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 삼성그룹 퇴임임원 동우회 회보 Samsung Forever 2014년 가을호(vol. 82)
퇴계 유적지, 안동 용두산의 용맥
조선의 3대 석학(碩學)으로 퇴계 이황(1501~1570), 율곡 이이(1536~1584), 다산 정약용(1762~1836)을 꼽는다. 안동에는 퇴계 유적지가 있고, 강릉과 파주에 가면 율곡의 유적지, 전라도 강진과 경기도 남양주에는 다산 유적지가 있다.
유적지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적지를 찾아 성현들의 인생과 사상을 더듬어 본다. 대부분의 유적지들은 풍수적 명당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번에는 안동에 있는 퇴계 이황선생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명사가 나고 자라고 편히 쉬고 있는 곳이 어떤지를 풍수적으로 점검해 본다.
성인이 찾아온 문, 성림문(聖臨門)의 퇴계 태실(胎室)
안동의 퇴계 유적지는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이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다가온다. 안동의 퇴계 유적지는 퇴계태실, 퇴계선영, 도산서원, 퇴계 묘로 대표된다. 퇴계 선생이 태어난 곳은 퇴계의 할아버지 이계양이 1454년에 지은 노송정 고택이다.
퇴계선생의 어머니 춘천박씨가 퇴계선생을 잉태하였을 때 공자께서 문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대문을 성림문(聖臨門)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름은 퇴계선생의 수제자 학봉 김성일 선생이 명명하였다. 솟을 대문인 성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노송정(老松亭)이 자리하고 좌측으로 ㅁ자형 온천정사(溫泉精舍) 중앙에 태실이 있고, 노송정 우측에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만년송인 향나무가 있는 집이란 뜻의 노송정>
노송정의 현판은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한다. 노송정이란 만년송인 향나무가 있는 집이란 뜻으로 이 집은 퇴계선생의 조부인 이계양(1424~1488)의 호이기도 하다.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출세의 꿈을 버리고 고향인 봉화로 내려와서 지내던 어느 날, 산중에서 허기가 져서 신음을 하고 있는 한 스님을 발견하고 음식을 나눠주어 목숨을 구했다.
기력을 회복한 스님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귀한 자손이 나올 수 있는 집터로 지금의 노송정 종택이 있는 자리를 찾아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아들 이우와 손자 이해가 과거시험인 대과에 합격하였고 손자인 이황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루종일 햇볕이 드는 곳에 자리 잡은 퇴계 태실>
퇴계선생의 태실은 건물 중앙 전면에 돌출되어 있는데 전면 1칸, 측면 1칸 반 정도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이런 식의 특별한 방은 우리나라 이곳 밖에 없는 매우 특이한 구조로 아이를 낳기 위한 태실인 동시에 며느리가 시댁에서 첫날밤을 보낼 때 사용하는 방으로 평상시에는 비워 놓았다고 한다.
퇴계태실은 용두산으로부터 뻗어온 용맥이 개장 천심을 반복하여 발자국처럼 형성된 용맥을 주산으로 하고, 전후좌우의 산들과 물들이 모여들고 감싸주는 형국으로 대 명당의 국세를 갖춘 곳이다.
퇴계태실의 배치를 살펴보면 주산을 배산으로 한 ㅁ자형의 배치인데 태실을 마당의 한 가운데 우뚝하게 높게 배치해 하루 종일 햇볕이 드는 따뜻한 곳이다.
집 뒤로는 주산이 반달모양으로 감싸고 있고 집 앞으로는 개울이 횡(橫)으로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를 이루고 있다. 집 뒤 주산에서 대청마루로 기운이 정확하게 내려오므로 대청마루와 태실에 좋은 기운이 있다. 기운을 중심으로 태실을 만들었다.
마을 뒷산에 자리 잡은 퇴계선영
퇴계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셔진 퇴계선영은 퇴계 태실 좌측편의 학교 뒤에 위치한다. 명당은 어디에서 구하는가? 고향의 뒷산, 연고지 근처이다, 퇴계태실, 종택, 퇴계 묘, 선영, 서원 모두 5km 반경 내에 위치한다. 퇴계선영은 용두산의 끝자락이며, 퇴계태실 뒷쪽으로 산들이 좌우에서 감싸주는 중심 용맥에 위치한다.
용맥의 개장이 반복되다가 마지막에 용맥이 개장을 마친 산진처(山盡處:산의 끝 부분)에 해당한다. 좌우의 청룡백호 안자락이며 상단과 하단의 두 곳으로 자리 잡았다.
하단의 제일 위에 퇴계선생 부친 묘, 상단에 아래로부터 모친 묘 조부 묘, 가장 위에 조모 묘가 모셔져 있다. 하단의 부친 묘가 모셔진 곳은 매우 가파르지만 상단의 모친 묘는 살이 찐 부룡(富龍)이며 뒤에는 작지만 과협처(過峽處: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잘룩한 곳)가 있고 혈의 요건을 갖춘 곳으로 보여진다. 이곳 퇴계선영에서 가장 진혈처(眞穴處:생기가 응집되어 뭉쳐진 곳)를 찾으라면 바로 퇴계의 모친 묘소이다.
