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Sun): 태양계의 중심을 이루는 대표적인 주계열성으로 핵, 복사층, 대류층으로 되어 있으며, 중심인 핵에서는 4개의 수소가 모여 1개의 헬륨을 만드는 수소핵융합반응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주요 성질은 다음과 같다. 질량 1.989 x1033 Kg(지구 질량의 약 33만배), 반지름 696,000㎞ (지구 반지름의 약 109배), 지구에서의 평균거리 149,597,893㎞, 평균밀도 1.409g/㎤, 표면중력 27,300m/s2(지구의 27.9배), 표면온도 5785 K, 중심온도 약 1억 5천만도, 겉보기 등급 -26.5등성, 절대등급 +4.7등성, 자전주기는 적도에서는 평균 25일이며 60°에서는 29일이며 극지방에서는 36일이다. 태양의 내부구조는 핵, 복사층, 대류층으로 구분된다. 핵은 태양의 중심이며 온도는 약 천 5백만도(K)정도, 밀도는 약 350g/㎤인 고밀도의 기체 상태로 추정된다. 중심에서 4개의 수소가 융합하여 1개의 헬륨을 이루게 되며, 이 때의 질량결손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수소핵융합반응이 일어나 태양에너지가 생성된다. 복사층은 태양 내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핵에서 생긴 에너지를 복사에 의해 태양 표면으로 전달한다. 대류층은 태양 표면인 광구 아래에 있는 부분으로 복사에 의해 복사층에서 전달된 에너지를 대류에 의해 광구로 전달해 외부로 방출한다. 이 때 대류현상으로 태양 표면에 쌀알무늬가 생긴다. 두께는 태양 반지름의 약 정도이다. Sun Statistics
질량 (kg)
1.989 x 1030
질량 (지구 = 1)
332,830
적도반지름 (km)
695,000
적도반지름 (지구 = 1)
108.97
평균밀도 (gm/cm3)
1.410
자전주기 (일)
25∼36일
탈출속도 (km/sec)
618.02
광도 (ergs/sec)
3.827 x 1033
등급
-26.8
평균 표면온도
6,000°C
나이 (억년)
45
화학성분
수소
헬륨
산소
탄소
질소
네온
철
규소
마그네슘
황
기타
92.1%
7.8%
0.061%
0.030%
0.0084%
0.0076%
0.0037%
0.0031%
0.0024%
0.0015%
0.0015%
개기일식과 태양대기인 코로나의 모습, 코로나는 태양 활동이 활발할 때 크게 관찰된다.
태양의 표면과 흑점 쌀알무늬와 흑점
태양의 연도별 흑점수: 흑점수가 많은 해일수록 태양 활동이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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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모
9월의 역사이야기
9월의 역사
1일
◀ 937 신라 말 고려 초 승려 진공(眞空)대사 입적하다(855∼). 신라의 왕계(王系)인 김확종(金確宗)의 아들로
가야의 선융(善融)에 의하여 중이 되었다. 3장(三藏)을 연구하였으며, 937년 고려 태조의 3국통일을 축하하고
풀기 비로사에서 사망하였다. 진공은 죽은 뒤 태조가 내린 시호이며, 탑호는 보법(普法)으로써 939년 태조가
보법탑비를 세웠다. ◀1506 연산군 12년,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다.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 등
이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晉城大君)을 왕(中宗)으로 추대한 일이다. 이조참판을 지낸 성희안과 중추부지사
박원종은 재위 12년간 폭정으로 국가의 기틀을 흔들어놓은 연산군을 폐하기로 밀약하고 당시에 인망이 높던
이조판서 유순정(柳順汀),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있던 군자부정 신윤무(申允武) 등의 호응을 얻어 왕이 장단
(長湍) 석벽(石壁)에 유람하는 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계획을 꾸몄다. 9월 1일, 무사를 규합하여 훈련원에 모
아 먼저 임사홍(任士洪)·임사영(任士英), 신수근(愼守勤)·신수영(愼守英) 등 연산군의 측근을 죽인 다음 궁궐
을 에워싸고 옥에 갇혀 있던 자들을 풀어 종군하게 하였다. 이튿날인 9월 2일에 군사를 몰아 텅 빈 경복궁에
들어가서 대비(大妃:成宗의 繼妃)의 윤허를 받아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을 맞아 왕으로 옹립하였다. 연산
군은 유배되어 지내다가 11월 병으로 사망하였다. ◁1715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왕(1643∼1715) I.G.루이 14세
사망하다(1638∼).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여 '대왕' 또는 '태양왕(太陽王)'이라 불리는 절대군주의 전형이 되었
다. 즉 왕은 흡사 '살아 있는 법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스스로 "짐(朕)은 곧 국가이다"라고 할만큼 절대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전제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대외 전쟁과 화려한 궁정생활로 프랑스 재정의 결핍
을 초래하고 절대왕정의 모순이 증대하여, 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1877
영국 물리학자 F.W.아스톤 태어나다(∼1945). 질량분석기를 발명하여 모든 원소에 대한 동위원소의 분리에 성
공하였다. 192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1923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과 재일한국인 교포를 대학살한 사
건이 일어나다. 도쿄(東京)에 대지진이 일어나 위기 상태가 되자 일본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일한국인
의 폭동설을 조직적으로 조작·유포하였다. 이에 일본인들은 곳곳에서 5,000 여 명의 한국인들을 죽창과 몽둥
이로 잔인하게 학살하는 야만적 행위를 저질렀다. ◁1939 독일군, 폴란드 침공을 개시하다.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1979 우주선 파이어니아 11호 토성 접근에 성공하다. 파이어니아 11호는 1973년 4월 5일
에 발사되어 장장 6년 5개월 동안 32억km의 우주 비행을 한 끝에 토성에 접근, 수많은 자료를 지구로 보내고,
우주 공간으로 사라졌다. ◀1983 KAL 007편 점보제트기가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격추되다. 소령(蘇
領) 사할린 부근 공해상에 추락한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 269명은 모두 몰사하였다. 소련측은 자신들의 항로를
침입하여 격추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도 앵커리지로 향하던 여객기가 왜 항로를 이탈하였는지에 대한
진상은 미궁에 빠져 있다. 정확한 진상을 미국과 소련은 알고 있을 것이다.
2일
◀1241 고려 문장가 이규보(李奎報) 사망하다(1168∼). 시·술·거문고를 몹시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지칭한다.
문집-[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 ◀1506 조선 문신 신수근
(愼守勤) 사망하다(1450∼). ◁1853 독일 화학자·철학자 W.오스트발트 태어나다(∼1932). 근대 물리화학의 개
조로 190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870 세단의 전투가 일어나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普佛戰爭)의 결
전 전투이다. ◀1919 강우규 의사, 일본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다[강우규 의사 의거일]. 독립운동가 강우규(姜宇
奎;1855∼1920.11.29)는 호가 일우(日愚)이며, 평남 덕천(德川) 출생이다. 30세 때 함남 홍원(洪原)으로 이사하
여, 한의술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고, 학교를 설립하여 청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쳤다. 을사조약 체결로 국운이 기울어짐을 보고 만주로 떠나 지린성(吉林省) 라오허현(饒河縣)에 정착하여
신흥촌(新興村)을 건설하고 광동중학을 세우는 등 교육사업에 진력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박은식(朴殷
植)·김치보(金致寶) 등과 상의하여 65세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조국에 돌아가 거사할 것을 자원하여, 제3
대 총독으로 한국에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를 살해하고자 영국제 폭탄을 가지고 서울에 잠입하였다.
1919년 9월 2일 서울역에서 사이토가 탄 마차에 폭탄을 던지고 달아났다. 비록 총독이 살해되진 않았으나 37
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뜻을 이루지 못한 강우규는 장익규, 임승화 등의 집에 숨어 피신하다가, 9월 17일 일
본의 앞잡이 김태석에게 체포되어 결국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하였다.
