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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7 편
청년 시절
127:0.1 예수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는 자신이 대가족의 가장이자 유일한 부양자임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후 몇 년 안에 그들의 모든 재산은 사라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점 자신의 이전-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이 땅에 육체로 존재하는 목적이 인간들에게 그의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계시하기 위해서임을 점점 더 확실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 세상이나 다른 어느 세계에서도 이제까지 살았거나 언젠가 살아갈 어떤 젊은이도, 예수가 겪었던 것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복잡한 어려움을 풀어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란시아의 어떤 청소년도, 예수가 15세에서 20세 사이에 겪은 것 보다 더 많은 시험과 갈등을 체험하거나, 그 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악에 시달리고 죄로 인하여 어지러워진 세상에서 이 청년기 시절을 사는 삶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사람의 아들은 네바돈의 모든 영역에 있는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역 우주 전체에 걸쳐 있는 모든 세계에 곤궁에 빠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청년들에게 그들을 이해하는 영원한 피난처가 되었다.
느리지만 확실히, 실제 체험을 통해, 이 신성한 아들은 그의 우주의 주권자가 될 권리를 획득하는 중이다. 그는 모든 지역 우주에서 모든 창조된 지적 존재들의 의심 없는 최상 통치자이자, 모든 수준의 personal 자질과 체험을 가진 모든 시대의 존재들이 이해하는 피난처이다.
1. 열여섯 살 되던 해 (서기 10년)
127:1.1 육신화된 아들은 유년기를 지나 평범한 어린 시절을 체험했다. 그 후 어린 시절과 청년기 사이에 시험과 시련의 과도기를 거쳐 ― 그는 청년 예수가 되었다.
이 해에 그는 완전한 신체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는 강인하고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더욱 침착하고 진지해졌지만, 여전히 친절하고 동정심이 넘쳤다. 그의 눈은 친절하지만 탐색적이었다; 그의 미소는 항상 호감을 주고 평안을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지만 위엄이 있었다; 그의 인사는 친절하면서 꾸밈이 없었다. 언제나 사람들과 만날때에도 사람과 신적인 이중적 본성의 흔적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는 언제나 동정심을 가진 친구와 위엄있는 선생의 결합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personality(성격) 특징은 이 청소년기부터 일찍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체가 강하고 건강한 이 청년은 또한 인간 지능도 충분히 성장한 상태에 이르렀다. 인간이 생각하는 충분한 체험이 아니라, 그러한 지적 발전을 위한 충분한 능력이었다. 건강하고 균형이 잡힌 몸, 예리하고 분석적인 mind, 친절하고 동정심이 넘치는 기질, 다소 요동적이지만 적극적인 기질을 소유했으며, 이 모든 특성들이 강하고 두드러져 매력적인 personality로 조직되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와 동생들은 그를 이해하기가 더 어렵게 되었다. 그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의 행동을 오해했다. 모두가 맏형의 생애를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는 전에 그가 유대 민족의 구원자가 될 운명을 가졌다고 생각하도록 어머니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의 비밀이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말을 마리아에게서 들은 뒤에, 예수가 모든 그러한 생각과 의도를 솔직하게 부인하려 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상상해 보라.
이 해에 시몬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또 집 한 채를 팔 수밖에 없었다. 야고보는 이제 세 명의 여동생을 가르치는 책임을 맡았고, 그중에 둘은 어려운 공부를 할 나이가 되었다. 룻이 성장하자 곧 미리암과 마르다의 손에 맡겨졌다. 유대인 가정의 여자아이들은 보통, 거의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예수는 여자가 남자와 똑같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머니도 찬성했다), 회당 학교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그들을 위해서 가정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127:1.6 이해 내내, 예수는 작업대에 거의 갇혀 지냈다. 다행히도 그는 일거리가 많았고; 그가 만든 물건은 품질이 아주 우수해서, 그 지역에서 일이 느슨해져도 그는 결코 놀고 지내지 않았다. 때로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야고보가 도와주기도 했다.
이 해가 끝날 무렵, 그는 가족을 양육하고 그들이 결혼하는 것을 본 후에, 진리 선생으로서, 그리고 하늘 아버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자로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일을 시작하기로 거의 결심했다. 그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유대인의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어머니와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거의 쓸데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품든지 그대로 버려두기로 작정했는데, 그동안 그가 했던 말들이 그녀에게 거의 또는 전혀 효과가 없었고, 또한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아무리 말을 해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이 해 이후로 예수는 어머니나 다른 누구와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점점 더 적게 대화했다. 그의 사명은 너무나 특수해서, 땅에 사는 누구도 그 일을 수행하는 것에 관련하여 조언할 수 없었다.
