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시대의 가장 걸출한 사상가요 대오 각성한 인물로 꼽히는 사람 중 경허란 분이 있습니다.
한국 불교사에 있어서 원효-서산-경허로 이어지는 선의 법맥을 계승한 분으로 알려져 있는 근세의 선종사의 거목이지요. 후학인 방한암 스님은 경허 행장 서두에 경허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마땅히 돌아오는 세상 5백세 후 그 때 중생이 있어 이 경을 듣고 청정한 신심으로 곧 실상을 떠나니, 마땅히 알거라.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고 하였고, 대혜 화상이 이르기를 '만약 이 중간에 빽빽하고 복잡한 가운데 발심을 하여 공부하는 이가 없다면 몇 사람이나 불법을 얻었을 것이며, 어찌 오늘에 이르렀으랴? 대개 용맹한 뜻으로 법의 근원을 사무친 이가 말세 불법에도 없지 않았으므로 불조가 이와 같은 말을 드리우사, 또한 보존키 어려운 혜명을 필시 그런 사람이 있어 계승하게 되니, 이와 같은 말을 알아 능히 여기에 장부의 뜻을 갖추어 자성을 사무쳐 깨달아 그 제일 공덕을 성취하여 큰 지혜 광명으로써 광대한 뜻을 저 5백세 후까지 유통하게 하였으랴' 내가 존경하는 경허 화상이 이런 어른이시다.
9세의 나이에 아비를 여의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안양의 청계사로 출가한 경허는 본디 명석하고 심지가 깊은 아이였습니다. 계허 스님을 은사로 도에 입문한 그는 5년여 남짓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틈틈이 경전을 공부하였는데 그 재주가 자못 비상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어린 경허의 재주를 아낀 계허는 당시의 유명한 강백이었던 계룡산 동학사의 만화에게 그를 보내게 되고, 경허는 만화의 문하에서 온갖 경전을 섭렵하고 사서삼경등 세속의 경서까지 두루 통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재주가 자못 놀라와 23세 때에는 만화 강백을 뒤이어 후학을 가르치는 강백이 되었고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공부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7.8년 강사 생활을 하던 경허는 문득 아버지와 같았던 은사 계허 스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이미 계허 스님은 환속한 뒤지만 사제지간의 정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대로 행장을 싸들고 동학사를 나선 스님이 정처 없이 걸어 천안쯤을 지날 때였습니다.
날은 어두어 지고 폭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경허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인가를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마을의 집집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처마 밑에 쪼그려 허기진 배를 잡고 비를 피하고 있는데 멀리 건너편 집 문이 열리고 송장을 업고 나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 마을에 전염병(콜레라)이 돌아 초상을 치루지 않은 집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체가 한 웅덩이에 모아져 불에 태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경허는 전신에 오싹함을 느꼈습니다.
경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마을 한가운데서 이미 자신도 병에 전염되었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오한이 났습니다. 그는 그 동안의 치열한 참선과 경전공부, 후학에 대한 교육이 모두 위선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자기가 쌓아 온 인생이 모두 허물어져 미궁에 갖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경허는 스스로 많은 선지식들을 통하여 자신이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부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죽음 앞에서 그토록 무력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밤새도록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경허는 날이 밝자마자 다시 동학사로 돌아왔습니다. 그 길로 학인들을 모아놓고 강원의 해산을 선포했습니다. 스님은 그날부터 방문을 걸어 잠그고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단지 한끼 밥만 먹고 잠도 잊은채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졸음과 싸우기 위하여 턱 밑에 송곳을 세워 놓고, 바늘로 제 살을 찔러가며 피나는 정진을 계속했습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세상 태어나기 전의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진아, 자기의 진면목을 찾기 위하여 묵언정진을 한지 일년여, 경허는 어린 사미승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스님 구멍 없는 소(無鼻孔牛)가 무슨 뜻입니까?' 하는 소리에 문득 개오하여 온천지가 환히 밝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경허는 개오의 법열을 이기지 못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오도송을 읊었습니다. 1880년 11월 그의 나이 31세 때였습니다.
문득 구멍 없는 소라는 말에(忽聞人語無鼻孔)
삼천세계 전체가 내집이라는 것을 문득 알았네(頓覺三千是我家)
6월 연암산 아랫길에(六月燕岩山下路)
할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野人無事太平歌)
장부의 일대사를 마친 경허는 천장사로 자리를 옮겨 1년 반 동안의 보임을 마친 뒤 대자유의 세계, 무애자재한 삶을 살았습니다. 온갖계율과 형식에서 벗어나,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수염을 깍지 않고, 술과 담배를 먹었습니다.
