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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대 이기영 교수님께서 메일로 보내주신 글을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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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정말 좋은 아버지란? / 조선일보 2007.09.06, 원문
살아가는데 결코 흔들림 없는 책의 가치…
‘읽는 습관’ 따라 배우도록
‘책 읽는 아름다운 아버지’ 캠페인 펼치자
이기영 호서대 교수·초록교육연대 상임대표
정신이 흐릿해질 정도로 그 무더웠던 긴 여름이 언제 지나갔는지, 이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닫아야 한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 가을이 온 것이다. 요즘 인터넷상에 지식파일이나 동영상이 아무리 많아도 교육매체로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의 가치는 결코 흔들림이 없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 대통령, 민주시대의 새벽을 연 시인 박노해 등, 우리시대의 많은 지도자들이 일류대는 못 나왔지만 오랜 수감생활 동안 방대한 양의 독서를 통해 큰 인물로 성장했다. 자녀들을 훌륭한 지도자로 키우려면 족집게 고액과외로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보다도 평생 좋은 책을 가까이 하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이 지름길이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사후 역적으로 몰려 18년간 땅 끝 강진에 유배를 가서도 수많은 책을 읽고는 500여권이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냈다. 그는 당시 허례허식에 치우쳐 통치논리나 당파싸움에나 이용되던 경학(주자학)을 백성을 위한 실용적 경세학으로 다시 썼다. 당대 대부분의 국내외 역사서들을 탐독, 비교해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를 바로 잡은 ‘아방강역고’를 편찬했다. 뿐만 아니라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던 그는 수천 년 동안 잘못 전달돼 내려온 음악체계인 율려를 바로 세워 ‘악서고존’ 12책을 완성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어린 자식들을 빼앗아간 천연두에 대처하는 과학적 실용의학서적인 ‘마과회통’을 펴내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말년엔 어의로서 임금의 건강을 돌보기도 했다. 특히 청나라를 통해 접한 서양의 실용적 과학이나 종교 등 서학을 우리 고유의 전통적 가치관과 잘 조화시켜 백성이 잘 살고 나라가 융성하도록 200년 전 조선의 지성사를 대대적으로 정리해 실학의 대가가 된 것이다. 한편, 그는 아버지의 귀양으로 실의에 빠져 술로 지새던 둘째 아들 학유에게 편지를 통해 사람이 지켜야할 윤리와 도덕은 물론이고 어떤 책을 어떤 순서대로 읽고 문장을 어떤 방식으로 써나가야 좋은 문장이 만들어 지나까지 세세히 챙겼다. 학유는 지속적인 편지를 통한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으로 술을 끊고 아버지가 평생 관심을 갖고 매달려왔던 ‘주역’ 해설서 주역심전 (周易心箋)》을 정리하여 완성시키는 등 아버지의 학문활동을 도왔다. 더 나아가 그는 농가에서 매달 할 일과 풍속 등을 한글로 읊은 ‘농가월령가’를 펴내 체계적인 농사매뉴얼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
우리시대에 정말 좋은 아버지란 어떤 모습일까? 요즘 많은 아버지들이 직장에서의 생존경쟁강도가 심해지면서 육아책임도 늘어가 아버지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저 돈 많이 벌어 고액과외로 아이들을 일류대학에 들여보내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7월 세계 116개국 3000여개의 기업들이 모인 유엔의 글로벌 콤팩트에서는 기업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책임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기업들이 주체가 되어 ‘책 읽는 아름다운 아버지 운동’ 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집에서는 자녀들에게 책을 권하는 인성교육의 주체가 되면서 존경받는 아버지로 변신해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진다. 물론 지식이 늘면서 창의력과 기획력이 향상돼 회사의 경쟁력도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미국 소설가 토머스 울프는 사람들은 일평생 자기 아버지를 바라보고 살아가며 아버지의 사랑과 사상, 힘과 지혜 등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 인격적 성장의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되기는 쉬우나 아버지답기는 어렵다. 진정 훌륭한 아버지가 되고 싶으면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일평생 헌신한 다산 정약용 같은 선비의 책과 함께 한 치열한 삶을 따라해 보자.
[기고] 그대는 한강의 신음을 듣는가
경향신문 2007년 07월 12일
초록교육연대 상임대표 호서대 교수 이기영
한강은 흐른다. 산과 들 사이길로 복숭아 진달래 꽃망울 터뜨리며 오늘도 무지개로 소리없이 흐른다. 한강은 흐른다 논과 밭 사잇길로 청보리 무배추 파랗게 물들이며 오늘도 비단길로 말없이 흐른다. 눈보라 휘날린들 멈출 수 있으랴 폭풍우 몰아친들 돌아갈 수 있으랴? 흐르고 흘러서 영원이리니, 대양에 이르러야 우리인 것을 한강은 흐른다 마을과 도시를 지나 저마다 생의 등불 환하게 밝히면서 오늘도 은하수로 묵묵히 흐른다-오세영 시인의 ‘한강은 흐른다’, www.singreen.com에서 테너 변광석의 노래로 들을 수 있음-
나의 살던 고향은 한강하류의 행주나루이다. 아버지는 조그만 배 한척을 가진 가난한 어부셨다. 봄이 가면서 황복이 사라질 무렵이면 웅어가 잡히기 시작했다. 금모래가 반짝이던 강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그물에 걸린 채 퍼덕이는 은빛 웅어를 뜯어내 대바구니에 담던 추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갈대밭이 잘 발달된 행주나루 부근은 5월이면 국내 최대의 웅어 산란장으로 변해 7월초까지 웅어회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웅어는 육질이 쫄깃하고 담백·고소하며 뼈째 먹을 수 있어 한강 물고기중 최고로 쳤다. 조선시대엔 초여름이면 강변 서일루라는 음식점에 임금님이 직접 행차하셔서 웅어회를 드셨다고 한다. 그런데 둑과 둔치를 만드는 등 무분별한 개발로 한강이 직강화되고 습지가 대부분 사라지자 장마철에 물살이 빨라졌다. 이 때문에 서일루는 어느 해 큰 수해로 그만 통째로 떠내려가 버렸다. 이젠 지나친 모래채취로 인해 갈대밭도 사라지고, 김포에 수중보가 설치되면서 물길이 막히고 오염이 가중되자 웅어도 더는 돌아오지 않는다(이상, 원문에서 빠짐).
한강 수질은 그동안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음에도 행주대교 부근 하류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2003년 3.3에서 2006년 4.7로 악화돼 3급수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이 오염되면 우리의 피도 오염된다. 지난 반세기동안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이젠 수도권의 지하수까지도 대부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버렸다. 아이들의 아토피 유병률이 50%를 넘을 정도로 급증한 것은 수도권 급수원이자 한반도의 대동맥인 한강과 낙동강이 오염된 것과 무관치 않다. 이것은 자연속의 모든 만물들이 물을 매개로 서로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웠던 우리의 금수강산이 개발이란 미명하에 수많은 도로건설로 산허리가 잘리고 아파트 건설로 산자락을 파먹고, 갯벌을 메운다고 수백 개의 산이 통째로 사라졌다. 이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백두대간을 파헤쳐 국민들의 식수원인 한강과 낙동강을 강제로 연결하고 도막내 자연스러운 흐름을 멈추게 하겠다고 한다. 이제 토목공화국 한국은 유엔이 발표한 환경지속성지수에서 146개국 중 122위를 차지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연파괴 대국이다.
자연의 형상은 자연을 이루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룸을 보여준다. 만일 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꾼다면 균형을 이루기 위해 원래의 자연 상태로 돌아가려는 힘에 의해 홍수 때에 큰 재난이 닥칠 수 있다. 만일 댐같이 좀더 거대한 인공구조물을 만들어 이마저 억지로 막는다면 조화를 이루었던 자연 전체의 에너지 시스템이 서서히 균형을 잃고 무질서하게 바뀌면서 주변 기후가 이상해진다. 얼마 전 세계 130개국 2600명의 과학자들이 파리에 모여서 경고한 대로 산업화와 개발로 인해 초래된 온난화로 하나뿐인 지구에 인류와 온 생태계를 절멸시킬 수 있는 기상이변이 점점 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갈수록 후진적 개발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강은 흘러야 한다. 흐름을 멈춘 강은 병든 강이다. 생명을 잃은 강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대통령 후보는 가둬놓은 물이 안 썩는다는 비과학적인 발언을 했다. 댐이나 저수지, 운하의 정체된 물 때문에 산소가 고갈돼 바닥에서 진행되는 혐기적 부패로 생성되는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에 7%나 기여한다는 보고가 있다. 한강은 지하수가 대부분 오염된 수도권 시민들에게 유일한 식수원이자 국토의 대동맥이다. 한강은 국토의 생명살림을 주관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반도의 대동맥을 함부로 난도질해 생태계를 죽이는 대운하개발공약은 거두시라. 그 대신 인위적으로 설치한 한강의 수중보와 둔치를 제거하고 습지를 다시 살리는 등 한강이 힘차게 흘러가도록 자연을 원래대로 되돌려주자. 웅어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자연하천복원 공약으로 바꿔보자.
[녹색공간] 대선주자들, 환경공부 좀 하세요/ 2007년 6월 11일, 서울신문
이기영 호서대교수·초록교육연대 상임대표
환경의 날인 지난 5일, 바쁘고도 외로운 하루를 지냈다. 오전에는 어느 단체에서 때늦은 환경상을 준다고 해서 나눠먹기식 느낌이 드는 수상식장에 갔다가 오후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만든 ‘불편한 진실’을 무료로 관람했다. 저녁 7시엔 유명가수들이 나와 대부분 유행가를 부르는 무늬만 환경인 무료 환경음악회에 출연해 ‘지구를 위하여’를 한곡 끼워넣어 불렀다.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가 지났다. 바쁘게 지냈지만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람들의 체감 환경위기지수를 느낀 탓에 영 개운치 않았다.
