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시니어] 북카페 운영 김종헌 전 비비안 사장
“카페는 내 인생의 선물 같은 곳 큰돈 못 벌지만 얻는 게 너무 많아”
입구에 서서 잠시 두리번거렸다. 점심 때인데도 꽤 조용해 손님이 없나 했더니 웬걸, 빈 테이블이 몇 개 없다. 톤을 낮춰 조곤조곤 대화하며 식사하는 손님들이 장소를 꼭 닮았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십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홀 저편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록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쑥색 에이프런을 두른 한 사내가 음식이 담긴 카트를 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접시를 나르는 손놀림이 여간 능숙하지 않다. 작고 다부진 체격, 짧고 단정하게 손질된 머리, 동그란 안경 너머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 김종헌(62) 대표였다.
▲ (우) 카페 테라스에서 포즈를 취한 김종헌·이형숙 부부.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114-12번지. 상호명 ‘피스오브마인드’.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란 이름처럼 예쁜 베이커리 겸 북카페다. 김 대표가 아내 이형숙(57)씨와 함께 지난 2003년 강원도 홍천에 처음 문을 열었고 3년 전 이곳으로 터를 옮겼다. 간판은 카페이지만 식사도 가능하다. 주메뉴는 파스타와 피자, 스테이크 등 정통 양식. 베이커리를 겸한 만큼 빵과 쿠키도 제법 구색을 갖췄다. 주문과 동시에 오븐에서 구워내는 긴 막대 모양의 빵 그리시니는 감칠맛이 남달라 특히 인기다.
피스오브마인드의 실내면적은 홀과 주방을 합쳐 약 330㎡(100평). 비슷한 면적의 야외 테라스까지 더하면 꽤 넓은 공간이지만 어느 곳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눈 닿는 데마다 서예 액자, 동·서양 희귀음반, 세계 각국 고서(古書)가 빼곡하다. 테이블에 앉아도 볼거리는 이어진다. 통나무에 사각모양 홈을 파고 유리판을 얹어 만든 테이블 안은 온통 옛날 물건이다. 안경·시계·휴대폰·인감도장·여권…. 중1 때부터 하나도 안 버리고 모았다는 김 대표의 ‘컬렉션’을 감상하고 있자니 개인박물관에라도 온 듯 착각에 빠진다.
CEO에서 카페 주인장으로
김종헌 대표는 피스오브마인드 오픈 당시 꽤 많은 주목을 받았다. 독특한 이력 덕분이다. 그는 속옷 브랜드로 유명한 비비안의 전신 남영산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28년 만에 억대 연봉을 받는 대표이사가 됐다. ‘샐러리맨의 신화’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 돌연 “베이커리 북카페를 하기 위하여 사표를 냅니다”라고 쓴 사직서를 제출하고 귀농, 피스오브마인드의 주인장으로 변신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IMF 사태 직후 실업자가 양산되며 많은 이들이 ‘제2의 인생’을 꿈꾸던 때였다. 당연히 그의 스토리는 화제가 됐다. 신문·방송·잡지 등 여러 매체가 앞다퉈 김 대표 부부와 피스오브마인드를 취재해갔다.
‘뷰티풀 시니어’의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 한 지인으로부터 김종헌 대표를 추천 받았다. ‘이 사람이다!’ 싶어 홍천 주소를 찾았는데 웬일인지 검색이 되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엉터리였다. 수소문 끝에 카페가 춘천으로 이사한 지 3년쯤 됐단 사실을 알게 됐다. ‘왜 홍천을 떠나 춘천으로 왔을까?’ 김 대표와 마주앉았을 때 가장 궁금했던 그 질문부터 던졌다.
“처음 홍천에 자리 잡았을 땐 박물관과 카페를 각각 한 동씩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해 운영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더군요. 특히 주변 사람들 반대가 심했어요. 자식이 물려받아 이어갈 게 아니라면 괜히 폐가(廢家) 되기 십상이라고요. 카페를 꾸리는 것도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워낙 시골이다 보니 재료상도 대량주문 외엔 배달을 꺼리더라고요. 저희 가게 빵은 전부 한 포대에 5만원씩 하는 호주산 유기농 밀가루를 써요. 그걸 수백 포대씩 주문하고 결제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어요. 종업원 문제도 발목을 잡았지요. 유능한 현지 인력 구하기도 어렵고 서울서 데리고 오면 6개월을 못 버텼어요. 이상과 현실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거예요.”
