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한해를 마무리 하며 읽어 보았습니다.
첫댓글 열흘 아프다 이제 겨우 추스리고 앉았습니다. 아파도 엄마는 식구들 끼니 챙기느라 부엌에 서야하지요.
먹고 사는 게 참 이런 때는 왜 그리 짐스러운지, 근데 먹고 사는 게 조그만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일이다
스스로에게 충고하고 다독입니다.
대체로 옹졸한 삶, 조금 비껴 서 있는 삶일텐데 일상이 그렇게 눌러앉히곤 합니다.
그래서 잘 아니까 새해에 거창한 포부보다 일상을 지키면서 어떤 작은 파격들을 해낼지 그걸 궁리하게 됩니다.
1년을 열심히 살고 막판에 여유 좀 부리자하니 아프신게 아닌가 싶네요. 작년 한 해 수고하셨고, 올해도 열심히 쭈욱~~ 뛰셔야죠.
좋은 시군요^^ 박완서씨 소설에 비슷한 제목이 있지 않나요?
격려 감사합니다. 딸이 고3 접어들어 마음이 바쁘시겠습니다. 함께 열심히 쭈욱 뛰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