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비대 희귀 사진첩 입수
국군의 전신(前身)인 조선경비대(조선국방경비대)의 창설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 사진 82장을 담은 사진첩이 3일 공개됐다. 퀼트작가인 송재란(55·여)씨가 재미교포 친척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사진첩에는 우리나라 건군 초기인 1946~1948년 조선경비대와 육사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 모습들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조선경비대는 1946년1월부터 1948년9월까지 미 군정하에서 주로 국내 치안을 담당했던 국군의 전신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육군으로 개편됐다.
이 사진첩에는 특히 미 군정하에서 통위부(국방부) 부장(장관)이었던 유동열 장군이 초도순시하는 모습, 대한민국 육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조선경비대 1연대 모습,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을 지낸 이범석 장군의 모습, 광복군에 몸담았던 강문봉 장군의 가족 사진 등도 포함돼 있다.
유동열 장군은 이범석·원용덕 장군 등과 함께 조선경비대 창설에 관여해 '건군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그동안 남아 있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왼쪽팔에 ‘OTS’(officer training school)라고 적힌 마크를 단 생도들이 무술시범을 보이는 사진도 있는데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 1·2기생들이 찼던 것이다. OTS 견장을 단 사진이 공개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로 정부수립 후 초대 국무총리겸 국방장관을 지낸 이범석 장군의 사진 4장과 강문봉 장군 가족사진 1장도 사진첩에 포함됐다. 대한민국 육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조선경비대 1연대 모습이 찍힌 것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조선경비대라는 현판이 보이는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도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남정옥 책임연구위원은 “82장의 사진 중 절반 가량인 40장이 우리나라 건군 초기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희귀 사진들”이라고 말했다. 근현대사 전문가인 김영준 시간여행 대표도 “사진첩의 사진 중에는 우리나라 군사사를 정리하는 데 소중한 자료들이 많다”고 평가했다. 이 사진첩은 지난달 27일 방영된 KBS1TV ‘TV쇼! 진품명품’에 출품돼 감정가 800만원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유용원 2011.03.03
조선경비대 희귀 사진첩
현재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유동열 통위부장이 조선경비대를 방문해 분열·열병식 등을 하고 있다. 오른쪽 끝 흰 모자를 쓰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유동열 통위부장. 사진=송재란
조선경비대 1연대 장병들이 ‘조선경비대’ 현판이 붙은 건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팔에 ‘OTS’ 마크를 단 조선경비사관 생도들이 무기점검을 받고 있다.
1946년 8월29일 ‘국치일’에 분열식을 하는 조선경비대. 원래 국방경비법은 남조선국방경비대가 군대로 발전하는 것을 상정하면서, 군형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준비된 것이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이었던 이범석 장군. 가운데 검은색 정장을 입고 안경 쓴 사람이 이범석 장군이다.
광복군에 몸담았던 강문봉장군 가족사진. 왼쪽 끝 군복을 입은 사람이 강문봉 장군이다. /사진=송재란씨 제공
이범석 장군 40주기 추도식
11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철기 이범석 장군의 40주기 추도식에서 서영훈 ‘이범석기념사업회’ 회장(왼쪽) 등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2012-05-11
이범석 (1900년)
이범석(李範奭,리범석, 1900년 10월 20일 ~ 1972년 5월 11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이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와 북로군정서 등지에서 항일독립활동을 하였으며, 북로군정서 연성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 뒤 소련과 만주에서 활동하던 중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 광복군의 중장으로 광복군 참모장과 제2지대장 등을 지냈다. 1945년 귀국을 시도했다가 강제로 상해로 되돌려보내졌고 1946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안호상과 함께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반공주의 정치 활동을 하였다.
김구의 남북협상에 반대하여 이승만에 협력, 단정 수립에 동참하여 1948년 7월 31일 부터 1950년 4월 20일까지 제1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역임하였고 8월 15일부터는 국방부 장관도 겸임하였다. 이후 주중국대사와 내무부 장관을 거쳐 1952년 제2대 부통령 후보에 출마했고, 1956년 제3대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이승만의 견제로 낙선하였다. 1960년 이후에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탈당, 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한국의 초기 나치스 연구자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세종대왕의 5남 광평대군의 17대손이며 이문하의 아들이다. 아호는 철기(鐵驥)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왕운산(王雲山), 인남(麟男), 철기(哲琦), 이국근(李國根), 이국진(李國鎭) 등이 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경성부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