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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다말고 잠시 섬진강223km로 가서 외도 아닌 외도를 하고 와서 다시 낙동강을 이어 가게 된다.
오늘은 50-60km를 이어가야 다음날 부산 을숙도 낙동강 수문에서 기나긴 낙동강길이 좀 일찍 끝날것 같다.
남지대교에서
16년 12월 17일
절벽위에 자리잡은 능가사
이곳 남지철교에서 보는 낙동강 능가사 절벽길이 멋지다.
낙동강 절벽에 자리한 능가사는 조선시대 때부터 용왕제를 지내던 용담터로 지내다가
100년전부터 용왕신을 모시는 암자라고 한다.
절 규모도 그렇지만 절 내부에 크고 작은 석상이 많아 한참 돌아 보게 된다.
남지철교
경남 창녕 남지-함안군 칠서면 계내리까지 연결된 다리로 일제 강점기인 1933년도에 개통 되었던 다리다.
6,25전쟁때 50년 8월 11일 일부 폭파되기도 하였고 1953년도에 복구 되었지만 지금은 차량 이동은 불가능하다.
1994년 정밀 안전 진단 결과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철거 논란도 있었지만 주민분들의 반대로 차량 통행만 금지되어고
04년도 12월 말경에 대한민국 문화재 등록 제 145호로 지정 되었다.
건너편으로는 남지 유채꽃밭이 장대하게 펼쳐지나 지금은 초록잎만 앙징스럽게 바닥에 붙어 겨울 바람을 이기고 있다.
현)남지 철교는 (구)남지 철교와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 져있다.
낙동강물에 빛친 다리의 오랜지색이 이쁘고
남지교에서 부산 낙동강 수문까지 100km
멀리 창념 영산면의 구현산 -영취산으로 이어져 도덕과 석천산-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장대하게 펼쳐진다.
낙동강 남지 오토 켐핑장에 아침풍경은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만 밥은 하는지...
좌로는 창녕의 뒷각산
낙동강 우측으로는 함안 칠북의 우측은 어시미산
강태공분들
전날와서 낚시대 물에 담그고 월척의 꿈을 꾸지만 고기가 안잡히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다리위에서 보니 고기는 한마리도 안보이고
앞으로는 낙동강이 보이고 영산면의 산들이 보이는군요
다리 반대편으로 넘어와서 광려산 방향으로 이곳도 마찮가지로
사람반 물반
추워서 텐트 비스무리한곳에 들어 앉아 고기잡으려고 낚시대만 다리위에서 보니 고기는 안보이는군요
다시 다리 건너편으로 넘어와서...완전 대박 터진듯
광려천.낙동강의 팔뚝보다 더 큰 붕어,잉어란 녀석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나잡아 가라고 하는데
강태공은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가고 없다.
뜰채로 퍼담아도 잡힐거리에 있고
낚시대 가운대것 하나는 한마리 잡혀 있는지 부러질 정도로 휘어져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분은 의자에 앉아 있어도 물고기가 안보이는지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서...
한참 지켜 보다가 내갈길로 간다.
멀리 낙동강 마지막 보인 창녕 함안보가 보이고
직선길 앞에 어시미산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함안 칠북 낙동강 제방 넘어로 대규모 비닐하우스 안에는 포도나무가 가득 하였고
어시미산 중턱까지 함안 단감나무가 많다.
지나는 길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라고 있으면 좋을텐데
창녕 함안보
단감나무에 얼어붙은 홍시 까지밥으로 남겨둔것 몇개따서 주머니에 넣어 녹여가면서 진횅
창녕,함안보 수문을 지키는 아저씨께 "저건 무슨산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쪼매난건 산이름이 없단다.
완전 헐!~~
창녕보를 지나며 어시미산이 지척이다.
낙동강 건너편은 창원시 북면 마금산에서 이어지는 천마산
멀리 백월산 자락길이고
낙동강가에 자리하는 소우정(消憂)
이비석은 벽진이씨 도일의 유적이다.
1597년 정유재란때 17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도와 의병에 가담하여 화왕산성에서 곽재우를 도와 전공을 세웠다.
낙동강가 비리산 옆구리로 아름다운 절벽길이 이어진다.
사람 다니는 길은 없지만 갓길로 조심스레 차량을 피해가며 진행 한다.