대중의 무관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대선주자들은 한술 더 뜬다. 화석연료시대의 의식수준을 가진 정치인들이 인류문명의 집단자살을 앞당기는 대규모 개발위주의 토목공사 공약과 고도성장론으로 국민들을 부추긴다. 유엔 국가간기후변화협약(IPCC)이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하나뿐인 지구호가 한 세기도 못가 침몰한다고 거듭 경고했음에도 왜 정신을 못 차리고 개발만 외치는 것일까? 경제성장이란 집단최면에 걸린 사람들이 돈의 유혹 앞에 무력한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개발굿판’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석유산업의 나팔수이자 환경운동에 그토록 반감을 보이던 부시가 대통령인 미국에서 환경문제가 핵심 정치의제로 떠올랐다면 사태가 정말 위급하다는 뜻이다. 지난달 초 미 대법원은 연방환경보호청이 지구온난화가스를 규제하지 않은 것을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최근 미 하원은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기후변화가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을 16개 국가정보기관이 함께 작성해 보고하라는 법을 통과시켰다. 480억 달러라는 예산도 배정했다.
한반도에서도 지구온난화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상청은 1910년대에 비해 연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한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 기간 지구 전체의 평균 온도 상승폭인 0.74도의 두 배에 달한다. 높은 인구밀도와 급격한 개발, 도시화가 빚은 결과다. 앞으로 도시 열섬현상을 억제하지 않으면 2071∼2100년에는 서울의 1월 최저기온이 0도 이상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100년까지 한반도 주변 바다 수위가 42㎝ 상승하고 서울시 면적의 3.7배에 달하는 연안과 섬지역 등이 바닷물에 침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우리나라는 석유소비량 증가율 세계 1위, 소비량 세계 9위인 온난화 유발 주도국이다. 2013년 이후엔 중국, 인도와 더불어 이산화탄소 삭감의무국에 포함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경제발전 속도를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을 도외시하고 있다. 오히려 대형 외제승용차가 더욱 늘어나는 판이고 아파트도 에너지 소비가 큰 초고층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2050년까지 적도부근은 화성처럼 생명체가 없는 땅으로 변하고, 또 수십 년이 지나면 스페인과 이탈리아, 호주, 미국 남부까지 사막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인류가 절멸 위기에 다다르고 있으며, 전 인류의 20%만 살아남아도 행운이라고 말했다.
교내 환경동아리를 함께 지도해온 미국인 동료 교수가 얼마 전 오랫동안 사귀어 온 한국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한다. 그가 결혼을 해도 2세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아이에게 불행한 삶이 닥칠 것이 뻔한데 어떻게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게 그의 논거다.
대선주자들이여, 제발 환경공부를 열심히 해 ‘환맹’(環盲)에서 벗어나시라. 한반도의 대동맥이자 국민들의 식수원인 한강과 낙동강을 도막내 흐름을 막겠다는 대운하 개발보다 둔치나 수중보를 제거해 망가진 강을 자연하천으로 되돌리는 생태공약부터 제시하자. 한반도 주변의 해수온도 상승으로 점점 강도를 더하는 초대형 태풍 대비책도 내놓자. 진정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이기영 호서대 교수·초록교육연대 상임대표
[기고] 문화공약을 내세우라 한겨레/ 2007년 5월 28일
이기영 초록교육연대 상임대표·호서대 교수
얼마 전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 먹거리 특강을 하러 갔다. 한 아이가 햄버거 같이 비만이나 당뇨를 일으키는 몸에 나쁜 패스트푸드가 어느 나라에서 들어왔냐고 물었다. 물론 미국이라고 대답했더니 그 아이는 미국은 세계 제일의 부자 나라인데도 다른 나라를 계속 침략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무서운 무기를 팔아먹고도 모자라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아이들 건강을 해치는 패스트푸드까지 온 세계에 팔아먹는다니 정말 나쁜 나라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와는 친하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얼버무렸으나 우리나라도 미국을 닮아 나쁜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1901년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독일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는 중국을 거쳐 제물포로 들어와 반년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그는 금강산을 횡단 여행한 후 제주도 한라산 정상을 오르며 산의 높이를 최초로 측정해 지도에 기록했다. 그의 여행기는 당시 쾰른신문에 연재되었고 책으로도 출판되었다.(〈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 그는 조선인들이 매우 예의 바르고 선량하며 집집마다 책이 있고 손님을 후대하는 민족이었다고 기술한다. 게다가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성격이며 때로는 술기운에 흥이 겨워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즐기는 호탕한 문화민족이었다고 한다. 조선의 남자들은 교양이 있고 매우 깨끗해 심지어는 여행 중에도 이동식 변기를 필수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그는 금강산에서 만난 승려들이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시간과 돈에 얽매이며 사는 서양인들과는 달리 자연과 어우러진 단순하고 고요한 삶을 보내고 있음을 보고 이에 심취하였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를 보는 외국인들의 눈은 이와는 정반대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빨리 빨리를 외치며 거칠고 무례해진 이기적 모습의 한국인만이 보일 뿐이다. 길가다 발을 밟아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휙 지나가 버리기 일쑤고, 심지어는 차를 아무 곳에나 세우고 뻔뻔스레 실례하는 사람들까지 종종 보인다. 자본주의의 극단인 미국발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승자독식의 세계로 변모시키면서 행복했던 우리사회가 약육강식의 사회로 바뀌면서 변한 모습이다. 광복 이후 친미 보수파들의 개발독재로 일관되어 온 우리나라는 수천 년을 지켜오던 전통적 가치들을 죄다 한강에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렸다. 한강의 기적은 한강을 거품이 이는 검은 폐수로 만들며 생태계 파괴를 가져와 웅어 등 한강의 명물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교육도 돈을 많이 벌 직업을 잡으려는 수단으로 전락해 행복한 사회공동체를 만들 기본 도덕이나 윤리는 아예 실종돼 버렸다. 이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중 자살률이나 이혼율이 최고 수준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행복지수나 환경지속성 지수도 100위권을 넘어가는 세계 최하위 수준의 불행한 나라다.
보수 정치인들이 원조 보수로 단골로 내세우는 김구 선생께서는 사실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해방 후 귀국해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내가 바라는 우리나라’라는 제목의 전국 순회연설에서 먹고사는 것은 이만하면 족하니 문화대국을 만들자고 말했다. 당시 국민소득이 지금의 일백 분의 일에 불과한데도 경제보다는 도덕과 윤리가 강조된 문화국가를 만들자고 외치신 것이다. 이젠 대선주자들도 대운하 건설 등 국토의 대동맥을 도막내는 마구잡이 개발 위주의 돈벌기 공약을 자제하고 ‘책 읽는 건강사회 만들기’ 등 진정 두루 행복한 수준높은 사회를 약속하는 소중한 문화공약을 개발해 보자.
(녹색공간) 한강은 흐른다/ 2007. 5월 14일, 서울신문
이기영 호서대 식품공학과 교수
악동들에게 한강의 봄은 칡뿌리 캐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양지바른 곳에 삼삼오오 모여 숫돌로 곡괭이와 삽을 갈아 날을 세운다. 꼬마대장은 행주산성 공동묘지에 겨우내 알배기로 뿌리를 내린 어른 다리통만한 칡을 캐올 전략을 세운다. 그러나 무서운 묘지기 아저씨가 망을 보고 있어 한강가의 이마모태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한강을 타고 올라온 왜군들이 까맣게 산성을 향해 기어오르다 부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날라온 돌벼락과 뜨거운 물세례를 받고 떨어져 강물에 빠져 죽은 곳이다. 절벽 아래는 덕양산을 휘돌아가는 물살이 가장 빠른 곳이라 고깃배들도 이곳을 피해 간다. 땅은 아직 얼어 단단하지만 조금만 파고 내려가면 부드러운 흙이 나온다. 무덤에 뿌리박은 칡뿌리를 한아름 캐 안고 돌아온 아이들은 개선장군처럼 뽐내며 계집애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준다. 며칠동안 입이 검게 물들도록 씹으며 미리 찾아온 봄의 단맛을 즐긴다. 날씨가 풀리면서 여자애들도 질세라 대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간다. 흙 속에는 거미줄곰팡이처럼 하얗게 퍼진 메가 가득하다. 메를 한 소쿠리 캐 밥을 지어 무친 냉이반찬과 함께 먹으면 메향기가 입 속 가득히 퍼지며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한강이 풀리면서 강에서 처음 잡히는 물고기가 황복이다. 한강 상류로 올라가서 알을 낳기 때문에 3월 초순부터 4월초까지 한 달만 잡히는 고급 매운탕감이다. 복어는 테트로도톡신이란 무서운 독을 갖고 있어 아가미와 알, 간, 피는 빼버리고 먹어야 한다. 이 독은 복이 만든 게 아니라 산란기에 복에 기생하는 미생물이 분비한 것이다. 간혹 버린 내장을 개나 닭이 먹고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워낙 맹독성이라 먹는 즉시 소리도 못 지르고 꼬꾸라진다. 새끼 황복은 잡히면 배에 바람을 불어넣어 몸 전체가 공처럼 부풀어 오르며 물에 둥둥 뜬다. 무서워서 죽은 것처럼 위장하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큼직한 황복의 노르스름한 뱃가죽을 잘라내 씻어 말린 뒤 양재기에 씌워 북을 만들어 주셨다. 나는 비린내 나는 복북을 두드리며 동네 아이들과 성당마당을 돌며 노래판을 벌였다. 봄 햇살을 흠뻑 받은 개나리 담장에 닥지닥지 붙은 꽃망울이 화사하게 터지고 연분홍 진달래는 앞산 자락을 붉게 물들인다. 뒷산 언덕이 복사꽃으로 점점이 채색되고 한강의 양수장에서 퍼올린 물이 수로를 따라 흐르며 논밭을 적시기 시작하면 일손이 달리는 농사일을 도우러 악동들도 논밭으로 불려나가야 했다. “한강은 흐른다. 산과 들 사잇길로 복숭아 진달래 꽃망울을 터뜨리며 오늘도 무지개로 소리없이 흐른다. 한강은 흐른다.…마을과 도시를 지나 저마다 생의 등불 환하게 밝히면서 오늘도 은하수로 묵묵히 흐른다.”(www.singreen.com)
‘자연사랑 음유시 한마당’을 함께 펼쳐왔던 서울대 오세영(한국시인협회회장) 교수가 주신 이 시에 곡을 부쳐 보았다. 때마침 세계적 생명평화운동가이자 대학시절 친구인 뉴욕유니언 신학대의 현경 교수가 생태명저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헬레네 노르베리 호지 여사와 한국을 방문해 생태공연을 요청해 왔다.2005년 봄 한강 하류의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이 노래를 초연했는데 뜻밖에도 너무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이 노래는 이제 수십여 차례에 걸친 음악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우리 한민족의 혼을 담은 국민영가로 자리잡았다. 바리톤 최현수가 신작 가곡음반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한강은 우리 한민족의 생명을 지탱하는 대동맥이다. 그런데 요즘 선거철을 맞아 공장 건설이니 운하개발이니 하며 한민족의 대동맥을 마구 더럽히고 끊어놓으려는 개발 광풍이 일고 있다. 이 노래를 널리 퍼뜨려 위기의 한강을 살리자.
