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겪은 은행폐습 없애겠다.
"기업은행의 이방원이 되고 싶다고 했더니 '사람 얼마나 자르려고 그러시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 난감했습니다. 은행이 수십 년, 수백 년 갈 수 있도록 반석에 세우는 역할을 원한다는 뜻이었는데요. 30년 넘게 몸담은 기업은행의 약점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폐습과 악습은 다 없애고 싶습니다." 하회탈 같은 인자한 미소가 얼굴에 붙은 조준희 기업은행장(56.) 지난 1월 취임 한 달을 맞아 열었던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은행의 이방원, 룰라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물었더니 보여주기식 이벤트, 구조조정을 위한 구조조정은 없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30년 넘은 은행원 생활로 몸에 벤 철칙이다.
"과거 우리는 1년에 60번, 매주 1회씩 캠페인을 했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 6개월 넘게 조직 안에 태스크포스를 가동해 대안을 찾았습니다. 카드 유치 캠페인을 해서 10좌를 팔았다고 합시다. 캠페인 시작하고 한 주도 안돼 이 중 5좌는 해지됩니다. 나머지 이용실적도 미미한 경우가 많죠, 직원들이 경영진을 신뢰하지 못하고, 업무 피로도가 누적됩니다. 성과가 나는 게 아니라 결국 조직에 해만 주는 셈입니다. 어렵지만 캠페인 없이도 고객을 만족시키는 길을 찾는 것이 정도입니다."
조 행장이 설명하는 정도경영의 의미다. 정도 경영 철학은 키코 같은 금융상품 판매로도 확장된다.
"키코 같은 금융상품을 팔 때 제가 먼저 묻는 것이 '확실히 아느냐'입니다. 전문가 몇몇이 아니라 은행 직원들까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상품은 고객과 은행을 모두 위험하게 합니다.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평판 리스크(reputation risk)입니다. 저나 임원들이 잘 모르는 상품을 팔아 수익을 내는 그런 영업을 한다면 존경받는 경영진이 될 수 없을 겁니다"
이벤트를 줄이고, 모르는 상품은 안 판다. 그럼 수익이 떨어지지 않을까. 시중은행 영업전쟁이 격화되는데 한가한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를 의식했는지
"직원과 점포 경영평가 점수에 대출, 예금, 리스크 관리, 외환 등 각 분야 비중을 제대로 반영토록 했습니다. 그 안에서 개별점포, 예컨대 명동과 경기도 반월공단의 점포점장이 각자 전략을 짜야죠. 결과요? 1월 실적이 이미 좋게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취임 후 첫 영업점장 회의에서 900여 점포장에게 이 부분을 잘 설명했더니 다행히 모두 이해해 주시더군요"
당연해 보이지만 조 행장은 기업은행이 어디까지나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고유의 강점에 역점을 두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가 고매금융, 영업망 확대. 비이자수익확보, 지주회사 전환 등 다른 일을 생각하기 전에 항상 하는 말이 "우리가 잘 하는 부분은 더 잘하고, 못하는 부분은 보완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