비리산 아름다운 절벽길이 끝나고
창녕군 부곡면 노리마을 강가 어느 민박집 너무 깔끔한집이라 그냥갈 수 없고
커피라도 한잔 하려고 들어 가본다.
내부에 들어서자 꽃집에 들어온듯한 모습
벽에 붙어있는 매뉴판을 보니 "라면 4천5백원"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와 아침겸 점심으로 라면을 시킨다.
난로가에 점잖게 앉아 인증 담고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라면맛이 일반 라면맛과는 다르게 평범하지는 않고 지금까지 먹어본 라면중 최고의 맛이다.
공기밥은 써비스인가 공기밥까지
혹시라도 이곳을 지나는 회원님들 계시면 꼭 한번 들러서 쉬어가시기 바랍니다.
잠시 언몸을 녹이고 다시 낙동강으로
열왕지맥 맞은편의 천마산
열왕지맥 들머리겸 날머리 학포 양수장
낙동정맥 통고산 이후로 1천고지 아래로 떨어지다가 사룡산에서 분기되어 비슬산을 만나 다시 1천고지 하나를 만들어 놓는다.
지맥은 다시 화왕산으로 향하고 비티재 지나 경북도계 밀양-청도-창녕 3개군이 갈라지는 천왕산에 도착한다.
천왕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는 우측의 청도천 41km을 만들어 놓고 낙동강에 합수하는 부곡면 학포리 학포 양수장까지이며
열왕지맥의 주요사들은 천왕산-열왕산-영취산-종암산-덕암산-처녀봉으로 이어지 실거리 32km의 산길이다.
멀리 가운데 낙남정맥의 천주산이 까칠한 오름을 말해준다.
우측은 천마산
열왕지맥 날머리 처녀봉으로 오르는 산길
어느집 염소떼
멀리 부곡면의 반학교 다리가 보인다.
이곳에서 분포교 다리를 건너 낙동강 반대편으로 가야했는데
잡 생각에 그대로 진행한다.
천마산 작대산 천주봉
청도천(41km)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
이제 밀양으로 가는 관문이다.
멀리 비슬 지맥길이고 앞의 큰녀석은 덕대산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의 수산대교
이곳에서 밀양의 임고문님께 전화를 드려 그곳으로 간다고 말씀 드리고
지루한길임을 알려주는 개념도
낙동강 건너편은 낙남정맥길의 조망 좋은 정병산
멀리 무척산이 보이고 직선길 6km 지루하고 무릅에 병나는 구간이다.
왼쪽은 비슬지맥 날머리 부분이고 멀리 금오산과 천태산 방향
우측 무척산
지나는 자전거 타시는 분께 부탁해서 인증 담고
밀양 외산리 부근에서 마중 오시는 임의규 고문님을 만나 딸기 농사 지으시는 비닐 하우스로 이동한다.
밀양시 상남면 외산리 임고문님 비닐 하우스
몇해전부터 사모님과 같이 이곳 밀양시 외산리 들판에서 딸기농사를 지으신다.
딸기 따가나 안따가나 가시같은 눈길을 주시는 임고문님
이렇게 잘익어 가고 있고
임고문님 안보는 틈에 몇개 따서 입에 넣는 절도 행위까지 서슴치 않고
비닐 하우스 8-9번 이런 비닐하우스길이 100m 9개 농사를 지으시는 고문님
앞은 신산경표의 비슬지맥 날머리 처녀묘
사룡산에서 비슬산까지
금호강116km 을 둘러싸는 산길과
101km를 둘러싸는 산길
개인적으로는 비슬지맥길이라기 보다 밀양 지맥길
비슬산에서 묘봉산-화악산- 종남산-붕어등까지라 본다.
외산리 들판을 넘어로 영축산에서 이어지는 영축 지맥길이다.
임고문님 사모님이 끓여 주시는 라면으로 점심 해결하고 임고문님의 배웅을 받으며 다음 낙동강 길로 이어 진다.
오늘은 종일 라면만 먹을듯
두분 감사 드리고 훗날 밀양강 할때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수되는 지점
철교도 보이고 무척산도 지척이고
밀양강 건너편의 신산경표의 비슬 지맥 날머리 처녀묘
밀양강 101km
어떤곳은 99km라고 하지만 101km라고 생각해서
내년에 한번 걸어 보기로 하고 삼랑진으로 향한다.
