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과 생가 - ‘한글이 목숨’이라던 외솔 선생께 감사와 부끄러움을 ......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는 한글날 노래 2절 가사로 한글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 지은 것이다. 선생은 이 노랫말에서 한글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언어임을 천명했는데, 오늘날 그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한글의 우수성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대학이 세계의 모든 문자를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매긴 순위에서 한글이 맨 첫 자리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나 문학가들도 한글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이 되고, 한류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우리말과 글 덕분이다. 이렇듯 한글이 이 나라의 힘을 길러줬으니 최현배 선생이 예언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날이 지나고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 외솔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은 울산시가 선생의 공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0년 병영에 건립한 것이다. 이때 생가도 복원되었다.
기념관 입구에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는 외솔 선생의 넋인 듯하여 마음이 숙연해진다. 선생은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는 성삼문의 시조를 좋아해서 아호를 외솔이라 지었다고 한다. 일본의 잔혹한 압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말과 글을 찾는 것이므로 모두가 한자를 좋아하더라도 홀로 한글을 지키겠다는 정신이 아호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리라.
기념관 마당에는 외솔 선생 동상이 생시처럼 한손에 책을 들고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한글은 정말 훌륭한 언어야! 한글로 우리의 힘을 더욱 키워야 해!”라고 하시면서 방문객을 반겨준다.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 반배를 올린다.
기념관 현관에 들어서면 커다란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건국 후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진 선생의 장례식 때 쓰여 진 것이다. 선생이 예리하고 근엄한 눈빛으로 마주 앉은 해설사를 지켜보며 제대로 해설을 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 같아서 감히 허튼짓을 못하겠다던 어느 해설사의 말이 생각난다.
옛 동료 해설사인 노선생과 기념관 관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료도 얻고, 귀한 차도 대접받아서 무척 기뻤다. 옷은 새 것이 좋고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는 말이 실감난다. 외솔기념관에는 제1‧제2전시실, 특별전시실, 영상실, 체험실, 한글교실 등이 있다. 전시실에는 선생의 업적과 삶을 알려주는 유품과 주요 저서들이 진열되어 있다.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외솔 선생의 정신과 삶을 조명해 본다.
선생은 병영초등학교를 나와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이때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을 운명적으로 만나 한글과 말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와 쿄토대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26년에‘조선민족 갱생의 도’라는 글을 발표하여 민족이 다시 살아나기 위한 길을 제시한 선생은 같은 해에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외솔 선생은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투옥되고, 교수직에서도 강제 파직되었다. 혹독한 옥살이 중에도 한글 연구, 특히 가로쓰기 연구를 계속했고, 한글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한글갈’을 편찬했다. 그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다시 감옥에 들어가 해방이 되어서야 풀려났다.
선생은 세로쓰기 글을 한글전용 가로쓰기로 바꿔서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했고, 우리말로 된 교과서를 만들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글의 사용빈도를 조사하고 자판 배열을 연구하여 타자기를 만드는데도 기여했다. ICT 강국의 싹은 그 때부터 틔워졌던 셈이다. 선생의 정신은‘한글이 목숨’이라는 다섯 글자에 잘 드러나 있다. 이것은 1932년에 서울 한 음식점 방명록에 직접 쓰고 서명한 글씨이다.
기념관 위쪽으로 올라가면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외솔 선생이 태어나서 17세까지 살았던 곳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궁핍하게 지냈을 어린 시절의 고단한 삶이 보이는듯하다. 이곳에서 역사에 오래 남을 인물이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명당의 기운이 느껴진다. 생가 뒤뜰에‘외솔내외무덤’이라고 음각된 묘비가 있는데 순수 한글 묘비로는 가장 크며,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이라고 한다.
생가 사립문을 나서니 최근에 문을 연 외솔한옥도서관이 단아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누마루가 있는 아담한 한옥 건물로 서원의 이미지가 부각되어 있다. 중구청에서 파견된 관리자가 장서는 1,500 권, 하루 평균 이용자는 40 명 정도라고 알려준다. 외솔기념관은 지금까지는 10월에만 문지방이 닳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지만, 도서관의 시너지 효과로 연중 방문객의 발길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도서관을 뒤로하고 외솔탐방길에 오른다. 탐방길은 외솔기념관, 병영성 동문지, 남문지, 서문지와 병영초등학교를 연결하는 약 1800m의 순환 길로 병영의 옛 역사를 생각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병영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주둔한데서 유래된다. 병영성은 조선 태종 때 축조되었으며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타원형으로 두른 성이다. 북문지에서 서문지까지 복원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복원 중에 있다.
