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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극적 구성
시에 여러 가지 극적 요소를 도입하여 시를 구성하는 것을 극적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를 읽었을 때 내용이 극적으로 반전하는 경우가 가장 흔한 사례입니다. 서양에서는 시극(poetic drama)이 있는데, 이는 대사가 운문으로 쓰이는 것을 말하므로 극적 구성과는 다릅니다. 극적 구성은 극적 독백 등 극적 기교에 필요한 요소를 시 창작에 수용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¹⁶⁷⁾
이러한 극적 방법은 동양에서도 오랜 창작방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시경』의 시들이나 이규보 등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에 대화법을 이용한 극적 방법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시를 극적으로 구성할 경우에는 시를 독자가 읽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황동규 시인은 극적 구성을 창작방법으로 활용하는데¹⁶⁸⁾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 뒤표지에서 시에 극적 구조를 수용하겠다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서정시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다. 노래와 더불어 삶의 이야기도 적고 싶다. 호흡조절만이 아닌 숨소리가 들리는 시를 쓰고 싶다. 고분고분말을 잘 듣지 않는 건방진(살아 있는 것들은 대개 건방지다) 시를 쓰고 싶다. 손님이 오시는 오늘 피었으면 좋겠는데, 끝내 피지 않고 내일 피는 꽃이 되고 싶다. 극의 구조를 지니고 싶다.” 예술이란 다름 아닌 삶을 극으로 바꾸는 장치일 것이다. 극화 인간화 시켜서 삶에 되돌려 주는 장치일 것이다. 극을 지닌 노래와 이야기와 몸짓! 회사와 은행과 경찰서가 판치는 이 거리에서 그래도 사람 만세!를 외치며 소리쳐 부르고 싶은 것은 극으로 만들 수 있는 삶 때문이다.
황동규 시인은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에 나오는 일부의 시들을 쓸 무렵부터 극 서정시를 적극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¹⁶⁹⁾ 황동규는 시에 역동적 담화를 통한 일인칭 극적 화자의 도입, 일상과 여행 체험 등의 이야기와 사건을 시의 내용 요소로 활용, 이야기의 소설적 구성과 연극의 구성모형 수용을 통한 전개, 시적 주체 또는 주인공 인식과 자아의 극적 변화, 대화와 부호 등의 수용을 통한 극적 표현법을 사용합니다. 그의 시 「몰운대행」은 여행의 여정을 5부로 나누어 소설처럼 구성하고 있습니다.
1
사람 피해 사람 속에서 혼자 서울에 남아
호프에 나가 젊은이들 속에 박혀 생맥주나 축내고
더위에 녹아내리는 추억들 위로
간신히 차양을 치다 말고
문득 생각한 것이 바로 무반주(無伴奏) 떠돌이.
폐광지대까지 설마 관광객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길들의 고요.
지도를 펴놓고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치고
방학에도 계속 나가던 연구실 문에 자물쇠 채우고
다음날 새벽 해뜨기 전 길을 나선다.
2
영월 청령포를 조심히 피해 31번 국도를 탄다.
상동 칠랑에서 국도를 버리고
비포장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중석 걸러낸 크롬 옐로우 물이
길 옆 시내 가득 흘러오고
저단 기어를 넣은 “프레스토”가
프레스토로 떤다.
차 고장 없기만을 길의 신(神)에 빌며
망초꽃이 모여선 길섶을 지나
아다지오로
덤프트럭 자국 깊이 파인 언덕을 오른다.
길의 신이 급커브를 약간 풀어놓으며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보여준다.
크롬 옐로우가 꿈결처럼 몸을 바꿔
흑인영가로 흐르기 시작한다.
흑인영가의 어두운 음을 끼고
에어콘 끄고도 헐떡이는 차를 천천히 몰아
온갖 생물학이 모여 썩고 있는 쓰레기 낟가리를 돈다.
아! 폐광 하나가 검은 입을 벌리고 비탈에 박혀 있다.
입술 위로 너와지붕이 튀어나오고
그 위엔 다듬지 않은 풀들이
수염처럼 자라고 있다.
빠지고 남은 이빨처럼 녹슨 쇠기둥 두 개가 박혀 있고
녹슨 밀차 한 대가 굴 밖으로 나오려다 말고
뒤틀린 선로 위에 심드렁하게 서 있다.
들이밀면 머리부터 씹힐 것 같아
목을 움츠리고 슬쩍 몸을 들이민다.