그는 젊었지만 가족에게 진정한 아버지였다; 가능한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으며 아이들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슬퍼했다; 그토록 바라던 예루살렘에서 랍비들과 함께 공부하는 대신 목수대에서 하루하루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된 노동을 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마리아는 아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지만,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이 기꺼이 가정을 책임지는 태도에 가장 깊이 감사했다.
2. 열 일곱 살 되던 해 (서기 11년)
127:2.1 이 무렵에, 특히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로마에 세금 내는 것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고, 상당한 동요가 일고 있었다. 현재 열심당 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민족주의 당파가 등장했다. 열심 당원들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메시아가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적 반란을 통해 사태를 수습할 것을 제안했다.
예루살렘에서 온 한 무리의 조직원들이 갈릴리에 도착하여 나사렛에 도착할 때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이 예수를 만나러 왔을 때, 예수는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많은 질문을 하였지만, 입당은 거절했다. 그는 입당하지 않은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그의 거절은 나사렛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입당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마리아는 아들이 입당하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했지만,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요구한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불복종이며,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며 부모에게 복종할 것이라는 서약을 어긴 것이라고 넌지시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넌지시 하는 말에 답하여 예수는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어떻게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마리아는 자신의 말을 취소하였다.
예수의 삼촌들 중 하나(마리아의 동생 시몬)는 이미 무리에 가담했고, 후에 갈릴리 지역의 장교가 되었다. 몇 년 동안 예수와 그 삼촌 사이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에서 소동이 일기 시작했다. 예수의 태도는 그 도시의 유대 청년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반쯤은 민족주의자 조직에 가담했고, 나머지 반은 좀 더 온건한 애국자들의 반대 집단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예수가 그들의 지도자가 될 것을 기대했다. 그들은 예수가 주어진 명예를 거절하자 놀랐고, 예수는 자신의 무거운 가족 책임을 이유로 들었으며 모두 그 이유를 이해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는데, 이방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삭이라는 부유한 유대인이 등장하여, 예수가 자신의 목공일을 그만두고 나사렛 애국자들의 지도자가 된다면 예수의 가족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127:2.6 당시 겨우 17세였던 예수는 초기 삶에서 가장 아슬아슬하고 어려운 상황 중 하나에 직면했다. 애국적인 문제, 특히 세금을 포탈하는 외국 압제자들이 얽히면 영적 지도자들에게는 처신하기 어려운 일이며, 이 경우에 로마에 항거하는 이 모든 선동에 유대 종교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두 배나 어려웠다.
어머니와 삼촌, 그리고 동생 야고보까지도 모두 예수에게 민족주의 대의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기 때문에 예수의 입장이 더욱 어려워졌다. 나사렛의 똑똑한 유대인은 모두 가담했고, 아직 그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청년들은 예수가 생각을 바꾸는 순간에 가담하려고 했다. 온 나사렛에 그의 오랜 스승인, 지혜로운 상담자 하잔이 있었는데, 하잔은 나사렛 시민 위원회가 그들의 공공의 호소에 대해 예수의 답변을 요청하러 왔을 때에 조언해주었다. 이것은 예수의 젊은 생애에서 의식적으로 대중 전략에 의존한 최초의 일이었다. 이때까지 예수는 상황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항상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방법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진실을 선언할 수 없었다. 자신이 단순한 인간 이상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릴 수 없었다; 그가 더 성숙한 나이에 이르기를 기다리는 사명에 대하여 그의 생각을 밝힐 수 없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종교적 충성심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은 직접적으로 도전받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혼란에 빠졌고, 그의 젊은 친구들은 분열되었으며, 마을의 모든 유대인들도 떠들썩했다. 이 모든 것이 예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그는 이런 종류의 소동은커녕 어떤 종류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려는 결백한 사람이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했고, 용감하고 외교적으로, 모든 사람은 아니라도 많은 사람이 만족하도록 밝혔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임무는 가족에 대한 것이고, 과부가 된 어머니와 8남매들에게 돈으로 살 수 있는 이상의 것이 필요하며, 그들은 아버지의 보호와 인도가 필요하며, 자신은 가혹한 사고로 인해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가 처음에 했던 주장을 고수했다. 그를 기꺼이 놓아주겠다고 하는 어머니와 맨 위 동생에게 감사를 표시했지만, 가족을 물질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오든지 상관없이, “돈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결코 잊어서 안 될 말을 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의무 때문에 가족을 떠날 수 없다고 되풀이하여 말했다. 이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예수는 “일생의 사명”에 대하여 몇 번 분명치 않게 언급했지만, 그것이 군사적 개념과 일치하든 않든 상관없이, 가족에 대한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생애의 모든 다른 것과 함께, 일생의 사명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나사렛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가족에게 좋은 아버지라는 것을 잘 알았다. 이것은 모든 고귀한 유대인의 마음에 아주 가까이 와닿는 문제였기 때문에, 예수의 주장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부 사람들은 야고보가 한 연설에서 마음을 돌렸다. 그 연설은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 그 때 전달되었다. 바로 그날 하잔은 야고보에게 연설을 미리 연습시켰고, 그것은 그들의 비밀이었다.
