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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幸福)
성경: 고후6:9-13절
사람들은 외모나, 아름다움이 행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은 잘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 미인들과 미남들은 돈과 인기를 얻고,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 여성에게 “아이고 아주 건강해보이십니다.” 라고 인사를 했는데 여성이 좋아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그런 인사는 여성에게는 실례라는 것입니다. 여성에게는 무조건 “그 동안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날씬해졌습니다. 멋이 있습니다. 예쁩니다.” 하고 인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 여성이 날씬해지고 싶어서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에게 “살을 좀 빼려 왔습니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여러 가지를 살펴본 후에 “부인은 멀건 죽 한 그릇에 과일 두 쪽을 잡수세요.”하고 말했습니다. 방법이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그 말은 듣고 이 부인이 이해 안 된다는 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을 식후에 먹습니까. 식전에 먹습니까.”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다 가꾸고, 꾸미고, 고치고, 붙이고 야단입니다. 이유는 좀 더 예뻐져서 행복해 지려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또 집이나 재산이 행복을 줄 것 같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집은 649평이요, 땅은 1040평으로 100억이 훨씬 넘습니다. 자동차는 124대를 가지고 있는데 500억이나 되고 20억이 넘는 ‘부가티’자동차도 있습니다. 총 재산은 15조 2천억입니다. 그러나 그 회장님 지금 숨만 겨우 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재산과 좋은 집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큰집과 별장, 전원주택을 짓습니다. 돈이 많아도 그렇지 30억 원짜리, 100평의 아파트를 짓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뿐입니까. 많이 가지는 것입니다. 광주 사람이 2,312채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2위도 광주 사람인데 2,062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이 없어서 전세나 월세로 사는 사람이 36.8%입니다.
미국의 록펠러는 대재벌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너무나 가난해서 아내에게 `가능성이 없는 가난뱅이'로 이혼을 당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말입니다.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부자가 되는 한 가지 원리로 십일조의 중요성을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일자리를 구해서 주급 30달러를 받고 너무 기뻐서 화장실에 가서 그 돈을 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 중에서 3달러를 하나님께 십일조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면서부터 위장병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려는 염려보다 돈을 지키려는 염려로 걱정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돈을 도적맞을 것 같으니까. 집에 철조망을 쳤고, 개를 길렀지만 염려가 사라지지 않아서 신경쇠약에 걸리고 위장병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병으로 고생하던 어느 날, 그는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가난할 때는 잘 살게 해 달라고 해서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돈 때문에 제가 죽게 생겼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감동이 왔습니다. "탐심을 물리치고 나를 위해 좋은 일에 써라." 그는 그때에 많은 돈을 바쳐 교회건물을 지었는데 그 교회가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 있는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그 후 2,000개의 도서관, 4,928개의 교회당, 12개의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대학교를 세웠습니다. 76세 때, 부인이 먼저 천국 갔습니다. 그것을 기념해서 1,700명이 예배 할 수 있는 교회도 세웁니다. 록펠러 채플입니다.
존 록펠러는 고백했습니다. “돈 버는 재능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 중의 선물입니다. 이런 선물을 받은 나는 원 없이 돈을 많이 벌어 보았지요. 이제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 돈을 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내린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입니까. 눈부신 외모입니까. 크고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입니까. 아니면 셀 수 없이 많은 돈이요, 재산입니까. 사람들은 다 여기에 속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행복 어디에 숨겨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천사가 "땅속 깊이 행복의 묻어 두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대표 천사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인간이 결국은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천사는 행복을 바다 속 깊은 곳에 숨기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표 천사는 인간들은 결국은 행복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천사들은 한숨을 쉬면서 인간이 발견할 수 없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때 대표 천사가 전혀 뜻밖의 장소를 제안합니다. "행복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인간 마음속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행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1. 행복 그것은 감사입니다.