귀가 먹먹
아 사람 사라진 사람 냄새!
천장에서 물 한 방울이
정확히 머리 위에 떨어진다.
3
고개가 가파르다.
자장율사가 진신사리 봉안했다는 정암사 가는 길
그도 헐떡이며 넘었으리라.
앵앵대는 소형차를 길가에 그냥 내버리고 싶다.
가만, 자장이며 의상(義湘)같은 쟁쟁한 거물들이
경주, 황룡사, 부석사를 버리고
왜 강원도 산속을 방황했을까?
왜 자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세상을 떴을까?
입적지(入寂地) 미상의 의상도
강원도 산골의 행려병자가 아니었을까,
이곳 어디쯤에서?
가파른 언덕을 왈칵 오르자
해발 1280m의 만항재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이 서로 머리 맞댄 곳.
자글자글대는 엔진을 끄고 차를 내려 내려다보면
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
가문비나무의 물결
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
저 날것,
도는 군침!
황룡사 9층탑과 63빌딩이
골짜기 저 밑에 처박혀 보이지 않는다.
바람 없이도 마음이 온통 시원하다.
잠시 목숨 잊고 험한 길 한 번 마음놓고 차를 채찍질해
황룡사, 63빌딩, 정암사를 순식간에 지나서
정선 쪽으로 차를 몬다.
4
화암약수터 호텔 여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제철인 데다 버섯 재배농가 회의로
정선군 모든 방이 다 찼지요.
몰운대 저녁노을이나 보시고
밤도와 영월이나 평창으로 나가시죠.”
표고버섯죽 한 그릇 비우고
길을 나선다.
선선하고 기이한 뼝대
저녁 빛을 받아 얼굴들이 환했다.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5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황동규, 「몰운대행」 전문
위 시의 흐름을 각 부별로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부: 서울에서 연구실에 자물쇠를 채우고 길을 나섬
↓
2부: 영월 청령포를 피해 국도를 타고 가서 폐광구를 구경함
↓
3부: 내적 의문을 던지며 정암사를 거쳐 태백 만항재에 올랐다가 내려옴
↓
4부: 저녁에 화암약수터 호텔 여주인과 대화를 하다 저녁 빛을 받은 환한 몰운대를 만나고 나옴
↓
5부: 몰운대를 본 이후 감상
다음은 필자의 체험과 상상을 대화와 반전을 통해 극적 어법으로 구성한 시입니다.
일요일 아침, 아이들은 거실에서
만화영화에 눈이 빠져 있고
나는 안방 문을 잠그고 아주 오랜만에
아내와 그걸 시도한다
덜그럭거리는 아내와 관계에
기름을 쳐보려고 그걸 세우나
오늘도 잘 안 된다
결혼 십 년 만에 물건이 닳은 걸까
아내와 같이 시집 온 물건들도
덜그럭거리기 시작한다
화장실에 갇혀 있는 세탁기는
자기를 수리해 주지 않는다고
가슴을 텅텅 치며 불평한다
비디오 겸용 14인치 삼성텔레비전도
테이프를 뜯어먹거나 뱉어내지 않아
젓가락을 아가리에 찔러 넣고
그것도 아내가 신경질을 부려야
뜯어먹던 비닐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멈춘 시계는
건전지를 바꿔 끼워도 돌아가지 않는다
음극판이 부식되어 드라이버로 벗겨내도
마누라를 닮아 전류가 통하지 않는다
아랫도리에 코드를 꽂아도
권태의 곰팡이가 슬어
전기가 안 온다고 불만인 마누라
똥과 오줌을 꿀꺽꿀꺽 잘 받아먹던 변기도
과식하거나 체했는지
계속 게워내다 마침내
화장실을 똥 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자기 똥이 섞인 가족의 똥물인데도
도망치는 아내와 아이들
결국 가장만이 똥과 대결해야 하는
비겁한 가족을 거느린 장수의 슬픔
이빨이 빠지고 대가리가 굵어지느라
말을 안 듣는 아들놈 코를 비틀 듯
몇 번 비틀어야 겨우 말을 알아듣는 가스렌지
보일러 모터도 나처럼 힘이 떨어졌는지
겔겔거리다 이내 죽어버린다
수동복귀를 눌러주러
팬티차림으로 보일러실을 들락거려야 하는
참을 수 없는 번거로움 내 몸에도 수동복귀 단추를 달아 하룻밤에 몇 번을 세웠으면 좋겠다
신혼의 첫 다짐처럼 하얗던 벽지도
때가 탈 대로 타고
