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 가창 10월항쟁등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일어선 프랑스 대혁명은 영국 청교도혁명, 미국 독립혁명과 함께 세계 민주주의 3대 혁명으로 일컬어진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까지 진행되었다.
평등권 획득을 목표로 궐기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대혁명이 시작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혁명이 1794년 7월 28일에 끝났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루이 16세 일가를 끌어내린 자코뱅당은 사회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른바 ‘공포 정치’를 펼쳤다. 그들은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세력을 철저히 죽였다. 그러다가 결국은 자코뱅당 지도자 로베스 피에르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것으로 공포정치가 막을 내린다. 그날이 바로 1794년 7월 28일이었다.
공포정치가 끝나기 단 사흘 전인 1794년 7월 25일 32세 청년 안드레아 셰니에가 단두대에 끌어올려져 목숨을 잃었다. 그는 로베스 피에르에게 눈엣가시였다. 안드레아 세니에는 줄곧 로베스 피에르의 정책에 반대해왔고, 인기 높은 시인이었다. 뒷날 그는 다른 예술 갈래의 실존 주인공으로 높이 추앙되는데, 조르다노의 오페라 작품 〈안드레아 세니에〉와 키스 워너 감독의 영화 〈안드레아 세니에〉 등이 대표 작품들이다.
안드레아 세니에는 ‘국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국가반역죄는 1950년의 보도연맹 희생자들이다. 이승만 정권은 1949년 관변단체 보도연맹을 출범시킨 후 좌익 활동 경력자 등을 포함한 약 30만 국민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건전한 의식을 가진 양민으로 사상 전향을 시키겠다는 것이 취지였다.
지역별로 인원수를 할당한 까닭에 공무원들은 앞을 다투어 아무나 보도연맹에 등록했다. 평소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은 물론, 우익단체 활동가에서 소설가 황순원까지 마구 회원 명부에 올렸다. 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정권은 침략군에 협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예비 검속’하여 경북 경산 코발트 폐광, 대구 달성 가창골 등지에 끌고 가 마구 학살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까닭도 모르고 죽었는지 지금도 그 숫자조차 모른다.
1960년 4월혁명이 일어나자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그들을 ‘빨갱이’라면서 ‘혁명재판’에 넘겼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국가반역죄로 처형되고, 유족은 다시 국가반역죄로 투옥되었던 것이다.
2020년 세워진 가창골 입구 추모비에 이름이 새겨진 사람은 800여 명뿐이다. 희생자는 1만여 명으로 추정되지만, 유족들은 지금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보도연맹 희생자로 밝혀지면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두려워하고 있다.
보도연맹 사건을 일으킨 예비검속은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한 ‘조선정치범 예비구금령’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친일잔재였다. 프랑스는 1792년 작곡되어 대혁명 시기 중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라마르세예즈’를 국가로 채택했지만, 우리나라는 1950년의 ‘예비검속’이 여전히 단두대로 살아 있는 세상인가? (*)
[더 읽어보기] 고희림 시집 《대가리》
양민학살부터 세월호까지, 달라진 게 없는 국가
1963년 2월 6일, ‘8171부대 박 상병’은 ✧✧일보에 “대가리는 표준어인가?” 묻는다. 그는 “보통 우리가 쓰는 말 중에 ‘대가리頭’라는 말이 사투리인지 표준어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가리’라는 말은 동물에 대해서만 쓴다고 하던데 과연 옳은가요?”라면서 답변을 기다린다. 대가리가 표준어인지, 동물에게만 사용되는 말인지, 그는 두 가지를 묻고 있다.
신문은 질문 바로 아래에 답변을 달고 있다. 신문은 “대가리는 (1)머리의 속어 (2)동물의 머리 또는 길쭉한 물건의 머리가 되는 부분입니다” 하고 전제한 뒤 “그러므로 사람의 머리를 ‘대가리’라고 해서는 점잖은 사람이 취할 언어범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표준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대가리는 표준어이다. 닭대가리, 콩나물대가리, 못대가리 등 사람 아닌 것들의 머리 부분은 대가리이다. 어쩐지 품위가 없어 보여 닭머리, 콩나물머리, 못머리로 표현한다고 해서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사람을 향해서는 “대가리 나쁜 인간”이라고 해도 되고, “머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된다. 사람에게 대가리라는 말을 쓰는 것은 비속한 언어 구사이기는 하지만 사투리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인원 수를 헤아리면서 “대가리를 센다”라는 말은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비인간적 인식이 고스란히 노출된 표현일 뿐이다.