(칼럼) 인성교육 한시가 급하다/ 조선일보 2007년 5월 9일
초록교육연대 상임대표, 호서대 교수 이기영
얼마 전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에 환경특강을 갔다. 그런데 몇몇 무리의 학생들이 처음부터 안하무인격으로 떠들어댔다. 결국 잡담이 연사는 물론 함께 특강을 듣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설명을 하고 특강을 계속했다. 담당 선생님은 요즘 학생들은 꾸짖으면 오히려 대들어 후환이 두려워 떠들어도 그냥 놔두는 편이라며 학교에 선생님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호소했다. 그러니 만일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자유롭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니 오싹했다. 일본의 한 청소년연구소에서 한미일중 4개국 청소년 5676명을 대상으로 인생의 목표를 물었을 때, 한국학생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겠다’는 대답이 가장 컸고 자립심 항목인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가장 적은 것으로 나왔다고 보도됐다. 한마디로 ‘내게 재미있는 일만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겠다’는 요즘 아이들의 이기적이고 쾌락지향적인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10여 년 전 외국에 살 때 한국을 오랜만에 방문하면 그전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의 표정이 경직되고 눈빛이 사나워 말 건네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다 발을 밟히거나 어깨를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다. 동방예의지국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예의와 도덕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한쪽에선 부동산투기 등으로 번 돈이 넘치고, 다른 한쪽에선 부부가 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가계 적자가 계속 늘어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사회는 쉽게 붕괴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해도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성이 있다.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우리사회를 지키는 기본덕목인데 요즘 학교는 물론 집에서도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엄마가 가정교육을 독점하고 아이들을 통해 자신이 못 이룬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는 경쟁지상주의적 세태 때문이다. 집에서도 아무 말 안 하는데 귀한 내 자식을 왜 꾸짖느냐고 학교에까지 쫓아가 선생님을 폭행해 입원시키는 기막힌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일까지 남이 다 알아서 해주는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기표현을 못해 의사소통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원하는 대로 친구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파괴적 행동을 보인다. 이 때문에 반사회적 인격장애아들이 넘친다. 이젠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사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인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집에서는 아버지가 돈만 벌어오는 기계로서의 역할만 할 것이 아니라 신사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가르치고, 엄마는 서로 양보하며 나누는 밥상머리 교육을 다시 시작하자. 그래야만 서로가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녹색공간) 멸종을 택한 호주 원주민/ 4월 16일 [서울신문]
호서대 식품공학과 교수 이기영 말로 모건은 호주의 여의사이다.
그녀는 한 원주민 부족으로부터 초대받아 3개월간의 부족 성지여행을 마치고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을 펴내 호주 원주민들이 문명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 원주민 부족은 지상에서 사라지기로, 즉 아기를 안 낳아 스스로 멸종하기로 결정하고 이러한 결정을 문명인들에게 전할 메신저로 그녀를 선택한 것이다. 사람들이 땅의 영혼을 배반한 결과, 더위는 날로 심해지고 비 내리는 방식도 달라져 동식물의 번식이 크게 줄어들어 식량확보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오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최근 유엔 산하 기후변화국가간위원회(IPCC)는 지구온난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져 앞으로 70여 년 뒤에는 대부분의 동식물이 멸종할 것으로 예보했다.
말로 모건은 의사로 병원에 근무하면서 한편으론 삶의 의욕을 잃고 약물에 취해 지내는 호주 원주민 혼혈 젊은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는 일을 직접 지원해 왔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원주민 부족의 초청을 받아 4시간이나 사막을 달려서 원주민 마을에 도착했다. 그녀는 정화의식을 위해 원주민이 준 누더기 같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으며 입었던 옷과 신발은 물론이고 운전면허증이나 현금, 반지, 다이아몬드, 시계 등은 모두 불속에 집어넣어야 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이 의식이 물질과 고정된 신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 즉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단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을회의에서 원주민들은 그녀와 함께 대륙의 사막을 횡단하는 긴 여행을 결정했다. 모두 60여명이 참여한 여행의 목적지는 호주대륙 중앙에 있는 거대한 암석 근처의 지하동굴이었다. 이곳은 원주민들의 성지로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기록된 박물관이다.
원주민들은 긴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식량을 전혀 갖고 다니지 않았다. 그들은 걷다가 배가 고프면 음식을 생각하고 주위를 살피며 나타난 벌레나 뱀, 개미, 견과, 과일, 씨앗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간단히 조리해 먹었다. 말로 모건은 처음엔 이런 음식들을 절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며칠 뒤 살아 움직이는 벌레만 보아도 입맛을 다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말수가 적었고 대부분 텔레파시로 서로의 마음을 읽어 말이 거의 필요 없었다. 십여㎞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동족들과 텔레파시로 서로 정보를 교환했다. 또한 문자를 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기억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아무리 사소한 말이라도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항상 서로 즐거운 놀이를 하며 서로 돕고 나누며 살았다. 문명인들이 즐기는 달리기 시합같은 대부분의 스포츠를 놀이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한 사람만이 승자이고 나머진 다 패자여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주민들은 경쟁을 통해 패권만을 추구해온 문명인들을 ‘무탄트’ 즉 원래의 인간과 다른 변종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변종들이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땅을 배반해 동식물이 줄어들어 식량이 고갈되면서 더 이상 자손들에게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멸종을 결정했던 것이다. 얼마 전 유엔이 전 세계 과학자 2500명과 함께 연구해 발표한 충격적인 지구온난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기온이 지금보다 1도 오르는 2020년엔 먼저 개구리, 도롱뇽 등 온도에 민감한 양서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며 연쇄적인 생태계 붕괴가 시작된다. 바다 속 산호가 하얗게 말라 죽는 백화현상은 이미 호주에서 시작됐고 바닷물이 더워져 서식지를 잃는 어류의 멸종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2050년,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지구상의 생물 가운데 20∼30%가 멸종되고 2080년이면 대부분의 생물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녹색공간] 한민족의 생명줄 한강이 위험하다/ 서울신문/ 기사일자 : 2007-03-19
이기영 호서대 식품공학과교수
요즘 한강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2300만 수도권 시민들에게 생명을 이어주는 물을 공급해 주는데도 일부 사람들이 경제가 우선이라며 엄청난 양의 공업용수와 100여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을 한강 상류에 짓자고 단체 삭발을 하고 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강은 많이 오염돼 예전의 한강이 아니다. 더욱이 올해는 겨울이 다 지났는데 한 번 얼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한강은 겨울 내내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우린 한강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한강이 화가 나면 큰 홍수를 가져온다고 믿었고 그래서 한강에 함부로 쓰레기를 던지지 않았고 오줌도 누지 않았다. 추억 속 행주나루터의 겨울은 눈보라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득히 멀리 빙평선이 얼음세상과 하늘나라를 맺어주고 점묘파 화가의 붓놀림처럼 흰 눈이 세상이라는 캔버스에다 분주히 붓질을 하며 순백의 설경을 그려 나갔다. 화공의 터치가 점점 열정적으로 빨라지면서 날이 저물면 대지를 매섭게 저미는 북풍이 밤새 눈보라와 함께 추위를 몰고 왔다. 다음 날 아침 어둠이 걷히면 언제 소동을 피웠느냐는 듯 바람은 조용해지고 신비로운 은세계가 펼쳐졌다.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부근으로 떨어지고 한낮 최고 기온조차 영하에 머무는 추위가 며칠간 계속되면 한강이 가장자리부터 얼어들어갔다. 강이 얼어붙으면 이제 악동들의 놀이터가 엄청 넓어졌다. 큰 돌로 얼음을 내리쳐 ‘쿠르릉’ 하는 소리만 들어도 얼음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에서 자치기나 축구를 하던 구릿빛 낯에 눈이 반짝이던 아이들은 놀이터를 한없이 넓은 언강으로 옮겨와 종일 썰매타고 연 날리며 해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겨울이 깊어져 30㎝가 넘는 두터운 얼음이 강을 채우면 강물 때문에 못 가보던 강 건너 방화산까지 썰매를 타고 건너가 낟가리에 쥐불을 싸놓고 도망오기도 하고 멀리 북쪽으로 오리쯤 가면 지금 일산 신도시 근처에 있던 방말섬이란 큰 무인도를 탐험하러 가기도 했다.