방구석에는 무관심이 거미줄을 쳤다
부부싸움 때 잘못 들었던 폭언은
아들놈이 몰래 타다 남겨놓은
장판 위 롤러브레이드 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쥐꼬리만 한 내 수입에 목구멍을 의존하면서도
나를 쥐꼬리만큼도 존경하지 않는 가족들
정말 돈과 존경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속썩이는 남자와 십 년
똥배와 쪼글쪼글한 유방만 남았다고 불만인 아내
시어머니에게 빽빽대는 고장난 스피커
명절과 제사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광신자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권운동가
일요일에 주부에게 휴식을 달라는 가사노동자
애정이 생길 때까지 별거해보자는 사르트르 애인
가사와 육아를 공동분담하자는 남녀평등주의자
누가 마누라 수리업을 개업한다면
아주 멋진 산업훈장을 받으리라
나는 결국 그게 안되고
아내는 그것도 못하냐며 핀잔을 주고
나는 심인성 발기불능이 된다
아내는 이내 돌아눕는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나의 무능을 알아차렸는지
깔깔거리며 만화영화에 환호를 보낸다
결혼의 생산품은 저 징그러운 사고뭉치들과
중고 가구와 부서져 가는 관계들
무척추동물처럼 이불에서 빠져나와
후라이팬에 찬밥과 남은 김치를 몰아넣고
참기름을 붓고 깨소금을 뿌린다
부부관계란 이렇게 잘 굽고 잘 섞고
잘 데우고 정성스러워야 하는 건데
요리의 상상력인데
이제는 너무 늦었다
서로 버리는 음식이 되었다.
“얘들아, 오늘 아빠 특별요리다”
아이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텔레비전 속의 광고를 먹고 싶다 맛있겠다 한다
돈버는 기계
자본의 소금에 절여진 파김치
밥을 찾아 굽실거리는 벌레
기계와 파김치와 벌레를
아이들이 존경할 리 없다
살림이 싫증난 아내가 운전하는
엉망인 주방 서랍을 뒤지는데
낯선 남자의 명함이 튀어나온다
휴일 아침부터 아내를 바꿔달라는
당돌한 남자의 전화
누워있는 아내를 깨우려다 그만 둔다
허구헌날 문화건달들과 술 처먹고 지껄이다
새벽에 들어와 쿨쿨 자는 아내
여러분, 이 귀한 분을 어떻게 모실까요?
-공광규, 「휴일, 권태」 전문
결혼을 해서 십 년쯤 되면 아이들이 만화영화에 빠질 나이가 됩니다. 이때쯤 되면 아내와 사이도 권태롭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내와 사이가 벌어졌다 싶으면 다시 이어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욕은 삶의 긍정적 덕목이고 버팀목이지만 쉽게 일어날 수가 없죠. 이때쯤 되면 결혼 무렵 혼수로 산 혼수품들도 고장이 나서 하나씩 바꾸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바꾸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이혼과 재혼이죠.
극성스런 아이들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박고 코와 귀를 비틀어도 그때뿐이죠. 식구들은 화자인 나를 조금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나는 월급 봉투를 내주면서도 욕을 먹습니다. 사이비 페미니스트인 아내는 전통과 관습은 무조건 부정합니다. 정말 '마누라 수리업소'가 있다면 맡기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광고에 나오는 음식만 찾습니다.
그래도 가정을 유지시켜야 하는 나는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음식쓰레기장 같은 냉장고를 뒤져 이것저것 몰아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텔레비전 광고 음식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죠. 룸펜에 가까운 문화건달들과 술 먹고 새벽에 들어와 술 냄새 풍풍 풍기며 자는 아내.