낙동강이 밀양강을 만나면서 조금 더 깨끗해지는 구간이다.
창원으로 가는 철도
영축지맥 날머리
영축지맥은 낙동정맥 영축산에서 분기되어 이곳 삼량진으로 오는 산줄기이다.
주요산들은 영축산-시살등-염수봉-금오산 -만어산-매봉산까지 도상 45,5km 실거리 50km이다.
三江祠碑(삼강사비)
이 비는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여흥 민씨(民氏) 5형제의 효성.우애.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삼강(낙동강 .밀양강 안양천)이 만나다고 해서 붙여진것
비
통훈대부 밀양 정공
삼랑진에서 김해시로 가는 다리는 모두 5개
위의 다리는 차량이동은 없고 레일 바이크 타시는 여성분들만
삼랑진교와 무척산
무척지맥 날머리부분
산경표상으로는 무척지맥길은 없다.
신산경표에는 용지봉에서 봉화산으로 가는 관계로 무척지맥이란 이름을 얻어지만
무척지맥 41,5km 실거리 45km
삼랑진 검세리 마을과 멀리 좌측으로 만어산 가운데 뽀족한 녀석은 구천산
가운데 멀리 금오산 우측으로 토곡산
만어산 중턱에 자리하는 만어사 라는 절이 보일듯 말듯 잠시 만어사에 대해서
만어사의 옛이름은 자시산(일명 자성산)이라 불리었고 근처에 王池라는 연못이 있어 못된 독룡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다.
때는 김해 수로왕 시절
독룡은 성질이 사악하여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 모두 뜯어먹고 짓밟아서 농사를 망치게 했다.
수로왕은 자시산에 큰 절을 창건하여 그 낙성식에 참석하러 자시산으로 행차를 하였다. 왕의 행차가 낙동강에 이르렀는데
수많은 새떼가 날아와 지저귀는 것이었다.
왕이 저 새는 무슨 새인가 하고 좌우에 물으니 , 좌우의 한 사람이 까치라는 새로서 자고로 길조라고 전해온다고 아뢰었다.
왕이 다시 그곳 지명을 물으니 아직 이름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수로왕은 그곳을 까치두들이라 부르도록 명을
내렸다.
수로왕의 행차는 다시 갈을 재촉하여 마침내 자시산에 이르렀다. 이때 인근의 백성들이 몰려와서 왕에게 옥지에 사는
독룡의 폐단을 고하고 퇴치해 줄것을 청하였다. 왕은 백성들의 간청을 부처님께 기원했다.
부처님은 수로왕의 기원을 받아들여 옥지의 독룡을 불러 꾸짖었다. 독룡은 부처님의 꾸짖음에 자신은 본시 부처님의 제자
되는 것이 소원인데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그동안 해꼬지를 하였다고 하고, 이제 부처님께서 제자로 받아 주신다면
다시는 백성들의 농사는 망치는 일이 없겠다고 하는 것이 었다.
이에 부처님은 쾌히 독룡을 제자로 받아 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소문이 멀리 동해 용궁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곳 용왕의 아들 역시 이소문을 듣게 되었는데, 그도 평소
부처님의 제자되는 것이 소원이었는지라 못된 독룡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내가 못될 것이 없다 생각하고
수만 명의 물고기 부하들을 이끌고 이 자시산 부처님을 찾아와 제자 되기를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지시산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불공을 드리며 불도를 닦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자시산은 만어산이라 이름하게 되었고, 김해 수로왕이 창건했던 절은 만어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전에 영축 지맥할때 사진
낙동강물이 맑아지는 곳
앞은 토곡산 자락
삼랑진과 김해를 이어주는 5개의 다리
100m한번 가보기로 하고
낙동강이 범람하면 유실이 될까하여 모두 매립했다.
鵲院關 (작원관) 앞 배스 낚시터
좋은길이라고 무작정 뛰어 다니다가
무심고 지난버린 작원관 다시 왕복 2km길을 돌아 나온다.
조선시대 2대 國防(국방) 관문인 작원관,그리고 한양 입성을 하기 위해서 꼭 넘어야했던 문경 새재의 조령관
작원관지
영남지방의 동과 서.남과 북을 연결하던 교통의 요지에 세운 숙박과 검문을 위한 시설이며
조선시대 때에는 공무로 여행하던 관원들의 숙소를 원(院)이라 하고,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을 검문 하는곳을 관(關)이라 하
였다.이곳 작원관은 관원의 숙소와 일반인의 검문을 위해서 지은 시설로 남해에서 올라오는 왜적의 방어를 담당하기도 하였
고 작원관은 낙동강 강가에 있었지만, 일제 감정기때 철도 건설로 삼량진 방향으로 700m정도 옮겨 복원한 것이다.