이지선이라는 처녀는 1978년생으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2000년 7월30일 날 음주운전사가 6중 추돌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전신 3도의 화상을 입게 됩니다. 약 40일간의 중환자실 생활, 7개월 동안 입원해서 20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화상으로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손가락을 절단하였습니다. 그의 모습은 아주 완전히 일그러져 괴물처럼 되었습니다. 그의 책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새벽 6시, 목사님이 달려오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목사님은 한 20분을 말씀을 잊은 채 앉아 계셨습니다. 얼마 후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때를 위한 믿음이라. 이 사건을 위한 믿음입니다.” ‘10년이 넘게 주님을 믿어왔고 또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간의 신앙생활이, 그리고 지금까지 가져온 믿음이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이겨나가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들이 그 뒤로도 계속해서 다가왔지만,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일어날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20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신앙이 점점 깊어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내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리고 내 손이 왼손 보다 오른 손이 짧아졌지만 그 짧은 왼손이라도 남겨놓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손가락을 절단하려고 수술실에 갔다 나오면서 나는 손가락을 더 짧게 자르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다시 한 번 감사드렸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다면 서울을 나에게 통째로 준다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내게 위로자 하나님이 계셔서 나는 행복합니다. 나의 모습, 이 모습이면 세상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위로 자가 될 수 있고 나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옛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나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고가 있은 지 17년이 흘렀습니다. 그는 최근 KBS '톡 쏘는 인터뷰 쏘다'에서 근황을 전했습니다. 그 이지선 씨는 '생일이 2개'라고 말할 정도로 사고 전과 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었습니다. 그는 공부해서 사회복지학 박사가 되어서 교수가 된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겨울이 좋다. 흰 눈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 오면 "저 피어나는 잎과 꽃을 보라, 봄은 봄대로 너무 좋다." 여름이 오면 "우거진 초목 작열하는 태양의 여름이 좋다.“ 가을이 오면 ”가을은 나에게 겸손을 가르쳐주고, 열매를 안겨주니 좋다." 그러나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은 추워서 틀렸고, 봄은 졸리게 하고, 게으르게 만들어서 싫고, 여름은 덥고 땀이 나서 싫고, 가을이 오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나 자신이 싫다. 한국이 싫다. 사는 것도 별로다. 나는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
OECD 중 우리나라가 가정 파탄수가 제일 많습니다. 그리고 자살률도 가장 높습니다. 이것을 보면 환경이나 조건이 좋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마음의 문제요,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감사를 담기 전에는 행복은 멀다는 것입니다. 행복이 머물려면 감사가 필수입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 행복이라는 꽃이 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감옥에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조건이나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삶의 태도로써, 신앙에서 나옵니다. 정말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물어봐야 합니다. 만약에 그것이 없고, 불평과 불만이 자기 마음에 떠나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나에게 믿음이 없는 증거고, 주님이 주신 평안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2. 행복은 기대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어른 중 누가 더 행복할까요. 두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때로 징징거리기도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웃고 떠들면서 지냅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의지할 부모가 있고,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때가 되고 어두워졌는데도 어른들이 집으로 오지 않는다면 애들은 울고, 불안해할 것입니다. 의지 할 사람이 있으면 마음에는 안정이 옵니다. 그러므로 기댈 곳이 있고, 믿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우리스 마에터링크(Maurice Maeterlinck)가 쓴 'Blue Bird', 소위 파랑새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는 일곱 귀신이 들어서 인격이 완전히 깨져 버리고 파산한 사람입니다. 또 성경에 죄인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아 창녀 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무슨 행복이 있으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다음같이 고백하는 것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내가 전에 알지 못한 행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모든 자들은 잠에서 막 깨어난 어린아이처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작가는 막달라 마리아의 입을 통해서 행복을 어린아이가 잠을 푹 자고 눈을 살짝 떴는데 자기를 쳐다보고 웃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빙긋이 웃습니다. 행복을 표현하는 그림 같은 장면입니다. 이런 행복을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었습니다. 그 불행했던 여인이 갑자기 부자가 된 것도, 신분이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믿으면서 막 깨어난 어린 아이가 느끼는 그 행복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제 의지할 데가 있고 기댈 대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의 어깨를 내어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믿는다는 것은 의지 하는 것이요. 의지하는 것은 기대는 것입니다.
퀴즈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사랑하시는 자, 별명은 우뢰의 아들, 출신은 갈릴리, 마지막 있었던 곳은 밧모 섬, 가족 관계는 아버지 세베대, 어머니 살로메, 동생 야고보 직업은 어부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사람입니다.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마4:21-22). 초기에는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높은 자리를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막10:35-37)
그러나 그는 자기 스스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로(요13:23)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중요한 자리에는 항상 동행했으며, 십자가 아래까지 가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한 유일한 제자였습니다(요19:26).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한 촌사람들에게 불을 내려 멸하여야 한다고 해서 ‘우뢰의 아들’ 이란 별명을 들을 만큼 성격이 과격한 사람이었지만(눅9:54), 그는 점점 변해서 사랑을 가장 강조한 사람이 됩니다. 요한1서에는 사랑이란 말이 60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요일4:7) 그래서 바울을 믿음의 사도, 베드로를 소망의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말합니다.
