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기념물 제123호
영광성산리지석묘군 (靈光城山里支石墓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에는 바둑판식 고인돌 45기가 밀집해서 분포하고 있다. 낮은 구릉에 45기가 4열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 주민들은 장기바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받침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여기의 45기 중에서 받침돌을 고이고 있는 것은 17기이고, 나머지는 땅에 밀착되어 있거나 묻혀 있다. 고인돌의 규모는 2m 미만의 것이 12기, 2m∼3m 사이의 것이 24기, 3m 이상의 것이 5기이다.
규모가 가장 큰 고인돌은 무리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5개의 받침돌이 덮개돌 주위를 돌
분 류수량/면적지정(등록)일소 재 지소유자(소유단체)관리자(관리단체)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지석묘 |
일원(45기) |
1988.12.21 |
전남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산103-2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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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 |
아가며 받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고창과 영광, 함평, 장성 등 전라남도 서북부 지역에서만 보이는 특징이다.
유적명영광 성산리 고인돌구주소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외죽동지정사항시도기념물 제 123호시대청동기종류유적.건조물-묘
유적설명 성산리 외죽동과 진덕리 상삼 마을 경계지점의 저평한 구릉상에 46기가 100×30m의 범위에 밀집되어 있다. 남방식과 개석식이 혼재되어 있고 일부는 반파되거나 개석이 이동된 상태에서 지석이나 하부가 노출되어 있다. 고인돌의 배열 상태는 대개 남∼북으로 길게 분포되어 있는데 규모가 큰 것이 중앙에 분포한다. 최대형은 300×270×140cm인데 5개의 지석이 받치고 있다. 지석은 원래 6개였던 것으로 보이며 60∼90cm의 크기이며 하부구조는 노출된 상태에서 이미 교란되어 있다.
참고사항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92, <<문화재도록>> ; 이영문·정기진·윤종균, 1993, <영광군의 고고학유적>Ⅰ, <<영광군 문화유적 학술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