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체포 (1597)
주세페 체사리
주세페 체사리(Giuseppe Cesari, 1568-1640)는 아르피노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매너리즘 화가이다.
그는 프레스코화에 능했는데 대칭적인 구성,
정면성과 도식화를 통한 명확한 묘사, 크고 당당한 인물 구성 양식이 특징이다.
체사리는 1600년 무렵 로마에서 가장 ‘잘나가는’ 화가였다.
교황 클레멘트 8세와 식스투스 5세의 신임을 연이어 받았던 그는
라테란 대성전을 비롯한 로마 주요 성당들의 천장화와 벽화를 많이 그렸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체사리는
균형 잡힌 구도에 장엄한 인물들을 안정적으로 배치해서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체사리는 바로크 시대의 혁신을 이끌었던 카라바조를 비롯해
동시대 여러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바로크 미술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가 1597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체포>는
마태오복음 26장 47-56절, 마르코복음 14장 43-50절,
루카복음 22장 47-53절, 요한복음 18장 1-11절이 그 배경이다.
서양 문화에서 보름달은 밝고 따뜻한 태양의 반대편에 있는
춥고 어둡고 사악한 존재라고 여겨졌다.
체사리는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으로 군사들에게 붙잡힌 것도
구름에 달무리 진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보름달은 불길한 사건의 조짐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두 개의 광원을 다루는 방식이다.
밤하늘의 보름달에서 비치는 배경의 은은한 조명과
횃불로 인물들을 비추는 인공적인 조명을 다루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래서 동판에 그린 이 작품은 어두운 방 안 촛불 아래서
가까이 두고 보기에 딱 좋은 그림이다.
시린 달빛과 붉은 횃불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군사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칼과 창을 들고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와서 아우성치는 상황이다.
배경에 있는 동굴은 겟세마니 동산에 있는 풍경을 고려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동굴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중앙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 속옷과 푸른색 겉옷을 입은
예수님이 상체가 반쯤 벗겨진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난폭하게 체포되시는데,
예수님과 군사들의 회전하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는 역동성을 더해주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예수님 머리에 있는 후광은 그분의 거룩함을 더해준다.
오른쪽 중경에 등을 보이며 달아나는 대머리 남자가 있는데, 그가 유다이다.
유다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아 잘 끌고 가시오.” 하고 군사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고,
예수님께 다가가 “스승님!”하고 나서 입을 맞추자,
군사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으며,
유다는 자기가 하러 온 일을 하고 나서 그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마르 14,44-46)
오른쪽 아래에 단검을 휘두르는 자가 베드로이고,
베드로 아래에 넘어져 있는 자가 대사제의 종 말코스이다.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는데,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기 때문이다.(요한 18,10)
왼쪽 전경에는 벌거벗은 사내가 칼을 휘두르는 군사에게 붙잡히고 있는데,
그는 붙잡히지 않으려고 겉옷을 벗고 있다.
이는 성경에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마르 14,44-46)
라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폭력과 배신이 난무라는 혼돈의 상황에서
여린 금빛 후광을 두른 예수님 몸짓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이처럼 색채, 방향, 밝기가 미묘하게 서로 다른 빛들이
곱게 연마한 동판 위에서 떠오를 때,
마침 창밖에 보름달까지 보인다면
그날의 혼란이 더욱 실감 나게 느껴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