3일
◁ 23 중국 신(新)나라 건국자 왕망(王莽) 사망하다(B.C.45∼). 왕망은 악정(惡政)의 연속으로 천하의 신망을
잃어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에 의해 패사(敗死)하였으며, 신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하였다. ◁1658 영국 군인·
정치가 O.크롬웰 사망하다(1599∼). 청교도혁명의 지도자로, 1653년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개정하
였다. 종신의 호국경(護國卿)이 되어 독재자가 되기도 하였다. ◁1856 미국 건축가 L.H.설리반 태어나다(∼
1924). '형태는 항상 기능에 따른다'는 기능주의자로, 미국 근대 건축 개척자의 한 사람이다. ◁1969 베트남 혁
명가·지도자이자 베트남민주공화국 초대 대통령(1946∼69)인 호치민(Ho Chi Minh:胡志明) 사망하다(1890∼).
어려서부터 반프랑스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1930년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설하였다.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대동아전쟁]의 종전과 동시에 총봉기를 지도하여 구엔(阮)왕조로부터 정권을 탈취[8월혁명], 베트남민주공
화국 독립을 선언하며 공산정권을 수립하고 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일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대통령 재임
중 심장병으로 급사하였다. 현재 결혼도 마다며 평생 조국과 통일을 위해 헌신한 호치민은 베트남 4천년 역사
상 가장 위대한 베트남인으로 숭앙받고 있으며, 영원한 지도자·위대한 스승으로 국민들의 가슴속에 살아 내
려오고 있다.
4일
◀1658 조선 문신 김육(金堉) 사망하다(1580∼). 경제정책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어 대동법 실시를 주장하였
다. ◁1768 프랑스의 정치가·소설가 F.R.샤토브리앙 태어나다(∼1848). 프랑스 로망주의의 선구자이다. 사후에
출판된 대작-[무덤의 저편에서의 회상] ◁1824 오스트리아 작곡가 A.브루크너 태어나다(∼1896). 근대 종교음
악·교향곡 최대의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다. ◁1948 네덜란드 율리아나 여왕 즉위하다. ◁1972 사상 최초의 '
올림픽 7관왕'이 태어나다. 미국 수영 선수 마크 스피츠가 뮌헨올림픽 수영 부문에서 7관왕을 차지하여 그 영
예를 누렸다. ◀1990 남북총리회담 개최되다. 북측의 연형묵(延亨默) 총리, 남측의 강영훈(姜英勳) 국무총리를
대표로 서울에서 열렸다.
5일
◁1566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제10대 황제 술레이만 1세 사망하다(1494∼). 치세 46년간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황금시대로 20여 인종을 지배하였다. ◁1638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왕(1643∼1715) I.G.루이 14세 태어나다(∼
1715).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여 '대왕' 또는 '태양왕(太陽王)'이라 불리는 절대군주의 전형이 되었다. 즉 왕은
흡사 '살아 있는 법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스스로 "짐(朕)은 곧 국가이다"라고 할만큼 절대주의시대의 대표적
인 전제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대외 전쟁과 화려한 궁정생활로 프랑스 재정의 결핍을 초래하고
절대왕정의 모순이 증대하여, 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1735 독일 작곡가
J.C.바흐(영어로 바하) 태어나다(∼1782.1.1). 유명한 J.S.바흐[대(大)바흐]의 막내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Johann Christian Bach)는 '밀라노의 바흐' 또는 '런던의 바흐'라고도 부른다.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1750년
15세도 채 못 되었을 때 아버지를 잃고 형 밑에서 자랐다. 1756년 이탈리아로 가서 밀라노를 중심으로 교회음
악의 연주·작곡, 후에는 오페라작곡도 하였고 그 동안에 마르티니에게서도 배웠다. 1762년에는 런던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그 곳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자라면서도 아버지 바흐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음악가로서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것은 오페라나 실내악을 중심으로 한 그의 작품에도 잘 나
타나 있으며 이미 바로크로부터의 과도적 양식을 벗어나 형식·선율·화성 등 모든 면에서 고전파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관현악법의 대가로 불릴 정도로 교향곡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1866 고종 3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丙寅洋擾)[조·불전쟁=한·불전쟁]가 일어나다. 병인양요는 대원군의 천주교
도 학살·탄압에 대항하여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이다. 대원군은 병인년(1866) 정초부터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몇 개월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을 비롯하여 남종삼(南鍾三)·정의배(丁義培) 등 한
국인 천주교도 8,000여 명을 처형하고 천주교 서적과 판목을 불태웠다. 한국을 탈출한 리델 신부는, 중국 톈진
(天津)에 주둔한 프랑스 인도차이나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한국에서 일어난 천주교도 학살사건을 알렸다.
보고를 받은 베이징(北京) 주재 프랑스 대리공사는 청국 정부에 공문을 보내어 한반도로 진격할 결심을 표명
하고, 이후 어떠한 사태가 발생하든 청국 정부는 이에 간섭할 수 없다고 통고하였다. 청국 총리아문사무의 공
문을 통해 프랑스 동태를 알게된 대원군은,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변경의 수비를 굳게
하였다. 8월 18일 리델 신부와 한국인 신도 3명의 안내로, 로즈 제독이 인솔한 프랑스군함 3척은 인천 앞바다
를 거쳐 양화진(楊花津)을 통과하여, 서울 근교 서강(西江)에까지 이르렀다. 극도로 긴장한 조정에서는, 어영중
군 이용희(李容熙)에게 군대을 거느려 경인연안을 엄중 경비하도록 하였다. 프랑스 함대는 이러한 경비태세에
불리함을 느꼈는지, 강 주변만 측량하고 중국으로 퇴거하였다[1차 침입]. 그러나 9월 5일(양력 환산 10월 13일)
로즈 제독은 순양전함(巡洋戰艦) 게리에르를 비롯, 모두 함대 7척과 600명의 해병대를 이끌고 부평부(富平府)
물치도(勿淄島:芍藥島)에 나타났다[2차 침입]. 9월 6(양력 환산 10월 14일)일 이 중 4척 함정과 해병대가 강화
부(江華府) 갑곶진(甲串津) 진해문(鎭海門) 부근의 고지를 점거하였다. 프랑스군은 한강수로의 봉쇄를 선언하
고, 9월 8일 전군이 강화성을 공격하여 교전 끝에 이를 점령하고, 무기·서적·양식 등을 약탈하였다. 조선은
이경하(李景夏)·신헌(申櫶:申觀浩)·이기조(李基祖)·이용희·한성근(韓聖根)·양헌수(梁憲洙) 등 무장들에게,
서울을 위시하여 양화진·통진(通津)·문수산성(文殊山城)·정족산성(鼎足山城) 등을 수비하도록 하였다. 9월
11일 일단 프랑스측에게 격문을 보내어, 선교사 처단의 합법성과 프랑스함대의 불법 침범을 들어 퇴거할 것을
통고하였다. 로즈는 회답을 통하여 선교사 학살을 극구 비난하고, 그 책임자를 엄벌할 것과, 전권대신을 파견
하여 자기와 조약의 초안을 작성하라고 맞섰다. 9월 18일 프랑스군 약 120명은 문수산성을 정찰하려다 미리
잠복, 대기중인 한성근의 소부대에게 27명이 사상되는 등 처음으로 막대한 인명손실을 입었다. 이로부터 민
가·군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포격을 가했으며, 이러한 만행은 황해도 연안(延安)에까지 미쳤다. 10월 3일
프랑스 해병 160명은 대령 올리비에의 지휘로 정족산성을 공략하려다가 잠복·대기 중인 양헌수(梁憲洙)가 이
끄는 500여 명의 사격에 능한 병력에게 일제히 사격을 받아 사망 6, 부상 30여 손실을 입고 간신히 갑곶으로
패주하였다. 정족산성에서의 참패는 프랑스군의 사기를 크게 저상시켜, 로즈 제독도 조선 침공의 무모함을 개
닫고 철수를 결정하였다. 10월 12일(양력 환산 11월 18일) 프랑스군은 1개월 동안 점거한 강화성을 철거하면
서, 장녕전 등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앞서 약탈한 금은괴(金銀塊:당시 화폐로 환산하여 3만 8000달러)와 대
량의 서적·무기 및 국보급 보물 등을 약탈하여 가지고 중국으로 떠났다. 이로써 세계정세에 어두운 대원군은
그 기세를 돋구어,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는 등 쇄국양이(鎖國攘夷)정책을 더욱 굳히고, 천주교 박해에도 박차
를 가하였다. 그러나 구미열강은 이를 계기로 조선을 청국의 종속국가가 아닌 독립한 주권국가로 인식하여, 종
래의 한·청 관계를 재검토하였다. 프랑스군이 탈취한 많은 서적·자료 등은, 뒷날 유럽사람들이 한국·동양을
연구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1898 광무 2년, <황성신문>이 창간되다. 남궁억, 나수연, 장지연 등이 주 2회 발
행되던 <대한황성신문>을 인수, 이름을 <황성신문>으로 바꾸어 국한문 혼용체의 일간지로 창간·발행되었다.
