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전사 마사이(Masai)족 사람들
姜 中 九
“레에나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흐아아아 아아
아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우리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은 울긋불긋 치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 키가 큰 사내들은 용감한 전사들처럼 보였고 울긋불긋 치장을 한 여인들의 모습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동아프리카에 있는 탄자니아(Tanzania)는 무려 120여 부족이 살고 있다. 그런데도 탄자니아라고 하면 먼저 마사이족이 떠오르는 것은 키가 크고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자를 사냥하는 용맹한 부족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탄자니아로 사파리를 가는 사람들은 그들을 만나보려고 마사이족 마을을 찾는다. 탄자니아 여행길에 나선 나도 그랬다. 아루샤에서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간 문토왐부에서 만야라 호수와 옹고롱고로 국립공원 사파리를 마친 나는 마사이족 사람들의 생활을 구경하려고 그들의 마을을 찾아 나선 것이다.
내가 찾은 마사이족 마을은 한길이나 되는 개미집이 늘려있는 사바나초원에 있었다. 마을 가운데 축사가 있고 그 주위로 10여 채의 집들이 늘어선 작은 마을에는 주민들이 우리를 환영하는 노래와 춤을 추고 있었다.
키가 큰 마사이족은 고수머리에 암갈색 피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억새풀로 지붕을 이고 소똥으로 벽을 발라 보오마라는 집을 짓고 소와 양들을 기르면서 가축의 젖과 피와 고기를 먹으면서 살고 있었다.
마사이족 소년들은 15세가 되면 할례를 하고 모란이라는 전사가 되었다. 전사들은 머리를 기르고 귀에는 구슬장식을 하며 목에는 띠를 두르고 몸에는 붉은 황토를 발랐다. 그들은 짐승을 사냥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다른 부족의 약탈과 습격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창과 방패로 무장을 하고 용감하게 싸운다고 했다.
황혼 무렵에 추는 아두무는 하늘에 가까워지려는 염원이자 용맹을 과시하여 다른 부족에게 위협을 주는 한편, 남성을 과시하여 여자를 유혹하려는 몸짓이란다. 그들의 춤은 엄청나게 높이 뛰고 있었으니, 그것은 춤이 아니라 일종의 묘기처럼 보였다.
소녀들은 자라면 음핵을 제거하는 할례수술을 받고 수술이 끝난 소녀들은 얼굴에 하얀 분을 칠하며 검은 옷을 입고 둥근 구슬로 된 밴드를 머리에 둘렀다.
마사이족의 결혼은 일부다처제로 청년이 신부 집에 소를 주고 결혼을 한다. 보통 처녀는 4-5마리를 주지만 좋은 처녀는 30-40마리까지 준다고 한다. 그 기준은 미모가 아니라 일하는 능력이라니, 유목을 하는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결혼한 후에도 소가 불어나면 다시 결혼을 한다. 따라서 그들은 부자일수록 부인이 많아서 내가 찾아간 집에도 부인이 10명이나 되었고 자녀들은 32명이었다. 더구나 첫째 부인은 50살인데도 금년에 결혼한 부인은 겨우 15살이었으니 손녀뻘이 아닌가.
울긋불긋 치장을 한 50대 가장은 키가 크고 건장했다. 그는 마사이족 사람들의 생활을 설명해주더니 집안을 안내해 주었다. 그의 집은 부인의 수만큼 많은 10채였다. 중앙에는 축사가 있고 부인들의 집이 축사를 둘러싸고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은 가축을 보호하는 가장 이상적인 구도라고 한다. 나는 그것이 한마을인줄 알았더니 한 가정이었다.
한 집을 들어가 보니 좌우에는 부인과 아이들 잠자리가 칸막이도 없이 나란히 있고 가운데는 화덕자라가 있었다. 하지만 잠자리는 좁은 공간에 흙을 평평하게 만들어 놓았을 뿐 아무것도 없어서 동물들의 우리처럼 보였다.
다음 집은 토굴 같은 집안에 낳은 지 2주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쌍둥이를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하나씩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측은했다. 그 다음 집은 문 앞에 아이들 셋이 모여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졸졸 따라 다니기에 과자를 주었더니 서로 받아먹으려고 싸움을 한다. 그러다가 손에 쥔 아이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도망을 가고, 아이들은 그것을 뺏으려고 달려간다. 그것은 동물들의 세계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문명지역 사람들이 관광을 오기시작하면서 마사이족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하지 못한다. 정부가 그들의 생활 터전이던 대자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조상대대로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먹고살던 땅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그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사냥은 불법이 되었고 농사마저 금지되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찾은 가정은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소와 양을 기르면서 남자들은 얼굴에 칠을 하고 귀걸이와 팔찌에다 전통복장을 하고는 관광객들의 사진모델이 되어주고, 여자들은 목걸이, 팔찌 등을 팔아서 돈을 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집으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집안을 구경시켜주고 돈을 벌고 있었으니, 용맹한 전사였던 그들도 이제는 자본주의 문명에 물들어 가는가보다.
마을에는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 전등은 물론이고 TV도, 냉장고도, 전화기도 있을 리 없고 단지 음식을 조리해먹는 간단한 취사도구 몇 개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아들딸 낳고 가축을 기르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니,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생활은 환경이 결정해 준다는 라첼(F. Ratzel)의 환경결정론(環境決定論)에 고개를 꺼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 사는 수많은 부족가운데 가장 용감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전사라는 마사이족 사람들, 그들도 이제는 어쩔 수없이 물질문명에 물들어 가는가, 그리하여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래서 오늘도 우리들을 맞이하여 온가족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가.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물질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그 때에는 오늘날 그들의 행복이 얼마나 순수하고 값진 것인가도 알게되리라. 집 앞에 늘어선 마시이족 사람들이 잘 가라면서 손을 흔든다.
姜 中 九
경남 합천 출생. 부산부흥중학교 교장 역임. 제1회 교원학예술상 수필부문 수상.《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추천완료,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산수필문인협회, 에세이부산문학회 회원, 부산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이사, 수필부산문학회 고문,
수필집《가을에 그린 초상화》《징검다리가 있는 마을》《산이 있기에 물이 있기에》《몽블랑을 찾아서》《고희의 꿈》국제문화예술상 수필 본상 수상
607-751, 부산시 동래구 복천로 5번길 34번지, 우성베스토피아 APT 111-606호
전화 051-554-8289, H.P 010-4463-8289, E-mail : sanha38@hanmail.net
첫댓글 마사이족 그들은 참으로 순수하고 값진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네요
그들의 행복이 부럽습니다 안병남
산하 강중구선생님~인사 드릴 기회가 없어서 부득히 여기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후배에게 늘 좋은 여행의 기행문과 사진을 베풀어주시는 정성!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 다니신곳 눈으로 다 봅니다..정말 감사합니다.
뵙게되면 또 인사를 올리겠습니다..초림 김수창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