야고보는 그가 (야고보) 가족을 위하여 책임을 질 만큼 나이 들었다면, 예수가 민족을 해방하는 일을 도우리라 확신한다며, 말을 시작했다. 그들이 예수를 “우리와 함께, 우리 아버지이자 선생이 되도록 허락한다면, 요셉의 가족에서 한 명의 지도자만 두는 것이 아니라, 곧 다섯 명의 충성스러운 민족주의자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 형-아버지의 지도 아래 성장하여 우리 민족을 위해 봉사할 다섯 명의 형제들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그 소년은 매우 긴장되고 위협적인 상황을 꽤 행복한 결말로 이끌어냈다.
위기의 순간은 일단 끝났지만, 이 사건은 나사렛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동요는 계속되었다; 예수는 다시 모든 이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감정의 분열은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다. 이후 발생한 다른 사건들과 함께, 이것은 예수가 후에 가버나움으로 이사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 후로 나사렛에서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감정이 나뉘었다.
127:2.11 야고보는 이 해에 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는 목수 작업장에서 정식 노동자로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연장을 다루는데 능숙한 작업자가 되었고, 이제 멍에와 쟁기를 만드는 일을 도맡았다. 한편 예수는 건물 마무리 손질과 전문적인 가구 만드는 일을 더 하기 시작했다.
이 해에 예수는 그의 mind를 체계화하는데 큰 진전을 이루었다. 점차 그는 그의 신성과 인간 본성을 하나로 모았고, 자신의 결정된 힘과 깃드는 훈계자의 도움만으로 이 모든 지적 체계를 성취했다. 수여 아들이 오신 어느 세상에 사는 모든 정상 필사자들, 그들의 mind 안에 지니고 있는 바로 그러한 훈계자와 같았다. 지금까지 이 청년의 생애에서 초자연적인 일은 없었고, 예루살렘에서 한밤중에 그의 형 임마누엘이 보낸 전령이 그에게 나타난 것이 전부였다.
3. 열 여덟 살 되던 해 (서기 12년)
127:3.1 이 해가 들면서 집과 뜰을 제외한 모든 가족 재산이 처분되었다. 가버나움의 마지막 재산(다른 한 곳의 지분을 제외)이 이미 저당권이 설정한 채로 매각되었다. 그 수익금은 세금, 야고보를 위해 새로운 도구 구입, 캐러밴 부지 근처의 오래된 소모품 및 수선가게에 대한 지불로 사용되었는데, 예수는 이제 야고보가 집의 작업장에서 일하며 마리아를 도와줄 나이가 되어서, 이 가게를 다시 사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당분간 재정적인 압박이 완화되자 예수는 야고보를 유월절에 데려가기로 했다. 그들은 사마리아를 거쳐서, 하루 일찍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걸어갔고, 예수는 그의 아버지가 5년 전 비슷한 여정에서 가르쳐준 것처럼, 야고보에게 가는 길에 있는 역사적인 장소에 대해 말해 주었다.
사마리아를 지나면서, 그들은 많은 낯선 광경을 보았다. 이 여정에서 개인, 가족, 국가의 문제등 많은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야고보는 매우 종교적 유형의 소년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 일에 관한 계획을 알지 못했고, 그에 관련해 어머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가족을 책임지고 예수가 사명을 시작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고대했다. 그는 예수가 자신을 유월절에 데려간 것에 대해 매우 감사했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충분히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수는 그들이 사마리아를 지나면서, 특히 벧엘에서와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마실 때, 많은 생각을 했다. 동생과 함께 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전통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목격할 일에 대비하여, 자신이 처음 성전을 방문했을 때와 같은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고보는 이러한 광경들에 대해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다. 그는 일부 제사장들의 무성의하고 무정한 태도에 대해 언급했지만, 대체로 예루살렘에서의 체류를 크게 즐거워했다.
