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지금도 나의 지오디
초등학교 5학년때 티비에서 나온 g.o.d를 보고 별안간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자기주장도 서툴고 딱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도 구분 짓 지 못했던 어린아이가 10대 초입을 지나 만 12살이 될 무렵 정말 좋아하는 것이 생긴 것 이다.
때는 2000년으로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인터넷이 급 부흥 하고 있었다. 팬 페이지며 다음 카페 등 커뮤니티가 왕성했었고, g.o.d 팬카페안에서 나는 귀염받는 막내 동생 이기도 하면서 열정적인 카페 구성원이었다. 거기서 만난 동지들은 내 나이는 아랑곳 하지않았고, 내 감정과 서로의 감정을 그대로 존중하고 공감해주는 진짜 또 다른 나로 가득했다. 공감을 받고 해준다는건 정말 신성하고 대단한일이라 같은 팬인 것 만으로도 가치있는 행동을 한다는 느낌으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g.o.d.를 좋아해서 모인 우리는 점차 서로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서로의 인생사와 학교이야기 부모님이야기등을 공유하면서 매일매일을 채팅으로 만났었다. 이런 나를 본 우리부모님은 “한번 만나러 가볼래?”라고 먼저 권유해주셨고 당시 2년간 채팅과 전화로 만난 전주사는 언니를 6학년 말에 혼자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 언니를 만나기로 한 날까지 서툰 솜씨로 십자수쿠션을 만들고, g.o.d 사진으로 필통도 만들면서 가기 전 날까지 이옷저옷 입어보던 그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만나서도 밤새 이야기 하느라 잠을 잘 수 없었고 우리의 만남을 보던 언니네 부모님도 나를 혼자 보내지 않고 언니를 우리집으로 보내 근 4일을 내내 함께 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 경험을 기점으로 중학교때까지 왕성한 덕질을 하였고,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과 콘서트며 불꽃놀이 방송참여등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놀았던 것 같다.
부모님은 어른의 입장에서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을 만난다고? 저 연예인이 뭐가 저렇게 좋은거지?“ 라고 생각 하셨겠지만 불편한 표현은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대신에 저 멀리 서울에 갈때는 엄마의 핸드폰을 손에 쥐어주고 내 가방 깊숙한 곳에 비상금을 몰래 넣어주던 것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해주셨고, 콘서트가 늦어 지하철이 끊겼을때는 언제라도 달려와 집에 데려가주던 아빠가 있었다.
먼저 사춘기를 겪은 어른들은 그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의 모든 걸 염려하는 것 같다. 가장 가까운 부모가 방황하고 본인을 찾는 시기에 의지가 되고 힘이되는 사람이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의지가 되는 대상이 아니어도 진득히 지켜봐주는 부모도 부모로서 훌륭하지 않을까? 그 시기는 그 시기대로 아이들은 강인하게 의지할 대상을 찾고, "나"를 찾을 수 있다. 생각보다도 더 현명하게 더 멋지게 말이다.
나는 여전히 g.o.d를 떠올리면 당시의 내가 아련히 떠오르며 행복하기도하고 한켠 부끄럽기도하다. 당시의 향수가 그대로 나에게 새겨진 것 같다. 운이 좋게 나는 9월에 개최되는 kbs 주관 god콘서트를 가게되었다. 사춘기시절 나의 가수는 연예인이기보다 또 다른 나 그냥 그 당시의 나의 일부로 계속 좋아할 것 같다. 그게 사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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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글을 부모님께 이야기드렸는데 그게 시발점이되어 당시 열정적으로 놀아 대던 제가 소환되는 많이 부끄러운 저녁을 보냈습니다 ㅎㅎ..언니네 갔던건 6학년 여름 방학이 었다고 하네요^^;;
전주언니와 만남이 행사되기 전 매일전화하는 집번호를 저장해서 언니네 부모님과 통화도 했었다는 뒷이야기도 들었어요.
역시 부모님들은 위대하고 훌룡합니다.
쌤들 합평에 따라 수정해보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매일조금씩더 수정하겠습니다. 좋은밤보내세요 ^^
첫댓글 우와. 샘이 하시고자 하는 얘기가 훨씬 선명해졌어요^^ 그리고 숨은 부모님의 노고까지 더 다시 알게 되었고..샘의 그 시절 경험은 지금의 저에게도 많은 걸 느끼게 해 주네요. 😀
와~ 정말 멋진 부모님을 두셨네요! 그래서 해리 샘이 잘 자라셨고, 부모로서도 잘 해나아가시는 것 같아요. 부러운데요~~^^
와~쌤 퇴고하셨군요. 실행력 짱이십니다. 실컷 놀았던 해리샘과 그걸 지커보셨던 부모님 이야기 계속 해주세요~ 화수분처럼 계속 나올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