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땅_의정부교구 신앙의 길 1구간 순례
순교와 사목의 발자취를 따라
글 / 최태용
최태용 레오 의정부 Re. 명예기자
순교자공경위원회 및 성지개발 담당 홍승권 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의정부교구 설정 10주년을 맞아 교우촌과 성역지를 잇는 순례길을 조성하고, 30명의 순례단을 모집, 4월5일 순례길 선포 미사를 봉헌하고, 7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7개 구간을 완주하는 길에 1구간(황사영 알렉시오 순교자의 묘역, 의정부 교구 성직자 묘역)을 기자도 동행했다.
가칭 ‘의정부교구 신앙의 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순례길은 지난해 의정부교구 신학생들의 도보 순례 코스에서 시작됐다. 교구 내 교우촌과 성역지를 이어 코스를 짰던 순례길은 곧 제8대 조선교구장을 지냈던 뮈텔 주교가 걸었던 공소순방길이었다. 200여 년 전 순교자 선조들이 피로 지켜낸 신앙과 100년 전 뮈텔 주교의 사목 열정이 숨 쉬는 길이 하나의 순례길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홍승권 신부는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체험이자 은총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순례길은 3박4일간 걸을 수도 있고, 전체를 7개 구간으로 나누어 자신의 계획에 따라 여러 날에 걸쳐 걸을 수도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길의 의미는 교구의 중심에 있는 성지 순례 및 뮈텔 주교님의 공소 순방길을 중심으로 한 목자의 길을 따라 걷는 여정이다.
교구청에 차를 두고 구간별로 순례
‘의정부교구 신앙의 길’은 먼저 신유박해로 순교하고 ‘이벽 세례자 요한과 동료 순교자’로 시복 신청 중인 황사영 알렉시오 순교자의 묘지를 지나 병인박해로 순교하신 남종삼 요한 성인의 묘역을 거쳐 병인박해 때 다섯 명의 순교자가 치명한 양주관아 터를 차례로 순례하게 된다. 이어서 1918년 12월2~21일까지 뮈텔 주교님께서 직접 방문하신 공소들을 따라 걷게 된다. 그 길을 걸으며 만나게 되는 신암리성당과 갈곡리공소는 해방 이후 북녘의 공산치하에서 순교해 왜관 베네딕토수도원에서 시복 청원 중인 이춘근 라우렌시오 신부님과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님의 탄생지이다. 신암리와 갈곡리는 여느 공소와 다름없는 지역이었지만 두 분 순교자들이 흘린 피로 인해 장차 성지가 될 곳이다.
앞으로도 순교자공경위원회에서는 ‘의정부교구 신앙의 길’ 외에도 교구민들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신앙 선조들의 숭고한 삶을 체험하고,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는 다양한 순례길을 개발할 예정이다. ‘의정부 교구 신앙의 길’은 이미 완성된 길이 아닌 교우들의 순례와 체험을 통해 끊임없이 보완되고 완성되어 갈 길이다.
‘의정부교구 신앙이 길’은 어디서든 순례를 시작해도 무방하나 순교자공경위원회에서 나누어 놓은 구간들은 주말을 이용해 교구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두고 각각의 구간별로 순례를 한 다음 교구청으로 되돌아와 귀가하는 방법을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다.
황사영·남종삼 묘소와 성직자 묘역의 1구간
교구청 주차장을 나와 ‘경기도립의료원 의정부병원’ 버스정류장에서 일반 23번 시내버스에 올라 약 20여분을 가 ‘송추 느티나무’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버스가 진행하던 방향으로 나아가면 일명 ‘송추 느티나무’ 보호수와 마주치게 된다. 보호수를 지나 송추성당에 들러 성체조배를 하고 제1구간 순례 시작을 권장한다.
송추성당 뒤쪽으로 이어지는 ‘공릉천’의 뚝방길 우측을 따라 걷다보면 ‘교현교’와 만나게 된다. ‘교현교’를 건너 정면으로 5분 거리에 있는 부대 앞까지 그대로 직진한다. 부대 앞 묘지를 향해 오른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 능선을 향해 올라가는 좁다란 오솔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이용한다. 무덤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면 군부대의 철조망을 만나는데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계속 나아가다 철조망과 90도 구부러지는 지점과 만나게 된다.
왼쪽으로 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철조망을 따라 세 개의 배수구가 나오는데 마지막 세 번째 배수구에서 아래쪽길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 초 병조참판으로 추증된 ‘진주 강 씨 안복의 묘’가 보인다. 이 길을 따라 가면 ‘황사영 알렉시오 묘’라는 작은 입간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혹독한 박해의 상황을 북경 주교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대책을 건의했던 ‘백서(帛書)’의 주인공인 황사영의 묘는 1980년에 들어서야 겨우 그 위치가 확인됐다. 양박청랭(洋舶請來)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능지처참 형을 받은 그의 시신이 온전할 리도 없거니와 가까운 집안사람들도 모두 유배를 당한 터라 시신을 거둘 사람조차 없었다. 다행히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황씨 문중 선산에 안장한 이들 덕택에 순교자의 유해가 전해질 수 있었다.
그 후 집안에서조차 잊혀 왔던 황사영의 묘는 180년이 지난 1980년 황씨 집안 후손이 족보 등 사료를 검토하고 사계의 고증을 받아 홍복산 선영에서 황사영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발견하고, 이를 발굴한 결과 석제 십자가 및 비단 띠가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오면서 무덤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황사영의 묘는 현재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사적지로 개발되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건물 뒤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북경에 보내려 한 백서가 귀중한 교회사적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순교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여 준 굳건한 신앙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신앙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묘가 하루속히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많은 이들이 순례를 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그런데 이 지역은 앞으로 산업도로 개설로 이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교구에서 준비 중이다.
황사영 묘지를 출발하면서부터는 오던 길을 잠시 되돌아가야만 한다. 공용버스 종점을 지나 ‘24시 불가마사우나’ 뒤편을 지나게 되면 ‘가마골로167번길’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면 ‘39번국도 가마골로’와 다시 만나게 되고 ‘39번국도 가마골로’ 건너편 우측 정면으로 ‘가마골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참숱가마찜질방’ 주차장 우측에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 ‘홍복재 충효문’라는 기와집, 진보기업 삼거리 왼쪽으로 ‘진보기업’ 앞을 통과하면 정면에 ‘가마골로 156번길’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나오고 우측으로 길이 구부러진다.
울대리 마을회관이 있고 큰 느티나무가 있는 삼거리 정면에 작게 ‘천주교 순교 성인 승지 남종삼 요한 묘지’라고 쓰인 명패가 남의 집 담장 밑에 작게 보인다. 왼쪽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 장흥사슴목장을 지나 길음동묘지에 이른다. 앞에 보이는 사무실을 지나 작은 고개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한 그루 있는 소나무를 지나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곳에 세 기의 무덤이 보인다. 의정부교구 성직자 묘지이다. 임시로 조성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