예수는 야고보를 데리고 베다니로 가서 유월절 저녁을 준비했다. 시몬은 이미 조상들과 함께 묻혔고, 예수는 성전에서 희생양을 가져와 유월절 가족의 가장으로서 이 가정을 주재했다.
유월절 만찬 후, 마리아는 야고보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앉았고, 마르다, 나사로, 예수는 밤늦게까지 함께 이야기했다. 다음날 그들은 성전 예배에 참석했고, 야고보는 이스라엘 연방에 가입되었다. 그날 아침, 그들이 올리브 산의 정상에서 성전을 바라보며 잠시 멈춰을 때, 야고보는 감탄하며 외쳤고, 예수는 침묵하며 예루살렘을 바라보았다. 야고보는 형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들은 다시 베다니로 돌아와 다음날 집으로 출발했을 터인데, 야고보는 선생들의 강론을 듣고 싶다고 설명하면서 그들이 성전을 다시 찾아갈 것을 고집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지만, 마음속으로 은밀히 예수가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듣고 싶어했는데, 그는 어머니가 말했던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성전에 가서 토론을 들었지만, 예수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mind가 깨어나면서 너무나 유치하고 대수롭지 않게만 보였다―그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낄 뿐이었다. 야고보는 예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실망했다. 그의 질문에 예수는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만 대답했다.
127:3.6 이튿날, 그들은 여리고와 요단 계곡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고, 예수는 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 중에는 그가 열세 살이었을 때 이 길을 지나던 때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사렛으로 돌아오자마자 예수는 낡은 가족의 수선가게에서 일을 시작했고, 날마다 전국 각지와 주변 지역에서 오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어 크게 즐거워했다. 예수는 참으로 사람―그저 보통 사람들―을 사랑했다. 매달 그 가게에 대하여 지불금을 냈고, 야고보의 도움을 얻어서, 계속 가족을 부양했다.
일년에 몇 번 방문객이 참석하지 않아 회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예수는 회당에서 안식일 성서를 계속 읽었고, 여러 번 강의에 관련된 부가된 설명을 했지만, 보통은 설명이 불필요한 구절을 선택했다. 그는 능숙했기 때문에, 한 구절이 다른 구절에 빛을 던지도록 여러 구절의 읽기 순서를 정리했다. 날씨가 허락하는 한, 안식일 오후에 자연 속을 걸으려고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기를 거른 적이 없었다.
이 무렵에, 하잔은 철학 토론을 하는 젊은 남자들의 모임을 시작했다. 이것은 다른 회원들의 집에서, 또 가끔 자기 집에서 만났는데, 예수는 이 무리의 특출한 회원이 되었다. 이 방법으로, 최근의 민족주의자 논쟁이 있을 때 지역에서 잃었던 위신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그의 사회생활은 제한적이었지만, 전혀 소홀하지는 않았다. 나사렛의 젊은 남녀 사이에서 그를 향한 많은 따뜻한 친구들과 굳건한 찬미자들이 있었다.
127:3.11 9월에, 엘리자벳과 요한이 나사렛 가족을 방문했다. 아버지를 잃은 요한은 예수가 나사렛에 남아 목공이나 다른 일을 하라고 권하지 않는 한, 유대 언덕으로 돌아가 농업과 양 사육에 종사할 작정이었다. 그들은 나사렛 가족이 사실상 무일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마리아와 엘리자벳은 서로 아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두 젊은이가 같이 일하면서 서로를 더 많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예수와 요한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사사롭고 개인적인 문제들에 관련해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그들이 해야 할 일로 “하늘 아버지가 부르신” 뒤에, 대중에게 봉사하면서 만날 때까지 서로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요한은 나사렛에서 본 것 때문에 크게 감동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수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예수 일생의 사명에서 한 몫을 할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지만, 예수가 가족을 돌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낼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작은 농장을 돌보며 어머니의 필요를 챙기는 데 훨씬 더 만족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 나타났을 때까지, 요한과 예수는 다시 서로 만나지 않았다.
이해의 12월 3일, 토요일 오후에, 두 번째로 죽음이 이 나사렛 가족에게 드리웠다. 아기 남동생, 꼬마 아모스가 한 주 동안 고열로 앓다가 죽었다. 이 슬픈 때를 유일한 기둥인 맏아들과 함께 보내고 나서, 마리아는 마침내 예수를 가족의 참 가장으로 완전히 인정했다. 그는 참으로 자격 있는 가장이었다.
