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독일은 운전면허증 받기가 어려운 곳 중 하나다. 북유럽의 빙판길 테스트까지는 아니어도 시험의 난이도, 교육 과정, 비용 등, 면허증 얻기를 바라는 독일인들에게 어느 하나 만만한 부분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살면서 경험해본 이들의 운전 문화는 어려운 면허 취득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기본기가 바탕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길게는 2년, 짧게는 6개월의 긴 시간을 면허 취득을 위해 투자해야 하고, 지역별로 1,800~2,200유로까지 부담스러울 정도의 면허 취득 비용이 든다. 또 교육 과정은 얼마나 철저한지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열심히 교육을 받아도 시험에서 떨어지는 이들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독일 연방자동차청(KBA)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학과시험 불합격률은 39%였다. 2016년 결과인 37%보다 오히려 늘었다. 주행 시험은 이보다 적은 32%의 불합격률을 보였는데 약 45만 명 수준으로 이 역시 전년에 비해 조금 늘어난 결과다. 이처럼 면허 시험에서 불합격자가 계속 늘어나자 독일에서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그 원인 분석에 바쁘다.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부터, 교통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런 도로 상황 변화에 맞게 시험 난이도가 올라간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라는 주장들이 설득력 있게 전해지고 있다. 또한 요즘 십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에게 면허증은 과거보다 그 중요성이 덜해졌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눈에 더 들어온 내용은 이론시험 불합격 비율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실기시험보다 이론시험에서 더 높은 비율로 응시자가 떨어졌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상반기 기준 장내 기능시험은 38.3%가 합격, 도로주행시험은 50.6%가 합격했다는 자료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그에 비해 학과 시험은 어려워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80%를 넘고 있다. 두 나라의 이런 학과시험 결과 차이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독일 운전면허증 / 사진=tuev-sued
◆ 우리나라와 독일의 학과시험 규정 비교
이 차이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두 나라 학과시험 규정을 우선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종과 2종의 필기시험 합격 기준이 다르다. 1종 면허의 경우 100점 만점 중 70점 이상, 2종은 60점 이상을 얻어야 한다. 학과시험을 위한 1000개의 문항 중 40개가 출제되며, 배점은 2점부터 5점까지이나 2점짜리 문제가 가장 많다. 또한 학과시험을 위해 학원 등에서 ‘교양교육’이라는 이름의 의무 교육을 3시간 이수해야 학과시험을 칠 수 있다.
독일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문제은행에 등록된 이론 시험 문항의 수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30개 문제가 출제되며, 이 중 10점 이상 감점이면 탈락하게 된다. 한 문제당 배점은 2점부터 최대 5점까지로 우리와 같으나 5점짜리 문제 출제 빈도가 높다. 또 이론교육용 의무교육 시간도 다른데 한국은 3시간이지만 독일은 12시간 (1시간당 약 45분 수업)이며, 연속 3회 학과시험에 떨어지면 다음 시험까지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우리나라보다 운전면허 학과시험 합격률이 낮은 걸까? 기본적으로 합격선 자체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60점을 받아도 합격이 가능하나 독일에서는 90점을 받아도 탈락이다. 문제의 난도 역시 높은 편으로 면허증을 취득하고 오랜 세월 운전을 한 운전자들도 많이 틀리는 게 독일의 학과시험용 문제들이다. 앞서 밝혔듯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배점이 다른데 5점짜리 문제를 두 개 틀렸다면 나머지를 다 맞혀도 탈락하게 된다.
독일의 학과시험 / 사진=tuev-sued
◆ 간과하고 있는 이론교육의 중요성
이처럼 독일은 학과시험의 비중,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중요하다고 판단하기에 비중을 높인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초등학교 때 받는 자전거 수업 및 자전거 면허 취득 과정에서 경험하게 된다.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기능만을 교육하지 않는다. 자전거가 다니는 도로의 상황, 교통 표지판의 의미를 아이들 역시 익혀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이런 중요한 이론 교육을 우리나라는 3시간 만에 끝내도록 하고 있다. 거기다 시험의 난이도 역시 높지 않다. 집에서 문제집 사다 풀면 대부분 합격하는 그런 수준이 아닌, 제대로 원칙을 이해하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 암기식으로는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올바른 차로 이용법, 긴급 출동 차량을 만났을 때, 교통사고 목격 시 행동 요령, 자동차 기본 구조에 대한 이해, 회전교차로 이용법, 방향지시등 사용법, 꼬리 물기, 급차선 변경, 과속의 위험성, 올바른 운전 자세, 보행자 보호 등 꼭 알아 둬야 할 이런 기본을 배우고 익힌 후에 운전대를 잡느냐 아니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독일의 도로연수 모습 / 사진=이완
얼마 전 우연히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본 적이 있다. (운전면허) 시험이 너무 어려워졌고 비용이 너무 비싸 부담이니 (쉽게) 개선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동의하는 인원이 극히 적었던 것으로 보아 큰 공감을 이끌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비용 문제는 생각해 볼 점이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교육 과정에 만족하지 못했을 때 아깝거나 비싸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다르게 얘기하면, 면허 취득 과정이 좀 더디고 힘들더라도 제대로 꼼꼼하게 교육을 한다면, 그래서 수업에 대한 만족도를 높인다면 투자 금액에 대한 아쉬움은 덜어질 수 있다. 또한 이렇게 교육을 잘 받고 나왔을 때 합격 확률은 올라갈 수 있으니 재시험에 따른 추가 비용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흔한 말로 본전 생각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교육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 무엇보다 모두에게 안전한 도로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의 자동차 교육 과정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개선의 출발은 올바른 이론 교육에 있음을 꼭 인식했으면 좋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