그곳엔 용처럼 큰 구렁이가 산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우리에겐 공포의 섬이자 호기심의 섬이기도 했다. 섬의 버드나무 숲을 헤매며 지난 장마에 떠내려 온 정구공과 돛단배를 깎을 수 있는 솔피를 줍다가도 해가 서산에 걸리면 서둘러 섬을 빠져 나왔다. 가끔 귀신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들려 도망치듯 섬을 빠져나오다 보면 언강은 쩌렁쩌렁대며 울어댔다. 지난 여름 홍수때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우는 것이 아닐까 소름이 오싹오싹 끼쳤다. 그러나 이 소리는 사실 서해바다의 밀물이 얼음 속에서 부딪쳐 나는 소리였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로 한강의 기적과 함께 사람들의 손길을 타면서 한강은 거품이 이는 검은 물결로 변했고 더 이상 꽁꽁 얼지도 않는다. 겨울에 잡히던 1급수에만 사는 빙어는 물론 겨울 매운탕거리로 최고였던 배가사리나 쏘가리도 사라졌다. 점차 직강하천으로 바뀌면서 유량이 많아지자 모래섬이던 방말섬은 어느 해 장마철에 휩쓸려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이젠 어린 시절 전설의 섬으로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얼마 전 한강에서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옛 친구였던 한 어부를 만났는데 몇 년 전부터 귀한 황복이 다시 잡힌다고 한다. 이제 죽었던 한강이 다시 살아나려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다시 한강 상류에 맹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수만명 도시 규모의 하수를 내뿜는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허가한다면 다른 공장들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한강을 망가뜨릴 것이 뻔하다. 보수적인 분위기를 틈타 기업과 경제단체,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정치가나 학자들이 법은 물론이고 교과서까지 기업에 유리하게 바꾸려고 준동하고 있다. 다시 살아나려는 우리 한민족의 생명줄 한강을 지키기 위해 이젠 서울시민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기고] ‘괴물’은 살아있다 / 한겨레 2007년 2월 20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독극물 탓에 변종이 된 초대형 괴물 물고기가 한강 둔치에서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해 아수라장을 만든다. 정부는 괴물을 목격한 사람들을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속이고 병원에 가둔다. 관객동원 1300만명으로 최다 신기록을 세운 영화 <괴물>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은 2000년 2월 주한미군의 포르말린 무단방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괴물은 아직도 살아있다. 오로지 돈과 권력만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 괴물이다. 괴물은 경제가 무조건 최고라며 수도권 2300만 주민들의 상수원인 팔당수계 지역에 공업용수와 유해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을 짓자고 삭발하고 떼쓰는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고 있다. 10여년 전 낙동강 상류에 있는 두산전자의 페놀 유출 사고로 수많은 물고기가 떼죽음당하고 발암물질이 퍼져 우리를 놀라게 했던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다. 1999년엔 춘천댐 상류 오월교에서 경유 2만ℓ를 실은 유류 운반차가 추락해 경유 약 3천ℓ가 유출된 사건도 있었다. 2005년 11월엔 중국 지린시 화학공장의 니트로벤젠 정류탑 폭발로 8명이 죽고 60여명이 다쳤으며, 벤젠 약 100여톤이 쑹화강에 유입돼 중국 및 옛소련 지역 주민 150만명에 영향을 끼치는 식수대란이 일어났다.
구리가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특성상 100여 가지 이상의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데다, 수송저장공정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떻게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터졌다 하면 팔당댐으로 흘러들어 많은 수도권 사람들이 고통당한다는 사실을 어째 외면하는가? 더구나 하이닉스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기사회생한 기업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생태계가 해를 입으면 인류도 멸망한다는 한치 앞의 사실도 못 보고 오로지 돈과 권력욕에만 눈이 팔렸다. 더구나 인류 전체를 치열한 경쟁에 가두어 서민들을 빈민으로 만들어 건강과 행복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 생태계 전체를 무너뜨려 인류문명을 멸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겨울, 행주 나루터의 한강은 겨우내 30㎝도 넘는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때만 해도 물이 깨끗해 지금은 1급수에서만 볼 수 있는 빙어가 잡혔다. 추운 줄도 모르고 연 날리고 팽이치고 썰매 타다 보면 한 겨울이 갔다. 그러나 이젠 강물도 오염돼 빙어는 물론 행주의 명물 횟감인 웅어조차 사라졌다. 이젠 겨울에도 꽁꽁 얼어붙은 한강을 보기가 쉽지 않다. 지구온난화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열섬 현상으로 서울 근교의 연간 평균기온이 무려 3℃ 이상이나 높아졌기 때문이다.
2월2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130여 나라 과학자 2500여명이 유엔 기후변화위원회(IPCC)를 마치고,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오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최대 6.4℃까지 올라가고 해수면도 지금보다 무려 59㎝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극빙하가 녹아내리고 수많은 해안도시들이 물에 잠길 뿐만 아니라 태풍이나 홍수폭염가뭄 등 이상기후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 부족이 세계로 확산되고 사막화가 빨라져 지구 생태계가 절멸 위기에 처할 것이란 경고다.
괴물은 살아있다. 맹신자들을 하수인으로 부리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로 수십년 안에 지구를 결딴낼 기세다. 영화에서처럼 돈과 권력을 신봉하는 이들이 진을 치고 있는 이상, 정부나 기업을 믿을 수는 없다. 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이기영/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녹색공간] 참살이로 지구를 구하자/서울신문2007년 2월 12일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서울신문]지난 2일 130여개국 2500여명의 과학자가 파리에 모여 유엔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회의를 마치고 확정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오는 2100년까지 지구평균기온이 최대 6.4도까지 올라가고 해수면이 지금보다 무려 59㎝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때문에 북극의 빙하가 사라지고 수많은 해안도시들이 물에 잠길 뿐 아니라 태풍이나 홍수, 가뭄 등 지구는 이상기후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 부족이 심화되고 사막이 급격히 늘어나 지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기 힘든 생태적 공황상태에 처한다는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경고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인류가 앞으로 10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하로 줄여, 현재의 380대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 안에 묶어둘 수 있다면 이같은 재앙의 진행을 멈출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정점을 2015년까지 묶고 해마다 3%씩 줄여나가야 한다. 에너지절약을 위해 지구촌 가족들 모두의 큰 결심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류 역사상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과 생물계 전체에 대해 지구온난화처럼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아마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제 인류와 생물의 목숨은 앞으로 10년동안 인류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1947년 과학자들이 핵전쟁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만든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는 지난달 17일 11시55분을 가리켜 파국인 자정까지 5분밖에 안 남은 급박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핵폭탄이나 테러보다 지구온난화가 더 큰 위협이 되었다고 한다. 만일 지금처럼 고급대형 승용차를 선호하고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길 원하는 환경파괴적인 가치관을 유지한다면 현대 인류문명은 죄없는 가여운 생태계와 함께 멸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자들도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이 중요하지만 경제성 문제로 결국 관건은 에너지 절약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지구온난화의 진원지인 산업체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나가야 하고 우리 모두는 생활 속에서 에너지 절약과 검소한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과 행복추구 생활방식을 뜻하는 이 말은 식품을 비롯해 의류가구 등은 물론 주택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을 선전하는 데 쓰인다. 그러나 웰빙추구는 오로지 사용자의 건강과 편안함만을 고려할 뿐,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 대한 배려를 거의 무시하므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고 행복해지려면 좀더 거시적인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웰빙뿐만 아니라 이웃의 웰빙, 더 나아가서는 지구의 안녕과 지속성까지 생각하는 삶이 바로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참살이’ 즉,‘로하스’(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이다. 미국 내추럴마케팅연구소(NMI)가 2000년 제시한 삶의 방식이다. 인간의 정신육체적 건강과 함께 환경사회정의 및 지속 가능한 소비에 큰 가치를 둔다.
[기고] 얼어붙은 한강, 그립다/ 경향신문, 2007년2월 5일
〈이기영/ 호서대 교수식품생물공학과〉
얼어붙은 한강이 끝없이 북으로 달리던, 행주산성 자락 언덕배기의 눈 덮인 초가에서 내려다 보던 유년시절의 겨울은 정말 추웠다. 언 강을 헤매고 놀러다니다 보면 방구덩이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은 물구멍 위에 얇은 얼음이 살짝 덮여 있어 발을 잘못 디디면 물속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 둘러앉아 낚시를 하면 매운탕 감으로는 최고로 쳤던 뿔 달린 배가사리나 점박이 쏘가리를 잡을 수 있었다. 주변에서 물고기들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였다.
그 당시엔 한강 하류의 물도 워낙 맑아 지금은 1급수 상류에서만 사는 빙어도 곧잘 잡혔다. 어른들은 펄펄 뛰는 빙어를 잡아 그 자리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매운탕거리가 양은냄비에 그득히 채워지면 우리들은 강가로 나와 지난 장마에 떠내려 온 마른 솔피를 모아 불을 지폈다. 그러곤 냄비에 한강물을 퍼 담아 고추장을 풀어 끊인 뒤 여기에 구멍가게에서 사온 국수와 함께 쏘가리를 넣어 매운탕을 만들어 먹는다. 이것을 우린 털래기라 불렀다. 점심을 먹고 다시 강가로 나와 추운 것도 잊은 채 팽이 치고 얼음을 지치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는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한다. 햇살이 엷어지고 강 건너 김포 방화산의 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 우린 아쉬운 마음을 달랜 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나 이젠 단단하게 얼어붙은 한강을 더 이상 보기가 힘들어졌다. 지구온난화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열섬 현상으로 서울 근교의 연간 평균기온이 무려 3도 이상이나 높아졌기 때문이다.
유엔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이제 지구온난화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인류에게 마지막 경고장을 보내기도 했다. 더구나 강물도 오염돼 빙어는 물론 행주의 명물 횟감인 웅어조차 사라졌다.
한강 오염의 주범인 생활폐수나 축산분뇨, 공장폐수로부터 한강을 되살리기 위해 10년 넘게 10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한강을 되살리는 것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한강의 추억을 다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수도권의 생활폐수나 축산분뇨를 모두 모아 처리하고 상류지역에 공장설립을 불허해 한강에 흘러드는 폐수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가 무조건 최고라며 2000만 수도권 시민들의 생명수인 한강 상류원 지역에 공업용수와 유해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자고 삭발하고 떼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답답할 노릇이다.
10여 년 전 두산전자에서 사고로 유출된 페놀 때문에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하고 클로로페놀 등 발암물질이 퍼져 우리를 경악케 했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오로지 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 가두어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생태계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한강은 우리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현재의 이익과 만족보다는 먼 훗날 우리 후세대의 모습도 그려봐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다시 얼어붙은 한강에서 온종일 얼음을 지치며 놀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대해 본다.
