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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후 열세 번째 주일
성경 ; 렘2:4-13, 히13:1-8,15-16, 눅14:1,7-14
제목 ; 결국 그들은 허무한 사람이 되고 말았도다!
우리 교회에서 탁구를 제일 잘 치는 사람은 이백구 집사입니다. 제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이 집사님을 결코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기기는
고사하고, 경기를 할 때마다 대개는 10점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그만큼,
이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서는 탁구에 관한한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
니다.
어쩌면, 이백구 집사라 부를 게 아니라, 이탁구 집사라고 부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과 탁구를 치다보면, 집사님은
항상 상대방의 허점을 잘 노린다는 점이 그 특기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미
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빈구석을 용케 잘 찾아내어 그쪽으로 볼을 보내는
것입니다.
사실, 볼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빈 구석이 보인다 싶으면, 그
쪽으로 아주 재빠르게 톡 치는데, 그야말로 제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번개와 같은 속도로 볼을 쳐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집사님이 탁구채 휘두
르는 것을 보고서야 어느 쪽으로 볼을 보냈는지 깨닫게 되지만, 그 순간 이
미 탁구공은 내 쪽의 탁구대에 입 맞추고 저만치 빠져나간 뒤입니다.
지난주일 오후 예배를 마친 다음, 교인들은 썰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저만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늘 황과장님이 남아서 저랑 탁구를 쳤는데, 황
과장님이 두 주일이나 거듭 출석을 하지 않는 바람에, 주일 오후의 빈 교회
를 저 홀로 지키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반갑게도 이백구 집사님이
나타났습니다. 홀로 지내는 심정이 어떤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인
박 집사님이 너그럽게 배려해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탁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제대로 될 리가 없
었습니다. 저는 이 집사님의 적수가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집사님이
슬슬 봐주어가면서 쳤지만, 그리고 저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탁구채를 열
심히 휘둘렀으나, 도저히 이 집사님을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집사님 특유의 그 ‘빈 구석 노려서 번개처럼 톡
치기’를, 제가 용케도 잘 막아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제가 뭘 알고서 막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 볼을 막아낸 것입니다. 저
는 조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집사님을 이길 수 있었습
니다.
물론, 이 집사님이 아주 많이 봐주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혼자
지내고 있는 제가 안쓰러워서 위로해주느라 일부러 져주었다는 것을, 왜 제
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전에는 이 집사님이 넉넉하게 인심을 써주어도
도저히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차례나 이 집사님을 이긴
것입니다.
요즘 정가(政街)에서는 청문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야당에서는 각 후
보자들의 약점과 허점을 열심히 캐내어 날카롭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래
서 어떻게든지 중도에 낙마(落馬)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실이 아니거나 확실치 않은 것까지도 문제 삼아서 후보자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인 악한 세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를 어떻
게든지 넘어뜨려서 낙심시키려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악한 세력은 우리의 문제점이나 허점을 찾아내려고 혈
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허점이 발견되면, 그 빈구석을 집중적으로 공
격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미리 우리 자신의 문제점이나 허점을 찾아내어 보완
하거나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허점 때문에 악한 세력의
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
제점과 빈 구석을 채우거나 보완하려고 하기보다는 감추기에 바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럴 경우에는 악한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입
니다. 더군다나, 악한 세력은 우리의 문제점이나 허점을 아주 잘 찾아내는
특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먼저 우리의 문제점
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악한 세력은 우리의 허점을 파
고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
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 조상
은,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나에게서 멀리 떠났느냐? 그들은 헛
된 우상을 섬김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허무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4-5)”고
한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을 때에, 그 종살이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막에
서 지내는 동안, 나는 언제나 안전하고도 좋은 길로 그들을 잘 인도해주었
다.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기름진 땅에서 살도록 해줌으로써, 그들이
온갖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주님의 곁을 떠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곁을 떠나가 버린 그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귀담아
들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훌륭하고 잘나서 가나안 땅에 살게
된 줄로 착각한 나머지, 자기들 멋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쉽사리 그들을 버릴 수가 없어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서, 그들로 하여
금 축복된 인생을 살게 하시려고, 예언자 예레미야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하는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그
들은, 그들 스스로가 애쓰고 노력해서 잘살게 되었노라고 억지를 부렸습니
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 백성은 두 가지 죄를 저질렀다. 그 하나
는, 생수의 원천인 나를 버리고 떠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 쓸모가 없
는 물웅덩이들을 판 것이다(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 쓸모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청문회 대상 인물 중에는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가 있습니다. 그런
데, 이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 무엇보다, 위장
전입한 사실이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최고의 법원인 대법원의 판사가 된다
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는 지난
2006년에 서울 종암동에 살면서 경기도 용인시로 위장 전입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물론, 살
집이 없어서가 아니라, 투기의 목적으로 위장전입이라고 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일반사람도 그런 짓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인데, 하물며 법에 따
라 유죄 여부를 심판해야 하는 판사가 그런 짓을 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
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법원인 대법원
판사가 되겠다고 나섰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는 우리 또한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만큼이나