"한번 죽음으로 쓰러지는 나라를 떠받치니
그 의기 천하에 높아 장부의 가슴을 떨어 울렸다.
언제 공명을 생각햇던가! 마음속에 家國(가국)의 안위뿐이네
후인들은 그 정신 높이 받드니 지나는 이 반드시 옷길을 여밀지라!"
작원관 전투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 시키고 낙동강변을 따라 이곳 밀양으로 가는 관문 작원관에서 이틀간
조선의 민관군과 이틀간 전투를 치룬다.
조선 박진 장군이 이끄는 민관군 병사 300명
일본 소서행장의 주력 부대 18,700명
이곳 작원은 밀양에서 40리 정도 떨어져 있으며 부산-양산 -밀양을 거쳐 한양으로 가러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곳으로 오려면 황산잔도(작원 잔도)라는 낙동강이 흐르는 절벽길을 지나야 하기에 지세만 잘 이용하면
적은 병력으로 많은 군대를 막을 수 있는곳 이다.
임진년 1592년 4월 17일
박진 장군은 민,관군 병사들을 불러 놓고
"두려움에 떨지마라 일당 백도 안되는 일당 60 이다.
함부로 죽지말고 죽으려면 왜군 60명씩 죽이고, 나 한테 확인받고 죽을 수 있도록!~우리는 최정예다" 일장 연설을 하고
하루동안 치열한 혈전(血戰)을 벌인다.
다음날 임진년 4월 18일
일본군은 원동면 용당리 신곡천 골짜기로 돌아 토곡산을 넘어 안태리 마을로 넘오 온다.
작원관 반대편으로 돌아와 황산잔도에서 싸우던 민관군은 양편에서 공격을 받게되어 혈전중 모두 전멸하게 된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과 목숨
희생이 용기이며 변변찮은 무기를 가지고 조총을 든 일본군과의 치열한 접전
무엇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300명 민관군을 위해서 묵념하고 돌아서니 왠지 모르게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민관군은 모두 이곳에서 전사를 하였지만 박진 장군은 살아남아 훗날을 기약한다.
이후 박진장군은 정유재란때 청나라 장수에게 맞아서 죽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긴다.
작원관 전투 위령탑앞에서 본 낙동강
낙동대교 삼량진교
작원관 비각
비각안에 보관되어 있는 비석은 작원관 원문 기지비,작원대교비.작원진석 교비 세개가 있다.
작원비각과 작원관 전투 위령탑
중과부적으로 패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함성소리가 들릴듯 하다.
영화속의 300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지역에서 벌어졌던 페르시아군과 스파르타 방어군의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는 스파르타군 최정예 지옥으로 초대 받은 300명과 페스시아군 100만명
스파르타군은 결사 항전 하다가 전원 몰살당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테라모빌레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조선땅 에서도 300대 18,700명 전투가 있었다니
이름없는 조상들에 대한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작원관 전투 이틀간의 싸움이었지만 영화 이순신 장군"명량"처럼 사실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나무 숲과 토곡산 자락의 시루봉
낙동강 강가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낙동강 꼭 가봐야 할곳
1.태백 구문소 (천년기념물417호)
2.봉화 적막강산 (재산면 갈산리-명호면 합강3km 인위적인것은 아무것도 없는 구간)
3.청량산 선유교에서 본 병풍대 (신선이 놀다간듯한 모습)
4.안동 쏘두들에서본 외병대(고산정) (한폭의 그림같은곳)
5.안동 병산서원과 병산 (병산서원에서 본 병산)
6.안동 하회마을(부용대에서본 하회마을 풍경)
7.상주 경천대(정기룡 장군과 명마 이야기)
8.상주 중동면 우물리 수암바위(보현지맥 날머리 수암바위에서 본 낙동강)
9.칠곡 호국 평화공원
10.남지 개비리길
11.작원관-작원잔도
그외
안동 "농암종택".
현풍 "도동서원"
이방면 "무심사"
창녕 "박진지구 전쟁 기념관".