[녹색공간] 바그너 할아버지의 경고/ 서울신문, 2007년 1월 15일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2005년 6월, 모교인 베를린 공대에서 2주간 열린 ‘신재생 에너지 워크숍’에 참석하러 독일을 방문했다. 주말에 나는 유학 초창기에 살던 베를린 남부 첼렌돌프를 찾았다.
20년이 지난 오랜 기억을 더듬어 기다란 낡은 2층 연립주택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았지만 모두 비슷비슷해 도저히 예전에 살던 집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마침 한 노부부가 나와 바그너 할아버지의 옛집을 가르쳐 주었다.
헤르만 바그너. 바로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독일인 음악가. 그 노부부는 바그너 할아버지의 이웃으로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일들을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음악명가 바그너가의 한 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100세까지 사시고 7년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교직에서 은퇴한 딸이 그 집에 살고 있는데 바로 1시간 전에 휴가를 떠났다는 말을 듣고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다.
1985년, 독일 유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바그너 할아버지는 갓 결혼한 가난했던 우리 부부를 1년간이나 집세도 안 받고 함께 살게 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당시 85세 고령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 한 겨울에도 방의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딱딱한 대나무 침대에 달랑 담요 한 장만 덮고 주무셨다.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거나 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들어갔고 이어서 느린 동작의 중국식 기공체조를 했다. 대개 오전 11시경이나 돼야 간소하게 채식으로 식사를 했는데 키가 크고 마른 몸매였지만 매우 건강하셨다.
할아버지는 가끔 나를 불러내 뒤에 있는 공원에서 탁구를 치곤 했는데 어찌나 체력이 좋으신지 1시간이 넘도록 쳐도 지치질 않아 오히려 내가 먼저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도망쳐 나올 정도였다. 가끔 갓 결혼한 우리 부부를 저녁에 초대해 함께 유기농 식사를 나누었고 매달 제자 음악인들을 초청해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할아버지는 독일인이면서 소시지는 물론 우유도 안 드실 정도로 지독한 채식주의자였다.
그는 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제국주의로 발전한 배타적인 현대 서구 물질문명이 많은 자연친화적 소수 문명을 파괴해 왔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자원과 화석에너지 남용으로 지구의 생태계 파괴를 초래해 인류문명 전체를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경고하셨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파괴적인 현대문명의 대안으로 동양의 자연철학이 담긴 노자와 장자를 내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동양인이면서도 서양철학에는 일찍이 눈을 떴으나 정작 동양철학은 아는 게 없어서 매우 부끄러웠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환경에 눈을 뜨게 된 나는 학위 내용도 주정폐수의 자원화 처리를 주제로 마쳤고 오늘날 노래 등 문화를 통한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
요즘 기상이변의 심화로 지구촌은 점점 황폐화하고 있다.3년 전 미 국방부 기후변화 보고서인 펜타곤 리포트의 경고에 이어 얼마 전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미국의 앨 고어 전 부통령도 직접 출연한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10년 안에 지구온난화로 인해 엄청난 재앙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해양부는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북대서양 난류의 유입이 지난 20년간 30%나 줄어들어 이상기후가 심화되면 생태계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미 재앙은 코앞에 와있을지도 모른다. 엘니뇨로 유례없이 따뜻한 겨울로 맞는 2007년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보도이다. 평년 평균기온이 영하 10도이어야 할 모스크바는 요즘 영상 5도를 가리키고 있고 북극곰은 얼음이 얼지 않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자 해안마을을 습격했다고 한다. 이제 바그너 할아버지의 경고대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는 노아의 방주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독자 칼럼] 한 성당의 성공적인 독서운동/ 조선일보 2006.10.23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 국민 독서량 독일의 10% 수준 종교단체서 펼 땐 큰 파급효과 -
조선 최고의 명저들’이란 책을 보면,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했던 프랑스 해군장교 주베르는 ‘조선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또 하나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우리 민족은 배움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만든 직지심경을 남긴 문화민족이다. 이러한 전통 때문인지 현재 대학 진학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은 일본이나 독일 등과 비교해 볼 때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OECD 국가들 중 꼴찌다. 압축성장 사회에서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책에 손이 갈 여유가 없어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독서운동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례가 있다. 서울 잠실의 한 성당에선 3년 전 ‘매주 책 한 권 읽기’ 운동을 시작, 400여 명의 신자들이 1년 동안에 54권의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신자들은 앞다투어 독후감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이를 심사해 시상을 하는 등, 이 운동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이제는 이 독서운동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성당에서 만난 한 신자는 한 해 동안 읽은 책이 자기가 평생 읽은 책보다도 더 많았다고 했다.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9명의 독서위원들은 회의를 통해 매주 한 권씩 좋은 책을 선정해 발표한다. 처음엔 200페이지 내외의 두껍지 않은 재미있고 쉬우면서도 유익한 책을 골랐다. 그리고 매달 읽은 책들 중 저자 한 사람을 초대해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열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소설가 최인호씨도 연사로 왔었다. 그 결과 신자 수가 900명이나 증가했다. 독서운동이 자리를 잡으면서 가난한 이웃을 돕자는 실천신앙으로 방향이 모아지면서 한 해 평균 2억5000만원을 양로원 등 주변 9개 사회사업기관에 헌납하고, 신자들은 주말마다 이들 기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편다. 얼마 전 이 성당 이기양 주임신부는 서울대교구의 요청으로 그동안의 운동 과정과 읽은 책의 리스트를 담은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만일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단체들이 힘을 합쳐 좋은 책을 선정해 신자들을 대상으로 독서 운동을 편다면, 몇 년 안에 독서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류가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한국사회가 독서를 통한 문화적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한다. 이러한 저력을 토대로 우리 고유의 공동체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기영 호서대 교수 식품생물공학)
[독자 칼럼] 아이들 식단, 유기농으로 바꾸자 / 조선일보 2006.08.29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김치된장청국장 냄새가 나긴 하지만… 우리 몸엔 보약이지요. 치킨피자햄버거 기름지고 입에 달지만… 우리 몸을 망가뜨려요~.’ 카랑카랑한 아이들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여름방학 내내 아름다운 평창의 강 언덕에 있는 생태 마을에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 지냈다. 한번에 200여명씩 전국에서 온 3500명이나 되는 학생과 가족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라는 주제로 ‘노래하는 환경교실’(singreen.com에서 노래 청취 가능)을 열었다. 아이들은 낮에는 유기농장에서 감자를 캐고 저녁에는 우리 콩으로 직접 두부를 만드는 등 농사짓기와 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였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초등 4~5학년 남학생들 중에 유난히 비만아가 많아, 3명 중 한 명은 뚱보였다. 2박3일 단체생활 동안 가장 산만하고 지시도 잘 안 따르는 문제아(?) 대부분이 바로 이들 비만아였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의 연구결과, 달거나 기름지고 각종 유해화학첨가물을 함유한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들은 소아비만과 당뇨의 주범일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의 집중력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환경부가 지정한 환경호르몬 우려물질 67종 가운데는 농약이 40종이나 된다. 이들 농약은 극미량이라도 장기적으로 몸에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어린이 식단은 특별히 유기농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비만의 제국’이란 오명을 얻은 미국에선 학교 식단에서 기름기를 빼고 청량음료의 판매를 금지하는 등 패스트푸드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17%의 미국 어린이가 비만이며 이들 중 30∼40%가 어른이 돼 당뇨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예상됐다. 그래서 많은 학교의 급식에서 피자나 햄버거치킨너겟감자튀김을 빼는 대신, 두부버거와 야채버거 같은 메뉴를 새로 만들고 식당에 샐러드 바를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나 학교는 물론 학부모들조차도 공부가 우선이지 아이들 비만문제에 대해선 그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얼마 전 학교급식법이 통과되었는데도 집단식중독 사고가 난 서울의 47곳 중 직영으로 바꾸겠다는 학교는 불과 4개교뿐이었다. 이러니 유기농 농산물을 활용해 학생들 몸에 좋은 급식을 만드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과외비용으로는 수백만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유기농은 비싸다고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유기농으로 식단을 바꿔도, 한 달 식비로 따지면 가족 외식 한두 끼 정도의 비용이 더 들 뿐이다.
자녀를 우등생으로 만들려면 집과 학교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김치된장청국장 같은 전통 발효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주자.
(이기영 호서대 교수 식품생물공학)
[독자칼럼] 이상해져 가는 地球 / 조선일보, 2005년 10월 12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산업화로 탄소균형 깨져 끓는 주전자가 된 상태
인류의 종말, 보고만 있을 건가
얼마 전 지구 온난화로 녹아내려 크기가 원래보다 24%나 줄어든 북극 빙하의 모습이 공개됐다. 이르면 50여 년 안에 다 녹아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에너지 과소비를 일삼아 온 인류 문명에 대한 중대 경고다.
지구의 기후는 태양에서 공급받은 빛에너지가 열이나 바람, 해류 등 각종 에너지로 전환돼 형성된다. 바람이나 해류의 이동 등 자연 현상들은 열대지방의 뜨거운 열에너지가 골고루 퍼지면서 에너지 평형을 이루기 위한 자연의 노력인 셈이다.
생태계는 에너지와 물질의 이용을 제어하는 유전정보시스템인 DNA가 생겨나 탄소동화작용으로 햇빛 에너지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생화학적인 결합에너지로 바뀐 각종 유기체가 만들어지면서 진화해왔다. 물 성분을 뺀다면 사람의 몸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물체들도 90% 이상이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지구 탄생 후 48억년간 자연적으로 에너지의 조화를 이루어온 생태계의 탄소 균형이 200여 년 전 시작된 산업화 이후 사람들의 개입으로 갑자기 깨지고 있다. 특히 수억 년 동안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마구 파내서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면서 200? 미만을 유지해오던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원래보다 두 배인 400? 가까이 높아졌다. 이로 인한 온실효과로 지구 엔트로피가 증가하자 대기 중에 수증기가 많아지면서 이제 지구는 끓어오르는 주전자 같은 상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수증기는 함유한 많은 에너지로 인해 매년 최고속도를 경신하는 태풍이나 100년 만의 폭설 등 지구촌 곳곳에 이상기후를 일으키고, 자체의 강력한 온실효과로 지구 온난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더 무서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날 수 있다. 적도의 뜨거운 열에너지를 분산시키면서 평형을 유지해온 대양 심해 순환벨트가 붕괴되어 해류가 멈추게 된다면 지구 북반구는 갑자기 빙하기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미 양 극지방의 해빙으로 해수의 염도가 떨어지면서 이러한 조짐이 관찰되고 있다. 온난한 기후가 6000여 년간이나 지속돼 성장해온 인류문명은 이 때문에 생태계의 몰락과 함께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이미 작년 초 영국 가디언지에 의해 공개된 미 국방부의 비밀보고서는 이를 경고한 바 있다.