4년 동안, 생활 수준은 꾸준히 나빠졌으며, 그들은 해마다 가난이 가중되는 것을 느꼈다. 이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 모든 벅찬 싸움에서 가장 어려운 체험 중 하나에 부닥쳤다. 야고보가 돈을 충분히 버는 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모든 다른 것 위에 장례비는 집안을 휘청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초조하고 슬퍼하는 어머니에게 예수는 단지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슬퍼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고, 어쩌면 어머니의 미소가 우리에게 더 잘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루하루 우리는 더 좋은 날을 기대하는 희망으로 이 일을 할 힘을 얻습니다.” 그의 강건하고 실용적인 낙관적 태도는 참으로 영향력이 있었다; 아이들은 더 나은 시절과 더 나은 것들에 대한 기대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희망적인 용기는 가난의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강하고 고귀한 성품을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예수는 바로 눈앞에 닥친 과제에, mind, 혼, 육체의 온 힘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해결하고자 하는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리고 이것은, "보이지 않는 그분(Him)을 보고 있는" 것처럼 사는 것은 ―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인내심과 맞물려 마치 필사 존재의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평온하게 견디게 해주었다.
4. 열 아홉 살 되던 해 (서기 13년)
127:4.1 이무렵 예수와 마리아는 훨씬 사이가 좋아졌다. 그녀는 그를 아들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아버지 같았다. 매일의 삶은 현실적이고 눈앞의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4남 3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부양하고 양육하는데만 전념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생애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았다.
이해 초까지 예수는 어머니를 완전히 설득하여 자녀교육 방법 즉 ― 악을 금하는 오랜 유대인의 방법 대신, 선을 행하라는 긍정적인 훈계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예수는 집과 공적-가르침 생애를 통해 긍정 형태의 권면을 이용했다. 언제나 어디서나 "너희는 이렇게 해야 한다. 너는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대의 금기에서 파생된 부정적인 교육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악을 금지함으로 악을 강조하는 일을 삼가고, 한편 선을 행하라 명령함으로 선한 것을 높였다. 이 가정에서 기도 시간은 가정의 복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논의하는 기회였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동생들에게 현명한 훈련을 시작했기 때문에, 즉석에, 진심으로 복종을 얻기 위한 처벌은 거의 또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는 유다였고, 여러 경우에 집안의 규칙을 어긴 것 때문에 벌을 내리는 것이 필요했다. 세 번이나, 가족의 행동 규칙을 일부러 위반했다고 자백했기 때문에 유다를 벌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명되었는데, 그때 벌은 그보다 나이 먹은 아이들이 만장일치로 선포하여 정해졌고, 벌을 주기 전에 바로 유다 스스로에게 승인을 얻었다.
예수는 하는 모든 일에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지만, 그는 관리적인 결정에서 신선한 유연성과 개별성에 맞게 적용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아버지-형이 행동하는 공정의 정신으로 모든 아이들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결코 멋대로 동생들을 징계하지 않았고, 그런 일관된 공평성과 개인적 배려로 말미암아 예수는 가족 모두에게 무척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야고보와 시몬은, 그들의 호전적이고 격분한 놀이 친구들을 설득과 무저항으로 달래는 예수의 계획을 따르려고 애쓰면서 자랐고, 상당히 성공했다; 그러나 요셉과 유다는, 집에서는 그런 가르침에 동의했지만, 친구들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는 자신을 방어하려고 서둘렀다; 특히, 유다는 이 가르침의 정신을 어긴 잘못이 있었다. 그러나 무저항은 가족의 규칙은 아니었다. 개인에 관한 가르침을 어기는 데는 처벌이 따르지 않았다.
127:4.6 대체로, 아이들은 모두, 특히 여자 아이들은, 애정 있는 아버지의 경우에 하는 것과 똑같이, 예수에게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의논하고 속을 털어놓았다.
야고보는 균형 잡히고 단련된 젊은이로 자라고 있었지만, 영적 성향은 예수와 같지 않았다. 그는 요셉보다 공부를 훨씬 더 잘하는 학생이었고, 요셉은 충실한 일꾼이긴 했어도 영적 생각이 더욱 부족했다. 요셉은 꾸준히 일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시몬은 착한 생각을 가진 소년이었으나 너무나 꿈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살면서 안정된 직업을 쉽게 가지지 못했고 예수와 마리아에게 상당한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언제나 선하고 좋은 의도를 가진 소년이었다. 유다는 걸핏하면 싸우는 사람이었다. 가장 높은 이상을 가졌지만, 성질이 안정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결단과 공격성 모두를 더 많이 가졌지만, 어머니가 가진 균형 감각과 신중함이 상당히 모자랐다.