살림이 엉망인 아내의 주방서랍에서는 낯선 남자의 명함이 튀어나오고, 휴일 아침부터 아내에게 낯선 남자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 지독한 권태. 여러분은 권태기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통과했습니까? 그리고 창작자의 실제 체험과 상상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0. 기지(基地)
정복이네는 우리 집보다 해발 30미터가 더 높은 곳에 살았다 조그만 둥지에서 4남 1녀가 엄마와 눈 없는 곰들과 살았다 곰들에게 눈알을 붙여주면서 바글바글 살았다 가끔 수금하러 아버지가 다녀갔다
1. 독수리
큰형이 눈뜬 곰들을 다 잡아먹었다 혼자 대학을 나온 형은 졸업하자마자 둥지를 떠나 고시원에 들어갔다 형은 작은 집을 나와서 더 작은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십 년을 보냈다 새끼 곰들이 다 클 만한 세월이었다
2. 콘돌
둘째 형은 이름난 싸움꾼이었다 십대 일로 싸워 이겼다는 무용담이 어깨 위에서 별처럼 반짝이곤 했다 형은 곰들이 눈을 뜨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둘째형이 큰집에 살러 가느라 집을 비우면 작은집에서 살던 아버지가 찾아왔다
3. 백조
누나는 자주 엄마에게 대들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곰같이 살아! 나는 그렇게 안 살아! 눈알을 박아넣는 엄마손이 가늘게 떨렸다 누나 손은 미싱을 돌리기에는 너무 우아했다 누나는 술잔을 집었다
4. 제비
정복이는 꼬마 웨이터였다 누나와 이름 모르는 아저씨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소식을 주워 날랐다 봄날은 오지 않고 박꽃도 피지 않았으며 곰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그냥, 정복이만 바빴다
5.올빼미
하루는 아버지가 작은집에서 뚱뚱한 아이를 데려왔다 인사해라, 네 셋째 형이다 새로 생긴 형은 말도 하지 않았고 학교에 가지도 않았다 그저 밤중에 앉아서 눈뜬 곰들과 노는 게 전부였다 연탄가스를 마셨다고 했다
6. 불새
우리는 정복이네보다 해발 30미터가 낮은 곳에 살았다 길이 점점 좁아쳤으므로 그 집에 불이 났을 때 소방차는 우리 집 앞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불타는 곰발바닥들을 버려두고, 그렇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 사실 독수리 오형제는 독수리들도 아니고, 오형제도 아니다. 다섯 조류가 모인 의남매다. 다섯이 모이면 불새로 변해서 싸운다.
-권혁웅, 「독수리 오형제」 전문
위의 시는 과거 1980~90년대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만화영화 <독수리 오형제>로 우리나라에 방영된 일본 만화의 서사구조와 인물구성을 그대로 빌려와서 현실을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우주의 악마 알렉터에 대응하여 각각의 용사들이 독수리, 콘돌, 백조, 제비, 올빼미로 활동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합체하여 불새로 변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이 1970~80년대 한국의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로 뒤바뀌어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독수리 오형제의 기지는 산꼭대기 허물어져가는 살림집으로, 큰형 독수리는 이기적이고 무력한 장남으로, 둘째 콘돌은 싸움꾼이자 문제아로, 셋째 백조는 술집 여종업원으로, 막내 제비는 힘없고 순진한 꼬마 웨이터로, 넷째 올빼미는 가난하고 폭력적이고 무능한 아버지가 바람피워서 낳아온 연탄가스를 마신 식물인간과 같은 자식입니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적인 만화영화의 캐릭터와 가난하고 남루한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현실의 캐릭터가 빚어내는 충돌과 부조화가 이 시의 극적 구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¹⁷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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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극적 특성은 대화, 독백, 발달한 어법, 무운시, 긴장된 상황과 정서적 갈등의 강조에서 생길 수 있다. 브라우닝은 시종과 석류(bells and pomegranates)」의 부제로 ‘극적 서정시’(dramatic lyrics)라는 문구를 사용하였다.(이명섭, 『세계문학비평사전』, 을유문화사, 1985,61쪽 참조.)
168) 박태진, 「황동규 시인의 ‘극적서정시법’의 창작교육적 의의 탐구」, 《한국문예창작》, 2006. 12(제5권 2호, 통권 10호)
169) “1981년인가 1982년 신대철 시인이 국문과 교수로 있는 국민대로 문학강연을 갔다가 문학서클 학생들이 몇 파트로 나누어 이 작품(바다로 가는 자전거들)을 연극적으로 낭송하는 것을 듣고 보며, 아! 이 시가 꽤 극적일 수가 있구나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황동규, 『시가 태어나는 자리』, 문학동네, 2001,253~259쪽 참조.)
170) 박상수, 「매스미디어시대 한국 현대시의 전개방향 고찰」, 한국문예창작학회, 《한국문예창작》, 2008. 12(14호), 99~101쪽 참조.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5. 1. 23
맹태영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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