그의 무애 행각은 주로 충청지방에서 펼쳐졌으나 멀리 경상 전라도에까지 이르렀고 말년에는 북간도 어느 지방까지 닿았습니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선도량이 세워졌고, 경전이 간행되었으며 기이한 일화가 남겨졌습니다. 56세에 훌쩍 자취를 감췄고 입적한 1912년(64세)까지 평안북도와 함경북도 일대를 떠돌며 살았다고 합니다.
2. 히브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이며 지도자인 모세의 소명장면입니다.
모세란 인물은 히브리 민족이 가장 심한 고난을 당하던 때에 태어났습니다. 어찌하다 애굽 왕 바로의 딸, 공주의 손에 키워지게 되었습니다. 40세까지 그는 람세스 2세와 함께 동문 수학하며 자라났고 나라의 중요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그에게 인생을 변화시키는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어렴풋이 민족의식에 눈 뜬 모세는 그만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애굽인 공사 감독을 살해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행동은 동족들에게 위선으로 비추어져 애굽과 이스라엘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죠.
40세에 죽음의 위협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칩니다. 그후 40년간을 목동으로 방황의 세월을 살게 되죠. 그러던 어느날 호렙산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하고 쫓아갑니다. 현장에 다다라 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신비 체험을 합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셨던 조상들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어릴 때 유모 노릇을 자청했던 친어머니를 통해 어렴풋이 들었던 자기 민족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여러 신들에 대해 배우고 그 신들을 통해 세상을 보아왔습니다. 애굽의 태양신 라는 그가 애굽의 완자로 온갖 가능성을 꿈꿀 때 섬기던 신이었습니다. 애굽과 인접한 블레셋의 신 다곤이나 가나안의 주신 바알, 암몬의 국가신 몰렉과 모압의 수호신 그모스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만난 조상들의 신,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의 신이었던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의 일생 일대의 큰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굽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힘없는 왕자, 자신의 근본도 모른채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이 되어 기나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늙은이에게 이 만남은 새로운 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의심과 놀라움에 가득 찬 모세는 묻습니다. 아득한 조상의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셔서 고통 속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하라 명하시는데, 네가 그 명령대로 노예된 동포들에게 가서 그 뜻을 전한다면 과연 믿겠느냐는 의심이 일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우리 조상의 신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하면 그들이 신의 이름을 물을 텐데 무어라 대답하해야 할까요?하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도데체 출애굽이란 민족 해방을 명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이죠? 그럴 능력이 있는 신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나는 곧 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역 성경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공동 번역 성경은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 라고 하시는 그분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출 3:14) 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I AM WHO I AM'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바로 그 나'가 바로 출애굽을 명하신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조상들의 하나님은 전쟁의 신으로 이름이 높은 '야훼'라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기근을 피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이주해 오면서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미해졌고 잊혀진 신명입니다. 그러다 애굽정부가 소수민족 차별정책에 쓰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전락하여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그 옛날 자유롭고 평온했던 조상들의 삶을 그리워하게 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다시금 기억하게 된 이름입니다.
백성들의 한이 뭉쳐져 가나안을 정복하고 굳건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해 준 그 옛날 화려했던 전쟁의 신명을 떠올리게 한 것입니다. 그 분이라면 우리의 고통을 건져주실 수 있겠다고 인정할 수 있는 신명이었습니다.
'I AM WHO I AM'의 'WHO I AM'이 바로 그런 뜻이겠습니다. 그 옛날의 바로 그 나란 말이죠. 동양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진면목을 갖춘 참나'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이 신명은 모세에게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크나 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꿈과 희망을 뒤로한 채 좌절과 실의에 인박혀 하루하루 되는대로 40년을 살던 모세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이름입니다. 노예의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드리며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신천신국을 다시 꿈꾸게 한 힘입니다.
이 힘은 야훼 안에 깃 들어 있는 힘이며 동시에 자기 존재의 자각으로 가능해 지는 그런 힘입니다. '야훼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존재란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일개 목동에서 민족의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모세를 탈바꿈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3. 새 천년을 맞이하여 4째 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종교사의 한 획을 그을 사상적 기초를 놓았던 경허 역시 이 물음을 통해 대오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 역시 이 물음을 통해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자기 자신의 존재의미를 물으므로 내 안에 있는 참된 힘을 깨닫는 축복이 임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