광무 9년(1905), <황성신문>의 사장이자 주간인 장지연의 '是日也放聲大哭', '이날을 목놓아 우노라'는 을사조
약 체결을 반대하는 글로 정간되기도 하였으나 수개월 만에 복간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국권침탈로 한일합방
이 되자 융희 4년(1910) 8월 30일 <한성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발행하다가 9월 14일 제3470호로 폐간되었다.
◁1905 포츠머스조약 체결되다. 이로써 러·일전쟁(露日戰爭)이 종결되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게는
조선 침략을 방해하는 세력이 제거되어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체결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1972 인류 최대의 제전인 올림픽이 피로 물들다. 제21회 뮌헨올림픽에 '검은 9월단'이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기습하였다. 11명의 선수들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에 억류 중인 230명의 팔레
스타인 게릴라와 교환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끝내 독일 경찰과 충돌, 인질 전원이 사살됨으로써 올림픽이 피
의 전쟁이 되고 말았다.
6일
◀1475 조선 무신 홍윤성(洪允成) 사망하다(1425∼). ◀1597 소사대첩(素砂大捷) 벌어지다. 정유재란 때 북상
(北上)하는 왜군과 수원(水原) 북방의 소사평(素砂坪)에서 일대 야전(野戰)을 전개, 적을 대파하여 북상을 좌절
시켰다. ◁1757 프랑스 군인·정치가이며 혁명가 M.J.라파예트 태어나다(∼1834). 항상 급진적인 것은 아니었
지만 정부의 반대파로서 활약하였다. ◁1766 영국 화학자 J.달톤 태어나다(∼1844). 저서 [화학철학의 신체계]
에 원자론을 발표하여 근대 화학의 이론적 기초를 확립하였다. ◀1903 동요작가·작곡가·아동문화운동가 윤
극영(尹克榮) 태어나다. 색동회 창립 동인으로서, 세칭 '반달할아버지'로 불리며, 1956년 제1회 소파상을 수상
하였다. 작품-[고드름], [따오기] 등 ◁1926 독일, 국제연맹에 가입하다. 세계 최초의 국제 평화 기구인 국제연
맹은 1919년 각국에 의해 조인되고, 1920년 발효되었다. 독일[바이마르공화국]은 국제연맹에 가입한 후 상임이
사국으로 선출되기까지 하였으나, 1933년 1월 히틀러가 수상이 된 후[나찌정권] 10월 국제연맹에서 탈퇴하였
다. ◁1935 미국 기독교 사회사업가 J.애덤스 사망하다(1860∼). 193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50 한국
여군(女軍), 여자 용군 교육대의 발족과 함께 대구에서 창설되다. ◀1956 한국 서양화가 이중섭(李仲燮) 사망하
다(1916∼). 포비즘(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향토적 현실주의적 화풍을 많이 그렸으며, 빈곤으로 종이가 없어 담
배갑의 은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간암으로 적십자병원에서 숨졌다. 대표작 [흰 소] 외 ◁1968 스와질랜드 독립
하다.
7일
◁1107 중국 송나라 때의 유학자 정이(程 ) 사망하다(1033∼). 문집-[주역정씨전], [이정전서] 등 ◀1462 세조
8년, 양녕대군(讓寧大君) 제( ) 사망하다(1394∼). 태종의 큰 아들로 1404년(태종4)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스스
로 태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일을 벌임으로써 결국 1418년 세자에서 폐위, 양녕대군
으로 봉해지고, 아우 충녕대군(忠寧大君;世宗)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양녕대군은 경기도 광주로 쫓겨 내려가
각지를 유랑하면서 지내다가 단종·세조 때 종친의 일에 관여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1533 영국 여왕 엘리자
베스 1세 태어나다(∼1603). 헨리 8세와 둘째 왕비인 앤 블린 사이에서 태어나 25세에 왕위에 올랐다. 영국 국
교회를 확립하는 등 종교적 통일을 추진하였고,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바다의 지배권을 차지하였다.
또한 상공업과 무역을 번창하게 하여 경제 발전에도 힘썼다. 특히 '영국의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학문과 예술
을 꽃피워 영국문학의 황금기를 이뤄으며, 셰익스피어 등과 같은 천재가 나왔다. 평생을 처녀왕으로 독신으로
지내면서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고 말하였다. ◀1587 조선 문신 심의겸(沈宜謙) 사망하다(1535∼). 사림(士林)
들 간에 명망이 높아 선배들에게 촉망을 많았으나, 날카롭고 비타협적인 성격 탓으로 동서분쟁의 실마리를 만
들기도 하였다. ◁1901 (음력 환산 7월 25일) 베이징의정서(北京議定書)[신축조약(辛丑條約)]가 조인되다. 이로
써 1988년부터 전개되었던 의화단사건이 종결되다.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 : 청(淸)나라 말기 열강의 침략
에 대항하여 중국 화베이(華北) 일대에서 의화단을 중심으로 일어난 배외(排外) 농민투쟁이다[의화단사건=의화
단의난=북청사변(北淸事變)=단비(團匪)의 난=권비(拳匪)의 난]. 1899년 캉유웨이(康有爲) 등의 개혁파가 시행한
급진적인 변법자강운동(變法自彊運動)이 서태후(西太后) 등의 수구파의 반발로 실패하자 청나라의 지배층은
물론 일반 민중들 사이에도 배외운동이 확산되었다. 산둥성(山東省) 부근에는 청나라 중기부터 백련교(白蓮敎)
의 한 분파인 의화권(義和拳)이라는 비밀결사가 있어 한국의 태권도와 같은 권술(拳術)을 전수하고, 주문을 외
면 신통력이 생겨 칼이나 철포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1894년의 청·일전쟁(淸日戰爭) 후 열
강의 침략은 중국을 분할의 위기에 몰고, 또한 값싼 상품의 유입 등으로 농민의 경제생활은 파괴되었는데, 화
북지방에서도 농촌가내공업의 붕괴, 교통노동자의 실업, 중세(重稅) 등의 사태를 야기시켰다. 특히 특권을 지닌
그리스도교의 포교는 중국인의 반감을 사 배외적인 기운이 높아갔다. 의화권은 그리스도교회를 불태우고 그
신도들을 살해하는 반그리스도교 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파산한 많은 농민들과 함께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한편 열강의 침략은 지배층 안에도 수구파와 양무파(洋務派)라는 대립집단을 파생하게 하였다. 수구파는 종래
의 지배자이던 서태후(西太后) 등의 만주인 귀족층이 중심이고, 양무파는 열강에 의존해서 새로이 힘을 뻗어온
이홍장(李鴻章) 등 한인의 고위 관료가 중심이었다. 수구파는 의화권을 탄압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역으로 이
를 이용해서 열강이나 양무파에 대항하려 하여 1898년 의화권을 의화단으로 개칭, 이를 반합법화(半合法化)하
였으며, 의화권도 '청조(淸朝)를 받들고 외국을 멸망시킨다(扶淸滅洋)'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러나 1899년 말에
양무파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산둥순무(山東巡務)에 취임하면서 의화단을 탄압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허베이
성(河北省)에 유입하게 되었고 대운하·경한철도(京漢鐵道) 연선(沿線) 일대에 퍼지게 되었다. 이들은 다시 순
식간에 화베이(華北)의 모든 성(省), 동북지방·몽골·쓰촨(四川)으로 확산하여 외국인이나 교회를 습격하고
철도·전신을 파괴하고, 석유 램프·성냥 등 외국제품을 불태웠다. 청나라 조정의 태도는 시종 동요하였으나
수구파의 지도 아래 의화단 이용책을 취하여 1900년 6월 21일 열강에 선전을 포고하였다. 베이징(北京)에까지
침입한 의화단은 관군과 함께 열강의 공사관을 공격하고 베이징이나 텐진(天津)에서는 의화단원이 거리에 넘
쳐 그 세력은 절정에 이르렀다. 근교의 농촌에서 베이징에 집결한 의화단원은 10대의 소년이 많았으며 빨강·
노란색의 천을 몸에 감고 팔괘(八卦)로 대오를 나누었다. 이들에게는 전체적인 지도자는 없고 동리마다 권단
(拳壇)을 설치, 이 단이 의화단의 한 단위였으며, 대사형(大師兄)이라고 불리던 지도자가 단의 책임자였고 10대
의 소녀들도 홍등조(紅燈照)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오스트리
아·일본 등 8개국은 연합군을 형성하고 대고포대(大沽砲臺)와 톈진에서 관군과 의화단을 격파, 8월에는 베이
징에 입성하여 농성 55일에 접어든 여러 나라의 공사관원들을 구출하였으며, 각처에서 의화단을 진압하였다.