고기후학자들도 빙하 시추 연구결과를 토대로 8000년 전에도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남해 도서지방에서나 자라는 동백꽃이 서울에서도 피고 이상기후로 금세기 내에 한반도에 겨울이 없어지리란 전망이다.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길은 에너지 절약과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 증가속도가 세계 1위일 정도로 에너지 낭비가 극심한 나라로, 무절제한 에너지 사용을 더 이상 방관해선 안 된다. 미국처럼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핑계로 올해 초 발효된 유엔기후변화협약을 피해가지 말고, 산업에너지의 효율을 높여 나가자. 또 독일처럼 대체 에너지 개발에 나서는 등의 적극적 정책을 펼쳐나가자. 국민들도 가급적 대중교통이나 소형차를 이용하고 한 등 끄기 등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야 한다.
이기영 호서대 교수 자연과학부
"[자연과 삶/이기영]‘생태명문’ 거산초등교 배우자/
[동아일보]2005년 10월 30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김치 된장 청국장 냄새가 나긴 하지만 시원하고 구수한 맛 우리 몸엔 보약이지요∼. 치킨 피자 햄버거 기름지고 입에 달지만 비만 당뇨 고혈압으로 우리 몸을 망가뜨려요∼.’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섞여 싱그러운 햇살이 가을 교정에 흩어진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충남 아산시의 시골 학교인 거산초등학교를 방문해 기타를 치며 환경노래를 부르는 ‘노래하는 환경교실’을 운영해 온 지 4년째. 교정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벌써 내 차를 알아보고 달려와 차에서 내리는 나의 양팔에 매달린다.
이 학교는 여느 시골 학교처럼 학생 수 감소로 한때 폐교의 위기에 몰렸으나 주민과 인근 도시의 학부모, 교사들이 힘을 모아 행복한 배움터로 되살린 곳이다. 학생이 줄어들면서 1992년에 분교로 격하됐고 2001년에는 전교생이 34명으로 줄어들자 폐교 대상에 올랐다. 마을의 미래를 걱정한 주민들이 폐교 반대 운동에 나섰고 독서지도모임에서 만난 6명의 교사가 “공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좋은 교육의 꿈을 이뤄 보자”며 이 학교로 전근을 자청했다.
2002년 3월 ‘공교육 희망 만들기’를 시작한 거산분교는 3년 뒤에, 또 분교가 된 지 만 13년 만에 다시 ‘거산초등학교’라는 원래의 학교 간판을 되찾았다. 이 학교는 여느 학교와는 달리 ‘체험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냉이 캐서 된장국 끓여 먹기, 쑥 뜯어 쑥떡 만들기, 직접 키운 고구마 구워 먹기, 알밤 줍기, 전통놀이 배우기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자연체험 활동을 한다.
중요한 학교 행사는 학부모 대표-교사회의에서 결정되며 연간 교육 계획에 학부모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또한 학부모가 수업시간에 보조교사 역할을 하거나 학습 부진아를 지도하는 등 교육 활동의 한 축을 맡는다. 전문가그룹도 이 학교를 돕는다. 수의사, 양봉 전문가, 식물 전문가, 환경 교육자 등으로 이뤄진 자문단은 매주 돌아가며 1시간씩 수업을 진행한다.
소문이 나자 아산과 충남 천안시 등 도시지역의 많은 학부모가 장거리 통학도 마다하지 않고 자녀들을 거산분교로 전학 보냈다. 이제 거산초교는 자녀를 보내려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학부모들을 잘 설득해 돌려보내야 할 정도가 됐다. 학급당 학생 수 20명 안팎의 적정 인원을 유지하려는 ‘고집’ 때문에 더는 학생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학생 수를 더 늘리는 것보다는 다른 농촌지역의 소규모 학교들을 제2의 거산초교로 만드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1998년 교육부가 전교생이 100명이 안 되는 학교들을 통폐합하기로 방침을 정한 뒤 전국적으로 3000여 개에 이르는 농촌지역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직접 나서 희망적 사례인 거산분교를 벤치마킹해 학생 감소로 위기에 처한 시골 분교들을 ‘생태 명문교’로 변신시키는 것이 어떨까. 주변 도시로 전학 가던 학생들이 돌아오고 오히려 도시에서 시골로 전학을 할 정도가 되면 죽어 가는 농촌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봉곡사 솔밭길 / 한겨레 2005년 5월 22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부처님이 오신 오월 산사에는 온갖 색깔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향기를 뿜어내고 무늬와 크기가 서로 다른 날개를 뽐내는 갖가지 꿀벌들도 이리저리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생명의 합창을 연호한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우리학교 주변의 크고 작은 산 속엔 작은 규모의 아름다운 산사들이 산재해 있다.
몇 년째 주말이면 한 시골 초등학교인 거산분교에 환경노래 특강을 다니고 있다.기타를 치며 악동들과 함께 신나게 ‘노래하는 환경교실’ 한마당을 끝내고 교문을 나오면 땀을 시키기 위해 근처 봉곡사로 향한다. 신라 진성여왕시절에 지어진 이산사에 가려면 700미터 정도의 아름다운 솔밭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200여 년 전 겨울 다산 정약용이 실학자 13명을 모아 성호이익의 문집을 정리하는 강학회를 열흘간 열었다는 봉곡사 주변은 역사를 멈춰놓은 듯 현대문명의 흔적이 거의 없다. 안개 자욱한 날 홀로 봉곡사 솔밭 길을 걷다보면 하늘 향해 까마득하게 뻗은 수백 년 생의 곧은 소나무 군상들이 역사의 새벽길을 먼저 가신 선비들로 변신한다. 다산이 굶주리는 백성들을 걱정하며 새로이 접한 서양의 과학을 이용해 더 많은 수확을 낼 농사법을 궁리하며 제자들과 겨울의 눈 내린 새벽길을 올라갔던 바로 그 길이다. 나는 수백 년간 우리의 혼을 지켜온 맹사성, 정여창, 김굉필,조광조, 김구 같은 추상같은 일생을 살다 간 선비들 사이로 걸어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권좌가 목적이 아니고 오로지 백성과 임금을 걱정하고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우리의 선비들, 학문과 풍류, 그리고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던 님들처럼 검소하고 단아하게 살다가 어느 날 큰 뜻을 위해 남은 명을 아낌없이 바쳐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봉곡사를 찾을 때마다 항상 아쉬운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솔밭길을 덮고 있는 아스팔트이다. 단단하고 두터운 아스팔트를 모두 걷어버리면 흙의 속살을 밟을 수 있어 발걸음이 훨씬 더 가벼워질 텐데, 조금 더 편리하자고 거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오대산 월정사는 일주문 바로 뒤 편 전나무숲길의 포장을 걷어냈다고 한다. 봉곡사 솔밭길도 원래의 흙길을 되찾아 준다면 먼저 가신 우리의 선비들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게다.
