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욕견공자 공자불견. 기공자돈. 공자시기망야이왕배지우저도.
위공자왈래. 여여이언. 왈회기보이미기방 가위인호. 왈 불가.
호종사이극실시 가위지호. 왈불가. 일월서의. 세 불아여.
공자왈 락. 오장사의.
양화가 공자를 만나고자 했으나 공자께서 만나주지 않으셨다.
그러자 공자께 삶은 돼지를 선물했다. 공자께서 그가 집에 없을 때를 골라 절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만나고 말았다. 공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오시오. 내 그대와 더물어 이야기하고 싶소. 보물을 품에 지니고 있으면서
나라를 어지럽게 내버려 두는 것을 인이라 할 수 있겠소?
정치에 종사하기를 좋아하면서 자주 기회를 놓친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소?
그렇다고 할 수 없겠지요. 날과 달이 지나가고 세월은 우리와 함께 머물러 있지 않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알았소 내 장차 출사하리다.'
<朱子>
陽貨 欲令孔子 來見己而 孔子不旺. 貨以禮 大副有賜御士 不得受於其家則往拜其門.
故 瞰孔子之亡吏歸之豚 欲令孔子來拜而見之也. 懷寶迷紡. 謂悔藏道德 不救國之尾亂.
先時,謂不及事幾之會. 貨語皆譏孔子而諷使速仕. 空子固未嘗如此吏亦非不欲仕也.
但 不仕於貨耳. 故直據理答之 不復興辯 若不諭其意者.
陽貨之欲見孔子 雖其善意然不過欲使助己爲亂耳. 故孔子不見者義也 其往拜者 禮也.
必時其亡吏往者 欲其稱夜. 遇諸塗而不避子不絶也. 隨問而對者 理之職也.
大吏不辯者言之孫而亦無所詘也.
양화 욕영공자 내견기이 공자불왕. 화이례 대부유사어사 부득수어기가즉왕배기문.
고 감공자지망이귀지돈 욕령공자래배이견지야. 회보미방. 위회장도덕 불구국지미란.
선시,위불급사기지회. 화어개기공자이풍사속사. 공자고미상여차이역비불욕사야.
단 불사어화이. 고직거리답지 불부흥변 약불유기의자.
양화지욕견공자 수기선의연불과욕사조기위난이. 고공자불견자의야 기왕배자 예야.
필시기망이왕자 욕기칭야. 우저도이불피자부절야. 수문이대자 이지직야.
대이불변자언지손이역무소굴야.
양화가 공자로 하여금 자기에게 와서 만나주기를 바랐으나 공자깨서 가시지 않았다. 양화는 예기에 대부가 사에게 선물을 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받았다면 그집 대문에 찾아가서 절을 해야 한다고 하였으므로 공자가 안계신 틈을 엿보아 삶은 돼지를 선물하고 공자로 하여금 절하러 오게 만들어 만나
보자한 것이다. 보물을 품에 지니고 있으면서 나라가 혼미하고 혼란한 것을 구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때를 놓친다는 것은 정사의 기회를 만났으나 미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양회의 말은
모두 공자를 희롱하여 빨리 벼슬하도록 풍자한 것이다. 공자께서 일찌기 이러한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벼슬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양화에게 벼슬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곧 이치를 근거로 답하였고 더물어 변론하지 않음으로써 마치 그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양화가 공자를 만나고자 한 것은 비록 선한 뜻 같으나 자기를 도와
난을 일으키는데 부리려고 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만나주지 않은 것은 의이고 그집 앞에 가서 절을 한 것은 예이다.
반드시 그가 없는 때에 가신 것은 그와 대칭을 이루고자 함이다. 길에서 만났으나 피하지 않은
것은 끝내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에 따라 대답하신 것은 이치가 솔직했기 때문이다.
질문에 따라 대답하신 것은 이치가 솔직했기 때문이다. 대답하되 변론하지 않은 것은 말을
공손히 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뜻이다.
첫댓글 미전,참으로 고맙소,맨 뒷줄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데.,,, 앞으로도 미전만 믿소.
선생님,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뒷자리에 앉아 공부하시니 늘 앞자리를 차지하는 제가 너무 염치없는 것 같습니다. 다음 번에는 제가 자리를 바꿔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