서태후와 광서제(光緖帝)는 시안(西安)에 피신하고 실각한 수구파에 대신해서 실권을 쥔 양무파는 연합군에
협력하여 의화단 잔당을 학살하였다. 1901년 9월 7일 청나라는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외국 군대의 베이징 주둔
허용과 함께 거액의 배당금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의 베이징의정서(北京議定書)[신축조약(辛丑條約)]에 조인하였
다. 이로써 청나라를 지탱하고 있던 보수배외파가 세력기반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중국에 대한 열강의 식민지
화는 더욱 빨라지게 되었으며, 중국은 단비배상금(團匪賠償金)의 지불에 오랫동안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 ▶베
이징의정서(北京議定書) : 중국이 1901년 9월 7일 의화단 사건 처리를 위하여 열강과 체결한 조약으로 '신축조
약(辛丑條約)'이라고도 한다. 청(淸)나라와 영국·미국·러시아·독일·일본 등 11개국과의 사이에서 맺어진
조약이다. 청나라가 독일·일본 등에 사죄사(謝罪使)를 파견할 것, 배외(排外) 운동을 금지할 것, 관세·염세를
담보로 한 4억 5000만 냥의 배상금을 지불할 것, 베이징에 공사관(公使館) 구역을 설정할 것, 외국 군대를 상
주시킬 것, 베이징 주변의 포대를 파괴할 것 등을 수락한 불평등 조약이다. ▶베이징조약(北京條約) : 베이징
에서 청나라가 외국들과 체결한 10여 조약에 대한 통칭이다. 일반적으로는 1860년 영국·프랑스·러시아 등 3
국과 개별적으로 체결한 3개 조약조약을 가리킨다. 1860년 10월 24일 체결된 청·영, 청·프 간의 조약은 1856
년 애로호사건 이래의 제2차 아편전쟁을 마치게 한 것으로, 1858년 텐진(天津)조약을 보충·수정한 것이다. 즉
1858년 톈진조약(天津條約)의 비준교환거부로 영국과 프랑스군이 10월 13일 베이징에 침입하여 함풍제(咸豊
帝)를 내쫓고 10월 18일 원명원(圓明園)을 불질렀다. 그 결과 톈진조약이 비준되고 10월 24일 베이징조약이 체
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청국은 외교사절의 베이징 주재권을 확인하고, 배상금 800만 냥 지불, 청국 이민의 해
외도항(渡航), 톈진 개항(開港) 등을 인정하였다. 또 영국에 대하여는 주룽(九龍)의 할양, 프랑스에 대하여는
몰수한 가톨릭 재산 반환을 인정하였다. 1860년 11월 러시아와 체결한 베이징조약은 청국과 영·프랑스 간의
강화를 러시아가 알선한 이유로 러시아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1858년 '아이훈(愛琿)조약'으로 국경이 확정
될 때, 청·러 양국이 공동관리한 우수리강(江) 동쪽의 연해주(沿海州)를 이제는 러시아에게 할양하여 러시아
영토로 정한다는 것, 국경에서 양 국민의 자유교역을 인정하고 세금을 면제하며, 쿠롱·카슈가르·장자커우(張
家口) 등을 무역지로 인정하는 것 등이 그 내용이다. 이 조약을 고비로 청나라에서는 보수배외파(保守排外派)
가 물러나고, 조약체결에 나선 공친왕을 중심으로 한 대외화친파(對外和親派)가 득세하였다. 그를 장(長)으로
하여 처음으로 외교 전문기관인 총리아문(總理衙門)이 설립되었고, 태평천국운동[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영국·프랑스 등의 원조를 받으면서 이른바 '양무(洋務)운동'이 권장되었다. ◁1909 미국 영화감독·연
출가 엘리아 카잔 태어나다. 작품-[파지장(波止場)][에덴의 동쪽] 등 ◁1949 서독연방공화국 수립되다.
8일
◀1468 조선 제7대 왕 세조(世祖) 사망하다(1417∼). 세종의 차남, 문종의 아우로, 재위 14년 동안 국방·외
교·출판·토지제도 및 관제 등의 개혁·개편 등 수많은 치적을 남기고 조선 초기의 왕권확립에 크게 공헌하
였다. ◁1841 체코스로바키아 음악가 A.드보르작 태어나다(∼1904). 작품-[신세계교향곡], 현악 4중주곡 [아메
리카], 첼로협주곡B단조 등 ◀1945 해방 후, 미국의 하지 중장이 이끄는 제24군단이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에
들어왔다. 당시 미군을 환영하러 나온 조선인 군중들에게 미군은 총을 발포하기조차 하여 사상자를 냈기도 하
였는데, 미군은 용산 주둔의 일본군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군사권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미국은 우리 민족의 자
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각종 정치 조직을 해체하더니 끝내 군정을 실시하였다. ◁1954 동남아조약기구
(SEATO)가 조인되다.
9일
◁1087 영국 노르만디왕조의 개창자 윌리엄 1세 사망하다(1027∼). 국왕이 되자 왕권이 강력한 봉건제도를 확
립하였는데, 윌리엄 정복왕으로 불린다. ◀1895 태양력(太陽曆)[양력] 사용을 채택하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구성된 친일내각의 개혁[을미개혁] 일환으로 1895년 9월 9일 태양력이 채택되어, 음력 개국 504년 11월 17일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개국 505년 1월 1일[양력 1896년 1월 1일]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우리 나라의 태양
력 사용은 1896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1901 프랑스 화가 H.T.로트렉 사망하다(1864∼). 작품-[무랑 드
라 갸레트], [이베트 질베르], [무랑 루즈]의 포스터 등 ◀1945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의 항복 조인식이 거행되다.
