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싸이 게시판에 제가 2005년도에 올린 글이 있더라구요. 그 글 보니 제가 직접 적은 글이지만 눈물이 나서
여기 빠빠메종에도 올려봅니다. 다른 카페에도 딱 한번 올렸던 적이 있는데.. 유명한 카페라서 아마 보신 분들도 있을듯...
누가 이 글을 보고 쪽지로 질문을 해 왔길래
무슨 글을 봤나?하고 다시 한번 읽었는데... 괜히 제 글에 제가 눈물흘립니다.
가을인가 봅니다. 가을~~~ 사람을 뒤흔드는 가을이네요.
제가 10년동안 미친듯이 공부한 이유에요. 한번 읽어보실래요????>
딱 10년만이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회사 생활한지 횟수로는 4년정도였나?
그때 모 대기업의 본사 구매과에 근무를 했었는데...
그 본사에 여직원이 24명이었다. 근데 그 여직원중에서 유일하게 대학 나온 여직원은 영양사 한명 달랑! 그것도 모 전문대 출신! 근데 그 언니 엄청 잘난 척 했고, 월급도 물론 우리들보다 많았고, 성격도 지랄같이 더러웠었다. ㅋㅋㅋ.
난 사회물정을 너무 빨리 알아서일까? 방통대 다니던 것도 때려치우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모 대학(부산에 있는 지방대이지만 그래도 내 전공분야에서는 상당한 수준이 있는 대학)에 입학했고...그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늘!
학교 수업에 들어가기 직전 한 학생이 나를 긴히 만나서 할 말이 있다고 전화가 왔다.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는 강의실로 올라가 보니 강의실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 어디서더라????
왜 보자고 했냐고 물었더니 직장인이라서 이때까지 한번도 수업을 들어오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오늘부터는 열씨미 들어 올 수 있다고...
그럼 되었으니 수업 들으라고 하면서 내가 앞문쪽으로 가는데...
우리 어디서 만난적 있죠?라고 내가 물었다.
그랬더니 혹시 교수님! ---- 대학교에 이전에 시간강의 나오신적 있죠?라고 한다.
네! 제가 그 학교에 시간강의 나갔었거든요. 거기서 뵈었겠지요!라고...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교탁앞에 서서 1시간 정도 수업진행을 하면서.. 뒤에 앉아 있는 그 학생을 보는데....
어디서 봤지?
정말 어디서 봤을까?
각자의 레포트(논문지도 수업시간이었음.) 지도를 해주는 시간에 그 학생이 앞으로 나왔다.
그 레포트 논제도 영양사들이 흔히 적는 논제다.
내가 먼저 물어봤다.
혹시 직업이 영양사세요?
네!
그럼 혹시 직장생활 다른데서 하신적 있죠?
라고 물었다.
그때서야...
둘이서 동시에 나온 말!
----회사에 근무했죠? 네! 이런 이런....
그래! 그 영양사 언니가 맞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둘때, 참 말도 많았다.
지까짓게 그만두고 가봤자, 무슨 이름없는 대학이나 가서 그렇게 졸업하고는 시집이나 갈 년이 뭐하러 회사까지 그만두면서 그렇게 학교를 갈려고 기를 쓰는지.. 부터.... 그 언니만 대학을 졸업했었기에(요즘은 대학졸업이 흔하지만....) 프라이드가 엄청 강했고, 아래 동생들을 엄청 무시했었다. 대학도 안 나온것들이 너거들이 뭘알아? 이러면서.. 말끝마다 그랬다. 대학도 못 나온 것들이... 대학도 못 나온 것들이.....
이를 악물고 공부했었다. 내가 저런 인간들한테 언젠가는 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것을 내 스스로에게 다짐 또 다짐하면서....
그래서 미친척 공부했고, 3개월 학원다니는동안(기본 머리가 있어서 그런지 3개월 회사마치고 저녁에 입시학원 다녔네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입시학원이 주변에 없어 회사 마치고 2시간을 차를 타고 입시 학원을 다니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던가? 남들한테 표 내지 않고 뭔가를 배우러 다니는것! 정말 힘이든다.
난 하지만 해냈다. 회사 사람들 보라는 듯이 4년제 대학에 입학을 했고, 그리고 또 미친듯이 공부를 해서 입학할때 등록금 160만원 정도만 냈었고, 1학년 2학기부터 박사과정까지는 모두 성적으로 전액장학생이 되어 공짜로 학교를 다녔다. 그 모든 과정들을 다 무사히 끝냈다. (이 글을 쓴건 2005년이었네요.)
딱 10년이 지났다.
그 10년동안 강산도 한번 변했겠지!
그리고 나도 그 언니도 변했다.
난 10년전 나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다.
언젠가는 내가 너거들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나타날거야!
이를 악물고 살았다. 독한년 소리 들어가면서.... 진짜 독한년! 어쩜 저렇게 독할수가.. 이런 소리 수없이 들어가면서...
10년이 지난 지금! (지금은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난 참 많은것을 가졌고,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자상하고 사랑스런 남편과, 금쪽같은 두명의 내아들들과, 경제력이랑, 화목함이랑, 길어진 가방끈이랑...너무나도 행복한 지금 이 생활!
그러나 이 모두가 전부는 아니다.
근데 그 언니는 아직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도 결혼도 하지 못했고, 물론 자식도 없고.... 10년이 지난 우리 두사람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었을까? 깍듯이 높임말을 한다.