그런데 한 시인이 《대가리》라는 제목의 시집을 냈다. 충격적인 제목이다. 흔히 시인이라면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하지 않나. 시인이 지독한 비어 중 하나인 대가리를, 그것도 작품 제목으로만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의 표제로까지 사용하다니!
시인이 사람을 두고 대가리하고 부를 리는 없다. 짐작하건대, 시인은 사람을 대가리로 취급하는 누군가의 비인간적 행태에 대해 시적 비판을 가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가리를 시집 제목으로까지 해야 하나 싶은 느낌이, 독자인 내게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 〈분노〉를 읽어보면 그런 느낌은, 사람이 대가리로 취급되는 잘못된 세상에 대한 나의 분노가 아직 미약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분노는 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날카로움의 끝에는 영혼이 서려 있음을
숭고함은 외마디 비명 끝에 따라옴을
그리하여,
비명처럼 날카로운 분노의 용광로를 거치지 않고는
결코 삶에 이를 수 없음을 (중략)
그대가 만약 근현대사를 알고 싶다면
먼저 그대의 마음의 분노를 키우라 (중략)
승리는 일시적이지만
분노는 영원하다
아, 사랑은 슬프고
분노는 사랑보다 숭고하다
시인의 함축된 표현을 산문적으로 무미하게 풀어내면, ‘사랑하면 분노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더 짙은 슬픔을 맛보아야 하고,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분노하게 된다. 살아있는 영혼의 소유자는 근현대 앞에서 분노하게 되고, 날카로워지고,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래서 분노는 사랑보다 숭고하다.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근현대사의 한 예가 바로 양민 학살 사건들이다. 1946년과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신복룡은 《한국분단사연구》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에 낙동강 전선이 위험하게 되자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들은 형무소나 경찰서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끌어내어 죄가 있든 없든, 경범이든 중범이든, 기결수와 미결수를 가리지 않고 처형했다. 특히 대구와 왜관에서 헌병들은 200∼300명씩 줄을 세우고 사살했으며, 그 중에는 12, 13세의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총이 부실하여 단발에 사살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시 확인사살을 했고, 그러고도 살아남은 자의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라고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경상북도의회도 《양민학살진상규명특별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를 펴내어 “이 당시에 대구형무소에서 군에 이첩되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행방불명자는 모두 1,402명이었다”라는 역사의 증언을 남겼다.
고희림 시집 《대가리》에 여섯 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는 〈대가리 1〉 또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어떻게 학살되었으며, 또 어떻게 ‘대가리’로 취급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가는 계산적이었다
냉정하게 분류하고 머리 숫자를 중요시했다
명단에 오른 자와 체포된 자
체포된 자와 도라꾸에 실린 자
골에 도착한 자와 구덩이에 엎드린 자
사살된 자와 사진에 찍혀 미군 보고서에 첨부된 자
<하나 예외, 함께 사살된 젖먹이 아이와 미취학 연령대 소녀>
이들은 오직 대가리 숫자였다
그가 3대 독자이든
그녀가 만삭이든
내일 혼례식을 앞둔 약혼녀든
억울하게 명단에 오른 자든
그가 독립운동을 한 자든 애국자든
그를 죽여 되레 전쟁에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로지 명단에 있고 숫자만 맞으면
그 자는 사살되고 생명은 추상 되어 대가리 숫자가 되어
그 골짝 우렁찬 살생의 함성 울릴 때
나무와 숲의 푸른 눈물에
짝짓기에 겨운 여름 귀뚜리조차 감히 울지 못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도
사람들은 대가리를 갖고 놀았다
대가리는 오직,
1960년
군경에 신병이 인계된 대구형무소 수감자 명단 1,402명
구슬치기처럼 숫자로만 의미를 가졌다
여전히
몸이 가진 삼라만상의 가치 중
오로지, 대가리 숫자만 취급하는
그 버르장머리를 숭상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머리를 싸매고 헤아려보아야 간신히 느낌이 오는 그런 난해시가 아니다. 자욱한 비유와 상징의 안개 속을 헤매느라 ‘해석의 오류’를 범할 걱정도 없다. 시집의 발문을 쓴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 소장은 “고희림의 시예술은 추한 것을 추한 모습으로 폭로하면서 일상에서 파묻혀 있는 아름다움을 예민하게 포착해냄으로써, 또 듣기 좋은 원론에 의지하기보다 몸으로 겪어서 얻은 삶의 진실에 충실하고자 함으로써, 그리하여 해방을 위한 가치투쟁과 진실투쟁을 하나로 녹여냄으로써, 이 시대 리얼리즘 시예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활짝 열고 있다”라고 평가한다. 〈대가리 2〉를 또 읽어본다.
