히 시와 놀겠습니다
한영채 시인님,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첫시집『모량시편』발간을 축하합니다. 달그림자 어머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