◀1948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다. 이로써 한반도는 정치적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정부가 성립되어 완전히 분단되고 말았다. ◀1973 경주 155호 고분(古墳)에서 신라 채색
화 [서조도(瑞鳥圖)],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 2장과 완형(完形) 목칠기(木漆器) 등 30 점이 출토되다. ◁1980
이란, 이라크와 무력 충돌하다. 회교 혁명의 수출을 부르짖던 이란과 페르시아 만의 새로운 강자로 군림하려는
이라크와의 갈등이 드디어 무력으로 충돌하였다. 23일부터는 선전포고도 없이 전면전쟁에 돌입, 갈등 불길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0일
◁1207 중국 남송 때의 시인 신기질(辛棄疾) 사망하다(1140∼). 작품-[稼軒集(가헌집)], [가헌사(稼軒詞)] ◀
1600 조선 선조 때의 공신 이정암(李廷 ) 사망하다(1541∼). 1578년 양주목사가 되어 향교와 도봉서원(道峰書
院)을 증수(增修)하였으며, 대동법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1753 조선 문신 김약로(金若魯) 사망하다(1694∼).
[숙종실록(肅宗實錄)] 보충의 잘못을 논하다가 유배되었다. ◁1945 D.맥아더, 일본에 대한 점령정책을 발표하
다.
11일
◁1524 프랑스 플레이아아드파 시인 P.롱사르 태어나다(∼1585). 대표 시집-[오오드 4부집], [연가집], [애시(哀
詩)], [가면무도시], [전원시(田園詩)], 미완성의 서사시 [라 플란샤아드] 등 ◁1816 독일 광학기술자 C.차이스
태어나다(∼1888). 1846년 예나에 칼 차이스 광학기계공장을 설립, 현미경의 제작 등을 시작으로 산하에 차이
스 이콘 등의 회사를 설립하였다. ◁1862 미국의 소설가 태어나다(∼1910). 오 헨리(O. Henry)는 필명이며, 본
래 이름은 월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다. ◁1877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J.H.진즈 태어나다
(∼1946). '텔리·진즈의 복사법칙' 외 전자기학의 수리론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우주진화론에 대해 독자적
학설을 발표하였다.
12일
◁1494 프랑스 국왕(1515∼47) 프랑스와 1세 태어나다(∼1547). 프랑스 문예부흥의 기운을 싹트게 하였기 때문
에 '문예부흥의 아버지'로 불린다. ◁1852 영국 정치가 H.H.아스키드 태어나다(∼1928). 글래드스턴을 이은 전
형적인 자유주의 정치가이다. 저서-[의회 50년] ◀1921 의열단원 김익상(金益相), 사이또 마코토(齋藤實) 총독
암살을 지령받고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여 서울에 잠입, 건물수리공을 가장하여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비
서실에 폭탄을 던지다. 곧 바로 다시 베이징((北京)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1922년 3월에 다시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암살하고자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 체포되었다. ◁1953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에 임명되다. ◀1958 서울시 교육 연구소 개설되다. 수도 교육의 발전, 교원의 자질 향상,
교육 연구의 확대 등을 목표로 하여 조사 연구, 현직 교육, 사무의 3부로 개설되었다. ◁1961 버트란드 러셀
경, 핵(核)반대운동으로 금고형(禁錮刑)을 받다.
13일
◀1553 경복궁 불타다. 온돌을 개수하고 장작을 때어 건조시키다 일어났다. 곧 재건되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고종 9년(1872)에 대원군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다가 한일합방 후, 정면에 총독부청사를
세우면서 대부분 철거되어 근정전·경회루·향원정·집옥재 등만이 잔존하고 있다. 민족 정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 속에 총독부 청사였던 중앙청을 없애야 한다, 보관하여 역사의 교훈을 삼자는 논의 끝에 광복 50
년을 기해 1995년 중앙청을 철거하고 현재 경복궁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1592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
가·철학자·문학자인 M.E.몽테뉴 사망하다(1533∼).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태어나 귀족에 오른 그는 처음에
금욕적 인생관에 호의를 가졌으나, 나중 회의론에 기울어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가
쓴 [수상록]은 프랑스에 모랄리스트의 전통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유럽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
쳤다. ◁1813 영국 출판업자 D.맥밀란 태어나다(∼1859). 아메리카 맥밀란 회사를 설립하여 발전, 세계적인 대
출판사를 세웠다. ◁1961 미, 로버트위성(인간비행 예비실험용) 발사되다.
14일
◁ 258 로마시대 카르타고의 사교(司敎) C.키프리아누스 사망하다(200∼). '교회 이외에 구원은 없다. 교회는
사교가 있음으로써 존재한다' 등의 말을 남겼다. ◁1321 이탈리아 최대의 시인 A.단테 사망하다(1265∼). 피렌
체 태생으로, 시성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시인이다. 가장 대표작인 작품 [신곡(神曲)]은 죽기 직전에 완성
된 것인데, [신곡]은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체를 잊지 못해 쓴 사랑의 시집 [신생]이 그 바탕이 되었다. ◀
1535 조선 문신 안윤덕(安潤德) 사망하다(1457∼). ◀1832 조선 여류시인·서화가 정일당 강씨(姜氏) 사망하다
(1772∼). 작품-[제석감(除夕感)] 등 31수 ◁1959 소련 로케트 발사, 월면에 도착하다.
15일
◀1068 고려 문신 최충(崔沖) 사망하다(984∼). 국사수찬관(國史修撰官)으로 태조에서 목종까지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고려 형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654 중국 명 말 청 초 때의 문인 후방역(侯方域) 사망하다
(1618∼). 두보(杜甫) 등 당송(唐宋) 8대가들의 시·문장 등을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장해당문집],
[사억당시집] 등 ◁1857 미국 제27대 대통령 W.H.태프트 태어나다(∼1930). 초대 필리핀 총독·육군장관 등을
지냈으며, 1908년 대통령이 되었다. ◀1950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다. 저녁 6시부터 시작된 한·미해병대의 인
천 해안 상륙은 마침내 성공함으로써 한국전쟁을 수세에서 공세로 바꾸었다. ◀1977 산악인 고상돈, 에베레스
트 정복하다.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으로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에 드디아 성공, 히말라야
도전 15년 만에 그 숙원을 풀었다.
16일
◀1413 태종 13년, 호패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되다. 호패(號牌)는 오늘날 주민등록증과 같은 일종의 신분증명서
로서 남자의 경우 16세 이상이면 차고 다니게 하였던 패이다. 호패에 주소, 성명, 직업, 본관 등을 기입하여,
신분에 따라 구별하여 차고 다니게 하였다. 호패제도는 중국 원나라에서 비롯되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말에 도입하여 실시하였으나, 잘 시행되지는 않았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호패제도에 대한 논의가 계속(1398,
1402년)되다가 태종 때 시행되다가 그 뒤 숙종 초까지 5차례나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대개 조선 말까지 계속되
었다. ◀1608 조선 중기 명신 유영경(柳永慶) 사망하다(1550∼). 소북(小北)의 영수이다. ◁1853 독일의 생리화
학자 A.코셀 태어나다(∼1927). 세포 및 핵의 화학적 조성에 관한 연구를 하여 단백질의 분류와 구성에 대한
업적을 남겼다. 1910년 단백체·핵산(核酸) 연구의 공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1883 영국 시인·비평
가·철학자 T.E.흄 태어나다(∼1917). 1908년경 런던에서 새시대의 예술가·사상가들을 모아서 '시인 클럽'을
설립하거나, 이미지즘 시(詩)의 운동을 주도하였다. 유고집-[성찰](1924) ◁1941 시리아가 독립하다.