주변산이 둥글게 읍(揖)하며 감싸도는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이 공직생활을 마치고 은둔하기에 좋은 장소로 잡은 곳이다. 도산서원은 만리산-용두산-영지산으로 이어지는 용맥의 끝에 위치하며 둥글게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산진처(山盡處)에 위치한다.
퇴계는 자신이 서당자리를 잡게 된 경위를 “도산잡영병기(陶山雜詠幷記)”에 기술하고 있는데 이곳은 산이 그다지 높고 크지는 않지만, 터가 넓고 형세가 빼어나며 방위를 보아도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고 주변의 산봉우리와 계곡이 모두 이곳을 향하여 읍(揖)하며 감싸도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낙동강물이 좌에서 우로 횡류하는데 백호가 겹겹으로 역관(逆關)해주는 용수의 배합이 뛰어나고, 양택의 기본요건인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 전저후고(前低後高: 앞은 낮고 뒤가 높은 지형), 전착후관(前窄後寬: 출입문은 좁고 안이 넉넉한 구조) 3대 조건을 만족한다.
서원의 배치는 자연의 형세를 그대로 이용하였고 전면에 우물이 있어 진응수(眞應水:혈장 앞이나 옆에 있는 샘물) 역할을 한다.
강 건너로는 시사단(試士壇)이 있어 안산의 역할로도 훌륭하다. 퇴계선생이 4년에 걸쳐 지었고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당시는 서당이었는데 사후 4년 뒤 선조7년(1454)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다. 이런 곳이 있기에 퇴계의 사상이 후대에까지 이어지고 오늘 이렇게 답사하는 것 같다.
양진암 위에 자리 잡은 퇴계선생 묘
퇴계 선생 묘는 선조가 국가의 이름난 지관을 보내어 건지산골에 ‘황룡도강(黃龍渡江)의 명지를 잡아 주었으나 거기에 모시지 않고 제자들이 선생의 묘소를 예장(禮葬:예를 갖춘 성대한 장례)하지 말라는 유계에 따라 퇴계선생이 분가하여 거처하던 양진암의 뒷산에 모셨다.
퇴계선생께서 낙향을 하고 46세 때 이곳에 양진암(養眞庵)을 짓고 생활하였는데 지금은 집은 사라지고 표지석만 남아 잇다. 묘소는 태백산 주맥에서 뻗어나온 한 줄기가 건지산의 주봉을 형성하여 조산이 되고, 건지산에서 남쪽으로 면면히 이어온 내룡이 묘소 바로 뒤편에서 하나의 봉우리를 형성한다.
조금 아래로 입수의 맥이 내려와 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내청룡은 가까이는 쌍봉산이요, 다음으로는 청량산에 뻗어 내려온 주맥이 외청룡이 되어 겹겹이 싸여 있고, 내백호 가까이는 도산이요 멀리는 영지산 자락이 외백호를 이루듯 묘소를 감싸고 엎드려 있다.
양진암 터에서 묘소로 올라가는 중턱에는 며느리 봉화 금씨묘가 자리 하는데, 살아서도 시아버지를 모셨는데 죽어서도 시아버지를 모실 수 있도록 시아버지 묘역 가까이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서 퇴계선생 묘 아래에 썼다고 하는데 그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퇴계선생 묘>
퇴계 선생의 마작막은 그의 평소 삶처럼 검소했다. 퇴계선생은 1570년(선조3년) 12월3일 자제들에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려온 서적을 돌려주도록 하였으며, 12월 4일 조카에게 명하여 유서를 쓰도록 하였다고 한다.
유서에는 내가 죽으면 조정에서는 예장(禮葬)을 내려 줄 것인데 예장을 사양하고 장례를 간소하게 치를 것과 묘지에 비석을 세우지 말고 조그마한 돌의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도산에서 물러나 만년을 숨어 산 진성 이씨의 묘라는 뜻)”라고만 새기고, 뒷면에는“고향과 조상의 내력, 뜻 한 바 행적을 간단하게 쓰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퇴계선생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예장으로 치러졌으나, 성현인 퇴계선생의 묘는 평소 선생의 검소하고 소박한 행적을 고스란히 담아 모셔졌다.
명당에 자리 잡은 명사들의 유적지
오늘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여 안동에 와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적지, 퇴계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곳, 관직을 모두 마치고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한 곳, 그리고 이 세상을 모두 마치고 편안히 쉬고 있는 퇴계 묘소와 선영을 둘러보았다.
명사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매우 유사하다. 풍수적 명당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사람들이 찾아드는 유적지는 대부분 명당에 위치한다. 율곡선생 유적지, 다산선생 유적지도 모두 사람들이 즐겨 찾으며 편안한 명당에 자리 잡았다. 명사들의 출생지. 성장지, 묘지 등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선조들의 발자취와 사상을 살펴보고 풍수지리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이글은 삼성그룹의 퇴직임원모임인 성우회의 성우회보 "Samsung Forever" 가을호에 투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