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부부금슬/ 80세⇒장수 나비는 춥고 황량했던 겨울을 지나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에 찾아오는 봄의 전령사다.
옛사람들에게 겨울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것 보다 혹독했을 것이고 춥고 배고픈 계절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봄을 맞이하는 기쁨이 지금보다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때문인지 봄을 알려주는 나비 또한 기쁨을 상징한다.
《장자》의 ‘호접몽’은 인생의 덧없음을 말해주는 것이긴 하지만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던 순간을
즐겁게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꿀을 따고 짝을 찾는 나비의 모습이 옛사람들에게 즐거움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나비의 상징 의미가 기쁨, 즐거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사랑하는 남녀를 꽃과 나비에 비유한다. 그래서 나비는 또한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한다. 한편 나비 접(蝶)자는 80세를 뜻하는 질(耋)과 중국식 한자음이 같기 때문에
80세 또는 장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길상적인 상징 의미를 가진 나비는 미술품이나 민속품 등에
폭넓게 적용되었으며 그 쓰임새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혼수품이나 베갯모, 매듭 등에 쓰인 나비 장식은 부부의 금슬이 좋기를 기원하는 것이며
함이나 가구 등에 장석으로 쓰인 나비는 부부금슬 또는 기쁨을 의미한다.
고양이와 함께 그려지는 나비는 70세를 맞는 기쁨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장수의 의미를 가지며,
국화와 함께 그려지는 나비는 80세가 될 만큼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모란과 나비는 부귀영화의 기쁨을 기원하는 것이며,
덩굴식물과 나비는 자손 번성의 기쁨 또는 장수의 기쁨을 의미하고,
연꽃과 나비 또한 자손 번성의 기쁨을 기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화조도. 3폭 중 제3폭.
첫째 폭에는 석류나무와 닭 한 쌍, 둘째 폭에는 오동나무ㆍ대나무와 봉황 한 쌍이 표현되었음에 반해
이 셋째 폭에는 커다란 모란꽃 아래 공작새 두 마리가 있다.
모란꽃 위에는 나비 두 마리가 노닐고 있다.
나비는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 등을 나타내며,
모란과 공작은 부귀와 출세를 의미한다. |
신사임당이 그린 수박 그림.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8폭 중의 한 폭이다.
신사임당은 15세기 전반에 활동한 작가인데,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들은 대부분 초충도이고,
산수도도 있다. 수박 두 덩이가 땅 위에 뒹굴고 있고,
수박덩굴은 길게 호를 그리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뻗어 있다. 그
끝에는 패랭이가 피어 있고 덩굴 위에는 나비가 날고 있으며,
땅 위에는 쥐 두 마리가 수박을 파먹고 있다.
여기서 수박은 씨가 많기 때문에 다산의 상징으로 쓰인다.
자연의 즐거움과 다산의 소망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조선 후기 화가 남계우(南啓宇, 1811-1888)가 그린 나비와 모란 그림.
남계우는 남나비라 불릴 정도로 조선시대에 나비그림을 가장 잘 그린 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향긋한 백합화와 모란을 찾아 나비들이 모여드는 모습인데,
꽃들은 진 채로 화사하게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비들도 각기 종류가 다르고 문양도 다채롭다.
화면 상단에는 여백을 두고 나비의 크기로서 거리감을 나타내고 다양한 자세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묘사력이 주목된다.
이러한 묘사력은 한편으로 실물에 대한 철저한 관찰에 의한 것으로 보이며
다른 한편으로 제발에서도 적고 있듯이 《유양잡저》를 통해 나비의 생태를 연구한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채색, 여백의 활용, 치밀한 묘사력이 어우러져 감각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조형세계를 펼친 것이다.
해주반에 투각된 나비와 국화. 해주반은 황해도 해주지방에서 만들어내는 소반으로,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장방형으로 네 귀는 약간씩 각(角)을 굴리면서 부드러운 곡선으로 꺾여 있다.
둘째는 좌우 양측에 판각이 붙어 있는데 이 양각은 반(盤)의 후면에 홈을 파 판각의 윗부분을
장부촉 짜임으로 끼워 맞춘다.
셋째, 반면 아래에는 전후에 운각(雲脚)이라는 대(帶)가 있어 반의 힘을 받게 하고 안정감을 준다.
이 대는 운문ㆍ뇌문ㆍ만자문 등의 투각장식이 많으며, 기타 박쥐문ㆍ연화문ㆍ당초문 등도
간혹 볼 수 있다. 이 소반은 전후면에 중대를 끼우고 안상문을 투각하였으며
그 아래에는 당초문초엽을 장식하였다.
좌우 판각에는 나비와 국화문을 투각하고 그 아래에는 방형의 투공 2개를 내고 촉을 내어
족대에 내다지로 끼웠다.
판각의 투공과 문양판 주위는 음각선을 돌렸고 판각다리 끝 족대 위의 좌우에는
음각의 난을 장식하였다. 나비와 국화는 집안에 즐거움과 희망을 준다는 길상적 의미가 있어 함께 즐겨 사용되는 상징체이다.
목판. 큰 만자문(卍字文)을 지문으로 하고, 그 위에 국화꽃 세 줄기와 호랑나비 두 마리를 조각하였다.
꽃잎이 도식화되어 있어 모란의 형태와 비슷하나 작은 꽃봉오리와 줄기, 잎의 형상에서
국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능화판의 국화에는 소국(小菊)과 대국(大菊)이 있는데,
대국은 이러한 국화호접문(菊花胡蝶文)의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국화와 나비는 함께 어우러져 집안에 즐거움과 기쁨이 깃들게 한다는 길상적 의미가 있다.
