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이 피는 집
1. 담장 너머의 여자
그 집에는 해마다 호박꽃이 피었다.
누가 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초여름이면 어김없이 담장 아래에서 덩굴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손바닥만 한 잎 두어 장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장마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덩굴은 기다렸다는 듯 담장을 타고 올랐다.
한여름이 되면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까지 초록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아침마다 노란 꽃이 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호박꽃집’이라고 불렀다.
정작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 할머니 아직도 혼자 사나?”
“그렇지 뭐. 아들이 서울에 있다던데.”
“서울 어디?”
“그걸 누가 알아.”
사람들은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고 지나갔다.
그 집에는 일흔을 넘긴 정분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정분은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났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문을 여는 것이었다.
누가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신문을 받아보지도 않았고 우유를 배달시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정분은 날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옆집 순자가 한번 물었다.
“언니는 누가 온다고 꼭두새벽부터 문을 열어 놔?”
정분은 호박잎에 물을 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문이라는 게 사람 오라고 있는 거지, 막으라고 있는 건가.”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네.”
“훔쳐 갈 게 있어야 무섭지.”
정분이 웃었다.
순자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순자는 알고 있었다.
정분이 대문을 열어 두는 이유를.
⸻
정분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동우였다.
스물아홉 해 전, 동우는 집을 나갔다.
처음부터 돌아오지 않으려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일을 구하겠다며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정분은 정류장까지 따라갔다.
“밥은 꼭 챙겨 먹어라.”
“알았어.”
“돈 떨어지면 전화하고.”
“알았다니까.”
“추석에는 내려올 거지?”
동우가 귀찮다는 듯 웃었다.
“엄마, 서울이 외국이야? 금방 온다니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처음 몇 달은 전화가 왔다.
공사장에서 일한다는 말도 했고 작은 방을 구했다는 말도 했다.
그러다 연락이 뜸해졌다.
어느 날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정분은 서울에 올라갔다.
아들이 살았다는 주소를 들고 골목을 몇 번이나 돌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
문은 금세 닫혔다.
정분은 그 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그 뒤로 경찰서에도 가 보고 아들이 일했다는 공사장도 찾아갔다.
아무도 동우를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인지 정분은 그때 처음 알았다.
⸻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분은 포기하지 않았다.
해마다 동우의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였다.
추석이면 송편을 한 접시 더 놓았다.
겨울이 오면 아들이 쓰던 방에 새 이불을 깔았다.
“혹시 갑자기 오면 춥잖아.”
순자가 말했다.
“언니.”
“왜?”
“이제 그 방 그만 치워도 되잖아.”
정분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불을 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야.”
순자는 더 말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잔인한 말이 ‘이제 그만 기다려’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호박은 동우가 심었다.
집을 떠나기 전해 봄이었다.
“엄마, 여기다 호박 심자.”
“마당도 좁은데 뭘 또 심어.”
“담장 타고 올라가면 되잖아.”
동우는 흙을 파고 씨앗 세 알을 묻었다.
그해 여름 호박이 주렁주렁 열렸다.
정분은 호박전을 부쳤다.
동우는 뜨거운 전을 손으로 집어 먹다가 혀를 데었다.
“아이고, 천천히 먹어라.”
“엄마 호박전이 제일 맛있어.”
그 말이 정분에게는 평생 남았다.
아들은 사라졌지만 호박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을이면 잘 익은 호박에서 씨를 받아 두었다가 이듬해 봄 다시 심었다.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
그렇게 스물아홉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
그날 아침도 정분은 호박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노란 꽃 한 송이 안에서 벌 한 마리가 몸을 뒤척였다.
“그래, 많이 먹어라.”
정분은 벌에게도 말을 걸었다.
그때 대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택배기사인가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정분은 허리를 펴고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쉰을 훌쩍 넘겨 보이는 남자였다.
낡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남자는 들어오지도, 돌아서지도 못한 채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정분이 물었다.
“누구 찾아왔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담장을 타고 오른 호박덩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정분의 손에서 물뿌리개가 떨어졌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호박을 심으시네요.”
정분은 움직이지 못했다.
얼굴은 변해 있었다.
머리도 희어졌고 어깨도 굽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세월도 지우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목소리였다.
정분의 입술이 떨렸다.
“너…….”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엄마.”
그 한마디가 마당으로 떨어졌다.
스물아홉 해 동안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말이었다.
정분은 달려가지 않았다.
아들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뒤 말했다.
“밥은…….”
목소리가 갈라졌다.
정분은 입술을 한번 깨물고 다시 물었다.
“밥은 먹었니?”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담장 위에서 노란 호박꽃 한 송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스물아홉 번의 여름을 기다린 꽃이었다.
정분은 천천히 부엌으로 걸어갔다.
“들어와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말했다.
“호박전 부쳐 줄게.”
남자는 대문 앞에서 끝내 한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 눈물을 보고도 정분은 돌아보지 않았다.
프라이팬을 꺼내며 혼잣말처럼 한마디만 했다.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는데…….”
부엌 창문 밖으로 노란 꽃이 보였다.
그날 아침,
스물아홉 해 동안 닫히지 않았던 대문으로
마침내 한 사람이 돌아왔다.
그러나 정분은 아직 알지 못했다.
아들이 돌아온 이유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