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는 꽤 길었다. 추석 연휴에다 토요일과 주일, 개천절 등이 연결되어 6일 정도 이어지는 긴 연휴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을 방문하거나 가족모임을 위해 오가는 길이 여전히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무래도 추석일에 맞추어 귀성(歸省)길에 올라야 하니 정체가 심한 것 같다. 귀경(歸京)길은 좀 더 여유가 있어서 조금은 괜찮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명절이 되면 가족모임을 위한 이동으로 인해 고속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겪고, 항공권이나 기차와 고속버스 등의 차표를 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나는 어릴 적부터 친척이 모두 근거리에 살았었기에 귀성길이나 귀경길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보내면서도 부모님을 찾아뵙거나, 가족모임을 갖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 볼 때 비효율적이거나 낭비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사랑에는 항상 낭비처럼 여겨지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상대방을 위해 뭔가를 낭비하고 있을 때 진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낭비처럼 여겨지는 것들도 감수하게 되는 것이고, 그 낭비라는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 기꺼이 낭비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식사하실 때 어떤 여인이 찾아와 예수님께 매우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은 사건이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아까운 옥합을 깨뜨려서 낭비했다고 꾸짖지만, 주님께서는 이 여인이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라고 칭찬하셨다. 제자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그 향유 옥합을 비싼 값에 팔았더라면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도 꽤 그럴듯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기꺼이 그 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은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꽤 값나가는 꽃다발을 선물하거나, 꽤 비싼 가격의 음식을 먹기 위해 근사한 식당을 예약하여 함께 식사하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괜히 낭비하는 것처럼 판단하기 쉽지만, 이러한 모습은 사랑하는 마음의 외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낭비를 기꺼이 행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기꺼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낭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명절 때마다 이런 낭비를 감수하면서 부모님을 찾아 뵙고, 가족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이런 낭비로 인해 가족은 가족다워지고, 그 사랑은 더욱 단단해진다. 그렇게 보면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모임에 참여하는 것, 예배에 많은 시간을 드리는 것, 주님을 위한 사역에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드리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먼저 곰곰이 살펴야 하겠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위해 기꺼이 낭비를 감수하는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다.
(안창국 목사)
#사랑은기꺼이낭비를선택하게한다
#나는누구를위하여무엇을낭비하는가?
#사랑은기꺼이낭비를감수하는것
#사랑하는이를위해기꺼이시간과물질과노력을낭비하라
#낭비하는사랑
#낭비라는대가를치를가치
#진정한사랑에는낭비가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