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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러므로’는 앞의 2장이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한 형제가 되게 하시고 붙잡으십니다.
성경을 장별로 공부해야 될 이유는 앞부분이 서론이 되고, 뒷부분이
설명하는 구조로 구성이 되어 반복해서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는 종들이 아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다만 종이라 함은 우리가 아들이면서도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므로 그 분의 의의 종, 생명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께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 따르는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머슴 같이
일만 하는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장자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자’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한 떡, 한 몸, 한 영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라 하심은 보내심을 받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이며, 대제사장은 우리들의 편에서 죄를 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형제들이 되었으면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와 대제사장의 역할을 한마디로 말해서 중보자라고 합니다. 딤전2:5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하십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그 중보자를 통해 거룩하게 된다고 말씀하는 겁니다(딤전4:5)
예수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이신데 기름부음으로 사도의 직분을 갖고 계시고
우리를 끌어안고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제사장의 성격을 갖고 계십니다.
지금도 요17장의 대표기도는 유효하며 항상 살아서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히7:25)
깊이 생각하라 말씀은 ‘완전히 파악하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도로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죄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 피로 하늘지성소에
들어가신 분, 그리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를 완전히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지식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들에겐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는 반복과 인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영광나라 계신 임금이
내 안에 계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는 하늘 길이 환하게 열리게 됩니다.
주님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더러운 것들 저리 꺼져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의 무지 때문에 주님께서 ‘너 그대로 오면 안 돼, 진리를 깨닫고 와,
듣고 진리를 알고 와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을 못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처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대한 진리의 말씀에 무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못 만납니다.
2절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모세의 역할을 말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뽑아내는 역할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악에서 끌어내는 역할을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율법과 성막 짓는 법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의 충성된 사환의 노릇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온 집이라는 말은 성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성막에 하나님이 계셨고,
이 성막이 솔로몬 성전으로 대체되고 거기에 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헤롯성전은 구약 성경에 없는 성전입니다. 이건 헤롯이 정치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40여 년간 천천히 지은 것으로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렀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껍데기뿐입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집니다.
구약의 돌 성전이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몸 성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몸이 성전입니다.
요한복음 2장이 바로 그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처음 포도주가 떨어지고
그 다음에 물로 된 포도주가 되는 것, 우리에게도 말씀이 임하면 아담 안에
있던 첫 사람이 폐하여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요2장을 보면 예수님이 성전 청소를 하게 됩니다. 성전을 청소하시며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하십니다.
사흘 만에 다시 세우는 성전 이 성전이 바로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의 심령이 성전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성막이 하나님의 온 집이지만 지금의 하나님의 집은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는 전(고전3:16)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를 사랑하므로 주와 하나 되는 계명을 지키면 아버지와
함께 거하시는 거처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요14:23)
3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모세는 성막을 지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집의 주인이십니다.
차이가 큽니다. 목수하고 그 집 아들하고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바로
비교하면 우리는 모세보다 더 영광스럽습니다. 모세는 말씀을 받아 천막집을
지었지만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고전 3장은 말씀하기를
만약 너희가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집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나중에는 많았지만 나타나는 이들은 양자인
엘리에셀과 이스마엘과 이삭이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양자인 엘리에셀이나
육신으로 난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육신으로는 훨씬 나은 실력자들이었습니다.
엘리에셀은 종이지만 양자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양자도
안 되고, 육신으로 난 이스마엘도 안 된다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의 씨,
이삭이어야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의 족보를
이어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의 잘난 사람들이나 유명한 사람들보다는
외모로는 부족한 것 같아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상속자들입니다.
4절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만물을 설계하고 지으신 자는 하나님이시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르시되, 사라사대 그 말씀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4복음서의 모든 기적을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만물을 자기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 위를 걸으시고, 풍랑도 잔잔케 하시고,
나귀를 끌고 와라 명하시고, 무화과나무도 마르게 하시는 등등의 사건들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그것들을 지으신 말씀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5절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신실(충성)하였고”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멀리 내다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진리의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가운데 새 언약을 세우시고 우리가 그 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그 아들의 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얻어 아버지의 영광에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장자의 영을 받은 자들로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르는 상속자들입니다.
6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집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셨다는 겁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셨다는 사실을 너무 지식적이고 개념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셨다(have)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다시 말하면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파악하고,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셔서 끝임 없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오르락내리락 합니다(요14:6) 이렇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창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려 계획하시고, 드디어 때가 되서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사시고 승천하신 다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 하늘 길을 열기 위하여 하나님은 온갖 지혜를 다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복이 이 길을 통해서 다 얻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한 집안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 집안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나니까
자동으로 하나님과 한 집안이 되었습니다. 이 비밀을 완전히 파악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겁니다.
주님을 모셨으면 그분이 나의 왕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그 나라의 정부의
시책으로 바로 바꿔야 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정권만 주님으로 바꿔놓고 그 정권의 정부시책에 따라 나를 바꾸지 않으면
성령이 소멸됩니다. 그러면 나중의 형편이 처음 형편보다 못하게 됩니다.
말로만 내가 하나님의 집이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집답게 수리를 해야지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를 하나님이 계실 처소로 바꿔 가십니다.
이 때에 우리는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므로 참 기름 짜듯 하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꼭 할 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 인생 가운데서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젖히고
하나님과 직거래하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특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53장이 금서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메시야라고 하기엔 너무 천하고 무능해 보인다는 그들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로 조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건방을 뜹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입 맞추고
자기 아들과 하나 되어 은혜의 보좌 앞에 오기를 바라십니다. 아니면 비웃으십니다(시2:4)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경건입니다. 길을 걸어갈 때에도, 대화를 할 때도 항상 예배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이 굉장히 기뻐하시고, 우리 속에서 큰 은혜를 베푸실 겁니다. 경건이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는 아니고 주님이십니다. 나는 아니고 성령이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배자세이며
경건입니다. 그 때에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붙들어주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항상 여호와를 앞에 모시고 주의 이름을 불렀던 다윗의 믿음이며(행2:25-28)
오순절 성령이 이후의 우리의 믿음입니다. 행2장의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를 자세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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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영광을!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