영모도. 중앙의 연꽃을 중심으로 위에는 나비 한 쌍, 잠자리 한 쌍이 어우러져 있고,
새 한 마리가 연밥을 쪼고 있으며, 연꽃 아래에는 수묵으로 표현된 돌들,
그리고 두꺼비 한 마리가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중앙으로부터 상단으로는 깔끔하고 화사한 색채로 표현하고 하단과 양 옆으로는 수묵 처리로
대조를 이루고 있어 더욱 곤충들과 꽃의 조화를 돋보이고 있다.
나비는 즐거움을 상징하는데, 연꽃과 더불어 자손의 번성함을 나타내며,
특히 연밥을 쪼는 새와 더불어 자손의 번영을 상징한다.
경복궁 자경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에 새겨진 국화와 나비.
자경전은 경복궁 안에 있는 내전의 하나로 보물 제809호로 지정되어 있다.
1867년(고종 4) 경복궁 재건 때 대왕대비인 조대비(趙大妃)를 위하여 옛 자미당(紫薇堂) 터에
지은 연침(燕寢)으로, 현재 경복궁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연침이다.
동행각 · 남행각 · 북행각 등의 부속건물과 일곽을 이루고 건립되었으나
두 번에 걸친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88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전각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과 담장에는 여러 가지 무늬가 장식되어 있어 그 꾸밈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자경전의 서쪽 담은 주황색의 벽돌로 쌓은 꽃담으로, 주황색 벽돌로 여러 가지 문양을
나타내기도 하고, 중간중간에는 회벽에 매화 · 난초 · 모란 · 국화 · 연꽃 등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는 자경전이 왕실 최고 여자 어른인 대비의 처소이므로 성심성의껏 치장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 | |
원형 자물쇠를 중심으로 각종 나비 모양의 경첩과 그 외 모양의 경첩 종류를 모아 놓은 그림.
정교한 투각과 곡선의 처리가 돋보이는데,
중앙에 있는 원형 자물쇠 밑으로 가구에 부착된 것으로 보이는 ‘月’자를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맨드라미를 중심으로 나비와 잠자리 등을 소재로 한 초충도(草蟲圖).
중앙에 한 떨기의 맨드라미가 위로 뻗어서 붉은 꽃을 피웠고,
맨드라미 주위에 푸른색의 키가 낮은 꽃 등의 잡초가 올라와 있다.
탐스러운 맨드라미를 향해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려한 색채의 나비와 고추잠자리가
맨드라미를 향하고 있고, 화면 화단의 땅 위에는 기어다니는 곤충이 배치되었다.
구조를 보면 중앙의 맨드라미를 중심으로 공중의 나는 곤충과 땅 위의 기는 곤충이
상하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구성이 독특하다.
쇠똥을 굴리는 쇠똥구리들의 모습이 해학적이며,
소박한 소재에 붉은색ㆍ푸른색과 초록색의 색채가 조화롭게 사용되었다. | |
금으로 만든 나비문양의 장식과 두 개의 방울을 장식으로 단 귀이개.
이러한 금귀이개는 실제로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기보다 장식적인 경향이 강하다. 귀이개는 처음 귀지를 파내기 위해서만 만들어졌으나 점차 장식적인 성격도 띠기 시작하여
한때는 금이나 은ㆍ옥 같은 것으로 만든 것도 나왔다. 그
리고 몸체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기거나 칠보를 입혀 부녀자들이 쪽진 머리의 뒤꽂이로
애용해 온 적도 있었고 노리개로 애용되어 온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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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모양의 떨잠. 꽂이와 더불어 조선시대 여성의 머리장식을 담당해왔던 장신구이다.
옥으로 나비 모양을 새기고 그 위에 금으로 장식한 후 진주와 보석으로 감장하여 꾸몄다.
원래 떨잠은 큰머리ㆍ어여머리의 앞 중심과 양 옆에 꽂은 머리꾸미개를 의미하는데
떨철반자라고도 하였다.
떨잠은 옥판 위의 떨새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며,
이때 떨새의 모양은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떡살에 조각된 부귀다남(富貴多男)과 연꽃문양,
그리고 물고기문양. 떡살이란 흰떡을 눌러 방형 또는 원형이 되도록 여러 가지 무늬를 찍어내는 데
쓰는 판이다. 떡살이라는 말은 떡에 살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곡물로 만든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떡살이라고 불렀으며,
떡손ㆍ떡판 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 ‘살박는다’ 라고 했다.
떡살의 형태는 2방연속무늬를 만들 수 있는 장방형과 단독무늬를 제작할 수 있는 원형으로
크게 구별된다.
또한 앞뒤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양면 조각된 것, 우람한 나무에 조각된 것,
얕은 나무에 조각된 것들이 있으며, 때로는 홍두깨나 다듬방망이 같은 생활용품을 개조해서 만든 것,
누르는 힘을 고려하여 가장자리를 위로 올라오게 조각한 것,
원형단독형을 여러 개 연결시켜 만든 것 등이 있다. 화면의 떡살에는 富貴多男(부귀다남)이라는
길상적 의미를 함축한 문자가 순서대로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는 연꽃과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말 그대로 부귀와 자손이 많은 다복함을 의미하는데,
연꽃은 연이어 자손을 얻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맨 아래의 물고기를 출세를 상징함으로써 떡살에 담긴 의미가 일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