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대표작
발칸 반도 400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대서사시 『드리나 강의 다리』
인종 간, 종교 간의 충돌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이보 안드리치는 자신의 조국의 역사를 인간의 운명과 역사에 관한 위대한 대서사시로 승화시킨 작가이다. 열한 살 때까지 비셰그라드에 있는 고모의 집에서 생활한 안드리치는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라는 보스니아 출신의 터키 제국 고관이 자신의 고향 형제들을 위해 세웠다는 유명한 드리나 강의 다리에 대한 전설을 들으며 자랐고 이슬람, 가톨릭, 세르비아 정교, 유태교 등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는 보스니아에서 인간의 온갖 풍습들을 관찰하고 경험하며 이를 이후 작품 활동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드리나 강의 다리』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공존과 충돌의 역사를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낳은 세계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유장한 필치로 그려낸 보스니아의 얼굴과도 같은 소설이다. 지리적·종교적으로 철저히 분리되어 있던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작품의 주 무대인 드리나 강의 다리가 세워지면서 만나고 교류하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다리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인간사를 지켜보는 증인이자 그와 대비되는 영속성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질적인 문화들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지배 제국이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1516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다리를 세운 그때부터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거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1914년까지의 400여 년의 역사를 이보 안드리치는 이민족 간의 갈등과 충돌을 수많은 주인공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리면서도 화합과 영속성을 상징하는 다리를 내세워 모든 이질적인 민족과 종교·언어·문화가 만나서 화해하고 공존하기를 염원했다.
이 작품은 이보 안드리치를 역사가로 느껴지게 할 만큼 각 시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낙천적이며 삶을 즐기려 하는 카사바 사람들,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 지배 세력의 횡포에 맞서는 민중의 모습이 드러난 200여 개의 다양한 에피소드는 이보 안드리치를 ‘발칸의 호메로스’라고 불리우게 할 만큼 뛰어난 서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피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그리면서도 작품 전편에 걸쳐 흐르는 유머와 휴머니즘은 특정 민족의 역사를 다룬 작품을 넘어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게 했다.
이보 안드리치는 작품의 시대성을 살리기 위하여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 당시 사용되었던 터키어를 비롯하여 이슬람 문화권의 어휘를 작품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의 작품들은 번역하기 무척 어렵고 까다로운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이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각각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이보 안드리치 전문 연구자가 세르비아어 원전을 직접 번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발칸 반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가장 뛰어난 작품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보 안드리치가 오랜 칩거 끝에 완성한 ‘보스니아 3부작’ 중 제1부에 해당하는 이 소설은 1961년 ‘조국의 역사와 관련된 인간의 운명을 철저히 파헤치는 서사적 필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안드리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400여 년의 역사 동안 다양한 민족 공동체들의 공통된 운명과 갈등을 유장하고도 치밀한 서술로 그려낸 이 소설은 피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던 비극 속에서도 결코 휴머니즘을 잊지 않았던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걸작이다.
이보 안드리치
Ivo Andric1892년 보스니아의 트라브니크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보스니아에서 보낸 안드리치는 자그레브와 비엔나에서 철학을 공부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으로써 학업을 중단했다. 이 무렵 안드리치는 진보적 민족 단체 ‘청년 보스니아’에 가담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으나 1914년 많은 단원들이 체포되고 안드리치도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때 옥중에서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키에르케고르는 훗날 그의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1년에 시를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20년 첫 단편집 『알리야 제르젤레즈의 여행』을 비롯 보스니아의 여러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소재로 사후까지 100여 편이 넘는 단편과 중·장편소설을 발표함으로써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가 되었다.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집필하여 전쟁이 끝난 1945년에 동시에 발표한 3부작 『드리나 강의 다리』 『트라브니크의 연대기』 『아가씨』는 50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보스니아에 살아온 다양한 민족 공동체의 공통된 역사와 운명을 조명하여 이들의 갈등과 견제 속에 형성된 발칸 특유의 문화를 서사적으로 그려낸 걸작들이다. 이 작품들은 침체된 유고 문학계에 새로운 부흥을 가져오게 되며 특히 『드리나 강의 다리』는 안드리치가 1961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발칸의 호메로스’로까지 불리우며 보스니아의 얼굴을 가장 잘 드러낸 작가로 꼽히는 안드리치는 1975년 심장 발작으로 영면하였다.
첫댓글 보스니아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해서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살아왔고,살고있는지,살아갈지 신기하고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