미리암은 고귀한 것과 영적인 것을 날카롭게 이해하는, 안정되고 분별 있는 딸이었다. 마르다는 생각과 행동이 느렸어도 매우 믿음직스럽고 효율적인 아이였다. 아기 룻은 집안의 햇살이었다. 생각 없이 말을 해도 그녀는 가장 진실된 마음을 소유했다. 가장인 큰 오빠를 거의 숭배하듯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룻의 버릇을 잘못 들이지는 않았다. 룻은 예쁜 아이였지만, 미리암 처럼 예쁘지는 않았고, 미리암은 그 도시에서 첫째가는 미인은 아니라도, 그 가족 안에서 미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는 안식일 준수와 종교의 다른 단계들과 관련된 가정의 가르침과 관행을 자유화하고 수정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고, 이 모든 변화에 마리아는 진심으로 동의했다. 이때쯤 예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가장이 되었다.
이해 유다는 학교에 가기 시작했고, 예수는 이러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신의 하프를 팔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그의 마지막 여가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그는 마음이 지치고 몸이 피곤할 때 하프 연주를 매우 좋아했지만, 적어도 하프가 세금 징수자에게 압류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삼았다.
5. 에즈라의 딸, 레베카
127:5.1 비록 예수는 가난했지만, 나사렛에서의 사회적 지위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그는 도시의 주요 젊은이 중 한 명으로,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로부터 매우 높이 평가받았다. 예수는 건강하고 지적인 남성의 훌륭한 표본이었고,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명성이 있었기에, 나사렛의 부유한 상인 에즈라의 장녀인 레베카가 서서히 예수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레베카는 처음으로 예수의 여동생인 미리암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고, 미리암은 이를 어머니 마리아와 상의했다. 마리아는 매우 동요했다. 이제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장이 된 아들을 잃게 되는 것인가? 문제는 끝이 없을까?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그녀는 잠시 멈춰서 결혼이 예수의 장래에 미칠 영향을 생각했다. 예수가 "약속의 자녀" 라는 사실을 가끔씩이나마 떠올리곤 했다. 미리암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은 레베카에게 직접 가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예수는 운명의 아들, 위대한 종교 지도자, 즉 메시아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예수가 이 사실을 알기 전에 이를 막기로 결정했다.
레베카는 열심히 경청했다; 그녀는 그 이야기에 감동받아 더더욱 그와 함께하고 싶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녀는 그런 남자는 신뢰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아내가 필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마리아가 그녀를 만류하려는 노력은 가족의 가장이자 유일한 생계 지원자를 잃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목수의 아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승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예수의 수입을 충분히 보상하는 비용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버지가 그런 계획에 동의하자 레베카는 마리아와 미리암과 추가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용기를 내어 예수에게 직접 다가가기로 했다. 레베카는 자신의 17번째 생일 축하를 위해 아버지의 협력을 받아 예수를 집으로 초대했다.
예수는 주의 깊게 이해하는 태도로, 처음에는 레베카의 아버지, 다음에 레베카가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예수는 그 어떤 돈으로도 아버지의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 즉 “인간의 가장 신성한 신뢰인 자기 혈육에 대한 충성을 다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취지로 친절하게 대답했다. 레베카의 아버지는 예수의 가족에 대한 헌신에 깊이 감동받아 회담에서 물러났다. 단지 그의 아내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를 아들로 삼을 수 없소; 그는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고귀한 사람이요.”
그리곤 레베카와의 중요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예수의 삶에서 소년과 소녀, 젊은 남녀 간의 교류에 큰 차이를 두지 않았다. 그의 mind는 지상에서의 실질적인 문제와 "아버지(Father)의 일"에 대한 궁극적 생애를 깊이 고민하는 데 너무 바쁘기 때문에, 인간의 결혼에서 개인적인 사랑의 완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든 보통 인간이 직면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와 마주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는 "너희와 같은 모든 점에서 시험을 받았다."