남지대교와 능가사
1905년 일제 강점기 시기에 만들어진 경부선 철도
鵲院棧道(작원잔도)
영남대로 구간중 棧道(잔도)라는 명칭이 붙은곳이 있다.
이는 말 그대로 험한 벼랑에 암반을 굴착하거나 석축을 쌓아 도로를 내었는데
이길은 조선왕족 실록에 잔도라 하였고 대동여지도에서는 작천(鵲汘)이라 불렀다.
영남에는 이곳 황산잔도,작천잔도와 점촌-문경의 토끼벼루가 대표적이다.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잔도길
황산잔도 현재의 물금에서 원동에 이르는 낙동강의 절벽에 만들어진 길이고
작천잔도 양산 원동의 하주막에서 밀양의 삼량진에 이르는 벼랑길이다.
지금 사람 다니기에는 무적합
앞은 토곡산
오늘 종착지인 원동역에 다와가는데 마중 오시기로한 전국구님은 아직도 안오시고
저 멀리 한분이 보이시는데 전국구님이신가?
창원에서 마중오신 전국구님
짬봉 사주시기로 해서 이렇게 약속 지키러 오셨습니다.
전국구님과 함께 걸으며 삼랑진으로 이동해서 기차표 끊어 주시고
고디탕까지 사주시고 창원으로 가셨습니다.
전국구 전임 지부장님 감사드려요
다음날 다시 원동에서 낙동강 수문까지 40km 이어 가기로 하고 이곳에 도착한다.
아침바람이 차갑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제 지나온 무척산 자락
원동역과 토곡산
대나무 숲
양산시 물금의 오봉산이 보이고
자전거 타시는 분들도 만난다.
토곡산 자락
황산강 베랑길
삼국시대대는 낙동강이 황산강이라고
원동의 토곡산
정체 불명의 "낙남 정맥" 날머리 동신어산의 매리동
경부선
장군봉 동신어산 그리고 매리마을의 공장지대
누가 언제부터 이곳으로 정맥 날머리로 진행 한지 알길 없으나 1998년도 무렵에
부산 산꾼분들이 이길로 진행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낙남정맥 날머리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곳은 낙남 끝자락이 아니다.
오래전에 낙남을 할때 이곳이 아닌줄 알고 백두산(353)을 거쳐 대동 초등학교를 지나 낙동강이 바다로 만나는 수문까지
내려 갔는데 그건 올바른 낙남정맥이 아니라고 숱한 욕을 먹었다.
생각해보면 백두산을 거쳐 대동수문으로 간건 잘한일
경부선 아래 작은 비석
행동행부사정공현덕영세불망비
정현덕은 조선시대 문신이며 흥선대원군의 심복으로 동래부사.형조참판을 지냈다.
장군봉과 동신어산
장군봉 -갑오봉-금정산 -미륵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보이고
이제 다와가는가
멀리 금정산을 배경으로 날씨가 완전 봄날이라
황산 체육공원에서 본 장군봉에서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종주길
아래는 양산시 물금읍
금정산과 남은 낙동강 하구길
자전거 타시는분들이 많아서 뛰어 가기에도 부담스런곳
앞은 부산시 외곽순환도로 지금은 공사중
좌측 가장 높은곳은 김해 대동면의 백두산
가운데 높은곳 478(분기봉)
우측으로 가장 높은곳은 장군봉과 동신어산
낙남정맥?
山經表의 낙남정맥은 저곳이 아닌 나전고개에서 영운리 고개 오기전 가락국의 전설이 깃든 김수로왕의
분산으로 가야 낙남정맥 맥을 다하는곳이다.
지금의 동신어산을 지나 매리(소감천과 낙동강 합수점) 낙남정맥을 이곳으로 오지만
신 산경표나 산경표에 나오는 어떻한 정맥길이 아니 출처 분명의 정맥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다와 낙동강이 만나는 백두산을 지나 대동면 대동 초등학교를 지나야 하는데
오래전 이길로 낙남을 마쳤다고 해서 정맥이 아니라는 욕만 먹었다.
"동신어산으로 안갔으면서 무슨 낙남을 했다고..."
山經表로는 낙남 끝자락은 가야국의 김수로왕의 전설이 깃든 분산으로 내려와야 한다.
높이 솟은 탑 사이로 백두산이고
그뒤로 까치산이 보인다.