17일
◀1306 고려 말기 학자 안향(安珦) 사망하다(1243∼). 한국 최초의 주자학자로 일컬어진다. ◁1552 로마 법황
(1605∼1921) 파울루스 5세 태어나다(∼1621). ◀1563 조선 문신 김주(金澍) 사망하다(1512∼). 문장에 뛰어나
고 초서(草書)를 잘 썼다 한다. ◁1743 프랑스 수학자·철학자 M.J.콩도르세 태어나다(∼1794). 근대 국민교육
제도의 입안자이기도 하다. 대표작-[인간의 정신진보의 역사개관] ◁1787 미국 헌법서명일[민권의 날] ◀1965
우리 나라 국가인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사망하다(1906∼). 애국가(愛國歌)는 나라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의 총칭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자체가 국가(國歌)의 명칭이 되었다. '애국가'는 안익태(安益泰)가 작곡
하였고, 작사가는 윤치호(尹致昊)·안창호(安昌浩)·민영환(閔泳煥) 등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 어느 것도 분명
하지 않다. 외국에서 활동 중이던 안익태는 우리의 국가가 스코틀랜드 민요 [이별의 노래]에 가사를 붙여 불려
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1936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작곡하였다. 이 '애국가'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한국의 국가가 되었다. 안익태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에스파냐 여인과 결혼, 에스파냐 국적
을 얻고 마드리드 마욜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기도 하였는데 몇 차례 귀국하여 음악제를 지휘하기도
하였으나 에스파냐에서 병으로 죽었다. ◀1988 서울올림픽이 열리다. 160개국의 선수와 예술 단체들이 참여하
였는데, 한국은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메달 순위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8일
◁ 52 로마제국 황제 트라야누스 태어나다(∼117). 로마 5현제(五賢帝)의 한 사람이다. ◁1086 중국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 사마광(司馬光) 사망하다(1018∼). 자는 군미(君美), 사마 온공(溫公)이라 불린다. ◁1870 미국 인
류학자 C.위슬러 태어나다(∼1957). 1919년 인류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사회인류학 입문] 등 ◀1898 철
도의 날(9월 18일)이 제정되다. 철도의 날은 기간교통수단으로서의 철도의 의의를 높이고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제정한 기념일로, 건설교통부가 행사를 주관한다. 우리 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1899년
9월 18일 제물포(濟物浦:인천)∼노량진 사이의 33.2km가 개통된 것을 기념하여 9월 18일을 철도의 날로 삼았
다. ◁1931 일본, 만주사변(滿洲事變)[9·18사변]을 일으키다. 만주를 점령하기 위해 일본은 류타오거우 사건을
일으켜, 일본은 스스로 만철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측의 소행이라고 트집잡아 북만주로 쳐들어가 만주를
점령하였다. ◀1973 기독교 오순절(五旬節) 세계대회, 동양에서 처음으로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개막되다. 36개
국 2천여 대표 등 2만여 신도 참가하였다.
19일
◀1393 조선, 사역원(司譯院) 설치하다. 사역원은 한(漢;중국어)·왜(倭;일본어)·여진(女眞;만주어)·몽고(蒙古;
몽고어) 등 통역과 번역의 어학전문기관이면서 전문적 외교관의 양성소였다. ◀1481 조선 문신 황효원(黃孝源)
사망하다(1414∼). 처첩을 자주 갈아 종신토록 소송이 그치지 않고 재화(財貨)를 탐내어 화가옹(貨稼翁)이라
불리웠다. ◁1551 프랑스 국왕(1574∼1589) 앙리 3세 태어나다(∼1589). 앙리 2세의 3남이다. ◁1934 소련, 국제
연맹에 가입하다. 소련은 회원국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59번째로 국제연맹 회원국이 되었다. 국제연맹회의에서
소련 외무장관인 막심리트비노프가 소련을 대표하여 국제연맹의 규약을 승인한다고 선언하였다. ◀1950 국제
전화 통신조약에 가입하다.
20일
◁B.C.480 살라미스해전이 일어나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함대가 데미스트클레스의 계책을 써서 페
르시아 대함대를 아테네 근처의 살라미스만으로 유도하여 크게 무찔렀다. ◁1908 에스파냐의 바이올리니스
트·작곡가 P.사라사테 사망하다(1844.3.10∼). 8세 때부터 음악 공부를 하였으며, 1861년 런던에서의 첫 공연
을 시작으로 유럽 각지와 남북아메리카에 걸친 대연주여행을 하여 성공을 거두어 파가니니(1782∼1840) 이래
의 음악의 거장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연주의 특색은 투명하고, 부드러우며 감미로운 음색과 화려한 기교의 구
사에 있다. 폭넓은 비브라토(떨려 울리는 음)와 개성적인 리듬의 매력을 잘 살린 연주, 특히 에스파냐풍의 연
주 등에 뛰어났다. 대표작-[치고이너바이젠] ◀1939 한말 개화운동가·정치인 박영호 사망하다(1861∼). 자주
독립의 입헌왕국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1971 남북적십자(南北赤十字) 첫 예비회담, 판문점에서 개최되다. 남
북적십자(南北赤十字) 첫 본회담은 1972년 8월 30일 평양에서 열렸다. ◀1986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 서울에
서 개최되다. 10월 5일 폐막되었는데, 한국은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21일
◀ 668 고구려 멸망하다. 삼국 가운데 가장 세력이 강했던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한 평양성 포위 공격에
대항하다 7개월만에 함락당함으로써 패망하였다. 이에 신라는 보장왕과 백성 20만명을 잡아갔으며, 대동감 이
남 지역을 통합하게 되었다. ◁1853 네덜란드 물리학자 O.H.카메를링 태어나다(∼1926). 헬륨액화 성공으로
191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1866 영국 소설가·문명비평가 H.G.웰즈 태어나다(∼1946). 1933년 [다
가올 세계]에서 인류 단일세계가 2116년에 실현된다고 예언하기도 하였다. 작품-[타임머신], [투명인간] 등 ◀
1901 시인 김동환(金東煥)태어나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작품-우리 나라 최초의 서사시 [국경의 밤] 등
◀1953 북한 노금석(盧今錫), 미그기(機)로 귀순하다. ◁1964 말타 독립하다.
22일
◀1374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 사망하다(1330∼). 그림에 뛰어나 고려의 대표적 화가로 일컬어지며 글씨에도
능하였다. ◁1791 영국 화학자·물리학자 M.패러데이 태어나다(∼1867). 그가 발견한 전자유도의 현상은 발전
기·발동기·전신전화의 원리, 전자파의 이론은 전파의 기초, 전기분해의 법칙은 전기화학의 기초가 되었다.
◁1862 미국 제16대 대통령 , 노예해방 예비선언을 하다. 이후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 선언이 이루어졌는데,
남북전쟁 당시 미국에 대해 반란 상태에 있는 모든 주의 노예를 전면 해방한다는 내용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델라웨어·켄터키·메릴랜드·미주리의 경계 4주(州) 및 테네시·버지니아·루이지애나 등 북군 점령지의 노
예는 대상 외로 두었다. 남북전쟁의 전세를 북군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남군점령지역의 노예
만을 해방한다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공화당 내에서 점진적·유상적(有償的) 노예 해방을 주장하는 보수파와,
즉각적인 전면 해방 및 노예주(奴隸州)의 격퇴를 주장하는 진보파의 절충에 의한 것으로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북부의 명분을 표명하는 의도도 있었다. 따라서 이 선언은 노예 각주의 조기복귀(早期復歸), 남부의 사기 상실
과 북군의 도덕적 우세 등 남북전쟁의 전략적인 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실질적인 노예해방은 1865년 수정
헌법 13조가 비준됨으로써 공식 승인되었다. ◀1865 경복궁의 북정문인 신무문이 재건되다. 신무문은 태조 3년
1394년에 창건된 것인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려 273년만에 고쳐 재건하였다. ◀1905 시인 김광섭(金珖燮)
태어나다(∼1977). 작품-[성북동 비둘기] 등 ◀1965 <중앙일보>가 창간되다.
