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여성
출처: '미리암의 노래' -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회보 -
저자: E. S.피오렌자 교수
여성신학은 세상의 전체를 보기 위해 안대를 제거하는 것
지난 10년 동안 소피아(Sophia) 즉 지혜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새로운 이름으로 여성신학과 전례를 통해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타종교의 전승 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토속문화 속에서 고대의 슬기로운 여인으로 존재했고 창조된 만상의 아름다움과 다양성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신학자들은 지혜의 전달자로서 이러한 소피아를 전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성신학자인 안나 줄리아 카퍼는 Sophiology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제는 온 세상이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여성의 생각과 말이 시대의 생각의 흐름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곧 세계 이상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판적인 해방신학은 교회의 편중된 시각을 바로잡고 완성하기 위해 다른 신학적ㆍ윤리적ㆍ종교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영성적 안목을 회복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존재한다. 미국 통계를 보면 여성의 70%가 페미니스트(Feminist, 여성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를 원치 않는데, 이는 곧 남성혐오주의자나 광신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의 정의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사람이다'라는 스티커를 차량에 붙이는 것과 같다. 여성들도 교회와 사회 안에서 권리와 책임을 지닌 일등시민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평등한 시민권과 의사결정에의 참여를 의미한다. 이는 20세기에 와서는 상식이 되어버린 개념이며 모든 이의 권리를 주장하므로 급진적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남성의 언어에서 Men은 여성을 포함한 남성이다. 이제 Wo/men도 남성을 포함한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신학적으로 페미니즘은 여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인식하고 억압은 생명을 파괴하는 악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여성신학 연구는 하느님에 대한 남성 중심적 이해와 본질을 변화시키고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교회 안에서 여성을 지도적인 위치에서 제외시켰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지배와 착취의 사회 문화적ㆍ종교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이론을 연구하는 역사적인 운동이다. 신학의 개념에서 '여성은 하느님의 백성이다'라는 것은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두 가지 의미
교회(Church)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에클레시아(Ekklesia)에 기원을 두는 것으로 성숙한 모든 이들의 집회를 의미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일컫는 모든 세례 받은 신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Kyriarchy에 기원을 두는 것으로 교회가 주인이라는 개념으로 영주지배체제의 피라미드 구조를 지닌 남성 중심적인 교계를 말하며,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말하는 교회론으로 장상들이 교회이고 일반 신자들은 복종과 순명만 할 뿐 교회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교회의 개념이 성서 이해에도 그대로 드러나 후자의 교회론은 여성들을 교회의 의사결정과 지도자 역할에서 여성을 소외시킨다. 이 서로 다른 교회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교회 내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성서 문화권의 여성운동 안에도 이 두 가지 교회론에 대한 이해 때문에 분열과 갈등이 존재한다. 교회에 대한 두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정이라는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출애굽의 이미지이다. 전자는 교회를 가정으로 생각하여 평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평화와 편안함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현상을 그대로 감수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폭력가정에서 침묵하는 여성들처럼 후자는 교회에서 억압을 체험한 여성들이 교회를 출애굽 해야 할 곳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교회를 완전히 영주 지배체제로만 인식하므로 온전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교회'는 여성들이 완전한 권리를 가지는 교회
그러므로 세 번째 이미지로 '여성의 교회'(Ekklesia of 째/men)를 제안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교회와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가 고대에도 존재했지만 여성들은 제외시켰듯이 교회의 에클레시아에서도 여성들은 제외시켜 왔다. '여성의 교회'라는 것도 사실은 모순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여성의 교회'는 여성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여성들이 완전한 권리를 가지는 교회를 의미한다. 교계제도로서의 교회의 개념을 수정 보완하여 카퍼가 말했듯이 "여성의 교회는 여성들이 충분히 발언하는 주체성을 확보하고 무조건적 복종을 전재로 하던 교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동등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에클레시아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여성운동의 핵심은 여성이 교회 안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며 신학적으로 발언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여성신학 연구는 수세기 동안 신학에서 여성을 제외시켜 왔던 역사를 규명하고 바로잡는 것이며, 과거의 여성들이 신학적인 주체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규명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는 여성들이 증가했지만 교회 내 활동영역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는 여성사제를 허용하는 다른 교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여성들은 영주지배체제의 교회를 변화시킬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하여 남성 중심적 논술과 담론, 제도를 습득하고 남성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지적이고 용기 있는 두 가지의 여성의 모습이 필요한 때
Kyriarchy(영주지배체제의 교회)가 여성의 교회로 변화하는데 존재하는 장애물을 두 가지의 예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여성혐오에 의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 4세기경 아프리카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이고 교수였던 하이페시아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폭력을 당한 예이다. 지적인 여성들의 활동에 대한 여성혐오적인 폭력이 가해졌다. 두 번째는 사회 관습의 벽으로 딸의 생명을 구해달라고 예수에게 간청한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예에서 볼 수 있다. 이방인이고 여성인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예수가 머물고 있던 방으로 들어가 이방인과 여성들을 제외시켰던 당시 사회의 관습을 깨뜨리고 능동적이고 용기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도 종교 안에서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지적인 모습과 용기 있는 모습 두 가지를 다 갖추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여성들이 스승과 예언자의 역할을 했던 지혜로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다른 전통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마녀, 선교사, 샤먼(무속치료자)등 역할을 수행했다. 교회 안에서도 지혜로운 여성들과 희생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려져 있다. 이런 전통들을 되살려 내고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여성신학자들은 과거에 행해졌던 지혜의 힘, 그 기억들을 되살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