좌측 까치산 -백두산-우측 장군봉
화명대교
화명대교 아래서 본 백양산
화명대교에서 강가로 가다가 끝부분이 강물로 막혀 돌아 나온다
알바아닌 알바로 1km는 허비하고
동백꽃이 모두 피었는데 지금이 동백꽃 피는 시기인가?
멀리 신산경표의 낙남정맥 봉화산도 보이고
진해의 불모산과 천자봉도 보였는데 사진상으로는 안보인다.
부산의 갈뫼길 일부 벗꽃 가로수 지역을 끝도 없이 지난다.
김해공항으로 뱅기도 날아가고
멀리 종착역인 부산 사하구 하단동 낙동강 하구뚝이 보인다.
이제 다온듯
김해 비행장으로 날아가는 뱅기
앞은 봉화산
신상경표에는 봉화산이 낙남의 끝자락이다.
1900년도에 일제 감정기때 김해 앞바다를 간척사업을 해서 매립 지금의 김해 평야가 조성된다.
오늘 날머리로 마중 나와주신 스카이 블루님
장산으로 가시는중에 이곳으로 방향을 틀어 오셨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구뚝에서 인증 담고 낙동강 1,300리 마감합니다.
이쁜 유리 운영자님도 나와 주셨고
애견도 함께 운영자님 감사드려요
유리 운영자님과 같이 자갈치 시장으로 갔으나 주차 문제로 그냥 집으로 가시고
스카이 블루님과 같이 자연산 자리돔으로
낙동강 1300길중 4대강 공사로 상주-함안보까지 물은 더럽고 지저분했지만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 바다로 향했고 밀양강을 만나면서 맑은물이 흘러 그나마 부산부들께서 조금 맑은물을 마시는가
생각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낙동강은 우리가 아끼고 지켜야 할 소중한 강이다.
아름다운 낙동강 꼭 가봐야 할11곳
1.태백 구문소 (천년기념물417호)
2.봉화 적막강산 (재산면 갈산리-명호면 합강3km 인위적인것은 아무것도 없는 구간)
3.청량산 선유교에서 본 병풍대 (신선이 놀다간듯한 모습)
4.안동 쏘두들에서본 외병대(고산정) (한폭의 그림같은곳)
5.안동 병산서원과 병산 (병산서원에서 본 병산)
6.안동 하회마을(부용대에서본 하회마을 풍경)
7.상주 경천대(정기룡 장군과 명마 이야기)
8.상주 중동면 우물리 수암바위(보현지맥 날머리 수암바위에서 본 낙동강)
9.칠곡 호국 평화공원
10.남지 개비리길
11.작원관-작원잔도
그외
안동 "농암종택".
현풍 "도동서원"
이방면 "무심사"
창녕 "박진지구 전쟁 기념관".
남지대교와 능가사
첫댓글 벌써 열었네요!ㅋㅋ
강행기 올리기 힘들지예~
수고가 넘치는 방짱님,
좋은 아침에 힘차게 하루 열어가시길요~~^-^
확인 사살 부탁드립니다.
낙동강 마침요
열지 말라니까 더 궁금해서 열어봤습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중간부분의 작원관 전투지역 꼭 읽어 보십시요
열지 말라니까 더 궁금해서 열어봤습니다. 2
즐거운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낙동강 강행기 올렸습니다.
궁금해서 ㅎㅎ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ㅣ.
힘!
잘 계시죠
낙동강 마치고 이제 다른강으로 준비 합니다.
아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방장님 덕분으로 안자서 낙동강길을 걸은것 갔습니다
방장님의 강행기에는 강만이 있는 것이 아니군요.
낙동강 1300리길, 구비구비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곁하여 흐르는 산줄기를 꼭꼭 짚어 주시니...
산줄기, 강줄기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두 흐름의 조화를 엿보는데...어설픈 눈에는 그저 감탄의 언어만 나옵니다.
방장님 발끝으로 새긴 지도(?)는 그 어느 지도 보다 훌륭한 지도가 되신 듯...^^
산은 산줄기를 만들고 강은 강줄기를 만들고... 이 큰 두줄기를 따라 삶의 역사가 흐르는지라...
삶을 제대로 이해 하고자 한다면...산과 강을 먼저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방장님의 기록에서 읽습니다.
귀한 걸음 기록으로 단디 남기셔서 후답자의 길잡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