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와 무위無爲
김동원
그 여름 우리는 법이산 숲속에서 만났다 매미 소린 구름 위에 걸어 두고 소나무 둥치를 베고 잠든 그 녀석은 참 편해 보였다 아무렇게나 웃자란 콧수염과 흙 묻은 배추 뿌리 얼굴을 한 그 거지 녀석은, 세상 걱정 같은 건 아예, 터진 양말 속에 꿰매 놓고 있었다
난 딱따구리와 함께 한동안 녀석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거지는 무위無爲가 아닐까’ 얼토당토아니한 데까지 생각이 뻗쳤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세상에서 만난 그 어떤 인간 부류보다 선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녀석의 잠든 모양은, 산을 닮았다.
그래서일까, 아침마다 매일 그 녀석은 숲 속에서 자고 일어나 수성못 여름 못둑 위로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온다 해가 의자를 따뜻이 덥혀 놓으면, 무슨 신선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그곳에 드러눕는다 호수 위 물오리와 백로가 싸악 그림처럼 날아올라도 본 둥 만 둥 하고, 도통道通이나 한 듯, 하늘을 제 육신 쪽에 끌어당겨 덮고는, 또 한 번 그 무위의 두벌잠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든다.
*법이산(法伊山, 200m)은 대구 수성못을 품고 있는 뒷산으로 아침저녁 산책하기엔 참으로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