레베카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은 예수는 진심으로 그녀의 칭찬에 감사하며 말했다. "그것은 내 삶의 모든 날에 기쁨과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는 단순한 형제애와 순수한 우정 외에는 어떤 여성과도 자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아버지의 가족을 돌보는 것이며,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혼을 생각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런다음 덧 붙여서 말했다: "내가 운명의 아들이라면, 내 운명이 드러날 때까지 평생의 의무를 맡아서는 안 됩니다."
127:5.6 레베카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위로받기를 거부하며 아버지에게 나사렛을 떠나자고 졸랐고, 마침내 세포리스로 이사하기로 동의하게 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에게 청혼하는 많은 남성들에게 단 한 대답만 했다. 그녀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살았는데, 그녀에게 가장 위대한 남자인 예수가 살아 있는 진리의 선생으로서 생애를 시작할 그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그의 사건 많은 공생애를 헌신적으로 따랐으며, 예수가 승리에 넘쳐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던 날에도 (예수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곳에 있었다. 또한 그녀는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렸던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오후에 마리아 곁에 “다른 여자들 속에” 서 있었다. 하늘에 있는 수많은 세계 뿐 아니라 그녀에게, 그는 “모든 면에서 사랑스럽고 만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였다.
6. 스무 살 되던 해 (서기 14년)
127:6.1 예수에 대한 레베카의 사랑 이야기는 나사렛에서 퍼졌고, 후에는 가버나움에서도 퍼졌다. 몇 년 동안 남성들이 예수를 사랑한 것처럼 여성들도 예수를 사랑하며 따랐지만, 두 번 다시 그는 다른 착한 여성의 헌신적 사랑을 거절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때부터 예수에 대한 인간의 애정은 더 이상 자기 만족이나 애정의 소유욕이 아닌, 존경과 찬미의 본질을 더 많이 띠게 되었다. 남녀 모두 그를 헌신적으로,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예수의 인간 성품(personality)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레베카의 헌신적 사랑도 언급되었다.
미리암은 레베카의 일을 잘 알고 있고, 어떻게 오빠가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조차 포기했는지 알게 되면서(그의 미래 운명적 생애의 요인은 깨닫지 못했음), 예수를 이상화하며, 오빠로서뿐 아니라 아버지로서 깊은 애정과 감동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비록 그들은 그럴 형편이 못 되지만, 예수는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싶은 이상한 열망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레베카와의 최근 경험을 알고 그에게 여행을 하라고 현명하게 권했다. 뚜렷하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가 가장 바란 것은 나사로와 이야기하고 마르다, 마리아와 이야기할 기회였다. 그는 자기 가족 다음으로, 이 세 사람을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했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므깃도, 안티파트리스, 리도아를 지나갔으며, 이는 그가 이집트에서 돌아올 때 나사렛으로 돌아가던 길과 일부 겹치는 경로였다. 그는 유월절을 맞아 4일 동안 여행하며 므깃도와 그 주변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므깃도는 팔레스타인의 국제적인 전쟁터로 잘 알려져 있었다.
예수는 예루살렘을 거쳐 갔으며, 오직 성전과 모인 방문객들을 바라보려고 잠시 멈추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제직과 헤롯이 지은 이 성전에 대해 이상하게 점점 더 혐오감을 느꼈다. 그는 무엇보다도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를 보고 싶었다. 나사로는 예수와 같은 나이였고, 이제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이번 방문할 때가 되자 나사로의 어머니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마르다는 예수보다 한 살 조금 더 많은 반면, 마리아는 두 살 아래였다. 예수는 세 사람 모두에게 우상처럼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127:6.6 이번 방문에서 예수는 전통에 대한 반발심이 한 번 치솟았다―예수가 판단하건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잘못 대표하는 의식적인 관행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예수가 오는 것을 알지 못한 나사로는 친구들과 함께 여리고 길에 인접한 마을에서 친구들과 유월절을 축하하기로 계획했었다. 이제 예수는 그들이 있는 곳, 나사로의 집에서, 유월절을 지내자고 제안했다. 나사로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유월절 양이 없어요.” 그러자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러한 유치하고 무의미한 의식에 실제로 관심이 없다'는 취지로 길지만 설득력 있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들은 엄숙하고 뜨겁게 기도를 드린 후에 일어섰고 예수는 말했다: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을 가진 내 백성들은 모세가 지시한 대로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게 두자;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하겠지만, 생명의 빛을 본 우리는 더 이상 어두운 죽음의 길을 통해서 우리 아버지께 나아가지 말자. 우리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진리를 알면서 자유롭게 나아가자.”