이기영/호서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지율과 황우석 /한겨레 2005년 3월 28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작년에 연예인과 정치인을 제외하고 사람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렸던 이름이 둘 있다. 지율 스님과 황우석 교수. 두 분 모두 생명을 다루는 아주 특별한 일을 주도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반대쪽에 서서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율은 천성산을 지켜온 비구니지만 자신의 생명을 죽여 가며 사람들이 하찮을지 모르는 도롱뇽이란 뭇생명을 살리고자 했다. 반면 황 교수는 배아복제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켜 국가적 과학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연구가 당장 한국 경제에 큰 부가가치를 안겨줘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경제가 곧 선진국들을 추월할 것인 양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인간복제 및 생명의 부품화, 상품화, 자연계엔 금지된 이종간의 잡종 및 반인반수의 키메라 생성을 야기할 수 있는 무서운 기술이다. 더구나 배아는 언제나 생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명백한 인간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에 생명윤리의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유엔은 얼마 전 ‘인간배아 복제 금지 선언문’을 채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연의 질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탄소를 기본원소로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생성된 모든 생명체들은 수천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정교한 퍼즐처럼 무기물질인 공기나 물, 토양을 매개로 서로 영양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만일 퍼즐 일부분이 갑자기 커지거나 작아지게 되면 전체가 뒤틀리게 되거나 구멍이 생겨 한꺼번에 무너지듯이 생태계도 스스로 자정시킬 수 있는 완충범위를 벗어난 큰 변화가 생긴다면 재난을 맞게
된다. 생태계의 번성과 쇠퇴는 사실 과거에도 수없이 일어나 이미 지구는 생물의 90% 이상이 사라지는 대멸종을 다섯 차례나 경험한 바 있다. 지구 대멸종은 지구 공전주기에 따라 태양빛의 세기가 약해져 10만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빙하기의 도래에 의해 일어나거나, 갑작스런 해저화산의 폭발, 또는 소행성의 충돌로 인해 생긴 먼지가 수년 동안 햇빛을 가려 가뭄과 한발을 가져와 지구 생태계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러나 요즘 일어나는 기상이변과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동물멸종 문제, 암과 아토피의 급증, 유전자 조작 등의 생명 변형으로 인한 동식물의 왜곡은 이런 주기적인 자연현상이나 우연으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첨단과학 경쟁으로 사람들이 자초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산업화로
수천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에너지가 미국 등 선진국들의 과소비로 단 몇십년 만에 고갈되면서 대기 중 탄산가스 농도가 유례없이 높아지면서 지구온난화가 초래됐다. 또한 사람들이 수십만 종의 화학물질들을 합성남용해 자연계를 오염시키자 분해되지 않고 쌓이면서 생물체에 돌연변이원이나 발암물질 등으로 작용해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영국에서의 연구 결과 생물 종들의 개체 수가 지난 40년 사이 최고 70%까지 감소해 지구 역사상 제6차 대규모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얼마 전 이십여만의 인명을 앗아간 지진해일(쓰나미)이 지나간 뒤 살펴보니 야생동물의 시체는 단 한구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원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죽음을 당한 문명세계에서 온 관광객들과는 달리 자연으로부터 오는 위험신호를 미리 감지하고 일찍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지율도 ‘살려주세요’라는 천성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천성산 뭇생명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대상으로 과학을 연구해 각종 편리한 도구를 만드는 데 이용해 왔지만 이로 인해 초래될 지구 전체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는 자연의 절규와 경고는 못 듣고 있다. 수많은 자연법칙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과학적 성과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무한경쟁 속으로 빠져들면서 생태적 감수성조차 상실해버린 것이다. 돈이나 권력, 명예에 대한 코앞의 욕심 때문에 판단력을 상실해버려 현대인들에겐 미래를 경고하는 자연의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지율스님의 목숨 건 경고 /한겨레, 2005년 2월 24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3일로 단식 100일째를 맞은 지율 스님이 정부가 제의한 ‘환경영향공동조사 3개월 실시’ 중재안을 받아들여 단식을 중단했다. 그의 단식은 단지천성산 도롱뇽만을 살리기 위한 투쟁이 아니었다. 개발을 위한 경쟁적 생태계파괴로 공멸의 위기에 처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현대자살문명’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얼마 전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환경지수가 세계 146개 국 중 122위에 머물러 그동안 경제개발이란 이름으로 삼천리 금수강산 곳곳이 파헤쳐지면서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5년 동안 지구온도가 9번이나 차례차례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역사상 가장 따뜻했던 해의 1위부터 9위까지가 모조리 1990년 이후에 발생해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발표된 전 세계 명망있는 정치인과 학계 및 업계 지도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이 작성한 ‘기후변동에 대한 대응’이란 보고서는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79으로 매년 2씩 상승해 앞으로 10년 안에 400이 되면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1750년 영국에서의 산업혁명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지구평균온도가 0.8℃ 상승했는데 2도 이상이 되면 정상 회복이 불가능해 이를 중지시키기 위한 전 지구적인 특단의 대책이 단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구온난화가 오히려 갑자기 빙하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학설이 제기돼 사람들의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해 5월에 개봉되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북대서양의 해류가 멈추면서 몇 주만에 지구에 빙하기가 급습하는 대재앙이 찾아온다. 정말 이러한 비극적 상황이 가능할 것인가? 해마다 층층이 쌓이는 눈으로 만들어지는 극지방의 빙하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갖는다. 빙하를 시추해 얻은 얼음시료에 갇힌 공기를 분석해보면 수십만 년 전의 탄산가스 등 대기의 조성을 알 수 있다. 빙하분석 결과 8000년 전과 1만3000년 전에도 지금처럼 온난화로 지구온도가 올라가다가 갑자기 빙하기로 기후가 바뀌어 유럽전역이 얼음으로 뒤덮이는 사태가 발생했었음을 알아냈다. 오래 전부터 핵 과학자들은 해저 핵실험 뒤 생긴 방사능 물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다가 염도가 높은 북대서양 난류가 북극의 빙하에 부딪혀 차가워지면서 밀도가 높아져 하강하는 힘으로 대양 심해류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요즘 이 해류의 하강 속도와 깊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지면서 밀도가 떨어지고 있어 북대서양 난류가 멈출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이다. 또한 적도의 열을 지구 북반구에 골고루 나누어주는 이 해류가 완전히 소멸되면 갑자기 10년 내에 지구에 빙하기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빙하기가 되면 지금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5℃ 정도 떨어지면서 북위 40도 이상의 북반구가 1000m도 넘는 두께의 얼음으로 뒤덮이게 된다. 이 때문에 모든 생태계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식량의 절대 부족으로 인류문명은 절멸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첨단 기술로 얻은 경제력으로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개발경쟁은 결과적으로 대규모 자원 낭비와 오염물질 배출로 생태계의 공멸을 초래할 환경파괴전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마치 경쟁적인 도박과 화려한 파티로 밤을 새우는, 빙산과 충돌 직전의 타이타닉호에 탄 상류층 사람들과도 같다. 현대 인류문명은 ‘자살문명’인 셈이다.
지율 스님의 목숨을 건 투쟁은 그 수명이 채 10년도 남지 않은지도 모를 개발에 목숨을 건 현대자살문명에 대한 경고였다. 미국인들처럼 지구인 평균의 10배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산업사회의 확산은 곧 인류문명자살의 지름길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환경영향평가를 성실히 수행해 ‘묻지마개발론’을 중지시켜 우리나라 환경사에 큰 획을 긋기를 바란다.
이기영/호서대 자연과학부 교수
[여론마당/이기영]음식찌꺼기도 활용하면 돈/ 동아일보 2005년 1월 21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과거 농가에서는 근처 도회지의 식당에서 가져온 음식물찌꺼기나 집안에서 나오는 구정물을 먹여 돼지를 키웠다. 그러나 요즘은 공장식 축산으로 배합사료를 먹여 돼지를 대량 사육한다. 우리나라는 사료의 95%, 곡물의 75%를 수입에 의존한다. 음식물찌꺼기를 사료로 만드는 등 자원화 정책은 당연히 계속돼야 한다.
우리 음식은 외국과는 달리 김치 등 발효음식이 많고 산도가 높아 병원성 유해균들이 자라기 어렵다. 더구나 사료로 이용할 경우엔 의무적으로 30분간 끓여야 하므로 위생적으로 안전하다. 이젠 외국에서도 한국의 사례를 보고 음식을 비롯한 유기성 폐기물의 매립을 억제하고 자원화하는 추세다. 더구나 침출수나 악취로 인한 매립지 주변 주민들의 피해를 고려한다면 직매립 금지는 불가피한 정책이다. 환경부는 최근 음식물쓰레기 직매립 금지에 따라 일반쓰레기 분류 기준을 4개 항목으로 단순화하기로 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했다. 일반쓰레기로 배출해야 하는 4개 항목은 △소돼지 등의 털과 뼈 △패류의 껍데기 △호두 등 견과류 껍데기와 복숭아 등 핵과류의 씨 △종이헝겊 등으로 포장된 1회용 녹차 티백 등이다.
분리배출 기준은 사료 등 처리시설의 원활한 가동을 고려하고 자원화 비율을 높이기 위해 꼭 지켜야 할 사항이다. 쾌적한 환경은 시민들이 조금씩 불편을 감수할 때만 지켜진다.
이기영 호서대 교수유기자원학회 이사
이기영의 환경이야기/무심코 사주는 햄버거 내 아이 비만 부른다/
한겨레 2004년 8월 8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청소년 비만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5%가 안 되던 우리나라의 소아 비만율이 90년대에는 20%대가 되더니, 요즘엔 30%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비만은 당뇨, 고혈압 등 만병의 원인으로, 노동력의 양과 질을 떨어뜨려 국가 경쟁력에 큰 손실을 끼친다. 합병증 치료 비용과 삶의 질하락까지 감안하면 사회손실비용이 연간 수조원에서 수십조원대까지 이를 수 있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서 환경 강연을 마친 뒤 식당에 갔다가 점심 후식으로 햄버거가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담당 선생님에게 물어 보니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위해 특식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이는 학생들의 비만이 상당 부분 부모의 무지 탓임을 보여 준다. 부모들이 아이들 생일잔치를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차려주는 것도 마찬가지 예다. 건강은 생각하지 않고 맛과 편리함만 좇아 무심코 한 이 행위가 아이들의 비만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만의 만연은 90년대 이후 미국적 세계화의 붐을 타고, 기름진 육류 위주의 서구형 음식이 우리의 전통식단을 밀어낸 결과이다. 미국도 뒤늦게 최근 들어 패스트푸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인 의사인 딜은 성장기 비만이 용모 손상(Disfigurement), 불편(Discomfort), 무능(Disability), 질병(Disease), 죽음(Death)을 예약하는 ‘5D’라고 말했다. 일단 아이들이 비만증에 걸리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해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우울증 환자가 되기 쉽다. 몸이 무거워지면 움직이기가 힘들어져 운동량도 점점 줄어들고 결국 당뇨와 고혈압 같은 합병증에 시달리게 된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의 잘못된 식생활 습관을 고쳐 주고 방과 후에 충분히 뛰어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당장 비만과 전면전을 선포해야 한다. 영리기관인 비만클리닉이나 비만캠프에만 맡기지 말고, 학교에서 급식 개선과 의무 운동시간 제정 및 학부모 교육 등 실효성 있는 체계적인 방지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
이기영 호서대 교수http://singreen.com
아빠와 함께 저녁식사를/문화일보 2002-06-01, 이기영 호서대 자연과학부 교수
우리 나라의 아버지들은 그동안 너무 바빴다.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혹사당하면서 가정에서의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해 온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우리 나라 경제의 압축 성장은 국민 간에 서로 뒤처지지 않으려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유발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남편의 출세와 자식의 일류 학교 진학을 위한 열병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아버지는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며, 직장에만 충실하고 집에서는 그저 생활비나 벌어다 주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자녀 교육에 대한 책임은 아내에게 떠넘기고 올바른 가장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들은 또 어떤가? 여권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 소외된 아내들은 자녀에게만 집착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1등병에 걸려 아이에게는 공부만 강요하며, 기죽는다고 인성·예절 교육은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공공 식당에서 아이들이 함부로 시끄럽게 뛰어놀아도 그냥 내버려두는 부모는 아마 한국인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외국인에게 한국인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민족으로 보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직 일류 학교 진학과 출세만을 목표로 하는 부모와 아이들은 사람됨을 가르치는 진정한 스승보다 족집게 과외 교사를 더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교실도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가족 간의 대화 부족으로 인하여 갈등이 증폭되면서 이혼 증가율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모든 이의 안식처이며 사회 안정의 기본 단위인 가정 자체마저도 붕괴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됐다. 따라서 삶의 질을 높이는 일, 즉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아무리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출세해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한들 자식들이 망가지거나 이혼으로 가정 자체가 해체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구나 이웃에 대한 배려와 예절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이 일류학교를 졸업하고 아무리 좋은 직장을 다녀도 연세 많은 부모에게 효도하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아버지들을 가정으로 일찍 돌려보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삶의 원칙과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영웅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머니들에게도 사회를 위한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기회와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작은 실천 운동 하나를 제안하여 본다. 온 가족이 모여 아빠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는 운동이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을 양보하며 함께 나눠 먹는 멋진 식사 예절부터 가르치자. 아이들에 대한 식사 예절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식욕은 모든 욕심의 근본이다. 식욕을 자제할 줄 아는 아이가 자기 욕심도 제어할 줄 안다. 그리고 자기 욕심을 제어하고 남을 배려하는 것은 모든 예절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음식은 다른 생명의 희생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우리가 음식을 소중히 여긴다면 함부로 버리지 않게 되고, 자연도 소중히 여겨 환경 보호 의식도 높아질 것이다. 올바른 식사 예절이 우리 식탁에 자리잡으면, 1년에 15조원이나 된다는 버려지는 음식물도 자연히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가정의 진정한 행복은 환경·여성 운동과 함께 하나의 궤로 연결돼 있다. 우리 자녀들이 아빠가 함께 참여한 가정에서 배운 올바른 가치관과 예절은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만들어 사회를 살리고 지구도 살릴 것이다.
