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시가 태어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시 쓰기 행위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 중에 하나가 언어를 다루는 일일 것이다.
▲ 이성이 시인
시가 언어를 물질적 재료로 한다는 점에서 의당 그러할 것이지만, 하나의 세계가 언어에 담겨 태어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언어에 의해 그 감정 세계가 생생하게 살아나기도 하고 일그러지게도 된다.
처음 시를 쓸 때를 생각해 보라.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도 언어에서 막혀 답답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거기부터 조금씩 조금씩 걸어 나와 언어의 세계로 걸어가는 것이 시인의 길이다. 그러니 평생 언어를 가지고 일할 시인을 고를 때 언어 감각과 솜씨를 본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이 솜씨인 까닭은 감정 내용을 담아 형상화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며
길에 대한 명상은 첫 호흡부터 숨이 가빠왔어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오른 타워 전망대에서 산복도로가 있는 마을을 내려다 본 적 있었어 비늘을 세운 뱀 한 마리 산허리를 휘돌아 바다 쪽으로 꼬리를 감추었어 가난한 사람들의 공화국은 산의 칠 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예고 없는 쓰나미에도 흔들리지 않았어 방주 같은 마을버스가 실어 나르는 소식은 자주 덜컹거렸어 유리창에 표기된 937번 번호표는 평화의 상징이 되지 못한지 오래 되었고 창틈으로 새어나온 소음이 자동차 바퀴에 깔려 불구의 언어로 너덜거렸어 소화되지 않은 날 것, 비탈길에서 체증을 앓을 때
막다른 골목이 허공을 지우고 계단을 만들었어
나는 천향미의 당선작(한국문학방송 2011 신춘문예)을 읽으며 그런 솜씨에 감탄한다. 우선 산문시처럼 되어 있는 것이 그 자체로 명상하려고 하는 산동네를 오르는 길처럼 느껴졌고, 첫 문장 "길에 대한 명상은 첫 호흡부터 숨이 가빠왔어"라는 말이 너도 함께 오르는 걸음이라고 팍 긴장시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명상으로서의 나의 걸음이기도 하고 "방주 같은 마을버스"가 힘겨운 운행이기도 하고 또는 길 자체의 숨찬 소리이기도한 오르기는 시작되었다. 산허리를 휘돌아 가난한 사람의 공화국으로 오를수록 심장박동 소리가 커졌다. 산동네 길의 끝부분 정도에서는 "소화되지 않은 날 것, 비탈길에서 체증을 앓을 때"의 상태는 정말 숨이 턱에 받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마지막이구나 할 때, 길에 대한 명상의 궁극인 새로운 길이 열렸다. "막다른 골목이 허공을 지우고 계단을 만들었어." 너도 그래야 해. 물론 마을버스도 도로도 그 막다른 길에서 돌아서 온 길로 다시 내려갈 것이지만 천향미 시인은 길을 내는 법을 찾은 것이다. 더 이상 막다른 길은 나를 돌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허공으로 계단을 놓아야 하는 곳이다. 이것이 이 시로 비롯된 천향미의 시세계로 가는 길이길 간절히 바란다.
첫댓글 이 시인님. 하시는 일이 넘 많으십니다. 같이 하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