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술 / 김광욱
장독대에서 잠자던 바람이
뜨락을 휘돌아서
검불을 날리며 고샅으로 날아간다.
뒤쫒던 햇볕이
문을 열고 내려다보는
하늘 향해 방끗 웃으며 돌아보고
백발의 시어머니는
늙은 며느리와 텃밭애서
갓 따 온 붉은 고추를
멍석에 쏟아 놓고 나서
담장 안에 말리려고 세워 둔 콩줄기를
다른 멍석에 털어 손과 발로 비빈다.
마른 콩깍지와 콩이 잘 떨어지는 것도 있고
잘 안 떨어지는 것도 있어
손잡이 없는 도리깨로 후드려 패는 두 여인
콩깍지에서 튀어나온 콩들이
좁은 멍석을 멋어나
마당으로 흩어진다.
콩들은 자유를 좋아하나 보다.
며느리는 툇마루 앞까지 굴러간 콩들을
닭이 못 먹게 줍느라
시어머니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 콩은 닭들 먹으라고 놔두고
앞등에 가서
남은 깨나 베어 놔라.
그것이 제일로 큰돈이 될 것이니
말려 털어서 모두 다음다음 장에 팔게
어여 베어 놔.
어머니 오늘은 그만하고
촐촐한데 깨전이나 부쳐 먹읍시다.
깨전 부칠 깨가 어디 있냐.
먹고 싶어도 참고
한 알이라도 돈을 만들어야지.
도시에서 공부하는 네 아들이
빨리 돈 보내 달라고 편지 안 왔어?
가을 햇살이 따갑게
마주 앉아 콩타작하는
늙은 고부 잔등에 내려쬔다.
좀 쉬었다 하면 쓰련만 며느리는
고소한 깨전에 국화주 한 잔
걸쳐 먹고픈 상상에
뜰 옆 장독 쪽만 바라본다.
장독대에서 국화술 익는 향기가
진하게 풍겨 나온다.
그것은 술이 아니고
국화향이 술 담그라고
며느리에세 보내는 신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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