[기고] ‘명심보감’을 필수과목으로/ 조선일보2002년 7월 26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며칠 전 신문기사 때문에 아내와 언쟁을 벌였다. 교사가 학생을 폭행해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혔으나 쉬쉬하다가 되레 전국에 알려지게 된 사건이었다. 아내는 어떻게 교육자가 학생을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심하게 폭행할 수 있느냐며 분개했다. 그러나 난 무례한 아이로 키운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얼마 전엔 한 교사가 학생체벌로 고발당해 재판을 받다가 억울하다며 목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올해 입학한 대학생들의 수업태도가 아주 나빠져 2학기 개학이 두렵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난해 수능시험이 끝난 뒤 모교에서 환경특강을 할 때 겪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특강이 시작되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학생들이 조용해질 기색이 없고 많은 학생들이 처음부터 자거나 뒤돌아 앉아 떠들고 있었다. 30년이나 위인 대선배가 지방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올라왔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느냐고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학생들은 다소 조용해지긴 했으나 진지한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강 후 교장선생님께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말했더니 바로 이 학생들이 교육개혁 1세대라고 알려 주었다. 평소에도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산만하고 학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이제 이 학생들이 올해 대학에 들어왔다. 요즘 교수들도 만나면 학생들이 너무 떠들고 모자 쓴 채 먹고 마시고 해서 수업이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학부제로 인해 신입생들이 소속감이 없어져 출석률도 낮아졌다. 더욱이 기초학력 부진으로 중도 탈락생들이 예년보다 크게 늘었다. 이러한 교육 붕괴를 초래한 원인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요즘 학생들은 가정에서 예절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과외교사 위주의 학력향상 교육만 집중적으로 받아왔다. 어머니들의 비뚤어진 맹목적 사랑으로 겸손과 양보가 바탕이 된 예절교육은 아이들 기죽인다고 도외시되고 있다. 더욱이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교육에 아버지의 개입을 탐탁히 여기지 않고 독점하고자 한다. 아버지로부터 사회에서 필요한 삶의 지혜와 원칙들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지 않다. 둘째, 교육개혁 자체가 밀어붙이기식으로 순식간에 진행되어 부작용이 너무 커졌다. 시장경쟁 논리에 따라 도입된 교육개혁이 모든 교육의 기본바탕인 인성교육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교육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서 앞장서야 살아 남는다는 조급함 때문에 미국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해 외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데만 급급했다. 소비자인 학생 중심으로 한 가지 교육만 잘 받아도 대학갈 수 있고 학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확대해 주겠다고 추진된 교육개혁은 그 역작용을 간과한 결과, 교육의 주체인 교육자 폄하와 학생들의 총체적인 학력 저하를 초래한 것이다. 교육개혁의 궁극적인 목표인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부작용을 미리 예견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중고교에서 ‘명심보감’이나 ‘소학언해’ 같은 고전분야의 인성교육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고 이를 수능에 적극 반영하면 어떨까? 중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한문교육 효과와 더불어 교육개혁으로 생기는 부작용을 크게 완화해 주리라 생각된다.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인성교육을 중시한 우리 고전은 학생과 부모들에게 참 스승상을 세워주고 교육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서구식 개인주의적 일등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 삶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李起榮/호서대 교수식품생명공학)
‘건강식탁’ 엄마에 달렸다/ 조선일보 2002년 1월 25일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이기영
언제부터인가 손쉽게 조리할 수 있는 가공식품들이 우리 식탁을 점령해 버렸다. 1990년대 초만해도 우리의 밥상에서 볼 수 있었던 가공식품은 국민식품인 라면을 빼고는 고작해야 어묵이나 소시지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엔 우유치즈버터햄요구르트 등 서양가공식품들이 우리의 일상식으로 변했다. 동시에 사람들의 운동량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과거에는 없던 성인병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같은 이들 질병은 처음엔 어른들만 걸려서 ‘성인병’이라고 불렀다. 밖에서 사업상 잦은 외식 때문에 아빠가 먼저 걸린 병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당뇨를 비롯한 성인병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병명도 ‘현대병’이 됐다. 연구결과 이 같은 만성 질병들은 각종 합성식품 첨가물이 함유된 육류 등 서구유래 가공식품들이 채식위주의 우리 전래식품들을 밀어내고 식탁을 차지해버린 결과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엔 주부의 손길에 따라 집집마다 맛이 다양하던 김치마저도 공장에서 생산되면서 대부분 비슷비슷한 맛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집에서 만드는 우리의 전통식품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더욱이 아이들은 김치를 멀리하고 기름진 피자나 햄버거 컵라면 같은 패스트 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한다. 컴퓨터 게임 열풍으로 아이들의 운동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서구에서 유래한 현대병뿐만이 아니라 비만과 아토피성 피부염이 사회문제화할 정도로 아이들 건강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파동은 전세계를 강타했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광우병 발병이 확인되었다. 최근 아이들 건강에 대한 경고성 TV방송이 시리즈로 나간 후 가정주부들 사이에 유기농 식품 먹기 바람이 부는 등 먹을거리에 대한 경각심이 일고 있다. 특히 광우병은 현대 서구물질문명의 폐해를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자연의 순리를 무시한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이라는 점에서 광우병은 환경호르몬 못지 않은 환경파괴의 업보로 여겨진다. 현대문명의 시발이 된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점도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기 어려운 일이다. 광우병 공포가 커진 이유 중 하나는 잠복기간이 무려 10년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생태계 먹이사슬 자체의 광범위한 오염으로 그 재앙이 일파만파로 번질지도 모른다. 아직 정확한 원인도 규명되지 못한 채 영국에서만 광우병으로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고 500만마리의 소가 도살되어 불태워졌다. 생활형편이 나아지면서 너도나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스테이크와 안심을 먹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한다. 지방이 근육 사이사이에 촘촘히 들어간 마블링 된 맛있는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해 일부 축산업자들은 어린 소의 눈을 멀게 하거나 운동을 못하도록 평생 소의 다리를 묶어 놓는다고 한다. 인간의 지나친 성적 쾌락과 자유의 결과가 에이즈라는 천형으로 나타났다면 광우병은 지나친 미식을 추구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어머니들이 나서야 한다. 나는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아내와 함께 고심하여 ‘건강식탁 십계명’을 만들어 식탁에 붙여 놓았다. 「하나. 감사하며 먹는다 둘. 골고루 먹는다 셋. 싱겁게 먹는다 넷.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다 다섯. 적게 먹고 안 남긴다 여섯. 채식을 늘린다 일곱. 유기농산물을 애용한다 여덟. 우리발효식품을 즐긴다 아홉. 화학조미료를 덜 쓴다 열. 패스트 푸드와 가공식품을 피한다」 만일 우리 아이들이 ‘건강식탁 십계명’을 잘 지키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기보다는 밖에서 많이 뛰어 놀게 된다면 비만이나 당뇨병,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현대병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영 / 호서대 교수식품공학)
발언대]환경 십계명」실천 생활화를/ 동아일보, 1998년 12월 2일
이기영(호서대교수·식품영양학)
금년은 어느 때보다 지구환경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해였다. 엘니뇨로 인한 홍수로 중국과 중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피해가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의 허파인 열대림이 산불로 사라지고 해수면 상승으로 많은 섬과 도시가 물에 잠기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호르몬 문제도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수십년동안 사용해오던 살충제나 플라스틱원료 등 각종 화학합성물질이 인간과 동물의 호르몬작용을 교란시켜 생태계 성균형을 파괴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공해요인은 주변에 수없이 산재한다. 따라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의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21세기 인류 문화가치의 중심은 환경이 되어야 한다. ‘환경십계명’을 선포해 국민적 운동을 펴나갈 필요가 있다.
‘환경십계명’은 ①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을 내 몸같이 사랑하자. ② 말 못하는 동식물을 괴롭히지 말자. ③ 검소함을 자랑삼고 사치를 부끄러워하자. ④ 간소한 식단으로 음식물을 남기지 말자. ⑤ 물과 세제사용량을 줄이자. ⑥ 분리수거와 재활용을 생활화하자. ⑦ 가능하면 일회용 제품을 사용하지 말자. ⑧ 에어컨사용을 줄이고 난방온도를 낮추자. ⑨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애용하여 교통량을 줄이자. ⑩ 매연자동차나 불법매립 및 수질오염원을 전화 128로 고발하자로 정리해 보았다.
이기영(호서대교수·식품영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