도서관에서 동쪽으로 2분쯤 걸으면 동문지이고 거기서 계단으로 150m쯤 내려가면 그 유명했던 산전샘이 있다. 약 400년 전에 병영성 주민들과 병사들의 식수로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샘으로 한 시간에 물이 80섬이나 나왔다고 한다. 1967년 병영 양수장 개발 이후 물줄기가 고갈되어 방치되었다가 2002년 복원되었다. 어린 시절 한여름 북구 상안동에서 태화강에 재첩을 잡으러 가다가 마셨던 산전샘물은 생명수 같았다. 복원된 샘에서 옛 운치를 찾을 길은 없지만 어머니와 함께 한 옛일을 추억할 수 있음을 위안으로 삼고 안타까움을 달랬다.
산전샘 옆에는 울산시 중구청이 운영하는 어련당이 있는데 여기서 한옥체험을 하면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어련당은 동천의 옛 이름인 어련천(語連川)에서 어원을 찾아 아름다운 말이 흐르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탐방길은 외솔이 다녔던 병영초등학교로 이어진다. 100년이 넘는 역사가 서린 전통 있는 학교로 3.1 병영 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학교 뒷문으로 나가면 삼일사가 있는데 삼일 운동에서 순국한 독립투사들을 모신 사당이다.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30년전 이 곳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을볕에 쪼르르 흩어진다. 내가 가르치던 눈빛 맑은 아이들 얼굴들이 하나하나 오버랩 된다.
다시 외솔기념관 앞에 섰다. 10월 28일부터 사흘간 한글문화예술제가 외솔기념관과 중구 원도심 일원에서 열린다. 10월 초에 하려던 행사가 태풍‘차바’ 때문에 뒤로 밀린 것이다. 한글날 관련해서 울산에서도 외솔글짓기대회(울산 KBS), 한글미술대전(중구청) 등 많은 행사가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필자는 올해 한글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외솔 선생을 떠올렸다. 전국적으로 다채로운 한글날 행사들이 많이 열리고 있는데 대해 외솔 선생이 어떤 생각을 하실까? 행사는 많이 하는데 한글은 왜 자꾸만 훼손되어 가느냐고 야단치실 것 같다. 전 세계 26개국 9만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한글을 제2외국어 또는 외국어로 배우고 있을 만큼 한글의 세계화가 탄력을 받고 있는 이 때에 정작 국내에서는 외래어 남용은 도를 넘고 SNS를 통해 비속어나 축약어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이다. 개탄에 빠진 선생의 꾸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시공을 넘어서 만난 훌륭한 선생에 대한 고마움에 더해서 미안한 마음이 한 가득 겹쳐온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외솔 선생의 높은 뜻을 이어받아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는 노력을 기울일 때라고 생각하면서 기념관을 떠난다. 오늘따라 기념관의 소나무 잎들이 석양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인다.
첫댓글 외솔 최현배선생님은 대한의 보배요 한글은 이제 Global에 우뚝 빛나는 언어임이 자명해졌지요
나라가 부강해지고 선진문화국이 된다면 OECD 선진국에서도 한글을 제2외국어로 채택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온 누리에 펼칠날이 머잖으리 한편
외래어들이 국어 사전에서 자연스레 자리를 차지하고
젊은이들의 전자기기 활용에서 장난스레 만들어 통용되는 문자들은
옥의 티가 맞겠지요(한글의 창조성은 순기능이지만)
그리고 님이 올린글을 통하여 병영 그쪽의 풍물과 옛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문장력이 뛰어난건 알지만
긴글 정리하여 올린다고 수고많았어요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편이 되면, 그리고 읽고싶어 하시면 앞으로 몇 편 더 올리겠습니다.
12월 1주 목요일 치산서원, 12월 5주 목요일 옹기박물관이 경상일보 17면에 게재됩니다.
못 보신 분을 위해 다시 올릴게요. 같이 공부합시다.
행복한 가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