홍천 떠나 춘천시대 열다
춘천에 정착한 후 그는 카페 운영에 몇 가지 원칙을 도입했다. 그중 하나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었다. “홍천 시절엔 손님이 전국구였어요. 홍천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카페가 위치한 곳이 관광지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춘천에서도 외곽에 있기 때문에 관광객만 바라보고 영업하긴 쉽지 않지요. 다행히 춘천은 교육도시란 이미지가 있어 저희 카페를 좋아하실 만한 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20만 인구도 적은 게 아니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춘천 대 기타 지방’ 고객 비중을 6 대 4로 정했습니다.”
넉넉한 공간을 활용해 카페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단 아이디어도 그가 냈다. 피스오브마인드 주방은 종종 교실로 변한다. 이형숙씨가 진행하는 제과제빵 강좌와 떡 만들기 강좌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김 대표도 얼마 전까지 매주 토·일요일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영어회화 수업에 나섰다. 10명이 식사를 겸한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꾸며진 세미나실도 이곳의 자랑거리. 삼면을 책으로 빼곡히 채우고 나머지 한쪽 면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웬만한 모임은 여기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식사비 외엔 별도 이용료를 받지 않고 와인을 갖고 와 마실 수 있도록 콜키지(Cork charge·가져온 와인을 마실 경우 코르크를 열어주는 비용으로 지불하는 금액)를 없앴다.
성과도 서서히 나타났다. “한번은 김진현 강원대 법학과 교수님이 오셨어요. 여기저기 둘러보시다가 세미나실이 마음에 드신다면서 책을 기증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다음날 학교 트럭으로 실어온 책 중 일부를 추려 세미나실에 별도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오전엔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도예가 몇 분이 찾아오셨어요. 자신의 작품을 카페에 전시하고 연이 닿는 손님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달라고 하시기에 그러자고 했어요. 손님들은 도예작품을 감상해서 좋고, 전 매장을 꾸밀 수 있어 좋고, 작가분도 작품을 알리고 판매까지 할 수 있어 좋고…. 일석삼조 아닙니까.” (웃음) 그는 “나 혼자 꾸미던 공간을 여러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일하는 남편, 공부하는 아내
요즘 그는 CEO 시절 못지않게 바쁘다. 매일 새벽 6시면 일어나 7시, 늦어도 7시30분엔 카페에 도착한다. 실내를 간단히 정리하고 바닥 청소를 마치면 9시. 그날 요리할 재료를 직접 장보는 시각이다. 직원들이 출근하면 테이블을 정성껏 닦고 점심 손님 맞을 채비를 마친다. 오후 3시. 마지막 점심 손님이 빠져나간 후 숨 돌리는 것도 잠시, 5시30분부터 몰려오는 저녁 손님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덧 밤이 깊어진다. 직원들이 퇴근한 후에도 그의 일과는 계속된다. 카운터 뒤편에 마련된 작은 책상에서 책도 쓰고 카페 블로그(blog.naver.com/peaceofmind8)도 관리한다. 피스오브마인드의 휴무일은 1월 1일, 설날, 추석 등 1년에 단 사흘. 김 대표는 “조직관리만 하면 됐던 사장 때보다 지금이 몇 배는 더 바쁘다”고 말했다.
김 대표 부부 외에 피스오브마인드의 직원은 4명. 전부 요리사다. 1명은 베이커리 부문을, 나머지는 식사 메뉴를 맡는다. 홀 서빙, 카운터 업무를 비롯한 각종 잡무는 모두 김 대표의 몫이다. 그래도 한때 대기업 사장이었는데 이런 생활이 몸에 익더냐고 물었더니 그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덩샤오핑의 좌우명이 처변불경(處變不驚·어떤 상황 변화에도 놀라지 않는다)이었다지요. 저라고 별 수 있습니까. (앞치마를 가리키며) 이걸 두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어요. 얼마 전 한 손님이 음식 내오는 절 보더니 이왕 하는 거 앞치마 매고 제대로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이렇게 본격적으로 뛰고 있습니다, 하하.”
피스오브마인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김 대표의 아내 이형숙씨다. 이씨는 1980년대 초반 남편의 부임지였던 독일 뒤셀도르프의 헤라클레스 빵집에서 도제식으로 제과 제빵 기술을 익혔고 이후 미국, 일본 등에서 수학한 ‘전문 베이커’다. 귀국해선 배화여대와 서울산업대, 고려대에서 전통 떡과 한과를 공부하기도 했다. 요즘 그는 남편보다 더 바쁘다. 일주일 중 이틀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하루는 박사(동국대 식품공학과) 논문을 손질한다. 최근엔 문화체육관광부가 5년 과정으로 시작한 ‘사찰음식 원류 찾기’ 프로젝트에 자문위원으로 합류했다. 그 와중에 틈틈이 매장에 들러 주방을 점검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한다.