저는 최후 만찬석상에서 주님의 품에 기대어 앉은 제자였습니다.(요13:33). 그리고 그는 스스로 요한복음에서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하실 때에 베드로는 “내가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호언장담하였으나,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날 그 자리에 베드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 십자가 아래까지 간 사람은 이 요한입니다(요19:26). 주님은 최후의 십자가에서 그 모친 마리아를 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요19:27). 전승은 저가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요한은 주님께 몸을 기대었던 사람이요. 사랑하시는 제자입니다. 그는 고난도 받고, 종래에는 주님이 가신 그 죽음의 길을 갔지만 행복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 10년 만에 남편의 사업이 망해 정신이 이상해져서 집을 나가버렸고, 아이들은 양육을 할 수 없어서 고아원에 맡기고, 자신은 그 후유증으로 폐병에 걸렸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인내함으로서 회복을 합니다. 남편의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폐병도 낳았습니다.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나는 내 앞에 두 눈을 뜨고서 노려보는 절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뒤에서 그 절망을 녹여 버릴 듯이 쳐다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내가 절망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하나님 편으로 몸을 의지하였을 때 절망은 힘을 잃고 살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뢰하는 자, 자신에게 기대는 사람에게 성이요, 요새요, 담이 되십니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불의를 만나고, 악한 자가 득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의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1요5:4-5절)
3. 행복은 깨끗함입니다.
짝퉁이라는 말은 가짜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나라가 아주 크지만, 거짓 제품이 만연하여서 짝퉁의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맥도날드나 명품 가방, 자동차 등 거의 모두 제품을 짝퉁으로 만듭니다. 심지어 세계적인 다국적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의 CEO 헨리 맥키널이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중국 내의 위조 공장이 우리 본사 공장보다 크다” 기막히는 일입니다.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비관하여 자살을 하려고 농약을 마셨는데 죽지 않고 살아났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까 그 농약이 짝퉁이요. 가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믿음에도 가짜 믿음이 있습니다. 조그만 어려움이 닥쳐도 금방 원망하고 낙심하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거룩함에서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거룩함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더러운 생각, 욕심과 탐욕,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어도 행복한 사람은 아닙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깨끗한 것, 의로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더러운 것들을 좋아합니다. 귀신들이 가까이 있으면 불안해지고, 두렵고, 마음에 흔들립니다.
귀신들은 쓰레기통을 찾는 파리나 모기같이 더러운 것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달라붙습니다. 주님은 빛이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가까워지면 더러움은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좋아지면 세상적인 것이 멀어집니다.
거룩함은 무엇보다 우선 적인 것이요. 금이나 은보다도 더 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라 하셨습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명이요, 존재의 문제입니다. 더러움은 죄요, 죄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다 막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술도 담배도 안하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라고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결론
선물하기 위해 친구 두 사람이 꽃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꽃가게에서 둘이서 논쟁이 붙었습니다. 꽃을 선물하면 꽃을 주는 사람이 행복할까. 아니면 꽃을 받는 사람이 행복할까. 결론이 나지 않아서 꽃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행복할 것 같습니까?" 꽃가게 주인이 웃으며 "꽃을 판 내가 제일 행복하지요." 그러더랍니다. 여러분 복음은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뉴욕에 에밀리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불행한 여자라고 한탄하고 살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멋진 남자와 데이트도 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었지만 어떤 남자도 자기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슬퍼했습니다. 그녀가 윌리엄 제임스라는 유명한 상담가를 찾아갔습니다. 이 박사님은 그에게 처방을 내렸습니다. 첫째 백화점에 가서 새 옷을 사 입을 것 단 점원이 골라주는 것으로 살 것, 둘째 미장원에 가서 헤어스타일을 바꿀 것 단 미용사가 권하는 스타일로 할 것, 셋째 우리 집 파티에 와서 파티 진행을 도울 것입니다.
다음 날 에밀리는 제임스 교수가 시킨 대로 백화점 점원이 골라준 새 드레스를 입고, 미용사가 멋을 내 만들어준 헤어스타일을 하고, 제임스 박사의 파티 장에 와서 파티가 성공적으로 끝나도록 다른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쳐져있던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그의 두 눈은 반짝 거렸습니다. 남을 위해서 섬기며 봉사하는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파티가 끝나자 에밀리를 집에까지 바래다주겠다는 청년이 여럿이 나타났습니다.
이 날 에밀리는 자신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충분히 매력이 있고,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도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날 에밀리는 큰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 기뻐해야 마땅한데 잘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지금도 함께 하신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당연히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는 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 하는 말을 생각해 보세요. 웃으라는 것입니다. “스마일”, “김치” 라고 말하면서 웃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웃어야 사진이 예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커서 참 좋은 날인데 우리가 웃지 않습니다.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진사처럼 “스마일!”을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에게 행복이 가득 하게 됩니다. 웃음은 마음속에 등불과 같아서 우리를 환하게 밝게 해줍니다. 그 환하고, 밝은 마음에 행복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먼저 우리가 이것을 다시 깨달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풍성한 은혜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은 행복이 될 것입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