그날 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에, 네 사람은 앉아서 희생양 없이 경건한 유대인들이 축하한 첫 유월절 축제의 저녁을 먹었다. 이 유월절을 위해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가 준비되었고, 예수는 “생명의 빵”과 “생명의 물”이라 칭하는 이 상징적 음식을 친구들에게 덜어주었다. 그들은 방금 전한 가르침에 엄숙하게 순응하며 먹었다. 베다니를 방문할 때마다 이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이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처음에 충격을 받았지만, 점차 그의 관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랬어도 이 새로운 유월절 개념을 집안에 들여올 생각이 없다고 안심시켰을 때, 그녀는 매우 안도했다. 예수는 동생들과 함께 “모세의 율법에 따라” 집에서 해마다 계속하여 유월절을 지냈다.
이해에 마리아는 결혼에 대하여 예수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그에게 가족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면 결혼할 것인지 솔직하게 물었다. 예수는 눈앞에 닥친 의무로 결혼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결혼 생활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표현했다; 그는 모든 그런 일들이 "아버지의 일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간"인 "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육신으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에서 이미 작정했기 때문에, 그는 인간적 결혼 문제를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이해에 그는 자신의 인간 본성과 신성한 본성을 단순하고 효과적인 인간의 개별성으로 더욱 엮어가는 과제를 새롭게 시작했다. 그는 도덕적 지위와 영적 이해 안에서 계속하여 성장했다.
(집을 제외하고) 나사렛 재산이 다 사라졌지만, 이 해에 가버나움에 있던 한 부동산의 지분을 팔아서 약간의 재정적 도움을 받았다. 이것은 요셉이 소유했던 전 재산의 마지막이었다. 이 가버나움 부동산은 세베대라 불리는 배 만드는 사람과 함께 처분했다.
127:6.11 요셉은 이 해에 회당 학교를 마쳤고, 집의 목수 작업장에 있는 작은 벤치에서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했다. 아버지의 재산은 바닥이 났지만, 세 사람이 이제 정상으로 일하고 있으니 가난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리라는 전망이 보였다.
예수는 청년이 아닌 성인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는 책임감을 잘 배우고 있다. 그는 실망 앞에서 계속 나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좌절되고 목적이 일시적으로 실패했을 때 용감하게 일어섰다. 그는 불의 앞에서 타당하고 공정한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는 영적 삶에 대한 이상을 땅의 존재의 실제 요구에 맞춰 조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는 더 높고 먼 이상주의 목표의 달성을 위해 계획하는 한편, 더 가깝고 즉각적으로 필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는 자신의 포부를 인간의 일상적인 요구에 맞추는 기법을 꾸준히 습득하고 있다. 그는 물질 성취의 메카니즘을 전환하기 위한 영적 추진력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기법을 거의 통달했다. 그는 땅에서의 존재를 이어가는 동안 하늘의 삶을 사는 방법을 서서히 배우고 있다. 한편으로 땅에 있는 가족의 아이들을 안내하고 지도하는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점점 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궁극적 인도에 의존했다. 그는 패배의 문턱에서 능숙한 승리의 씨름을 체험하고 있다; 그는 시간의 어려움을 영원의 승리로 바꾸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따라서, 해가 지나면서, 나사렛의 이 젊은이는 시-공간의 세계에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사는 삶을 계속 체험하고 있다. 그는 유란시아에서 온전하고 대표적인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그의 생명존재들의 짧고 힘든 첫 생애, 즉 육신의 삶을 살며 통과해야 하는 체험이 성숙된 상태로 이 세상을 떠났다. 이 인간 체험 모두가 우주 주권자의 영원한 소유이다. 그는 우리의 이해심 많은 형제, 동정심 많은 친구, 경험 많은 통치자, 자비로운 아버지이다.
그는 어렸을 때 방대한 지식을 쌓았다; 청년이 되어서는 이 정보를 가려내고 분류하고 연결시켰다; 이제 그 영역의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비롯하여 온 네바돈 우주 전체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 사는 모든 구체에서 동료 인간들을 위해 가르치고, 사역하고, 봉사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이 정신적 소유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땅의 아기로 세상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연이어 청소년기와 청년기 단계를 거쳤다; 이제 인간 삶의 풍부한 체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로 가득찬, 인간 본성의 연약함에 대한 동정심으로 충만한 성년기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는 모든 시대에 있는 필사 인간에게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계시하는 신성한 예술적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127:6.16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된 한 인간으로서―그 영역의 성인― 그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드러내고,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그의 최상의 사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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