법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
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법이요, 그리고 그 말씀이 또한 생명이라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산다는 말은,
곧 그 말씀을 벗어나서 사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살게 될 경우, 그것은
곧 우리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살았으나
죽은 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직접 보여주신 그
진리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바로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진리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살아야만 잘 살 수 있다는 생각
이 들게끔 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오죽
하면, 대법관 후보자인 이인복 씨까지도 위장전입이라고 하는 불법행위를
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잘 지켜 살아야만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은, 이 사실이 영원히 변치 않
는 진리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 당시의 권력자들이 부당한 방
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다
시 살리심으로써, 주님이 옳다고 하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
으신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모범이 될 일을 마음에 새겨두고 본받아서 주
를 믿어야 한다(13:8)‘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잠시 잠깐 동안 불의한 세력
이 오히려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불의한 세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다시금 ‘제빵왕 김탁구’이야기 하는 것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 방영된 내용 중에서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팔봉 선생은 ‘봉빵’을 개발해서 명장 타이틀을 얻게 되었는데, 사실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춘배’라는 사람과 함께 개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봉빵이 유명해져서 매출이 점점 늘
어나게 되자, ‘춘배’아저씨는 점점 늘어나는 봉빵의 수요를 채우고자 옳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팔봉선생’은 ‘춘배’와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춘배’아저씨는 따로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빵을 만들어 팔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춘배’아저씨의 가게가 훨씬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사
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자, 그 빵 가게는 결국 문을 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춘배’라는 사람이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서 계속
‘팔봉선생’만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은 성품을 가
진 ‘구마준’이를 이용해서 어떻게든지 ‘팔봉선생’을 넘어뜨리려고 술수를 부
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춘배’아저씨나 ‘구마준’과 같은 사람들
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기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세상만 원망하거나 다른 사
람 탓만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사실, 불행의 원인을 타인에게 떠넘기거나
핑계를 댈 겨우,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기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을 고쳐서 살아야 합니다. 하건만, 어리석은 사람들
은 자기 잘못을 고쳐 살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남 탓만 하면서 옳지 않은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
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말하
자면, 모든 문제를 세상 사람의 탓으로 돌린 것이 아니라, 주님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허물과 잘못까지도 자신이 책임을 지시려고 십자가를 지셨
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의 이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축복의 문을 열어놓으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준 지도자를 기억하라(13:7)’
고 하면서 ‘그들을 본받아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
든 문제의 원인을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찾되, 다른 사람의 허물까지도 내
가 감당하려고 할 때,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라
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물이 된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밝히고 있습니다(히13:16).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가인 ‘페스탈로치’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동상
을 제막하게 되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허리를 굽혀 어린아이를 내려다보는
인자한 얼굴로 만들었고, 어린아이는 페스탈로치를 올려다보는 모습으로 만
들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페스탈로치는 이런 모습이 아니다. 그는 자기를
닮으라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라고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의논을 거듭한 끝에, 동상을 뜯어 고쳤습니다. 페스탈로
치가 어린아이를 내려다보는 인자한 얼굴 모습은 그냥 놔두고, 어린아이가
페스탈로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
로 새롭게 고쳤던 것입니다. 물론, 그 어린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2.오늘 우리도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까지도 내가 대신 책임지
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듭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자신이
힘들게 사는 이유에 대해서, 계속 세상 탓만 하거나, 그 누구의 잘못으로만
돌리게 될 경우, 그런 사람은 그가 안고 있는 문제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살다보면,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제빵 왕 김탁구’는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춘배’라는 사람의 행색을 보십시오. 어떻던가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계속해서 세상 탓만 하거나 남 탓만 하면서 하나님의 말
씀에서 벗어나 사는 사람들은 ‘춘배 아저씨’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
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눅14:11)”라고 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자기
를 낮춘다.’는 말씀은 겸손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갖게
되는 대표적인 모습은, 무슨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자신의 잘못으로 돌린다
는 점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은, 다른 사람
은 다 틀렸고, 자기만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의 말씀을 보면, ‘겸손한 사람은 흥하게 되고, 교만한 사람은 망
한다.’고 했습니다. 18장 12절에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이 뒤따르지만, 겸손
하면 영광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
잘못을 모르는 교만한 자는 언젠가는 멸망하여 그 인생이 허무하게 되거니
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 살려고 애쓰는 겸손한 사람은 언젠가는 반
드시 성공하게 된다.’라고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은 지금보다 더욱 겸손하게 되기를 노
력함으로써 꼭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셔서 많은
상급을 받으시는, 축복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