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이사야 1장 10-20절 / 제목 : 용서하시는 하나님
약 2,700년 전 예루살렘 성전은 절기를 맞아 먼 곳에서 최고의 제물을 끌고 온 인파 로 가득했습니다.
백성들은 흠 없는 형식과 가득한 연기를 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종교적 열심에 도취된 그들 앞에 이사야 선지자가 나 타나 하나님의 본심을 외쳤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한도다 하셨도다” (이사야 1장 2~3절)
이사야는 예배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백성들의 불의한 삶을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서는 경건한 척했으나, 일상에서 는 뇌물을 주고받으며 가난한 자와 고아의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 지 아닐까요? 일주일에 한 번 예배당에 나와 앉아 있으면 구원받고 은혜받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외형이 아니라 성전 문을 닫고 나간 뒤의 삶을 묻고 계십니다.
한 주간 우리의 생각은 거룩했는지, 입술은 깨끗했는지 중심을 보십니다. 삶이 무너진 예배, 이웃의 눈물 위에 세워진 종교적인 형식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게 만드는 고문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삶이 빠진 예배를 향해 단호히 탄식하십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이사야 1장 11~15절)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삶이 교정되어 야 하는데, 아무 변화 없이 형식만 반복하니 “마당만 밟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은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 하신지라” (창세기 4장 5절)고 전합니다.
아벨은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삶을 가꾸었지 만, 가인은 일상의 삶 없이 제물만 바쳤기에 거절당했습니다.
어떤 이는 새벽기도를 다 녀오던 길에 사소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계란을 훔쳐 유치장에 갇힙니다.
다른 누군 가는 은혜로운 집회 후에 남의 신발을 바꾸어 신고 집에 갑니다.
오늘날 우리의 부끄러 운 단면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정말로 믿는다면 결코 그렇게 행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코람데오’ 즉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좁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삶의 예배입니다.
삶이 무너진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타들어 가지만, 주님은 우리를 멸망시키 지 않으시고 도리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손을 내미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 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장 18절) 하나님이 “변론하자” 하시는 이유는 죄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어떻게든 살려내시려는 ‘아버지의 마음’ 때문입니다. 자녀가 방탕한 길에서 돌이키길 바라며 매를 드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우 리가 살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신 하나님의 본심도 이와 같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 이키고 살지니라” (에스겔 18장 31~32절)
“회개하라”는 말씀은 무서운 심판의 경고가 아니라, “내가 다 용서할 테니 제발 돌아 오라”는 눈물의 호소입니다.
죄를 지으면 사단은 죄책감으로 우리를 숨게 만들지만, 선 악과를 먹고 숨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 이름을 부르셨듯 주님은 늘 먼저 다 가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앞에 변명하거나 숨지 말고 솔직하게 엎드려야 합니
다.
주님은 이미 용서하기로 결정하셨고, 예수의 보혈로 씻긴 죄는 다시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참된 회개는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이 싫어하 시는 것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악한 행 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1장 16~17절)
넘 어지고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이 내미시는 손을 붙잡고, 한 주간 삶의 자리에서 죄와 싸워 이기며
온전한 삶의 예배를 드리는 이번 한 주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눔 질문
1. 나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인가요?
2. 지난 한 주 코람데오의 삶을 살았던 순간이 있습니까?
3.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회개의 말씀 앞에 돌이켜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공동 기도제목
1. 담임 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들의 건강과 영성을 위하여
2. 방주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하여
3. 환우들을 위하여
4.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5. 다음 세대를 위하여 (청년부, 청소년부, 초등부, 유치부, 영유아부)