국가는 계산적이었다
냉정하게 분류하고 머리 숫자를 중요시했다
봄밤을 설치며
여행을 떠난 부푼 아이들이었다
무지개와 같던 꿈의 턱이었던
아침의 문지방을 넘어
이 세상을 다음 세상으로 옮겨놓을 듯
순간 환상의 청룡열차를 타 오르다가
급하고 거대한 대가리 바다로 뚝 떨어진,
필연적 악연의 시간이었다
태초의 시간을 빼앗겨
돈의 사슬에 묶인 채
쳇바퀴를 돌던 배 구석구석
화물과 함께 짐짝처럼 가득 채워진 아이들이었다 (중략)
가만히 있으라 해서
가만히 있은 아이들이었다
어딜호 도망칠 수 없어서 살려달라고 문을 두드리던 아이들이었다
별처럼 높은 목청 물을 밀며
손가락뼈가 부러지도록 물 속을 긁었다
하염없이 기다리며
두껍고 차가운 물의 이불을 덮고 잠들거나
눈 뜨고 가라앉은 아이들이었다
대가리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군
계산기를 두드리던 국가는 죽은 뱀처럼 버텼다 (중략)
대가리 숫자가 얼마 되지 않으니
이제 그만 단식과 삭발을 멈추어라
한 대가리에 이만큼씩 지전을 세어보아라
아직 어린 나이에 비하면
그게 적은 돈이 아니다
〈대가리 1〉과 〈대가리 2〉 사이에는 5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듯이 느껴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시인은 〈대가리 1〉과 〈대가리 2〉의 1행과 2행을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표현했다. “(이승만 정부든 박정희 정부든 박근혜 정부든) 국가는 계산적이었다. 냉정하게 분류하고 머리 숫자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고희림 시인의 시집 《대가리》를 차마 계속 읽을 수 없었다. 염무웅은 시집 권두에서부터 시작하여 불과 다섯 편째 작품인 〈광장〉까지 간신히 읽은 후 여섯 째 수록 시인 〈대가리 1〉 앞에서 책을 덮었다. 그리고 시인에게 편지를 썼다.
“한 편 한 편이 해방의 열정과 혁명의 순결에 대한 치열한 동경으로 눈이 부시다. 〈광장〉을 읽은 후 나는 그만 책을 덮었다. 이 다섯 편으로 벅차다. 더 읽는 건 과욕이다.”
그러나 나는 시집을 덮을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시에 철저히 ‘유혹’을 당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날 소년처럼 유혹했다 / 난 당신을 소녀처럼 유혹했다 // 우리의 공통점은 맹목성, / 순수의 다른 이름이다 (중략) // 멀리서 겨우 눈짓만 하더라도 / 당신을 유혹하는 나를 기억하며 / 나를 유혹하는 당신을 기대한다” 같은 귓속말을 듣는 “저녁 내내 얼굴에서 젖가슴까지 나는 빨개졌다.” (2016년 5월 20일, 오마이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