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분명하고 확실한 정답을 알지 못하는 각계 각층의 대단한 이 세상의 선생들이 공적으로는 정답을 알 수 없다고 스스로 고백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온갖 감언이설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그때 그때의 감정이나, 느낌이나, 분위기를 따라 요란한 나팔과 꽹과리 소리로 본질을 가리고 가로막는 똥칠로 정답을 미혹함으로 오히려 정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불의와 불법을 행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의 뜻을 따라 진흙으로 만든 아담이 여호와의 생기로 생령인 되어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로 여호와처럼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여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려는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 위하여 도전하고 있는 피조물의 도전사인 이 세상의 인생살이가 바로 인생인데
이를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바라보는 조건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는 인생살이의 모양이나, 느낌을 따라 고달픈 인생, 험난한 인생, 허무한 인생, 가엾은 인생, 달콤한 인생 등 이런 저런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이 결코 분명하거나 온전한 정답이나 온전한 표현이 아니기에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바로 알기 위하여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인생의 본질인 목적이나 사명을 비롯하여 가치관을 판단하면 수많은 색깔과 종류로 나타나 결국 온전한 정답을 발견할 수 없기에 인생무상 새옹지마, 공수래 공수거, 화무십일홍 등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만약 그것이 진짜 정답이면 다른 동물과 식물의 피조물들처럼 그냥 그렇게 덧없이 한세상 살아가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비롯하여 자녀로 여호와처럼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 위하여 발악한 아담과 하와처럼
불가능에 도전하는 철학이 과학 기술과 종교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발전하여 백세 시대를 열었지만 그 결과는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평안인 자유와 행복도 기대치 만큼 함께 성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비례하여 더 많은 근심걱정과 불안함으로 괴로움의 심음 소리만 더 심하게 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실삶은 암이나 심각한 각종 질병이 저승사자처럼 살며시 다가와 우리의 인생살이가 끝나가고 있음을 속삭일 때 만약 인생의 정답을 소유했더라면 공수래 공수거가 아니라 공수래 만수거로 인하여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된 신기루이지만 그래도 그간의 정 때문에 조금은 아쉬워도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이 기다리고 있기에 기쁨으로 담담하게 잘 맞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인생살이를 연장하기 위하여 온갖 감언이설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발악하여 백세 시대가 열린 것처럼
우리들의 수명을 연장 한다고 그것은 온전한 인생 승리인 영생불멸이 되어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신기루같이 곧 사라질 헛되고 헛된 찰나 순간의 신기루 기쁨이지만, 그래도 이 신기루 같은 찰나 순간의 신기루 기쁨인 달콤한 인생으로 승리자의 위로를 받으려고 기대하며 발악하여 펼쳐진 우리의 실삶은
온 인류의 소망처럼 요란한 나팔과 꽹과리 소리로 큰소리 친 장수가 오히려 모든 국가와 민족의 심각한 고민거리일 뿐 아니라 개인의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고 있고 또 마음 편하게 먹고 마시며, 쉬고 즐기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저승사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공포인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으니 결국 고달프고 허무한 가엾은 인생이기에 인생무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런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을 본질을 미혹하여 왜곡 변질하기 위하여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며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는 신기루 위로와 격려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헛되고 헛된 이 세상의 종교나 철학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화 문화 등 각계 각층의 대단한 선생들도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소유하지 못한 우리들의 부모들처럼 자신들도 소유하지 못한 정답인 자유와 행복인 평안을 소유한 것으로 착각하여 스스로 구원이 가능한 것처럼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는 것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는 것처럼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는 그림처럼 멸망으로 실족함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신기루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생을 멋대로 판단하여 인생 무상 새옹지마라고 하거나 공수래 공수거라고 함으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등 온갖 감언이설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