23일
◁B.C.63 로마제국 초대 황제(B.C. 27∼A.D. 14) G.J.옥타비아누스 태어나다(∼A.D.14).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
비우스인데, BC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에 그의 유언장에 양자 및 후계자로 지명되어 있음을 알고, 가이우
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로 개명하였다. BC 43년 안토니우스, 레
피두스와 제2회 삼두정치(三頭政治)를 시작하면서 반대파를 추방하였다. BC 42년에는 필립피 전투에서 카이사
르의 암살자인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격파하고 로마 세계를 3분하여 장악하였다. 그러나 레피두스를 탈락시
킨 후부터는 안토니우스와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BC 31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악티움 해
전에서 격파한 후 패권을 잡았다. 나아가 옥타비아누스는 이탈리아 및 속주(屬州)로부터 충성의 맹세를 받아내
어 100년에 걸친 공화정 말기의 내란을 진정하였다. 옥타비아누스는 케사르가 왕처럼 행동하다가 암살 당한
것을 거울 삼아, 겉으로는 공화정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교묘히 자신의 정치 체제를
굳혀 나갔다. B.C. 28년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 의원 명부의 첫 번째에 그 이름이 기재되는 '제1의 시민(first
citizen)'으로서, 스스로를 시민 가운데의 '프린켑스(princeps;제1인자)'라 칭하였다[원수정(元首政)의 시작. 프린
키파투스(Principatus;元首政治)←princeps]. 그리고 B.C. 27년 옥타비아누스는 일체 권력을 원로원과 국민에게
반환하였는데, 원로원은 그의 속셈을 이미 간파하여 옥타비아누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공화정 아래에서
가능한 최고의 직능과 권한을 부여하였다.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존엄한 자'를 뜻하는 '아우구스투스
(Augustus)'라는 칭호도 부여하였다. 이로써 공화정은 명목상 유지되면서 실질적인 제정(帝政)이 시작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 외에 임페라토르(imperator)라는 지위를 영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영
예를 얻기도 하여 실제 옥타비아누스는 황제나 마찬가지였으며, 이제 로마는 실제적으로 공화정을 대신하여
제정(帝政)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시민 가운데의 프린켑스로서, BC 23년 호민관의 직권 및 전(前)
집정관(proconsul;속주의 장관) 명령권, BC19년에는 집정관 명령권, AD 12년에는 대신관직(大神官職)을 취득
하여 실질적인 1인 지배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그가 얻은 권한은 각각 공화정시대의 여러 기관에 의해 합법화
되었으므로, 전제정치와 구별하여 아우구스투스의 정치를 원수정이라고 한다[일반적으로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로마 제정의 시초로 삼지만, 정확히는 원수정이라고 불러야 될 것이다]. 그리고 내정에도 충실을 기한 옥타비
아누스 통치 41년간은 로마의 평화시대가 계속되었는데, 학술과 문예가 보호되어 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
리비우스 등이 활약하는 라틴문학의 황금시대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옥타비아누스는 후계 문제로 고민하다
가 결국 티베리우스를 양자로 삼아 공동 통치자로 임명한 후 티베리우스에게 권력을 이양하였다. ▶서양 달력
의 줄라이(July)는 줄리우스 케사르(Julius Caesar)가 7월에 태어난 데서 생긴 말이다. 즉 Julius에서 July가 나
왔다. 또 오거스트(August)는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Augustus Octavianus)가 전쟁에서 이긴 달인 8월에
다 자기 이름을 붙인 데서 온 말이다. 즉 Augustus에서 August가 나왔다. 그리고 서양 달력은 30일과 31일이
번갈아 가면서 만들어졌는데, 특히 8월 달의 날짜가 30일이 아니고 31일이 된 까닭 또한 옥타비아누스와 관련
이 있다. 옥타비아누스도 케사르와 마찬가지로 황제에 버금가는 자이기 때문에 옥타비아누스의 이름이 붙여진
달이 결코 작을 수 없으므로 1일을 더 첨가하였다는 것이다. 즉 케사르가 탄생한 7월이 31일이므로 옥타비아
누스의 이름이 붙여진 8월도 30일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당연히 31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서양 달력(양
력)이 동양 달력(음력)보다 과학적인 달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게 양력이라는 사
실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달력 날짜와 옥타비아누스의 탄생에 무슨 과학적 관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미신적인 요소는 음력보다 양력에 더 많을 뿐이다. 어쩌면 양력을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보다 음력을 사
용하였던 우리 조상들이 훨씬 더 과학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서양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 양력을
과감히 버리고 동양에서 많이 사용한 음력을 부활시켜야 할 것이다. 당장이라도! 그래야 저승에 가서 조상들
에게 볼 면목이라도 있을 것이다. ◁1803 프랑스 작가·고고학자 P.메리메 태어나다(∼1870). ◁1874 영국 정
치철학자 E.바커 태어나다(∼1960). 저서-[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 [정치의 고찰] 등 ◁1939 오
스트리아 정신의학자 S.프로이트 사망하다(1856∼).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기도한 그는 뇌와 신경병의 연구에
종사하면서 과거의 사건을 최면술에 의해 회상시킬 수 있음을 알아냈으며, 성욕과 심리학 등을 정신분석의 방
법으로 추구하여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히스테리 연구], [꿈의 해석], [일상 생활의 정신병
리] 등
24일
◀ 930 신라 승려 개청(開淸) 입적하다(835∼). 경애왕으로부터 국사(國師)의 대우를 받았으며, 940년(태조 23)
에 세워진 비가 강원도 강릉 개청사에 있다. ◁1897 미국 소설가 W.포크너 태어나다(∼1962). 미국 남부의 사
회사라고도 할 주요 작품-[음향과 분노], [정복되지 않은 것], [무덤의 침입자], [우화] 등 ◁1922 이탈리아 바
리톤 가수 E.바스티아니니 태어나다. 처음 베이스로 출발했다가 1951년경부터 바리톤으로 전향하였다. ◁1960
세계 최대의 원자력 항공 모함 엔터프라이즈 호, 처음으로 물에 띄워지다. 한 번의 연료만으로 다시 연료를 보
급 받지 않아도 지구를 20바퀴나 돌 수 있는 배였다.
25일
◀1120 고려 문신 김한충(金漢忠) 사망하다(1043∼). ◀1701 숙종의 빈(嬪) 장희빈(張禧嬪) 사망하다(1667∼).
죽은 민비를 궁인(宮人)·무녀(巫女)와 함께 저주했다는 무고의 옥(巫蠱一獄)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
1881 중국 작가·사상가 노신(魯迅) 태어나다(∼1936). 대표작 [아큐정전(阿Q正傳)](1921)은 중국에서의 근대문
학의 여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하였다. 장례는 중국에서 최초의 민중장으로 치
뤄졌다. 작품-[아큐정전(阿Q正傳)], [고향], [축복] 등 ◁1945 국제적 노동운동 기관의 하나인 세계노동조합연맹
이 파리에서 결성되다. 노동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그들의 유대를 튼튼히 하기 위해 56개국 노동자들이 모여
결성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날카로워지고, 1947년 반공파가 탈퇴하면서 결국 두 조각으로 갈라
졌다.
