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白頭山)

백두산 !.......
백두산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백두산을 설명할 때 단지 민족의 영산이요 대한의 최고봉 등 몇 마디 짧은 말이나 글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왜냐하면 단군께서 고조선을 창업하고 주몽대왕이 백두산의 정기로 고조선의 영광을 재건하고 왕건대왕 또한 백두산에 올라 500년 고려의 대 역사를 창조하였으며 조선을 창업한 태조대왕 또한 백두산에 올라 그 기상을 높이 쳐들었던 것이다.
이렇듯 백두산은 우리민족을 태동시켰으며 우리민족의 희노애락을 지켜보면서 우리민족의 모(母)산으로서 지금까지 존재 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의 선조들은 백두산을 존경하고 숭배함이 하늘과 같이하여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는데 머리가 희다하여 백두산 이라 칭했고 대대손손 영구하라하여 불함산이라 불렀으며 단단대령 . 거마대산 . 태백산 . 장백산 . 백산 등으로 불러왔다.
해발 2761m의 백두산 장군봉은 남으로는 우리의 국토를 동서로 양분 하여 백두대간을 만들어 지리산에 정기를 이어주고 북으로는 송화강을 발원시켜 만주일대 우리 민족의 젖줄이 되어주었고 동으로는 두만강을 발원하여 장백정간의 산줄기를 태동시켜 국가를 지켜주고 국토를 기름지게 만들었으며 서로는 압록강을 발원하였다.
백두산의 주봉인 장군봉은 16봉우리를 거느리고 그 가운데 연못을 만들었는데 이를 일러 하늘의 연못이란 뜻으로 천지(天池)라 불렀으며 용왕이 사는 곳 이라 하여 용왕담 이라 불렀고 우리 조상들은 이천지가 바다에 닿아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해발고도 2,190m에 있는 천지는 최대수심이 384M요 둘레가 14.4KM에 달하고 동서 간으로 3.55KM나 되는데 신기한 것은 나가는 물만 있고 유입되는 물은 없는데 날씨가 아무리 가물어도 수량의 변화가 없으며 무진장 비가와도 수위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비룡 폭포로 물을 엄청나게 쏟아내는데도 말이다....
백두대간의 종주를 시작한 이후로 백두산을 보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힌다.
백두산이 보고 싶다.
백두산을 가슴에 담아보고 싶다.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바라보고 싶다.
백두산에 올라 민족의 정기를 느껴보고 싶다.
보고 싶어 미치겠다.
갈망하는 자는 기회가 생긴다고 그 누가 말 했던가?
진짜로 백두산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나와 친분 있는 한 후배가 중국 연길에 간다는 것 이다.
그 친구의 처갓집이 연변 자치주의 수도 연길에 있는 것이다.
염치를 불구하고 동행을 요구하여 어렵게 여비를 마련하여 집사람과 함께 중국행 티켓을 구입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여권이 나오고 비자가 나오니 마음이 들떠 잠이 오질 않는다.
한 달여를 기다리면서 마치 초등학생이 소풍날짜를 손에 꼽듯이 나 또한 그러하고 여비를 마련하느라 전선 피복을 벗기는 집사람 또한 그러 하였으리라.
무자년 7월 27일.
드디어 내일이면 출발이다.
배낭을 싸고 백두산과 연변일대의 자료를 수집하여 여행용 가방에 집어넣고 아이들을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부탁드리고는 잠을 청하니 영 잠이 오질 않는다.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27일 새벽 04에 기상하여 05시 출발 인천공항 셔틀버스에 오른다.
집사람은 비행기를 처음 타 본다고 매우 설레어 하며 긴장하는 눈치다.
2시간 40여분을 지나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2시간여의 지루한 출국수속을 마치니 시간은 09시를 가르킨다.
50여분의 시간이 남아 공항내부도 구경하고 우동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는 비행기에 오른다.
미모의 승무원들이 반가이 인사하고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착석하니 비행기의 요란한 엔진음과 진동이 느껴지고 비행기는 곧 땅에서 이륙하여 구름위로 올라선다.
하늘에서 구름사이로 내려다보는 내조국 대한민국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멋있어 보인다.
마치 시집을 가서 친정을 떠나는 새색시의 기분이 이러할까?
백두산을 간다는 벅찬 감동과 조국을 떠나는 서운함의 감정이 묘하게 뒤섞인다.
우리를 실은 비행기는 2시간 40분을 걸려 대련과 심양을 하늘로 경유하여 12시 20분에 연길 공항에 도착한다.
