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國(天子國)의 상징 원구단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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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단(圜丘壇, 환구단)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단이다. 고종은 1897년 조선이 황
제국임을 선포하고(대한제국, 광무 원년), 원구단에서 제천의례를 행한 후 황제로 즉
위 하였다. 제천의례는 天帝(황천상제)에게 그 아들인 天子(황제)만이 집전할 수 있는
의례인데, 중국 왕조의 제후국으로 자칭해 온 조선은 이때까지 이를 행할 수 없었다.
(세조 때 몇 번 올린 적이 있으나 명나라의 질책에 따라 결국 폐지함)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제국주의 일본(이하 일제)은 승전대가로 요동반도와 타
이완 등을 할양받고 또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까지 박탈하였으나, 1895년 러시
아가 주축이 된 삼국간섭(프랑스, 독일 동참)으로 요동반도를 반환하게 되었다. 이에
광분한 일제는 적국 러시아를 격파하는 데 전부를 걸고 10년간 와신상담한 끝에 러일
전쟁(1904-1905년)마저 승리로 이끌었던 것.
대한제국이 황제국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기간은 바로 일제가 와신상담하던 기간이었
다. 허나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여 조
선의 외교권을 박탈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제의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영광은 불과 8년 만에 끝나버리고, 그 5년 후인 1910년 일제에 병
탄되어 치욕적 식민통치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원구단(제천단)은 부속건물인 황궁우(皇穹宇, 신위를 모시던 팔각형 3층 건물)와 짝을
이루는데, 1913년 일제는 원구단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직영 철도호텔
(경성조선호텔)을 건립하였다. 일제는 황궁우를 경성조선호텔의 후원이라 소개하는
등 패륜적 만행을 자행하였다. 그 자리에는 현재 현 웨스틴 조선호텔(범 삼성가 소유)
이 그대로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아래 사진 참조)
이 격랑의 시기에 [부국]과 [강병]의 길을 외면한 채 패거리 정치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대한제국의 말로는 이미 예정된 것이지만. 광복 77년이 지난 현재까지 원구단조차 복원
하지 못한 것은 온 겨레의 통한이며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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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단이냐, 환구단이냐...???
[圜丘壇]은 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반듯하다)이란 전통 천문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
므로 [원구단]으로 읽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는 학계의 통설인 동시에 서울특별시의 입장
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무관청인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은 건립 당시 환구단으로 읽었다는 [독립신문]
의 기사를 근거로 여전히 환구단으로 표기하고 있다. 참고로... [圜]자는 둥글다는 뜻으로
는 [원]으로, 두르다는 뜻으로는 [환]으로 읽는다.

오른쪽 원형 제단이 철거된 [원구단]이고, 왼쪽 팔각형 3층 건물이 현존하는 [황궁우]이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삼문]을 기준으로 각 건축물의 권역이 구분되는데, 일제는 오른 쪽 권
역을 모두 철거하고 그 자리에 경성철도호텔(경성조선호텔, 이하 조선호텔)을 건립하였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삼문]은 아래 각 사진에서 방향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구단과 황궁우 전경/
사진 앞쪽 건물이 원구단 [정문]이다.

황궁우와 삼문

조선호텔 공사 현장

조선호텔은 원구단 정문을 그대로 호텔 정문으로 사용하였다. 이 정문은 1960년대 후반 신축공사 시 철거(이전)되었다.

을지로 1가에서 바라본 황궁우와 조선호텔

조선총독부 철도국 산하 조선호텔/1930

[북측 방향]1926년에 완공된 경성부청과 황궁우/1933

[남측 방향]원구단 자리에
떡하니 서 있는 조선호텔과 주인 잃은 황궁우

1920년대 경성시가도(경성부청 착공 전)
원구단 터는 덕수궁을 굽어보는 천하길지로 알려진 곳이다. 당초 이 자리는 태종 이방원의 둘째 딸 정경공주(세
종대왕의 누나, 작은 공주, 소공주)의 거소인 남별궁이 있던 곳이다. 오늘 날 소공동(위 도면상 長谷川町, 하세가
와쵸)이란 지명은 여기서 기원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장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에 이어 명군 총사령
관 李如松이 주둔하던 곳이다. 이후 이곳은 줄곧 명-청조 사신들을 접대하는 영빈관으로 사용되다가 훗날 청국
공사관으로 변신한 다음, 위와 같은 수난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조선호텔 홍보자료/조선총독부 철도국/1927

위 홍보자료의 조선호텔 로비

조선호텔 썬룸에서
당대 최고 무용가 崔承喜(사이 쇼키, 당시 광고모델, 1911-1967)가 담소하고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1912-2002)이 명월관 환송연에서 최승희와 함께 하고 있다. 나이는 최승희가 한 살 위이다


일제는 황궁우를 조선호텔의 후원이라 홍보하고 있다.

관광홍보용 포스트 카드

조선총독부청사/
일제병탄기의 3대 건축물 가운데 으뜸을 차지한다.

경성부청/ 일제병탄기

경성역/ 일제병탄기

[이하 해방 후...]
서울시청과 황궁우/1948

의친왕 이강의 5녀 이혜경(1930년생)이
당의 차림으로 황궁우에 들어가는 모습(1956). 마치 조선왕조의 낙조를 다시 보는 듯하다.

옛 중앙청/ 대한민국 정부

홀로 남은 현재의 황궁우/
주변 고층 건물군에 눌려 잔뜩 움츠린 채 오금마저 제대로 못 펴고 있는 형상이다.

황궁우 홍보 사진/한국관광공사

황궁우 명품 사진/작가 최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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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한말... 국권을 상징하던 [세 개의 국립祭壇] 가운데 일제가 해체한 [원구단](현 웨스틴조선호텔)과
[장충단](현 신라호텔)은 汎상성가로 넘어갔고, 지금은 [사직단]만 홀로 남아 있는 것이다.
1983년 삼성그룹이 조선호텔을 인수한 배경에는 길지 풍수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현 삼성그룹 방계 신세계그룹 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