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하는 자들의 모든 수고가 허무하다(전3:9~18).
16절.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여기서 “내가”는 이글을 기록한 전도자, 또는 솔로몬을 말한다.
솔로몬은 “해 아래서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기 위하여 집행되는 재판들을 보았다는 것이다.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재판”은 히브리어로 “미쉬파트 ”인데 “심판하다, 판결하다, 선고하다”를 뜻하는 “샤파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 판결, 사려분별, 의견”등을 말한다.
“거기에도”는 히브리어로 “샴”인데 어떤 [장소]를 뜻하는“거기, 여기, 저기, [시간]을 뜻하는 ”그때, 그 시간“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재판하는 장소를 말한다.
“악이 있고”는 히브리어로 “레샤”인데 “시끄럽게하다, 소란하다, 사악하다, 범죄하다”를 뜻하는 “라샤”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악함, 옳치 않은, 범죄, 거짓됨, 불의, 부정”를 뜻한다(호10:13).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는 히브리어로 “체데크”인데 “올바르다, 의롭다”를 뜻하는“차다크”에서 유래한 것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곧음, 똑바름, 옳은 것, 진리, 공정”을 따라 법을 집행할 정부의 관청에도 거짓과 악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며 범위를 좀더 확장하면 실지로 인간들이 사회생활 가운데 법과 질서를 따라야할 곳이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들의 소견에 따라 법과 정의를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를 행하는 곳은 어떤 일정한 장소를 말하기 보다 사회 전반에 공동의 질서를 지겨야 하는 곳에서 정의와 공의의 질서가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여기에 악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질서의 혼돈이 있음을 말한다.
사회적 기강의 근원이 되며 신뢰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재판상의 정의가 무너져 버린 것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 혹은 인맥과 뇌물에 의해 재판정에서 불공정한 판결이 나게 되면 사회 불안이 야기된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이스라엘의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이 있었다.
우리 말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돈이 있을 경우 무죄로 풀려 나지만 돈이 없을 경우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이다.
대기업마다 로펌변호사들을 영입하고 이사등으로 대우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법률소비자 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0%가량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형태를 본 솔로몬은 공의와 정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