26일
◀1419 조선 제2대 왕 정종(定宗) 사망하다(1357∼). 이름은 방과(芳果)로 왕위(1399∼1400)에 올랐다가 동생
방원(芳遠)에게 양위하여 상왕(上王)이 되었다. ◁1687 파르테논신전 불에 타버리다. ◁1791 프랑스 화가 T.제
리코 태어나다(∼1824). 들라크로아와 함께 고전주의를 해방한 로망파의 거장의 한 사람이다. 대표작 [메듀즈
의 뗏목] ◁1889 독일 철학자 M.하이데거 태어나다(∼1976). 독일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적 학자이다. 저서-[존
재와 시간] 등 ◀1927 시인 김남조(金南祚) 태어나다. 작품-[목숨][사랑초서] 등 12권의 시집 등 ◀1978 한국,
세계에서 7번째로 국산 유도탄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사일 시대의 막을 열다.
27일
◀1467 강순(康純)·남이(南怡) 등이 건주 여진(建州 女眞)의 본거지를 소탕하고 개선하다. ◀1469 [경국대전
(經國大典)] 전6권 편찬·완성되다. 고려 말부터 1484년까지의 약 100년간에 반포된 모든 법령, 교지, 조례 및
관례 등을 총망라한 [경국대전]은 조선 왕조의 근본이 된 법전으로서 조선 시대의 제도사 연구 등에 아주 중
요한 자료이다. ◁1821 스위스 사상가·철학자 H.F.아미엘 태어나다(∼1881). 사후 발췌 간행된 [일기]는 내성
적·비행동적인 필자의 영혼이 충실한 기록으로서, 독일 관념론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1872 이탈리아 여류
작가 G.델렛다 태어나다(∼1936). 192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악의 길],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마리아나 실카] 등 ◀1949 정부, 서울주재 소련대사관원 니콜라이를 추방하다.
28일
◁1870 프랑스 작가·고고학자 P.메리메 사망하다(1803∼). 작품-단편집 [모자이크](1833), 중편 [콜롬바](1840),
[카르멘](1845) 등 ◁1887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A.브런디지 태어나다(∼1975). ◁1878 일본의 동양사
학자 이케우치 히로시 태어나다(∼1952). 저서-[만주·조선사연구], [원구(元寇)의 연구] 등 ◁1895 프랑스 생
화학자·미생물학자 L.파스퇴르 사망하다(1822∼). '생물은 모두 생물에서 생긴다.'고 주장한 그는 효모균과 젖
산균이 미생물임을 알아내었다. 또한 포도주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저온살균법을 고안하여, 프랑스의 포
도주 제조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1919 시인 구상(具常) 태어나다. 작품-[구상시집] 등 ◀1950 서울 수복 기
념일. 한국전쟁 중 북한의 침략에 빼앗겼던 수도 서울을 이날 다시 찾았다.
29일
◀1504 연산군 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 일어나다(정확한 날짜는 파악되지 않고, 9월 29일로 기재하고 있는
경우와 단순히 10월로 기재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생모인 폐비 윤씨의 복위 문제로 연산군에 의해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으로, 연산군이 일으킨 두 번째 사화이다. 성종(成宗)의 비(妃)이자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尹氏)
는 왕비의 체모에 어긋난 행동 등을 이유로 1479년(성종 10년) 왕비에서 폐출되고 1480년 사사(賜死)되었다.
윤씨가 폐출·사사된 일은 윤씨의 잘못도 있었지만, 성종의 총애를 받던 엄숙의(嚴叔儀)·정숙의(鄭叔儀)와 성
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윤씨를 배척하고자 한 것도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연산군에게
임사홍(任士洪)은 공신들을 배척하기 위해 윤씨의 전모를 알려 주었다. 임사홍은 폐비윤씨의 생모 신씨(申氏)
로부터 폐비의 폐출·사사의 경위를 들고, 이를 다시 연산군에게 고하여였던 것이다. 연산군은 어머니 윤씨의
원한을 푸는 동시에 공신들을 탄압할 결심을 하였다. 먼저 정·엄 두 숙의와 그들의 소생을 모두 죽여버렸으
며, 조모 병든 인수대비마저 죽여버렸다. 그리고 폐비 윤씨의 묘를 새로 단장하고 복위시켜 제헌왕후로 봉하며
성종묘(成宗廟)에 배사(配祠)하려 하였는데, 권달수·이행 등이 반대하자 권달수는 참형하고 이행은 귀양보냈
다. 또한 윤씨를 폐출할 때 이를 찬성한 윤필상·이극균·성준·이세좌·김굉필 등을 사형에 처하고, 이미 죽
은 한치형·한명회·정창손·어세겸·심회·정여창·남효온 등을 부관참시하였으며, 그들의 가족과 제자들까
지도 처벌하였다.이는 연산군이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평소에 눈엣가시처럼 올바른 말을
내세우던 선비들의 기를 꺾어 왕권 강화를 꾀하고자함이기도 하였다. ◁1758 영국 군인 H.넬슨 태어나다(∼
1805). 미국의 독립전쟁에 종군하였으며, 프랑스의 혁명전쟁에도 종군하였다. 나폴레옹 대두와 더불어 프랑스
함대와 대결하는 중심인물이 되었는데 1998년 나일강 입구의 아부키르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여 '나
일강의 남작'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격파하여 대승하
였으나, 승리 직전에 저격을 받아 "하느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기함 빅토리아호에서 전사하였다. ◁1902 프랑스 작가 E. 졸라 사망하다(1840∼). 인간을 유전·환경·시대의
3요소로 파악하는 실험소설을 제창, 자연주의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인종적 경제적인 열등감 속에서
자라 사회에 대해 부단한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작품-[실험소설론](1880), [나나] 등 ◁1908 스위스 루체
른에서 열린 노동자보호 국제회의, 14세 이하 어린이에겐 야간 노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결의하다. 어린이 노동
의 과잉에 대해 증가하는 비난 여론에 크게 부응한 것이었다. ◁1938 영·불·독·이 사이에 뮌헨협정 체결되
다. ◁1961 시리아 반란군 신정권 수립하여 통일아랍공화국으로부터 탈퇴하다.
30일
◁1472 중국 명대(明代)의 철학자·정치가 왕양명(王陽明) 태어나다(∼1528). 양명학(陽明學)의 개조(開祖)이다.
저서-[전습록(傳習錄)] ◁1626 중국 청나라 초대 황제(1616∼26) 누르하치(奴兒哈赤) 사망하다(1559∼). 시호는
처음에는 무황제(武皇帝), 나중에는 고황제(高皇帝)이며, 묘호는 태조(太祖)이다. 여진족 출신으로 16세기 말에
자립하여 여진의 여러 세력을 통일, 1616년 칸의 자리에 올라 후금(後金)을 세웠다. 계속 세력을 확장시켜
1619년 사르프에서 명나라 군대를 격파, 랴오양(遼陽)을 함락시켰으며, 라오양에 도읍을 두었다가 1625년 선양
(瀋陽)에 도읍하였다. 1626년 4월 몽고의 파림(巴林)부를 직접 공략하다가, 9월 30일(음력 환산 8월 11일)에 병
사하였다. 팔기제도(八旗制度)를 확립하고, 만주문자(滿洲文字)를 제정하는 등 누르하치가 닦아놓은 청나라 발
전의 기초는 아들 태종(太宗) 때에 국호가 후금에서 청으로 바뀌는 등 그 완성을 보았다. ◁1924 미국 작가 F.
카포테 태어나다. 19세 때 오 헨리상을 수상하였다. 세련된 기교파 작가로 1965년에 베스트셀러가 된 [냉혈]은
미국 중서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세밀히 조사, 그 자료를 재구성하여 예술화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
1948 국회, 한글전용화 법안을 가결하다. ◁1949 모택동(毛澤東), 중국[중공(中共)]정권의 주석으로 취임하다.
◀1961 경무대(景武臺) 앞 발포사건의 책임자 곽영주에게 사형이 선고되다. ◁196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 발족되다. 사회주의 경제권인 코메콘(COMECON)과 후진국 개발 문제 등의 새로운 세계 경제 환경에 대응
하기 위하여 발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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