간도협약 이전에는 분명이 내나라 내땅인데 내민 족의 영광과 한이 서려있는 이 땅이 왜이리 낯설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왜이리도 낮 설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쳐가는 외국인 이란 생각에 서러움이 복 받히고 가슴으로 통곡하는 나그네의 두 눈엔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나마 동서남북 사방팔방에 분명하게 눈에 띠는 우리글로 된 간판들이 내나라에서 외국인이 되어버린 나그네를 위로한다.
깨끗하게 정리된 연길시내는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듯하다.
거리마다 걸려있는 간판의 모습은 우리의 60~70년대를 보는듯하고 도로보다 인도가 더 넓은 도로는 장래를 멀리 보는 선진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본요금이 중국화로 5원짜리 택시가 승용차보다 많은 연길의 모습은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에 몸부림치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의 짠한 모습을 보여준다.
후배님의 내자의 친정집인 국화공위(아파트) 에 도착하여 어른신께 큰절로 인사하고 연길 가야 호와 청련호를 산책하고 우리를 백산에 대려다줄 자가용을 1,700원에 (한화 약 30만원) 예약하고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에 백두산 산행을 위하여 일찍이 잠에 든다.
다음날 04시05분 우리를 실은 승용차랑은 새벽길을 무섭게 질주한다.
한참을 달리다 조선족 민족촌 맞은편에 위치한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아침식사를 한 후에 08시가 조금 넘어 이도백하의 백두산 입구에 도착한다.
길 양쪽에 펼쳐진 곧게 뻗은 미인송 수림지대는 우리 한민족의 굳건한 기상과 백두산의 장대함을 대변하듯 하늘 높이 솟아있다.
산문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여 백두산 관람에 들어간다.
백두산은 입장료가 무쟈게 비싸다.
백두산에 오르려면 우선 입장료가 100원이고
보험료가 5원이고
버스비가 68원이고
천지 관람료가 25원이다.
45인승 백두산 환경버스에 오르니 중국인 안내양이 백두산의 간략한 설명과 주의 사항을 이야기 하는데 중국말이라 알아듣기 어렵다.
소천지 갈림길에 도착하니 이번엔 25인 버스로 갈아타고 천상 온천 호텔 입구까지 간다.
배낭을 짊어지고 모자를 눌러쓰고 전방을 주시하니 장대하고 우렁찬 비룡폭포가 보이고 기나긴 계단 양옆으로 백두산의 천상봉과 백운봉이 시선을 압도한다.
스틱에 힘을 주고 허리끈을 졸라매고 백두산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하니 온천수에 옥수수와 계란을 익혀서 파는 온천샘을 통과하고 예쁘게 정리된 목계단을 올라가니 자욱한 연기와 온천의 유황냄새가 천지를 진동하고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온천을 바라보니 대자연의 신비가 필자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비룡폭포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줄기를 감상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니 멀게만 느껴졌던 백두산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천지간에 지축을 뒤흔들며 천둥보다도 요란한 굉음으로 두 갈래의 물기둥을 토해내는 비룡폭포는 그저 경이스러울 따름이다.
천지를 관람하는 대가로 25원을 지불하고 하늘로 오르는 천국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 계단은 동굴로 이어지고 계단은 가팔라서 난간을 잡고서야 겨우겨우 오른다.
땀으로 온몸을 목욕하고서야 계단을 통과하니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이름 모를 꽃들로 가득한 끝없는 초원은 이곳이 신선이 노닌다는 무릉도원 인가 아니면 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천상의 화원인가 ?
난생 처음 보는 화원의 꽃들은 아름답기가 글로는 표현키 어렵다.
천상의 화원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다시 한 번 바라보니 그 사진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을 한다면 아마도 억 만 불은 될듯 싶다.
화원을 가로질러 천지를 향하니 좌로는 천문 봉이 나를 호의하고 우로는 백운 봉이 나를 향해 반갑다 소리치며 천지에서 내려오는 천상의 개울물은 은을 녹여 흘리는 듯 소리는 은쟁반이요 색깔은 은빛이라........ 흐르는 물소리는 고요하고 청량하기 그지없다.
발길은 가벼워서 구름 위를 걷는 듯 하고 그 토록 보기를 일심으로 염원했던 백두의 천지가 내 앞으로 펼쳐지고 내나 라의 최고봉인 장군봉을 위시하여 16좌의 봉우리가 내나라 내조국 백두의 천지를 철통같이 호위하니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백두산의 천지를 아무리 외치고 불러바도 눈물이 목을 막아 아무소리도 나질 않고 그저 멍하니 서있을 따름이다.
