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집

[풍경소리]

추억의 집

돌아갈 집이 있다.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집은 가족의 따뜻한 품이요 그리움이다.  누구나 저마다 추억을 간직한 집이 있다.

청도군 화양읍 진라길 21-2에 3대가 함께 살았던 집이 있다.   본채는 정지이, 큰방, 마루, 작은방 4칸이다.   사랑채에는 대문간, 사랑방, 고방, 방앗간이 있고, 별채는 고방, 마구간, 정랑이 있는 ㄷ자형이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고 지붕개량사업으로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었다.   큰 나무 대문이 한 칸이라고 마을에서 대문 집으로 불린다.

할아버지(庭자 龍자)께서는 1890년 10월 1일에 큰집 진라동 860번지에서 태어나셨다.  결혼 후 큰댁에서 살림 나와 1987년 3월 20일 아흔일곱에 아침 잘 드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고향집 한 곳에서만 사셨다.

고모 세분이 살다가 시집갔고, 큰삼촌은 6.25 전쟁이 일어나 학도병으로 끌려가 전사했다.   사랑채 기둥에 ‘충절의 집’ 팻말이 붙어 있었다.   작은삼촌은 같은 동네에 살림 나갔다.

장남인 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살았다.   아버지는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엄마 나이 스물셋에 집을 나간 뒤 생사를 알 수 없었고, 불우한 운명을 타고 유복자가 태어났다.   세월이 흘러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경산코발트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 진실규명 결정서’를 받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 옛날 부엌, 마루, 사랑방에 얽힌 이야기이다.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소나무 갈비로 불 때서 밥을 한다.   명절, 제사 때에는 솥뚜껑을 엎어 놓고 전을 부친다.   밀주를 담아 부뚜막에서 술도 거런다.

대청마루는 나무로 만들어 삐끄덕 소리가 난다.   마루 뒤쪽에 쌀 뒤주가 있고 벽에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흑백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설 차례도, 자정이 넘어 모시는 기제사도 마루에서 지낸다.   이런 풍경은 ‘김종욱 님의 문화산책, 꽃이여, 북랜드, 2020년 12월’ 에도 있다.

“대청마루 윗부분의 벽을 조금 파 내고 그곳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면서 이를 ‘감실’ 또는 ‘사당 벽장’이라 하였다.   개화기에 이르러 사진이 보급되면서 일부 개명한 집에서는 신주 대신 사진을 걸기도 하였다.   지금도 시골집에 가보면 대청마루에 뒤주가 있고 그 위에 빛바랜 흑백 사진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방 가마솥에 장작불로 소 죽 끓이고 방도 덥힌다.

“가마솥 장작불로

소 죽 끓이고

남은 불에 고구마 구워

긴 겨울 참 먹고

마지막 불씨 화로에 담아

옹기종기 손 녹이던

그 시절 고향집 장작불이

그리운 때이다.(자작시, 2021년 1월)

설, 추석에는 방문을 마당에 눕혀 놓고 문종이를 발라 명절 치레한다.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시는 인자한 모습이 보고 싶다.  평생 일만 하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젊어서는 큰집 농사를 다 지었다.   소 두 마리를 몰고 먼산에 가서 한 마리에 나무 짝 2동씩을 해 왔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지게를 지고 땔감을 했다.   술은 적당히 드시는 애주가다.   담은 막걸리를 평생 드시다가 말년에는 엄마가 밀주를 담을 수 없어 소주로 대신했다.   사랑방에 소주 큰 병을 두고 하루에 4번 반주로 잡수신다.

한 많은 인생을 살다가신 울 엄마!   택호는 사리댁이다.   각남면 사리골에서 시집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젊어서는 마을 부녀회장을 오래 했다.   동네 사람 제주도 단체 여행도 주선하고 재치가 있었다.

한복 바느질 솜씨는 2등 하라면 서럽다.   절숙옷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인근 동네마다 초청해서 인기가 많았다.   삯바느질로 모아둔 돈은 아들 학비에 보탰다.

한밤중에 원인도 모르게 우는 아이를 업고 오면 등을 만지고 손가락을 따서 웃게 해 돌려보내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어린 시절 재미난 기억도 있다.

소 죽 끓이고 나면 가마솥에 발 담그고 때를 씻는다.

눈 오는 날이면 담 밑에 막대기로 바지게를 바쳐 새 모이를 뿌린다.   참새가 모이를 쪼아 먹으면 긴 끈에 묶인 막대기를 당겨 새를 잡는다.   ‘정말 웃기는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동네 잔칫날 저녁에 친구들이 사랑방에 모인다.   대표로 잔칫집에 바가지와 주전자를 가지고 가서 단자를 타 온다.   배고픈 시절이라 돼지고기, 전, 단술이 그렇게 맛이 있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

긴 겨울밤 초당방에 모여 새끼 꼬며 구운 고구마와 동치미로 참도 먹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00년 된 흙담집 본채를 지붕은 그대로 두고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생활에는 불편이 없지만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가끔 친척이 모여 1박 하며 소박한 찬에 소주 한 잔으로 옛날 생각하며 정을 나눈다.

시골 풍경이 그리워 서울과 울산에 사는 고종사촌이 자고 간다.

대구 사는 아들 친구가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하룻밤 지내다 온다.

눈 감아도 그리운 그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 다닐 때까지 살았다.   청도읍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체신부 공무원인 아내와 결혼하여 신혼을 보낸 집이다.

지금은 사랑채 흙벽이 무너져 보기에 흉하다.   언젠가는 모두 허물고 조립식으로 지어 나를 아는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코로나19로 어렵고 힘든 한 해를 보냈지만 이제 곧 봄은 온다.   내 고향 추억의 고향집에도 봄은 오겠지!

음력 섣달 그믐날 고향 생각나서 ‘고향의 봄’ 노래 한 곡 하련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021년 2월 11일(섣달 그믐날)

[☆ centi ☆]

한참을 울컥울컥 하며 울었네요
옛날에 증조 할아버지가 저 어렸을때 말리고 있던 고추 뿌수다가 우니까 엄마 있는 약방 쪽에 델려다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할머니 기억도 많이 많이 나고요 ㅎ ♡

[풍경소리]

고추 때문에 운 기억은 모르겠는데
옛날 생각이 많이 나겠지 ㅋㅋ

[아침햇살]

글이 다 장면처럼 지나가고,
일대기가 느껴집니다~

[풍경소리]

좋은 기억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