이씨는 우스갯소리로 “남편의 51%는 마음에 들지만 49%는 아니다”고 말한다. 자신을 가리켜 “남편보다 산이 더 좋은 사람”이라고도 했다.(그는 매일 5시면 일어나 동네 안마산을 한 시간씩 오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출장이 잦아 365일 중 250일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샐러리맨 남편을 30년 가까이 내조했다. 별안간 사표 쓰고 시골 내려가 북카페 열겠다는 남편의 뜻을 따랐다. 책 욕심 많아 화장실에까지 책을 쌓아놓기 일쑤였던 남편의 취미를 존중했다. ‘남편이 날 굶기지 않아’ 뒤늦게나마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며 남편에게 고마워했다. “(이 사람과 헤어지면) 더 못된 사람 만날까 봐 그냥 같이 산다”며 농을 건네는 남편과 “앙금도 살아서 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세에 또 만난다”며 받아치는 아내는 천생 부부였다.
“카페는 내 인생의 선물 같은 곳 큰돈 못 벌지만 얻는 게 너무 많아”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세컨드 라이프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김 대표의 나이는 불과 쉰셋. 현역에서 한참은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는 그때 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다 시기가 있어요. 당시 제가 있던 회사에선 2세 경영이 본격화되며 오너 아들과 사위까지 경영에 간여하기 시작했지요. 그 사람들 눈치까지 보며 일하고 싶진 않았어요.우리나라 사람들 특징이 말년에 마무리를 잘 못 짓는다는 거예요. 역대 정권을 보세요. 말년 관리 잘못해 옥살이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업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면 자기 양심이나 윤리에 반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잦아집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그만두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서고 싶었고, 또 그렇게 했으니 후회 없습니다.”
그는 지금의 생활을 ‘은퇴 이후 삶’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저 두 번째 인생, ‘세컨드 라이프’라고 믿고 있다. “사회 진출시기는 자꾸 늦어지고 정년은 매년 짧아지는 세상입니다. 기대수명은 계속 높아지고요. 이제 우리 사회도 개인의 세컨드 라이프, 서드 라이프를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방향을 바꿔야 해요. 그건 부모도, 나라도 못해주는 거예요.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 카페 일이 끝나면 김종헌씨는 카운터 뒤편에 마련된 작은 집필실에서 책을 쓴다. / 전업주부였던 이형숙씨는 틈틈이 익힌 베이킹 실력을 발휘해 카페에서 판매하는 모든 빵과 쿠키의 레시피를 직접 만들었다.
돈 벌 욕심 없으니 카페는 놀이터
사람들은 김 대표 부부가 피스오브마인드 운영으로 떼돈을 벌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부부는 “큰돈을 벌지도 못했지만 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저희 음식이 수준은 특급호텔급인데 가격은 춘천 시세예요. 재료비가 많이 들어 팔아도 남는 게 별로 없지요. 인건비 부담도 상당하고요.” 김 대표는 “6년 이 일 했는데 이제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피스오브마인드는 부부에게 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선물했다. “매일 눈 뜨면 내가 갈 곳, 할 일이 있잖아요. 자식한테 기대지 않아도 먹고살 만해요. 늘 아내와 함께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여기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훌륭하신 분들을 사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김종헌) “남편에겐 연금이 있고 저도 강의료를 받아요. 돈은 그 정도만 벌면 되죠. 저희 부부에게 피스오브마인드는 놀이터 같은 곳이에요, 정성껏 만든 음식을 사이에 놓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놀 수 있는.” (이형숙)
요즘 김 대표는 두 권의 책을 집필 중이다. 한 권은 서예가 강창원 선생이 쓴 금강경 원본에 주석을 단 ‘서예금강경’(가칭), 나머지 한 권은 선(禪)을 주제로 우리 옛 시와 그림, 글씨를 한데 묶은 ‘깨달음의 시서화’(가칭)다. 그는 직장생활을 그만둔 후 이미 세 권의 책을 썼다. 지난 2007년엔 취미로 틈틈이 공부했던 서예를 주제로 한국과 중국의 서예가 7명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분석한 책 ‘추사를 넘어’를 펴내기도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책들은 출판사와 판권계약까지 마친 상태. 그는 불교에 관한 책을 한 권 더 쓴 후 ‘필생의 역작’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했다. “제목도 지어놨습니다. 삐딱한 한국인의 창조적 열정과 배짱. 어떤가요? 한국인의 심성을 제대로 파고든,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 같은 책을 꼭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