강의를 마치고 내 차를 타고 내려오는 그 시간동안에 내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그냥 말 낮추어도 된다고 몇번을 얘기했지만 말끝마다 교수님 교수님 이런다. 내가 거북하다.
그 언니는 얼마나 놀랬을까? 그 작고 어리던 애가 지금 자기 앞에 당당히 교수라는 신분으로 서 있으니....
길고 짧은건 재어 봐야 안다고.... 옛말이 하나 틀린게 없다. 회사 퇴사하는 날도 그 언니가 그랬다. 니까짓게 뭐 할끼라고
대학간다고 지랄이야? 그냥 조용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지.... 퇴사하는 날 대판 싸우고 나왔다. 내가 니 같은 인간한테 이런 소리 듣기 싫어서 공부한다. 왜?라고 펑펑 울면서... 언니라는 말도 하기 싫었다. 나이값을 못한다고 생각했으니...
10년이 딱 흘러서 우리가 다시 만나고 보니 그때 그 시절이 문득 생각난다. 미친듯이 공부했던 그 시절!
오기심과 깡과 악으로 버텨냈던 그 시절! 낮에는 학원강사로 알바를 뛰고, 저녁에는 수업 듣고, 주말에는 과외 알바하고.. 그 돈 벌어 모아 방학때마다 일본 어학연수 다녀오고. 그 돈 모아 시집갈때 예단비랑 모든 비용 내가 다 냈다. (자랑같나???)
그런 사람들이 내게 채찍질을 해 주었기에 지금의 나가 있는거겠지.
앞으로 또 10년이 더 흘러서 과연 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맹세 또 맹세해본다.
비가 오는 저녁! 신호에 걸려 차가 서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속을 지나간다.
눈물이 주루룩!!!!
참 잘했어. 넌 해낼거라 생각했어. 인간승리야!!!
나 스스로 나에게 칭찬을 해본다. 눈물이 앞을 가려 차를 운전할 수가 없다. 신호가 좀 더 길기만을 기대하다가
한쪽 옆으로 차를 주차해놓고 눈물을 닦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온다.
"자갸! 수업 다 끝났어? 빨리와! 김치찌개 끓여놓았어. 배고프겠다. 저녁까지 강의하고.... "
그래! 난 10년 동안 이렇게 미친듯이 살았기에 지금의 행복이 있는거야. 나의 20대는 너무 힘들고 아팠지만,
나의 30대는 너무 행복하고, 그리고 조만간에 다가올 나의 40대는 여유롭고 풍성하게 맞을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남편과 두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ps : 제 닉네임이 조금 무섭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학생들이 붙여준 닉네임입니다.
강의할때는 미친듯이 작두타는 신들린 여자 같다고 해서요. ㅋㅋㅋ. 저 혼자 신나서 열정을 다해서
미친듯이 강의하거든요. ㅋㅋㅋ.
그 시절에는 고졸과 대졸자의 급여가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났어요. 90년대 초반이니... 저도 대학때는 잘나가는 쪽집게 강사였는데... 떴다하면 무조건 백만원씩 받았어요. 학원가에서도 알아주는 강사였는디..ㅎㅎㅎ. 차라리 어떨땐 과외하는게 더 낫겠다라는 생각도 들지요. 하하하. 저도 다른분들과 똑같이 평범한 인생입니다. 살아보니 가장 평범하게 사는게 가장 힘든것 같아요. 그 평범함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고자 합니다.
작두님 글읽으면서 저도 저의 20대를 한번 생각해 보았어요. 저도 그리 편히 살지는 못하고 정말 열신히 살았던때이지요. 워낙에 집이 어려워서 이사를 수없이 다녔었고 그게 직장생활하면서 제가 직접 돈을 벌어보니 고쳐질수 있을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저야 젊어서 언제라도 할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 나이드셔서 편히 몸 누이실 집도 없을것을 생각하니 정말 미칠것 같아서 겁도 없이 아파트 분양받고 중도금 메꾸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햇어요. 그리고 입주도 하기전에 IMF 터지는 바람에 거의 월급에 4/3을 융자금 내는데 쓰며 직장생활 했었답니다. 그뒤로 한 삼사년을 죽도록 벌어서 집에 밀어넣었지요. 그렇게 고생해서 엄마집
장만해 드리고 그집에서 좀 살다가 결혼했어요. 결혼할때 혼수랑 뭐 이런거 다 제가 했구요. 정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데 예전에 벌었던 돈들이 간절히 생각날때도 있었지만 마음 다잡고 없으면 없는데로 열심히 준비했구요. 착한 우리 낭군은 살짝 도와주기까지 했답니다. 지금 삼십대 후반에 조금은 안정된 삶을 살면서 생각해 보면 20대때가 정말 파란만장했던것 같아요. 갑자기 답글 달고 있는데 코끝이 찡해져 오네요. 여하튼 열심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다.
20대니깐 가능했지.. 그 일을 30대때 하라고 하면 못했을것 같아요. 젊음이 그걸 가능하게 한거 같네요. 저도 결혼할때 10원도 친정에서 도와주지 못했어요. 심지어 결혼식 비용부터 결혼식 끝나고 나서 식사비용까지 제가 계산다하고 신혼여행갔네요. 에구구. 그래도 부모님이 살아계신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네요. 그때 20대가 있었기에 지금의 30대도 있는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