백두산을 오를 적에 들어오는 물 한 방울 없는 천지가 엄청난 굉음의 비룡폭포를 만들어 논 연유를 몰랐는데 이제는 그 연유를 확실히 알 것 같다.
천지의 물의 근원의 우리민족의 눈물이요 비룡의 광음의 우리민족의 영광을 외치는 함성이리라.
장군봉을 쳐다보고 천문 봉을 쳐다보고 16좌의 봉우리를 유심히 살펴보니 장군봉에서 힘차게 뻗어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펼쳐지고 300m의 깊고 맑은 천지는 단군 조선이래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의 역사와 우리민족의 단아하고 깨끗한 민족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천지에 뛰어들어 천지 물을 만저보고 얼굴에 비벼보고 천지 물은 먹어보니 물의 깨끗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요 촉감은 부드러워 마치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는듯하며 맛은 시원하고 달며 속세의 찌든 맛이 전혀 없다.
천지의 맑은 물을 3병떠서 고이 배낭에 집어놓고 천지의 고운 돌을 4방향으로 모아서는 피티병에 담아놓고 천지에 귀한 흙을 피티병에 담아서 신주단지 모시듯 귀하게 모셔다가 배낭에 보관한다.
속세의 중생이 천지에 오래있기 죄송해서 종종걸음으로 천지를 나오니 또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고 목이 메기 시작한다.
내나라 내땅을 내나라로 못오고 수만리를 돌아서 남의 나라로 영산을 올라오니 서러움에 복바쳐 눈물이 나오고 동족상잔의 6.25때 동족을 죽여준 대가로 내나라 영산을 모택동에게 넘겨준 김일성의 매국이 너무나도 통탄스러워 눈물이 나온다.
내민 족 내동포를 많이 죽여준 것이 그렇게도 고마운가? 왜 하필이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매국했단 말인가?
너무도 원통하고 서운함에 눈물이 나오노라....
장군봉의 신단수를 향하여 3배로 하직하고 진부령에서 백두산까지 내나 라로 대간을 완주하길 간절히 빌고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한탄하고 천지를 내려온다.
계단을 내려와서 비룡폭포 최단거리까지 접근하여 폭포수를 2병떠서 배낭에 고이 넣고 4시간의 긴 여정을 거쳐 연길에 도착하니 하루해는 너무 짧아 칠흙 같은 밤이다.
내나이 마흔여섯에 우리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내 눈으로 보았고 내발로 천지를 밟았으며 내 귀로 내민족의 함성과 비룡의 웅장한 굉음을 분명히 들었으며 가슴으로 민족의 정기를 느껴볼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크나큰 광영이 아닐 수 없다.
백두산 탐방을 마무리 하면서 내가 백두산을 갈 수 있도록 도아준 이상권 후배의 내외분과 숙식을 제공하신 이상권 후배의 장모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통역과 가이드를 자청하신 이상권 후배의 내자분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또한 어려운 살림에 백두산 기행을 허락하고 동참해주신 마나님께도 진실로 감사드리며 천지를 볼 수 있도록 구름과 비를 쫒아주시고 험준한 등로부터 나약한 인간의 육신을 보살펴주신 백두산의 산신께 지복으로 감사드리면서 오늘의 즐산과 안산을 자축하는 바 이다.
무자년 칠월 스무 여드레
청우산사랑 : 산이 좋아.
첫댓글 벌써 소중한 추억이 되어 가슴속에 남은 백두산 천지 산행기를 통해 다시한번 그날의 감동이~~혹여 천지를 보지못할까봐 마음졸이며 찾았던 백두산 우리의 바램을 알았던지 너무도 화창한 날씨에 그리던 백두산과 천지를 눈과 마음에 듬뿍담아올수 있었습니다..함께한 산행 안산함을 축하드리며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어요^^
소중한 추억 함께해서 좋았네요.
백두대간 종주의 깊은 뜻으로 다녀오셨기에 남다른 감회가 읽는 이에게도 찐하게 전해오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리구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하루님 염려덕분으로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 애독에 감사드립니다.
던이야 다시벌면되고 주어진기회는 놓치면 다시오기 힘든거 아니겠습니까? 선택 잘하시고 잘 다녀오신 백두산여행길 아닌가싶네요? 산이좋아님의 남다른 백두산 뜻깊은 여행길 소중한 추억으로 길이길이 남으리라믿습니다 늘 건승하옵길()두손 모아봅니다
봄님의 위로와 격려에 감사드리고요. 긴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